ㅁ 해설 존재와 성찰 그 인생론적 진실 --신대영 시집 『 』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자아의 인식과 인생론의 행간(行間) 현대시의 구조나 주제를 분석하는 일은 상당한 난점(難點)이 따른다. 그것은 그 시인의 시적 발상이나 전개 과정을 먼저 소상하게 이해해야 하는 문제가 대두되는데 이는 그 시인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체험을 파악하고 그가 지향하는 인생론의 정점(頂點)이 무엇인가를 교감하는 일이 중요하다. 대체로 한 시인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거기에 투영된 이미지나 주제를 명징(明澄)하게 접근한다는 것은 그 시인의 정서와 사유(思惟)가 그의 의식에서 흐르고 있는 향방(向方)을 추적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러한 점을 예비하고 작품을 분석해야 할 것이다. 여기 신대영 시인이 상재하는 시집 『 』의 원고를 일별하면서 먼저 상기되는 것이 이와 같은 인생론적인 진실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일이었다. 일찍이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인간에게 영원한 것, 중요한 것은 불투명한 베일에 싸여 있으며 베일 저쪽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지만 그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참으로 예측이 불가한 우리네 인생의 행로임을 적시하는 작품들을 대할 수가 있음을 간과(看過)할 수 없을 것이다. 신대영 시인은 이미 ‘시인의 말’에서 ‘청춘의 시절은 고달픔으로 살아오면서 베고픔을 알았고 세상의 변화를 알게 되었음을 기억하고 고백합니다’라는 그의 진솔한 인간적 내면을 표명(表明)함으로써 그가 창출하려는 시적 진실의 방향을 어느 정도 짐작하게 된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다 해바라기가 방향을 가리키듯 기러기도 겨울을 이겨 내려고 철 따라 줄지어 방향대로 날아오는 걸 너와 나의 방향은 어디로 일까 우연이라도 같은 곳으로 갈 수 있는 인생길에 방향의 길목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리키고 있을까 청춘의 나침반은 어느 쪽이며 황혼의 나침반은 어디로 일까 운명을 가리키는 나침반은 서쪽 하늘 바라보는 노을일까 --「나침반」 전문 신대영 시인은 이 작품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는 ‘나침반’을 응시(凝視)하면서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인생행로에 대한 중대한 의문을 분사(噴射)하고 있다. 우선 그는 ‘인생길에 방향의 길목에서 / 어느 방향으로 가리키고 있을까’ 또는 ‘운명을 가리키는 나침반은 / 서쪽 하늘 바라보는 노을일까’라는 어조(語調)로 그가 설정한 인생관이나 가치관에 대해서 가시거리가 예측불가한 현실적인 고뇌가 절실하게 발현되고 있다. 이러한 그의 방황은 그가 지금까지도 생(生)이나 존재에 대해서 성취하지 못한 현실적인 상관성이 그의 의식 내면에서 약간 혼란하기는 하지만 올바른 정도(正道)의 방향으로 정립하려는 의지가 적시(摘示)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영국의 비평가 칼라일은 ‘인생은 단지 기쁨도 아니고 슬픔도 아니며 그 두 가지를 지양하고 종합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스스로 파악해야 한다. 