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라고 다 같은 소나무가 아니다. 태어나고 자란 곳에 따라 모양과 때깔이 다르다. 종자에 따라 뻗어나간 기상도 다르다.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을 따라 자라는 금강송. 국내 소나무 가운데 금강송과 견줄만한 소나무는 없다. 제 아무리 아름다움을 뽐내는 소나무라 하더라도 금강송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싱싱한 놈은 껍질도 붉고, 거죽을 벗겨낸 몸통도 붉다. 그래서 황장목(黃腸木)이라고도 불렀다. 이 소나무는 굽을 줄을 모른다. 오로지 하늘을 향해서만 쭉쭉 뻗어 올라간다. 배롱나무처럼 실실 허리를 꼬며 자라는 경주 삼릉의 솔숲과는 견줄 수 없는 품격이 있다. 금강송과 마주하는 순간 자연에 대한 존경과 경이로움이 몰려온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절대지존의 포스가 느껴진다. 오죽하면, 조선의 황실에서는 금강송 군락지는 함부로 벌채할 수 없는 봉산(封山)으로 지정하고, 궁궐을 짓거나 나라의 큰 일이 있을 때만 베어다 썼을까. | |
생태경영림으로 지정된 우리나라 최고의 금강송 군락지
경북 울진군 서면 소광리는 금강송 군락지 가운데 최고로 꼽는 곳이다. 낙동정맥의 깊숙한 품에 자리한 이곳은 늘씬하게 하늘로만 치솟은 금강송이 산과 숲을 빼곡하게 매우고 있다. 헌걸차게 치솟은 금강송의 자태도 자랑거리이지만 이처럼 규모 있는 숲을 찾아보기 어렵다. 워낙 깊은 산속이라 일제와 한국전쟁 등 근대화의 과정에서 무분별하게 자행된 벌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의 면적은 2247ha. 수령 500년이 넘은 보호수 두 그루와 350년 된 미인송, 200년 이상의 노송 8만 그루 등 총 1,284만 그루의 금강송이 이곳에 자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는 1959년부터 민간인의 출입을 금지했다. 금강송 군락지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06년. 남부지방산림청이 ‘금강소나무 생태경영림 에코투어’란 이름으로 일반에 개방했다. 이로써 과거 조선 왕실부터 봉산으로 지정돼 신비에 싸여 있던 이 숲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소광리 금강숲을 둘러보는 길은 두 갈래다. 하나는 임도와 산책로를 따라 짧게 돌아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임도를 따라가면서 종일토록 금강송을 찾아다니는 방법이다. 대부분은 2시간이면 충분한 탐방코스를 선택한다. | |
매끈하게 뻗어나간 금강송의 자태. 금강송은 젊고 싱싱한 것일수록 몸통의 껍질이 붉다.
500년을 살아온 할아버지송에서 풍기는 세월의 무게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 주차장에 도착할 때부터 솔향기가 가득하다. 주차장을 감싼 숲이 모두 금강송으로 빼곡하다. 사람들은 하늘로 쭉쭉 뻗어 올라간 소나무를 보면서 감탄사를 연발한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이다. 주차장 주변에 심어진 금강송은 후계림으로 조성된 것. 고작해야 연차가 20~30년 밖에 되지 않는다. 100년 이상 묵은 진짜 금강송들은 산책로를 따라 들어가야 만날 수 있다.
산책로는 임도를 따라 조성됐다. 부드러운 흙길이라 걷기 좋다. 물론, 길 좌우로 금강송이 사열을 하듯 서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길은 가볍게 굴곡지면서 계곡을 향해간다. 100년 전에 낙동정맥 고개를 넘는 길이 그랬을 것처럼 푸근한 인상이다. 그 길을 따라 600m쯤 가면 길 한 켠에 우람한 덩치의 금강송과 마주보게 된다. 첫눈에도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젊고 패기 넘치는 여느 금강송과 달리 만고풍상을 다 겪은 눈치다. 이 나무가 할아버지송이다.
