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신화에는 상당히 많은 신들이 나옵니다.
사람이 죽으면 자칼 모양의 신 아누비스가 심판대로 데리고 가서 심장의 무게를 잰다고 합니다.
죄가 없어서 심장이 깃털보다 가벼우면 영생을 얻습니다.
그런데 깃털보다 무거우면 악어 모양의 신 암무트한테 잡아먹힙니다.
심장이 깃털보다 가벼우려면 어느 만큼 죄가 없어야 할까요?
아마 전혀 없어야 할 것입니다.
눈곱만한 죄도 용납이 안 됩니다.
영생은 아무나 얻을 수 없다는 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라는 뜻입니다.
진지하게 고민해 보십시다.
하나님이 정말 계실까요?
하나님이 계시다 치는 것이 아니고 정말 계시다면, 우리는 언젠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그때 의롭다는 판정을 받지 못하면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은 하나님께 의롭다는 판정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율법을 통해서 확인되었습니다.
남은 것은 저주뿐입니다.
우리 영혼이 영원하니 저주 또한 영원할 것입니다.
그 저주를 예수님이 대신 받으셨습니다.
율법을 지킬 재간이 없는 우리가 율법을 지킨 것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 받는다는 말에는 이런 내용이 포함됩니다.
예수님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전도지에 특히 자주 보이는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 오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이다. 이 세상 모든 근심 걱정 다 예수님께 맡기고 편히 쉴 수 있다.”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어지는 말씀이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입니다.
난데없이 멍에 얘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께 배우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멍에가 쉬우면 쉽지 않은 멍에는 어떤 멍에입니까?
사도행전 15장에 예루살렘 종교회의 얘기가 나옵니다.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는 것이 의제였습니다.
이방인이 예수를 믿으려면 먼저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방인과 유대인을 차별하지 않는다면서, 이방인 역시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럼 말을 하면서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행 15:10)”라는 말을 합니다.
율법을 멍에로 얘기한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 말씀은 “세상살이가 얼마나 힘드냐? 내가 다 해결해 주마.”라는 뜻이 아닙니다.
“자기 능력으로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께 합격 점수 받으려고 애쓰는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그 문제는 내가 해결해 주마”라는 뜻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구절에는 색연필로 밑줄을 그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는 말씀에도 아마 밑줄이 그어져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밑줄을 긋는 것으로 이 말씀의 뜻을 알 수는 없습니다.
먼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져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울 수 있는지에 대해서 처절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라야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는 말씀에 눈이 번쩍 뜨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