사람의 가치는 진리를 척도로 하지만, 그 진리를 찾기 위해서 맛본 고난에 의하여 개량되어야 한다’는 언명(言明)처럼 그에게 내재한 인생의 가치나 진리는 아직도 혼돈(混沌)에서 일탈(逸脫)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문형 시법(詩法)은 많은 시인들이 공유(共有)하는 것이지만, 신대영 시인의 의문은 자아(自我)의 인식이라는 의식의 변화를 모색하는 절대성을 확보하게 된다. 그것이 다음의 작품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젊었을 때의 모습과 지금의 나의 모습 앞으로의 거울 속에 비치는 그 추억의 모습 얼굴 한번 쳐다보고 나의 앞 뒷모습도 보고 머리카락을 만지는 모습 외모의 모습을 모두 보는 거울 거울 앞에 서 있는 나 자신 한 번쯤 속을 들여다보는 지나간 일들을 거울 속에 다가올 나의 갈 길의 모습도 --「거울」 전문 그렇다. 신대영 시인은 ‘젊었을 때의 모습과 / 지금의 나의 모습’을 ‘거울’을 통해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거울 앞에 서 있는 나 자신’의 모습에서 ‘지나간 일들을 거울 속에 / 다가올 나의 갈 길의 모습도’ 보게(인식)하게 된다. 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체험들이 하나의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인식의 범주(範疇)를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좋은 세상 덤으로 왔는데/인생은 살려고 애를 써도 / 영원히 살수가 없기에 /세상길은 나그네 인생 인가봐’ 그리고 ‘헛되고 헛된 것 부질없고 / 하루살이 같은 인생인 것을 / 떠날 때는 나그네 신세 / 아무것도 가지고 갈 것 없으리 / 세상사 모든 인심이나 쓰세나(이상 「나그네 인생」 중에서)’라는 어조와 같이 결국 인생은 허무라는 진리의 메시지를 주제로 적시하고 있어서 우리들의 공감을 유로(流路)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인생의 길은 멀지 않아 / 후회 말고 짧은 인생길 인심이나 쓰게나(「시월이 오면」 중에서)’라거나 ‘인생의 삶이 천천히 / 자연의 섭리로 돌아갈 수는 없는가’(「자연의 섭리 2」 중에서) 그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 세상을 풀어 놓고 마음대로 살 텐데(「채움과 비움」 중에서)’ 등의 자아에 대한 중대한 인식은 그의 삶과 인생의 전환점으로 혹은 시적 주제의 진실로 승화하고 있는 것이다. 2. ‘공수래 공수거’ 의식과 봉사정신 신대영 시인이 인식한 인생의 진리는 ‘우리들의 삶은 오늘이 존재한다 –중략-내일은 살아 보지 않았으니까 / 행복한 오늘을 후회 없이 살리라(「오늘 1」 중에서)’라는 단정과 같이 그의 존재의 원형과 그 원류에는 확고한 성찰의 이미지가 충만되어 있다. 그가 지향하는 후회없는 삶이 그의 가치관으로 승화하는 시법을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태어날 때 덤으로 공수래로 왔다 母親의 젖으로 배를 채우고 父親의 손으로 거치래 하였다 바람결에 날려 온 씨앗들이 욕심 없고 시기 없는 大地에 주렁주렁 열린 열매와 땅속에 붉고 하얀 뿌리를 대가 없이 얻었다 욕심 이란 게 무엇인지 세상에 인심이나 쓰지 아등바등 움켜쥐고 살아도 맨 나중에 공수거로 갈 것인데 부귀영화 누려도 하루 세끼뿐인 걸 웬걸 나누면서 살 것을 후회는 남의 손을 빌릴 때 그때는 이미 늦었는 걸 天使의 마음으로 奉仕하고 사세나 --「공수래 공수거」 전문 이 작품에서 그가 희구(希求)하는 인생의 정확한 의미나 지표(指標)를 이해할 수 있는데 ‘공수래 공수거’라는 시적 소재에서 감지(感知)할 수 있듯이 인생의 최종 정점에서 빈손으로 돌아가는 공허(空虛)의 미적 관념이 그의 심중(心中)에 조용히 일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대영 시인은 마지막 결론으로 제시한 ‘나누면서 살 것을 / 후회는 남의 손을 빌릴 때 / 그때는 이미 늦었는 걸 / 天使의 마음으로 奉仕하고 사세나’라는 메시지는 바로 그가 터득한 진리이며 인생의 진실임을 인지(認知)하고 생활 방식이나 처세(處世)의 안내로 봉사정신을 흡인(吸引)시키고 있다. 