할아버지송의 나이는 무려 500살. 조선 9대 임금인 성종 때 태어났다. 할아버지송은 여느 금강송과 달리 몸통에서 뻗어나간 가지가 두껍다. 굵기만 두꺼운 게 아니다.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용 모양으로 가지가 심하게 뒤틀렸다. 몸통을 감싼 딱지는 거북의 등짝처럼 두껍고 단단하다. 할아버지송 곁에 금강송과 일반 소나무의 속살을 비교 체험할 수 있는 안내소가 있다. | |
전망대에 서면 금강송숲이 파노라마로 펼쳐져
할아버지송을 지나면 길이 아주 조금 가팔라진다. 임도 좌우에 도열한 금강송의 호위는 여전하다. 왼쪽은 후계림 조성 구역이다. 가파른 산비탈에 금강송이 드문드문 서 있다. 그 빈자리에는 갓 식재된 어린 금강송이 자라고 있다. 어린 금강송은 100년이 지나면 여느 금강송처럼 우람한 청년이 될 것이다. | |
금강송이 군락을 이룬 숲은 초록바다를 연상케 한다. 초록이 물든 숲에 붉은 기둥처럼 금강송이 수직으로 가르며 서 있다.
할아버지송에서 400m쯤 가면 다리를 건넌다. 이 다리를 건너면서 탐방로는 왼쪽 계곡으로 든다. 이제부터는 능선을 타고 가며 금강송을 감상한다. 산책로는 임도를 따라 걷는 것과는 느낌이 분명히 다르다. 아주 깊은 솔숲에 든 것처럼 금강송 사이사이를 빠져 다닌다. 길의 기울기도 가팔라진다. 임도를 따라 편히 오던 것과는 달리, 가파른 계단에 가쁜 숨을 토하게 된다. 그러나 금강송에서 뿜어져 나오는 청신한 기운이 몸속 깊이 파고들어 생각만큼 힘들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능선을 따라 가파르게 이어진 길은 전망대에 닿는다. 임도 갈림길에서 10분 거리다. 2시간 탐방 코스 가운데 가장 높은 곳이자 주변의 금강송을 조망하는 포인트다. 360도를 돌아봐도 금강송의 바다다. 젊고, 싱싱한, 붉은 빛이 선명한 나무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이마에 흐르는 굵은 땀을 훔치면서도 연신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전망대에는 금강송을 잘라 만든 쉼터가 있다. | |
임도에서 다시 계곡으로 들면 지름 120cm 금강송이 기다려
전망대에서 두어 걸음이면 다시 임도와 만난다. 이곳에서는 오른쪽으로 돌아내려간다. 왼쪽으로 가면 끝도 없이 임도를 따라간다. 임도를 따라서 200m 내려오면 길은 다시 계곡으로 내려선다. 이정표도 있다. 편한 길을 걷고 싶다면 계속 임도를 따라가도 된다.
계곡을 따라서도 여전히 금강송 군락지다. 그 중에 하나, 아주 우람한 덩치의 금강송이 길을 막아선다. ‘여러분이 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저를 안고 기념촬영하세요’라는 안내판이 서 있는 이 나무의 높이는 35m. 아파트 10층 높이다. 가슴둘레의 지름은 120cm. 어른 둘이 껴안아도 쉽지 않을 만큼 두껍다.
‘포토 스팟’을 지나면 작은 계곡을 가로질러 다시 임도 위로 올라선다. 임도를 따라 조금만 내려오면 처음 금강송 숲으로 들던 갈림길이다. 올라오던 길도 그랬지만 돌아가는 길도 발걸음이 편안하다. 여전히 임도 좌우의 숲에는 학처럼 고고한 자태의 금강송이 긴 목을 빼고 작별 인사를 건넨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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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교를 건너면 잔대미 마을이다. 평범한 산골 마을 밭이 펼쳐진 풍경이다. 계곡 사람들은 ‘비탈밭’에서 채소나 당귀 같은 한약재 농사를 짓는다. 마음 편안하게 녹색의 향연을 즐기며 걷는다. 그렇게 2~3km 정도 걸었을까? 길가의 풍경이 거칠게 바뀐다. | |
하늘 가린 숲, 음습한 계곡길
길 오른쪽은 산 절개면이다. 바위와 흙이 엉켜있는 그곳에 나무뿌리가 드러났다. 왼쪽은 계곡 낭떠러지다. 길 한참 아래로 물길이 났다. 무성하게 자란 나무 사이로 계곡은 보이지만 길에서 바로 내려갈 수 없다. 나무가 하늘을 가렸다. 숲과 계곡이 내뿜는 음습한 기운이 마음을 졸였다. 계곡으로 떨어지는 낭떠러지 말고는 앞뒤 옆이 산에 산이고 절벽에 절벽이다. ‘첩첩산중’이란 말이 이 계곡에 딱 맞아떨어진다. 계곡 상류로 들어갈수록 눈과 귀, 코와 숨구멍까지 계곡의 숨결에 익숙해진다. | |
계곡에 바람이 불면 물소리도 더 쾌활해 진다. 서늘한 계곡의 기운에 여름 더위가 싹 가신다.
