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에는 영화 '공작'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영화를 아직 안보신 분들은 나중에 읽어주세요~
영화는 시작되고나서 한반도의 분단과 전쟁으로 40여 년의 대립상황임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전도유망한 육군 장교가 신용불량자가 되고, 북파공작원이 되어 북한에 들어가 핵개발에 관한 정보를 빼내 오는 역할을 보여줍니다. 흔히 말하는 스파이 영화, 그런데 영화에서는 총질도 첨단 장비도 여자를 한눈에 반하게 하는 매력적인 남자, 영웅적인 활약을 하는 스파이는 없습니다. ‘우리말’을 하는 사람들끼리 분단과 전쟁, 그리고 극단적인 증오와 대립의 상황에서 각자 최선을 다하는 역할만 나옵니다.
영화 ‘공조’는 북으로 간 남측의 스파이를 그린 영화입니다. 지금까지 간첩, 특히 (남파)공작원 하면 전부 북에서 내려온 사람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름도 낯선 ‘북파공작원’ 흑금성의 활약을 다룹니다. 알고보면 북에서 남으로, 남에서 북으로 많이 보내고 왔다갔다 했는데 남한에서는 북에서 보낸 ‘간첩’만 있지 남에서 보낸 ‘간첩’은 아마 이번 영화로 그 존재를 처음 알았을 것입니다.
영화를 보기 전 우리에게, 특히 남한에서 북한의 존재를 생각해 봅니다. 한국전쟁 이후 40여 년(영화 공작 기준), 북한은 악의 제국이었고 빨갱이들만 모여사는 곳, 알 수도 접촉할 수도 없었습니다. 북한에 접촉은커녕 알려고 하는 것 조차 불온시되고 ‘북’이라는 말은 남한 사회의 금기어였습니다. 극히 일부, 보수정치권만 북한을 알고 접촉하고 상대할 뿐입니다. 영화 ‘공조’는 바로 이 지점을 자연스럽게 접근합니다. 북한은 악의 제국도 빨갱이만 사는 곳이 아닌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
흑금성 박석영과 리명운의 진정성과 절실함이 남북관계의 새로운 역사를 만든 것이 아닌지...
육군장교에서 북파공작원이 된 ‘흑금성’ 박석영은 북한의 어려운 경제사정을 틈타 외화벌이 책임자 리명운을 만나 자연스레 북한 정권 핵심부로 들어갑니다. 당시 94년은 북한의 이른바 영변 핵개발이 한창인 때, 남한으로서는 북한의 핵개발에 관한 정보가 절실할 때입니다. 몇 번의 위기도 겪지만, 박석영은 남한의 자금으로 북한 수뇌부에게 필요한 외화를 제공하면서 최고존엄까지 만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박석영은 뜻하지 않은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게 됩니다. 자신은 목숨을 걸고 북한에 잠입, 핵개발 정보를 빼오는데 남한 보수 정치권과 북한 수뇌부는 남북대치 상황을 이용해 각자의 입맛에 맞는 정치적 흥정과 거래를 아주 자연스럽게 한다는 것이죠. 1996년 국회의원 총선 직전, 집권여당이 불리하고 야당의 압승이 예상되자 집권여당은 안기부를 통해 북한 수뇌부에게 판문점에서 총질을 부탁하는 이른바 북풍사건을 연출합니다. 갑자기 남북관계의 경색과 안보팔이로 집권여당의 압승으로 끝납니다. 공작원인 박석영은 목숨을 걸고 북한을 오가는데 남한의 정치권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안보장사를 하고 있는 상황, 박석영은 깊은 회의를 느낍니다.