그의 이러한 봉사의 이미지는 ‘힘없고 약한 이에게 봉사하며 살다 가련다(「촛불」 중에서)’거나 ‘천하게 여기지 않은 주먹밥 한덩어리 / 귀한 줄 알고 세상살이 서로 도우며 봉사하자(「추억의 주먹밥」 중에서)’라는 그의 결심이 숭엄(崇嚴)하게 시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태어날 땐 빈손으로 나왔지만 세상 떠나 이별할 때 빈손으로 간다네 더도 덜도 말고 봉사하며 살아가세 --「쓰러지는 거목들」 중에서 인생을 시작하는 아름다운 부부의 길 세상 사람 먹고살기 위한 생존의 길, 나중에 맨 마지막으로 남기고 갈 길 이 모든 길이 봉사 봉사의 길이 나누는 여정의 길이 되기를 --「여정의 길」 중에서 나는 의지의 지팡이를 짚고 일어서서 가다가 울퉁불퉁 덜컹덜컹 거리는 마차에 몸을 싣고 밝은 빛 여울거리는 숲속 길을 후회 없이 가고자 하는 이와 봉사하며 가련다 --「울퉁불퉁 인생길」 중에서 그는 앞에서도 본 바와 같이 ‘욕심 이란 게 무엇인지 / 세상에 인심이나 쓰지’라는 무욕(無慾)의 심정뿐만 아니라, 다른 작품에서도 공허의 일념(一念)이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어서 ‘사방이 꽉 막혀 / 시야가 좁지만 / 남은 빈자리 / 넓은 세상 바라보며 / 비웠던 내 마음 / 空間[공간]의 채움일련가’(「여백」 중에서)라는 비장한 각성(覺醒)의 어조로 이 세상을 응시하고 있다. 여기 이 세 작품에서도 공통적으로 봉사에 대한 그의 정신적인 희생정신이 충만되어 있어서 그가 앞으로 인생을 영위하는 최선의 언행(言行)으로 추구(追求)하고 실행하는 목표가 될 것이다. 일찍이 인도의 간디는 최고의 도덕이란 끊임없이 남을 위한 봉사, 인류를 위한 사랑으로 봉사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신대영 시인의 중차대한 결의는 그가 살아온 인생과 살아갈 미래의 생존에서 무엇인가 획기적인 인생목표가 그 광영(光榮)을 생성하는 좋은 보람의 계기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는 ‘세상 떠나 이별할 때 빈손’과 ‘나누는 여정의 길’ 그리고 ‘밝은 빛 여울거리는 숲속 길을 후회 없이’ 생의 결실을 장식하고자 하는 그의 진실이 시로 발흥(發興)하여 생명과 존재의 원류로 설정하고 있어서 그와 교통(交通)하는 정감의 이미지는 한층 더 인생의 시광(始光)으로 빛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작품은 『강물 같이 흐르는 봉사』에서 아주 진지하게 들려주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A. 슈바이처 박사도 생애에서 외경(畏敬)의 윤리는 자기 주위의 모든 인간과 인생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고 인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인간으로서 봉사하라는 언지로 봉사의 진의(眞意)를 들려주고 있다. 이것은 신대영 시인의 시정신과도 일치하는 그의 인생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3. ‘그리움’의 진원지와 페이소스 신대영 시인의 정서에는 아주 깊은 곳에서 곰삭은 ‘그리움’의 진원지가 숨어 있다. 그는 이러한 시적 원류가 자신의 인생을 관류(灌流)하는 체험에서 획득한 불망(不忘)의 이미지가 충만해 있다. 