계곡은 낯설면서도 아름다웠다. 한차례 바람이 계곡을 휩쓸고 간다. 숲 전체가 일렁이고 계곡에서 부서지는 물 알갱이가 바람에 흩날린다. 비 온 뒤라 물이 많다. 5km 정도 걸어 마방에 도착했다. 새로 놓은 다리는 계곡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 마방에는 민박집과 야영장 등이 있다. 여기까지 왔다면 이번 걷기여행 코스의 반쯤 온 셈이다. 마방에서 처음으로 물가로 내려갔다. 계곡은 협곡처럼 산에 둘러싸여 답답했지만 물은 깨끗하고 차가웠다. 잠시 물가에서 쉬어 가기로 했다. 산에 걸린 하늘이 좁다. | |
계곡의 밤, 마음에 새긴 발걸음
산 높고 골 깊은 이곳은 어둠이 일찍 찾아온다. 마방 계곡에서 십여 분 정도 쉬었다가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걸어 약 2km 정도 위에 있는 황토민박집에 숙소를 정해야 했다. 민박집 앞 넓은 계곡으로 나갔다. 해질 무렵 계곡물은 더 큰 소리를 내며 흐르고 물도 더 부풀어 오르는 것 같다. 텀벙거리며 계곡물을 거슬러 올라갔다. 다리가 휘청거리고 시리다. 물에 그대로 누워 뒹굴었다. 음습한 계곡의 습기와 땀이 씻겨나간다. 계곡물에 들어가 앉아 멍하니 있었다. 머리도 맑아진다. 계곡의 밤은 소리로 보고 소리로 느끼고 소리로 모든 것을 직감해야 한다. 민박집 전등불이 있지만 계곡은 칠흑같이 깜깜하다.
바람은 낮보다 더 날카롭게 울부짖는다. 우리가 있는 숲과 계곡이 통째로 회오리바람에 휘말려 ‘오즈의 세상’으로 날아갈 것 같았다. 이럴 때면 불 켜진 창들이 아늑하다. 창 안 환한 불빛 아래서 소곤대며 옛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밤이 이슥해질 때까지 술잔은 계속 돌았고 마음 깊은 곳 비밀의 방 자물쇠를 열고 그 안에 숨겨 두었던 이야기를 하나둘씩 꺼내기 시작했다. 스스로 길을 내며 흐르는 물줄기와 숲을 통째로 흔드는 광풍, 괴기스러운 계곡, 이 모든 것들이 낯선 두려움으로 다가와 편안한 휴식이 됐다. 아무 생각 없이 잠들었다. | |
저무는 계곡에서 흐르는 물을 바라보고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러면서 머리가 맑아진다.
금광으로 유명했던 계곡에 자연만 남아 여행자를 반긴다
어제 걸어왔던 잔대미, 마방 말고도 계곡 상류로 올라가면서 노루목, 북말, 큰터, 새터, 간기, 도화동 등 자연마을이 있는데 이번 걷기여행 코스의 종착점은 ‘큰터’다. 구마동 계곡에서 가장 넓은 땅이 있다 해서 붙여진 ‘큰터’에 살고 있는 안세기 할아버지를 만났다. 열세 살 때 이곳에 들어와 살고 있는 할아버지에 따르면 한때 계곡을 따라 150여 가구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계곡 하류와 상류에 초등학교가 각각 하나씩 있었을 정도라니 마을의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일제강점기 때는 금채굴과 벌목을 위해 일본 사람들이 이곳에 상주했다고 하니 더 많은 사람들이 계곡에서 살았을 것이다. 말을 잇던 할아버지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좋았던 시절 얘기를 덧붙인다. “한때는 5리, 10리 거리를 두고 계곡을 따라 주막이 있었다”고. 돈 풀리는 날이면 하루에 이 계곡에서 없어지는 막걸리만 해도 열 말은 충분히 넘었단다. 폐교가 된 초등학교 부근과 노루목 세류암 부근이 유명한 주막거리였다. 하루일 마치고 ‘큰터’나 ‘노루목’에 사는 사람들이 모여 막걸리 한 잔 거나하게 걸친 밤이면 할아버지는 휘청거리는 달빛을 의지해 집으로 돌아왔단다.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며 찐 감자와 동동주로 점심을 대신했다. 할아버지는 집에서 민박도 하니까 다음에 오면 꼭 하루 지내고 가라신다.