박석영의 파트너이자 북한 외화벌이 총책인 리명운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 수뇌부의 외화벌이를 담당하지만 북한의 어려운 경제상황에 고심하는 리명운은 남북합작 사업을 확장하려고 합니다. 어쩌면 박석영의 의도를 알면서도 북한 내부 곳곳을 들여다 보는 광고촬영까지 응해 성사시킵니다. 94년에 심화된 북한의 ‘고난의 행군’ 시절, 자연재해에 핵개발로 인한 국제사회의 압박으로 북한은 ‘꽃제비’가 나오고 굶어죽는 사람들이 길에 넘칩니다. 이 상황에서 리명운은 오히려 박석영에 더 매달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97년 12월 대선 직전, 남한의 보수정권은 IMF로 대변되는, 국가 부도사태를 맞아 필패의 상황에서 다시 한번 안기부까지 동원 북한 수뇌부에 매달립니다. 지난 96년 총선 직전의 판문점 총질보다 더 강하게 북풍공작을 진행합니다. 바로 이 때 박석영은 절체절명의 공작을 펼칩니다. 실화에 바탕을 뒀다고 하지만, 리명운과 함께 북한 최고 수뇌, 김정일을 만나 남한에서 벌이는 공작을 막습니다. 북한도 사회주의 전력에 친북(?)적인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면 오히려 북한에 더 강경할 것 같아 주저하는 상황, 박석영은 남북관계의 미래를 위해 북한이 남한 대선에 개입하는 것을 막습니다. 필사적인 박석영의 노력, IMF를 초래한 주범임에도 불구하고 선거는 박빙으로 김대중 후보의 당선을 알리는 자막이 뜹니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만약 대선 직전, 또 한번의 안보장사 혹은 남북경색이 심화돼서 보수정권의 이회창 세력이 정권을 잡았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상상에 맡깁니다.
대선에서 야당 후보 김대중이 승리하자 집권여당과 안기부는 희생양을 찾습니다. 지금까지의 북풍공작과 판문점 총질은 안기부 통제를 받지 않는 북파공작원 책임이라며 흑금성 박석영의 실체를 세상에 드러냅니다. 비밀공작원, 스파이의 존재를 조국이 버린 꼴, 신분이 노출된 박석영은 리명운의 도움으로 북에서 나와 그를 배신하고 버린 조국으로 돌아옵니다.
영화 '공작'은 남북의 역사를 바꾸려는 자와 그것을 막으려는 자들간의 치열한 싸움을 보여주는 것..
실화보다 더 실화같은 영화, 공작은 총질도 첨단장비도 멋진 여자도 안나오는 스파이 영화이지만, 몰입도가 아주 좋았습니다. 스파이 세계를 그린 영화답게 영화는 내내 긴장을 유발합니다. 스파이들 간의 수 싸움이 아닌, 스파이 활동 외적인 남북 수뇌들간의 흥정과 거래 속에 그들의 존재와 역할이 결코 작지 않았음을 영화 내내 보여줍니다. 두 남자의 진정성,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국가의 존재와 이익을 위해 분투하는 내용이 사실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죠.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리명운이 화려한 호텔이나 연회장이 아닌 자신의 집에서 집밥으로 박석영을 대접하는 장면, 공작원이 되면서 술을 안먹는다는 박석영이 건배를 하는 장면, 스파이들이 아닌 평범한 가장이자 자신이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이 그려져 뭉클했습니다.
영화는 남북관계와 남북 정치권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를 보여줍니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것은 국가의 이익이 아닌 남북의 실권자들이 자신만을 위해 남북관계를 이용하고, 그 밑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영문도 모르고 대립과 증오를 강요받고 세뇌받았다는 것이죠. 북한에 대해 접촉하거나 알려고 했던 그 모든 것을 국가보안법으로 막은 사람들, 특히 국내정세의 불리를 만회하기 위해 동포에게 총질을 해달라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 5공 전두환 시절 이후 박근혜 정권까지 심심치 않게 터져 나오는 ‘간첩단’ 사건, 이 모든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영화는 보수정권의 실체와 추악한 민낯을 있는 그대로, 과장도 없이 보여줍니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면서 흑금성 박석영에 대한 그 이후를 알려줍니다. 세상에 실체가 밝혀진 흑금성 박석영은 더 이상 활동할 수 없어 남북무역에 종사하다가 2010년 이명박 정권에 의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6년 여의 감옥생활을 마치고 풀려 놨다고 합니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북에 간 공작원 흑금성은 배신에 버림받고 감옥까지... 영화관 안에서 짧은 탄식이 흘러 나옵니다. 또 한번 역사에 가정이 없다지만, 흑금성 박석영과 리명운의 노력이 없었다면 김대중 대통령의 6.15 방북도, 노무현 정부의 남북교류도, 그리고 무엇보다 2018년 4월 17일 판문점 도보다리의 감격도 없었을 것입니다.