그것이 바로 작품으로 형상화하고 있어서 우리들의 정감을 진하게 흠뻑 흡인하고 있다. 이 ‘그리움’의 발원 양상은 그의 인식에서 생성하는 페이소스(pathos-연민의 정)가 그의 내면에서 가녀린 운율로 풍겨지고 있다. 그것이 바로 그의 심중에서 영원히 삭제할 수 없는 그리움의 형태로 분사하고 있다. 꽃 피고 새우는 봄여름 지나고 황금 들녘 곡식은 고개 숙이고 겨울을 재촉하는 서리 내리네 내 마음속에 어머님이 그대로인데 언제 한번 뵐 수 있을까 나 어릴 적에 낚시터에 고기 채 올릴 때 살며시 미소 짓던 그 얼굴 아버지는 그때부터 하얀 머릿결이 보이더니 내가 중년이 되던 해 아버지 머리는 백색으로 변하였네 세월은 고장도 없고 세월은 가만히 있을 줄 모르니 세상에 아버지는 보이지 않네 --「추억 속에 그리움」 중에서 여기에서 화자(話者-persona)는 ‘어머니’와 ‘아버지’이다. 양친(兩親)을 통해서 추억하는 정경이 시적으로 형상화한다. 신대영 시인은 ‘내 마음속에 / 어머님이 그대로인데 / 언제 한번 뵐 수 있을까’라는 어조로 유년의 추억을 회상하면서 그리워하고 있다. 또한 ‘세월은 가만히 있을 줄 모르니 / 세상에 아버지는 보이지 않네’라고 이제 모두 고인이 된 양친을 역시 그리움의 시적 대상으로 설정하고 연민의 정을 보내고 있다. 신대영 시인의 뇌리(腦裏)에는 이처럼 양친에 대한 페이소스적인 정감이 내포(內包)되어 있어서 더욱 친근감을 유발시키고 있다.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본다. 산 중턱에 / 어머님이 계신 곳 / 쉬임없이 흘러가는 것이 / 구름인지 안개인가 /있다가도 없어지고 / 없다가도 나타나는 걸까(「추억 속에 그리움」 중에서) - 서로 만나 주고받는 술 잔 속에 / 오순도순 형제의 정 나누고 / 염원을 기도 하는 어머님 (「고향 향기」 중에서) - 밥 먹으라 불러서 가보면 / 시커먼 쑥버무리 / 한입 넣어 씹을 적에 / 엄마 얼굴 쳐다보고 (「동심으로」 중에서) - 흐르던 시냇물은 흔적을 감추고 / 재미있게 뛰놀던 청개구리들은 / 엄마 무덤 걱정 않고 어디로 갔는지 / 같이 놀던 많은 친구들 소식이 없고(「어느날 오후」 중에서) - 어느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아름다운 어머니 /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습니다 / 세 상에서 제일 가는 어머니 어머니입니다,(「어머니는 아름다워」 중에서) - 장롱 속에는 / 아버지의 외출 한복 / 어머니의 모시 저고리 / 세월에 흔적으로 / 빛바랜 동정 옷고름 / 고이고이 접어서 / 까치 울면 손님맞이에 / 입히시던 울 엄마(「어마니의 장 롱」 중에서) 밤 깊어 가는 줄 모르다가 / 호롱불이 깜박깜박 꺼질 때 / 늦은 밤 곤하게 잠이 드는 / 어머니 / 이제는 불러도불러도 대답이 없네 / 꿈에라도 보고 싶은 어머니(「호롱불」 중에서) 나의 이름은 홍시가 되었네 / 달콤한 맛으로 익어질 때면 / 울 엄마 나의 입속으로 쏙.......// 엄마 생각이 더 더욱 난다(「엄마 생각」 중에서) 그렇다. 그리움의 내면에서 항상 어머니가 존재한다. 일종의 사모곡(思母曲)처럼 그의 추억 속에서 불멸(不滅)의 존재로 각인(刻印)되어 있어서 상상을 재생하는 시적인 이미지로 부각(浮刻)되도 있는 것이다. 이 어머니는 일찍이 김남조 시인은 그의 글 「그 먼 길의 길벗」에서 말했다. ‘어머니! 이렇게 부르면 지체 없이 격렬한 전류가 온다. 아픈 전기이자. 아프고 뜨겁고 견딜 수 없는 전기다.’ 그리고 임어당도 ‘아버지의 의의는 인간 문명 속에 자라난 하나의 배양된 감정이지만 어머니로서의 의의는 천성불멸(天性不滅)의 것이다.’라는 명언으로 모성(母性)을 찬양하고 있다. 