처음 걷는 길에서 느끼는 긴장감에 종종걸음으로 걸어왔던 길, 돌아갈 때는 마음 편히 천천히 걸었다. 물안개가 피어난 계곡과 숲은 신비로웠다. 길가에 서낭당이 있어 문을 열었더니 열린다. 마을을 지키는 서낭신께 ‘아름다운 자연을 간직한 길을 잘 지켜 달라’고 빌며 문을 닫았다. 나비가 숲에서 나풀거리고 벌이 계곡 절벽에 핀 꽃에서 나에게 날아든다. 어제는 음습한 기운으로 느껴졌던 계곡의 기운이 오늘은 온몸을 청정하게 만드는 그 무엇으로 느껴진다. 걷다가 더우면 계곡에 몸을 담그면 그만이다. 그렇게 계곡과 길을 넘나들며 돌아오는 길, 물 건너 바위에 꽃이 피었다. 바람에 꽃줄기가 흔들린다. 나는 물을 건너 꽃을 딴다. | |
청옥산자연휴양림과 백천계곡
구마동계곡 입구에서 태백방향 31번 도로를 타고 계속 가다 보면 청옥산자연휴양림이 먼저 나온다.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 홈페이지(ww w.huyang.go.kr)에서 청옥산자연휴양림 숙박시설을 미리 예약해야 하는데 이곳에서 1박 하는 것도 괜찮다. 백천계곡은 휴양림을 지나 더 가다가 ‘현불사’라고 새겨진 돌비석을 보고 그쪽으로 좌회전해서 쭉 들어가면 된다. 중간에 현불사로 가는 길과 계곡길이 나누어진다. 백천계곡 중간쯤에 기암의 수직절벽과 각종 나무, 계곡의 바위와 돌이 어울려 만들어 낸 기막힌 풍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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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피천은 맑은 물의 대명사다. 이 땅의 이름난 물줄기들이 개발바람에 휩싸이고 하나둘씩 오염되어갈 때 저 혼자 독야청청 맑은 물을 흘려보낸다. 경북 영양에서 시작하는 이 물줄기는 낙동정맥을 굽이굽이 돌아 울진을 거쳐 동해에 물을 부린다. 물줄기가 시작된 곳도, 이 산 저 산, 이 골짜기 저 골짜기의 물을 보태 몸이 제법 튼실해질 때도 강물은 산 속으로만 숨어서 돈다. 이 때문에 이 은밀한 강은 유리알처럼 투명하다. 강이 흘러가는 대부분이 사람의 마을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길도 없다. 강물이 길이다. 강물을 거닐어 저벅저벅 걸어갈 수밖에 없는 곳이 널려 있다. 사람의 발길이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이는 왕피천이 계속 청정하게 흐를 수 있게 하는 큰 힘이다. | |
우리나라 최고의 오지이자 청정지역
왕피천은 경북 영양군 수비면에서 발원해 동해에 닿을 때까지 60.95km를 흘러간다. 이 가운데 울진의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오지로 남아 있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찾아가기도 어렵거니와 왕피천의 속살로 들어가는 길도 아예 없거나 있어도 아주 불편하다. 왕피천으로 드는 길은 울진 성류굴에서 거슬러 가거나 울진 서면 삼근리에서 고개를 넘어가야 한다. 다른 하나는 영양 수비면 수하리에서 물길을 따라 내려가는 것이다. 이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편한 것이 없다. 산을 넘거나 물을 건너다니면서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 |
왕피천 위로 뭉게구름이 피어났다. 강물은 오른쪽으로 굽이졌다가 산자락 사이를 굽이치며 흐른다.