* 흑금성 박석영(본명 박채서)의 활동은 김당 기자의 [공작]이라는 책에 생생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좋은 소재라 여러 영화감독의 영화제작 요청이 있었는데 김당 기자가 윤종빈 감독을 추천, 박채서 씨도 영화가 더 잘 만들었다고 상당히 흡족해 했다고 합니다.
흑금성 박채서 씨와 북한 무용수 조명애 기념사진
* 박채서씨는 남북합작, 광고의 일환으로 2005년 가수 이효리와 북한 무용수 조명애와의 만남을 통해 삼성전자 애니콜 TV광고를 만들었는데 대단한 화제를 몰고 왔죠. 이효리와 조명애, 남북한 여성 비교로 정작 애니콜 광고는 잊어 버렸다는, 광고계의 또다른 전설로 남은 광고였습니다. 이후 노무현 정부 시절 남북관계를 타개하고자 남북결혼 이벤트를 추진, 조명애와 남한 청년과의 결혼을 주선, 성사 단계였는데 그 당시 안기부 적폐세력(?)의 방해로 성사되지 못하고 그 충격으로 조명애는 상당히 망가졌다는 후일담이 전해집니다.
다소 무거운 주제라 여성단원들의 호응이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습니다. 11분이 모여 영화관람
상영 내내 지속된 긴장감에 모처럼 속세로부터의 '해탈'을 맛보았습니다. ^^* 씁쓸하게도 진정한 '역사 진행'의 방해 '공작'은 늘 그렇듯,,,내부에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우리 오케스트라 앞길에 걸림돌이 되는 내부의 '공작'은 설마,,, 없겠죠? ^^;;) 언제나 그렇듯, 낙화님의 영화상영 전후의 명해설/해석, 문자 그대로 '화룡점정'입니다. ^^ 다음엔 또 어떤 영화가 기다리고 있을까,,,ㅎ 벌써부터 기대 만땅입니다~~ㅎ
첫댓글 많은 생각을 하게된 영화였어요. 낙화님의 명품해석을 읽으니 영화를 두번본것같네요. 빗속을 뚫고 굳세게 달려갔던 종로거리..영화도 좋았고 종로 뒷골목 허름한 선술집에서 좋은 분들과 함께한 시간도 기억에 많이 남네요..낙화님 감사해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위해 헌신하는 남과북의 사람들~이런분들이 있기에 언젠가는 통일이 이루어 질거 같습니다~
낙화님 덕분에 좋은주제의 영화관람 잘하고~
세찬 빗소리 들으며 맛난 음식 잘 먹었습니다~담주에도 좋은 영화 부탁드려요~^^
상영 내내 지속된 긴장감에 모처럼 속세로부터의 '해탈'을 맛보았습니다. ^^*
씁쓸하게도 진정한 '역사 진행'의 방해 '공작'은 늘 그렇듯,,,내부에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우리 오케스트라 앞길에 걸림돌이 되는 내부의 '공작'은 설마,,, 없겠죠? ^^;;)
언제나 그렇듯, 낙화님의 영화상영 전후의 명해설/해석, 문자 그대로 '화룡점정'입니다. ^^
다음엔 또 어떤 영화가 기다리고 있을까,,,ㅎ 벌써부터 기대 만땅입니다~~ㅎ
이렇게 재밌는 이벤트가 따를 줄 알았으면 영화를 두 번 볼걸 그랬나봅니다.
탄탄한 영화 해석 덕분에 이해가 더 깊어졌습니다.
얼마 전 판도라에 흑금성이 출연했는데,
정말 멋진 분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