이 밖에도 신대영 시인의 그리움은 ‘한 평생 살아온 길 / 뒤로 돌아다 보니 / 사연 많고 곡절 많은 세월 / 그리움만 추억으로 남는구나(「그리움 남아」 중에서)’라는 어조와 같이 그의 심연(深淵)에서 사라지지 못한 간절한 궤적(軌跡)에서 창출되는 점은 다른 시인들과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의 추억에는 고향이나 친구 또는 ‘그 사람’ 등에서 그리움의 이미지를 교감할 수 있는데 대체로 지나간 추억에서 아직까지 남아서 아른거리는 ‘어린 시절 푸른 나무들 고목으로 변해가고 / 모진 세상 살아가는 옛 친구들 / 초딩 시절 검은 머리 이제 하얀 머리 보이네(「고향 산천」 중에서)’라는 그의 상황들로 생성하는 특징을 읽을 수 있다. 한편 ‘보낼 수 없는 편지 한 장 / 소식조차 알 수 없고 / 그 언제인가 올 거라고 /기다려 봐야지 그 사람(「그 사람」 중에서)’에서 그는 기다림과 그리움을 동시에 간절하게 창출하는 시법을 이해할 수 있는데 이 ‘그 사람’에 대한 사무침이 작품 곳곳에서 대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도 신대영 시인과 무관하지 않은 추억 속의 ‘그 사람’임을 짐작하게 한다. 4. 시간과 자연에서 탐색하는 서정시 1) 시간(혹은 세월)과의 교감과 서정성 신대영 시인은 지금까지 보아온 바처럼 존재와 생명 그리고 자아와 상찰 등 인간과의 상관성에서 지성적인 혜안으로 자신을 관찰하고 인식하면서 성찰한 가치관의 일단을 살펴 보았으나 그는 우리 주변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자연과 동행하는 시간성에서 변화하는 서정성을 탐구하고 있다. 그의 시간성은 우선 봄과 가을의 계절적인 이미지에 충만되어 있다. 봄의 이미지는 새 생명의 탄생이며 순진성과 순수성의 인간미를 표징한다. ‘봄 바다에는 도다리/육지 들녘에는 쑥 나물 / 한데 어우러져/혀끝에 시원한 그 맛 / 목에 넘어가는 소리(「봄이 오는 소리」 중에서)’와 ‘엊그제 청춘이었는데 / 언제 지나갔는지 / 너무나 빨리 지나간 세월 / 얼굴엔 화사한 꽃이 필 때(「봄날은 간다」 중에서)’ 등과 같이 시간의 흐름에 대한 아쉬움과 회한(悔恨)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운무가 낮게 깔린 들판 위로 산등성이 소나무 끝자락에 황금빛 눈부신 아침 햇살이 얼굴을 내밀며 솟아오른다 이슬을 듬뿍 먹은 황금 벼 이삭은 알 밴 몸이 무거워 고개 숙인다 황금 벼의 일생도 얼마 지나면 피땀 흘렸던 농부들의 손길에 여름에 아름답게 피었던 꽃잎은 피울 때는 너무나 아름답지만 잠깐 피었다가 시들어지면 빗자루에 쓸려 나가 버리는 걸 푸르던 잎사귀 색색이 변하여 지고 아름다운 단풍으로 자랑하다 어여쁜 손길에 책갈피 속으로 고이고이 간직하려 하는구나 --「가을 풍경」 전문 신대영 시인이 심취하는 ‘가을 풍경’은 가을이 상징하는 풍요의 이미지보다는 결실 후의 소멸에 대한 정감이 넘쳐나고 있다. ‘여름에 아름답게 피었던 꽃잎은 / 피울 때는 너무나 아름답지만 / 잠깐 피었다가 시들어지면 / 빗자루에 쓸려 나가 버리는 걸’이라는 어조는 아름다움, 풍성함 등의 미감(美感)들이 허무라는 이미지를 동반하는 시법이다. 이제는 ‘어여쁜 손길에 책갈피 속으로 / 고이고이 간직하려 하는구나’라는 체념의 어조가 우리 인생의 한 장면처럼 을씨년해지기도 한다. 그가 교감하는 ‘가을’은 어쩐지 교독하다. 그 고독은 바로 계절적인 시적 상황으로 변하면서 인생의 우수를 절감하게 하고 있다. 한목 어귀 갯바위 추위가 오기 전에 갈색으로 변한 잎은 추풍낙엽으로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는데 흙도 없이 척박한 바위틈에 사계절 푸른 잎을 간직 빨갛게 피어나는 동백꽃 엄동설한 춥던 겨울 동짓달 어여쁜 아가씨 님 따라 시집가던 날 새색시로 꽃 피었네 겨울에 피는 꽃으로 --「겨울에 피는 꽃」 전문 이 ‘겨울’의 상황은 어떠한가. 