왕피천은 최근 환경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보호구역 안에서는 어로나 야영, 취사 등의 행위가 일체 금지됐다. 이것은 왕피천의 자연생태적인 가치가 그만큼 크다는 증거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왕피천의 하류는 은어와 연어가 회귀하는 곳이다. 꺽지와 버들치, 쉬리 등 민물고기도 다양하다. 이처럼 먹이사슬이 풍부하자 수달과 산양 같은 멸종위기의 동물들이 이곳을 무대로 살아간다. 왕피천의 상류는 청정지역의 보증수표인 반딧불이 서식지로 유명하다. 이곳은 반딧불이 애벌레 유충의 먹이인 다슬기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그러나 함부로 채취할 수 없다. 반딧불이 먹이를 위해 환경감시원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지키고 있다. | |
우무마을 벗어나면 인적 끊긴 천혜의 외딴 곳 펼쳐져
왕피천에서도 가장 외진 곳을 꼽으라면 영양 수하리에서 울진 왕피리 사이를 들 수 있다. 이곳은 군의 경계가 되는 곳으로 길이 전혀 없다. 수하리 끝마을 오무에서 왕피리의 첫 마을 한천까지 6.5km는 오직 강물만이 흘러가는 무인지경이다. 오무마을을 벗어나는 순간, 인간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오직 태고의 자연만이 반긴다. 처음부터 끝까지 강물과 벗하며 걷는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오무마을에 닿으면 ‘도로끝’이란 도로표지판이 서 있다. 이곳이 차로 갈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이다. 왼편의 언덕에 왕피천 탐방안내소가 있다. 우선 탐방안내소에 들려 실물과 똑같은 모형으로 제작한 지도를 보면서 왕피천을 입체적으로 살펴본다. 또 왕피천의 생태적 가치와 이곳을 무대로 살아가는 동식물도 알아본다. 특히, 한천마을까지 오가는 길의 상태나 강물의 수위에 대해서도 타진한다. 왕피천 트레킹에서 강물의 수위는 아주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왜냐하면 한천마을까지는 수도 없이 강물을 건너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 |
한천마을까지는 강이 길이고, 동행이다
오두마을에서 강을 건넌다. 강 건너에는 외벽을 근사한 꽃그림으로 장식한 귀틀집이 있다. 이곳을 지나서 강변을 따라 가는 길은 좋다. 그러나 200m쯤 가면 다시 강을 건너게 되고, 마지막 민가를 지나면서는 길이 슬그머니 사라진다. 당황스럽다. 어디로 가란 말인가. 정답은 강이다. 강만 따라가면 된다. 강을 따라가는 방법은 각자의 몫이다. 강물을 텀벙거리며 걸어도 되고, 강기슭에 토끼길을 만들며 가도 된다. 분명한 것은 길의 존재 여부를 묻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 걷는 길이 길일 뿐이다. 그것이 왕피천의 법칙이다. 그렇다고 험하거나 못 갈 길은 아니다. 바위와 암반이 끊임없이 나타나지만 위협적이지 않다. 강물의 수량만 만치 않다면 요리조리 피해갈 곳이 있다.
우무마을에서 시작하는 왕피천의 이름은 장수보천이다. 이 물줄기가 산자락을 크게 한바퀴 돌아나가면서 인적이 끊긴다. 혼자 출발했다면 끝까지 혼자일 확률이 99%다. 산이 장막을 친 깊은 강물 위에 혼자 있다는 상상을 해보라. 호젓하기도 하지만 적적하기도 하다. 길동무를 해줄 대상은 강물 밖에 없다. 반면 누군가 동행이 있다면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걷기에 그만이다. 걷다 지치면 강물에 몸을 던져 시원하게 물놀이를 할 수도 있다. | |
산이 막으면 이리 뒤틀고, 또 산이 막으면 저리 뒤틀고
왕피천은 한천마을에 닿을 때까지 특색 있는 구간이 별로 없다. 강물이 지나는 계곡의 표정이 거의 비슷하다. 잔돌이 깔린 개울처럼 흘러가다 바위를 만나면 깊은 소를 이룬다. 가끔 급류를 이루며 물살이 거센 곳도 있지만 폭포라 부를 만큼 거창하지는 않다. 그러니 어느 곳도 이름이 없다. 딱히 부를 만한 지명도 없고, 길이 분명치 않으니 딱히 설명할 방법도 없다. 그저 물을 따라 걸어가라는 수밖에 일러줄 것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걸어볼 만큼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이다. | |
낙조에 붉게 물든 왕피천. 왕피천은 우리나라 최고의 오지이자 청정한 자연을 자랑하는 생태계의 보고다.
오무마을에서 멀어질수록 달라지는 것이 있다. 강물의 굽이치는 각도가 점점 심해진다는 것이다. 초반은 강물이 곧장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중반을 지날 때면 점점 곡류가 심해진다. 강은 고작 200m를 가지 못해서 다시 휘어진다. 강물은 산이 막으면 이리 뒤틀고, 또 산이 막으면 저리 뒤튼다. 첩첩산중이다. 그렇게 산이 쉼 없이 막아서 강물이 잠시 숨을 고르는 곳에는 꺽지, 피라미, 버들치가 활보한다. 인적을 느껴도 별로 무서워하는 모양이 아니다. 왕피천은 예나지금이나 물고기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굽이치며 흘러가는 강물을 따라 걷기도 지칠 때쯤, 강을 막아선 산등성이에 인간의 흔적이 나타난다. 산비탈을 따라 밭을 만든 모습이 역력하다. 한천마을에 닿은 것이다. 강물을 따라 크게 한 바퀴 돌아가면 산중턱에 자리한 마을에 닿는다. 여기가 반환점이다. 이쯤에서 돌아서야 오무마을로 되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왕피천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오히려 더 깊은 협곡을 이루며 동해로, 동해로 향해 간다. | |
숙박
수하리 오무와 송방마을에 민박집이 두어 곳 있다. 영양청소련수련원(054-683-8983)의 펜션과 야영장을 이용하는 게 좋다. 수련원 앞은 좋은 물놀이터가 있어 여름철에 인기가 높다. 검마산자연휴양림도 20분 거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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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민국은 걷기 열풍에 휩싸여 있다. 제주 올레를 비롯해 전국이 걷기로 떠들썩하다. 이른바 ‘걷기꾼’들이 생겨 전국 구석구석 찾아 다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에서도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를 만들었다. 전국 7개 코스의 길이는 340km에 이른다. 경상북도 영덕에서 강원도 삼척까지 이어지는 ‘동해 트레일’ 64km도 그 안에 속해 있다. 동해트레일의 시작은 경북 영덕의 강구항이다. 영덕대게로 유명한 강구항 한편에 있는 산등성이 마을로 올라가는 좁은 길이 시작이다. 버스정류장에서부터 노란색 화살표를 따라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마치 보물찾기 하듯 화살표를 따라 길을 걸었다. 영덕군은 ‘해맞이 등산로’를 비롯한 바닷가 길을 꾸준히 개발해 왔다. 길은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 동해안 최대길이의 해변이 있는 ‘대진해수욕장’까지 이어진다. 일명 고래불이라 불리는 이곳이 동해트레일의 1차 종착점이다. | |
경북 영덕군 강구항 지도 보기
구불구불 산길에서 보는 동해풍경
일명 ‘동해 블루로드’라고 불리는 영덕의 걷는 길은 시작이 가장 어렵다. 바다를 보고 산등성이에 늘어선 집 사이를 오른다. 급경사 골목길은 채 5분도 되지 않아 꼭대기에 다다른다. “여기서부터는 능선 따라 슬슬 걸으면 돼요.” 길을 안내해준 영덕군청 강영화 계장이 앞장서며 말한다. 숲길이 시작되려는 순간 뒤를 돌아보니 진풍경이 펼쳐진다. ‘저 아래가 차 타고 와서 대게만 먹고 돌아가던 강구항이라니…’ 5분 발품판 것치고 경치가 너무 좋아 내심 뿌듯하다. 숲길이 시작되자 나무에 ‘문화생태탐방로’ 표시가 붙어 있다. 여기서부터 고불봉까지 3시간 거리가 바로 ‘해맞이 등산로’다. 영덕군에서 지난 2004년 개설한 것으로 산행길의 80%가 바다를 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영덕의 산들은 해발 300m를 넘기지 못한다. 고불봉(해발 235m)에 오르면 사방이 절경이다. 동쪽으로 24기의 풍력발전기가 웅장하게 늘어섰고 남쪽으로는 내연산의 줄기가 이어졌다. 서쪽에는 영덕 읍내와 함께 주왕산이 보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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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름모를 작은 백사장이 늘어선 영덕 블루로드. <이다일기자>
- 2 '걷기꾼'을 위해 곳곳에 편의시설이 들어섰다. <이다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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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어촌에서의 1박
고불봉을 지나 풍력발전단지까지 지나는데 천천히 걸으면 반나절은 걸린다. 출출한 속을 달래며 산을 가로질러 10분 정도 내려왔다. 바닷가 길을 따라 민박과 음식점들이 간간히 보인다. 이곳에서 축산항까지는 바닷가를 따라 걷는데 바다를 바라보며 시원한 물회 한 그릇을 먹으면 점심식사로 그만이다. 창포리에서 대탄리를 지나 석리까지는 도보로 약 30분 정도, 아직 해안도로가 공사 중이라 아스팔트길을 걸었다. 바닷가라고는 해도 아스팔트와 흙 그리고 바위와 모래를 걷는 느낌이 제각각이다. 석리에 도착하면 시원한 해변이 기다린다. 이곳은 어촌체험마을로 선정돼 민박과 음식점을 비롯한 다양한 시설이 있다. 바닷물을 막아 해수풀장까지 갖췄으니 더운 여름이라면 한바탕 물놀이도 할 수 있다.