역시 ‘추풍낙엽으로 떨어지고 /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는 겨울 정경(情景)에서 무엇인가 잃어버린 듯한 정감이 넘치고 있다. 잘 알고 있는 바이지만, 이 시간성 특히 계절의 변화와 거기에 수반(隨伴)하는 자연의 서정적인 정취는 인생의 흐름과 같이 다변적인 상황이 전개되고 전달된다. 이처럼 계절(시간)이 제시하는 이미지들은 우리 인간의 생명 즉 존재와도 무관(無關)하지 않으며 생노병사(生老病死)라는 섭리와도 상통하는 불가분의 상관성을 갖는다. 그래서 ‘겨울에 피는 꽃’이라는 형상은 ‘동백꽃’에 대한 찬사를 보내는 것이다. 또한 그는 ‘세상천지가 하이얀 솜털 같다 / 나뭇가지마다 설화의 꽃이 피었다 // 직은 가을이 남은 것 같은데 / 떨어지는 낙엽 위에 하이얀 눈이 내렸네(「설경」 중에서)’라고 순정적인 동심으로 돌아간 겨울 서정을 감득(感得)하게 된다. 신대영 시인의 서정성은 이 밖에도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지 / 허리 굽은 나무 들이 / 앙상한 가지에 움이 터고 / 꽃망울 향기가 나를 부르고(「계룡산을 오르면서」 중에서)’, ‘잡으려 해도 가는 세월 / 먹은 것은 나이 뿐 / 둥근달 기다린데 / 초승달만 보이네(「반달」 중에서)’ 그리고 ‘삼삼 모여 있는 아낙네는 / 해 기우는 줄 모르지만 / 그~저 노을이 좋다 // 세월은 흘러도 그~저 좋다(「노을이 좋다」 중에서)’는 등의 어조와 같이 ‘세월’과 시간적 서정이 동시에 발현하고 안정된 시심(詩心)으로 그의 진실을 여과(濾過)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2) 자연 서정에서 탐색하는 인생론 신대영 시인은 다시 시간 서정과 동행하는 자연 서정의 경지를 음미(吟味)하게 되는데 이는 그가 착목(着目)하는 만유(萬有)의 사물에서 미적으로 감응하는 것이 만개(滿開)하는 꽃들에게서 탐색한 이미지가 그를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화와 낙화(또는 낙엽) 등은 자연의 섭리에 의해서 생성한다는 그의 지적인 심안(心眼)을 확인하게 된다. 누구도 모르는 사이 벌써 땅속에서 흙을 뚫고 나왔네 파아란 잎들이 예전엔 몰랐었네 계절을 무시하고 철없이 피어나는 꽃잎 누굴 따라 나왔을까 봄인 줄 알았는데 너무나 차가워 그 어린 순들이 공기 이동 심하여 하얗게 변했네 반갑지 않은 시베리아 찬 공기 왜 그리 심술을 부리는지 그만 이어도 될 텐데 누구를 원망하리 자연의 섭리대로 행하는 것을 --「꽃샘추위」 전문 그는 이렇게 ‘자연의 섭리’를 수긍(首肯)하면서 만물(외적(外的) 사물)을 응시하고 있다. ‘계절을 무시하고 / 철없이 피어나는 꽃잎’과 ‘봄인 줄 알았는데 / 너무나 차가워’라는 어조는 섭리대로 ‘벌써 땅속에서 / 흙을 뚫고 나왔’는데 ‘시베리아 찬 공기’의 심술로 ‘꽃샘추위’가 되었음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적 정황(情況-situation)에 공감한다. 대체로 자연 서정의 탐색에는 고 김준오 교수의 『시론(詩論)』에 따르면 ‘감상적 오류(誤謬)’라고 불리는 자연의 인격화에는 동화(同化-assimilation)와 투사(投射-project)라는 두 원리가 있다고 한다. 동화는 시인이 모든 자연을 자신 속으로 끌어와서 그것을 내적(內的) 인격화하는 것이고 투사는 시인이란 정체가 없기 때문에 그가 계속해서 어떤 존재를 채우는 것 곧 자연 속에 자신을 상상적으로 투여하는 원리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낭만적인 두 가지 원리를 우리 시인들은 자연과의 서정적 교감과 서정적 자아의 창조라는 시법을 자주 응용하고 있는 것이다. 신대영 시인도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이 직접 자연이 되느냐(주관) 혹은 자연을 내 속으로 끌어오느냐(객관) 하는 문제는 신대영 시인의 비정적(非情的) 타자성(他者性)이라는 자연관이 다양하게 분출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신대영 시인이 자연과 더불어 그 경관(景觀)에서 자신이 그 꽃(또는 다른 숲, 나무 등등)이 되는냐, 아니면 자신의 내면으로 그 꽃을 가지고 왔느냐의 차이가 동화와 투사의 시점(視點)이다. 여기에서 생성하는 자연관은 상당한 심적인 유동(流動)을 유발하게 되는데 이것이 시적 정황으로 나타나게 된다. 지난해 고드름 주렁주렁 긴긴밤 소슬바람이 옆구리 스치고 새벽녘 한숨을 쉬고 나니 뽀얀 햇살이 얼굴에 비치니 이제야 살 것 같으니 나뭇잎 피기 전에 서둘러 이 가지 저 가지 꽃망울 서서히 터지는 꽃술이 하얀색도 아닌 베이지색으로 터졌네 터졌어 목련으로 잎사귀 없이 홀몸으로 뉘에게 귀여움 받으려고 세월에 흔적을 가슴에 안고 지나가는 나그네 눈동자에 미소 가득 채웠으면 좋으련만 --「목련꽃 필 무렵」 전문 이 ‘목련꽃’에서는 다른 만물의 생명성과 동일하게 ‘세월에 흔적을’ 교감하고 있어서 그에게 투사된 ‘목련꽃’은 앞의 장(章)에서 살펴본 시간성과 자연의 생성은 동일시하는 시적 경향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그가 ‘지난해 고드름 주렁주렁 긴긴밤’이나 ‘새벽녘 한숨을 쉬고 나니’ 그리고 ‘나뭇잎 피기 전’이라는 시간성의 명시는 그가 ‘세월’의 아쉬운 인생행로와 자신의 인생을 결부하는 서정성의 발현이다. 신대영 시인은 ‘찐한 향기가 / 산야에 자욱하다 / 잎이 돋을 때면/꽃잎의 일생은 마치고 / 고향으로 돌아가야지(「진달래 향기」 중에서)’라거나 ‘언젠가 시들은 꽃잎 되어 / 떨어질 때에 / 마음에 가시도 가져가야지(「찔레꽃 사연」 중에서)’ 그리고 ‘유월이면 / 남풍이 불어오고 / 뙤약볕 아래서 / 보석 같은 꽃봉오리가 / 눈부시게 화려한 빛이 나네(「석류꽃 필 때」 중에서)’라는 그의 침착한 어조에서 느낄 수 있듯이 시간과 자연(꽃)의 향연(饗宴)은 서정의 중심에서 그를 흡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시적 대상물 ‘억새풀’이나 ‘가시나무꽃’, ‘단풍’ 등등에서 그가 동화하는 자연관의 작품을 많이 대할 수가 있어서 그의 내면에 의식으로 흐르고 있는 정서의 원류는 순정적이며 순수한 인간애를 분사하고 있는 것이다. 신대영 시인은 페이소스가 넘치는 서정시인이다. 그는 이 시집을 통해서 살펴본 그의 시정(詩情)은 먼저 자아를 성찰하면서 심층적으로 논한 인생론과 거기에서 창출한 ‘공수래 공수거’의 인생철학에서 정립시킨 봉사정신의 확고한 가치관을 명징하게 표출한 점이 그에게서 특히 주목할 만한 시법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우리 주변에서 생성하는 시간과 자연에 심취하면서 투영하는 서정성은 그의 천성적인 심리작용과 일치하는 연민의 정감이 더욱 공감대를 확산시켜서 그의 작품에 많은 찬사가 쏟아질 것으로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가 그의 『시론』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시는 아름답기만 해서는 모자란다고 한다.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 필요가 있고 듣는 이의 영혼을 뜻대로 이끌어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것은 아름다운 심정에 호소하는 페이소스적인 연약성을 벗어나서 좀더 인간과 가까운 인본주의(huamnism)의 작품을 창작해야 한다는 경고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이를 명심해야 한다. 시집 출간을 축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