낚시꾼들만 찾는다는 용바위 낚시터는 ‘감성돔이 아니면 모두 잡어로 취급한다’는 주민의 말처럼 명당으로 알려졌다. 절벽 같은 바위가 길을 가로막았지만 ‘동해 트레일’을 위해 계단을 설치해 바닷가를 따라 계속 걸을 수 있다. 석리를 지나 대게의 원조 경정리 ‘차유마을’에 들어섰다. 마을 입구에는 대게의 원조임을 알리는 비석이 있다. 고려시대부터 이곳에서 잡은 게의 다리가 마치 대나무 마디를 닮았다 하여 대게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아직은 대게가 나지 않는 늦가을이라 마을은 한가하다. 낮은 지붕에 파란 기와를 얹은 마을에는 민박이 많아 ‘동해 트레일’을 위한 숙소로도 좋다. | |
북쪽으로 이어지는 길
경정리에서 해안가를 따라 북쪽을 바라보면 야트막한 산에 흰색 등대가 보인다. 바로 죽도산이다. 이름처럼 대나무가 많은 산이다.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등대가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경정리에서 죽도산까지는 해안가를 걷는다. 도로와는 산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에 가장 조용하고 자연에 가까운 코스다. 축산면에 들어서기 직전, 자그마한 해변이 세 개 연속으로 나타난다. 차가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고 산 아래 절벽을 등지고 있어서 사람들의 발길이 닿기 힘든 곳이다. 반달 모양으로 움푹하게 들어선 해변이 절경이다.
축산면에 들어서면 죽도산이 눈앞에 다가온다. 수백 년 동안 이곳의 작은 대나무는 화살로 쓰였다. 죽도산에 가는 길은 다리를 놓고 계단을 만드는 공사가 한창이다. 길을 걷는 내내 오른쪽은 바다고 왼쪽은 산이다. 이제 걸어온 길을 ‘복습’할 순서다. 인근에서 가장 높아 조선시대 초부터 ‘봉수대’로 쓰였던 대소산을 오른다. 가장 높다지만 해발 282m의 낮은 산이라 산책하듯 쉬엄쉬엄 걷기에 좋다. 조선 초기의 봉수대가 거의 그대로 남아있는 정상에 올라서면 지나온 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풍력발전단지가 보이고 그 아래 해안을 따라 이어진 길이 보인다. 낮은 산을 경계로 도로와 해안이 나눠진 바닷가 길도, 죽도산 등대의 모습도 한눈에 들어오니 걸어온 길을 복습하기엔 최고의 장소다.
산을 내려가면 고려문학을 대표하는 목은 이색선생의 유적지가 이어진다. 유적지 앞에는 괴시전통마을의 고택이 늘어서 있고 멀리 평야 건너편에 칠보산이 우뚝 서 있다. 이제 북으로 이어진 ‘동해 트레일’의 영덕 구간이 끝나간다. 대진해수욕장과 덕천해수욕장이 모여 있는 ‘고래불’이 길의 마무리 구간이다. 소나무 숲과 백사장이 이어지는 ‘고래불’은 목은 이색선생이 고래들이 하얀 분수를 뿜으며 노는 것을 보고 ‘고래가 노는 펄’이란 뜻으로 ‘고래불’이란 이름을 붙인 데서 유래했다. ‘영덕 블루로드’는 여기서 끝난다. 북쪽으로 울진을 거쳐 삼척으로 올라가면 조선시대 관동대로를 따라가는 24km의 길이 또 기다리고 있으니 걷기 여행은 동해안을 따라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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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너머에 있을 그리운 벗을 찾아 길을 떠났다. 바람과 파도가 깎아내린 작은 섬들이 한 폭의 풍경화처럼 펼쳐져 있다. 육지에 단양팔경이 있다면 바다 건너 이곳에는 울릉팔경이 있다. 울릉도 여행의 시작이자 마지막인 도동항을 거쳐 꼭 한번은 봐야 할 한반도의 막내 섬 ‘독도’까지 이 모든 것이 감탄의 연속이다. 해질녘이면 출발하는 배의 출어 행렬인 ‘도동모범(道洞暮帆)’, 오징어잡이배의 화려한 어화인 ‘저동어화(苧洞漁火)’, 사동 하늘에 뜨는 달을 가리켜 ‘장흥망월(長興望月)’, 겨울철 달밤 남양의 설경이라 하여 ‘남양야설(南陽夜雪)’이다. 또 석양에 걸려 출렁거리는 바다와 섬들이 만들어낸 낙조의 향연이 환상적인 ‘태하낙조(台霞落照)’, 솟아나는 생명의 무한한 힘 ‘추산용수(錐山湧水)’, 절경에 취하고 단풍에 반한 나리분지의 단풍 ‘나리금수(羅里錦繡)’, 대자연의 조화로 만들어진 알봉이 불타는 단풍 ‘알봉홍엽(紅葉)’을 울릉팔경이라 한다. | |
울릉도 지도 보기
밤이 깊어도 꺼질 줄 모르는 ‘은빛어화(漁火)’와 비단 같은 단풍 ‘홍엽(紅葉)’
해질녘이면 출발하는 오징어배의 출어 행렬은 가히 장관을 이룬다. 석양을 배경으로 일자로 늘어선 배들은 출렁거리는 바다와 어우러져 쏟아지는 달빛에 온몸을 적신다. 울릉도에는 날마다 불꽃축제가 열린다. 칠흑 같은 밤바다를 환하게 밝히는 ‘은빛어화’는 밤이 깊어도 꺼질 줄 모르고, 바다와 올망졸망한 섬들이 만들어낸 낙조의 향연은 낭만적이고 환상적이다. 절경에 취하고 단풍에 반한 울릉도의 비단 같은 풍광은 지나가는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동해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의 내음이 잔잔히 스며든 나리분지의 비단 같은 단풍은 곱디고운 빛을 머금었고, 울창한 숲으로 우거진 단풍은 만산홍엽으로 덮여 마치 산 전체가 불타고 있는 모습을 연출한다. 쪽빛 하늘을 배경으로 선홍색으로 펼쳐진 알봉의 단풍 또한 일품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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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현포전망대에서 내다보이는 공암과 뾰족하게 솟은 송곳한, 노인봉이 배경처럼 펼쳐져 있다. <서상준기자>
- 2 석포전망대에서 바라본 북면 해안 풍경이 가을 단풍과 함께 넋을 잃게 만든다. <울릉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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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의 거센 파도와 바람이 빚어낸 추억의 섬 ‘울릉도’를 걷다
만연한 가을 날씨에 바람까지 좋다. 망향봉과 행남마을 사이에 접안시설을 갖춘 도동항부터 걷기 시작했다. 도동항은 내륙의 포항항과 묵호항에서 출발한 여객선이 들어오는 울릉도의 관문인 항구이다. 이곳은 울릉도에서 가장 번화한 곳으로 많은 숙박시설과 음식점이 몰려 있어 여행객들의 거점이 되는 곳이다. 도동항 옆의 행남마을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향나무인 울릉도 향나무가 서 있다. 높이는 4m에 불과하지만 수명은 무려 2,000여 년이 된 향나무다. 행남마을 아래로는 마치 영화에서나 본 듯한 아름다운 해안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해안산책로는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꼽히는 풍경을 자랑하며 도동항에서 저동 촛대바위까지 이어진 해안 절경을 100% 즐길 수 있는 멋진 산책로로도 유명하다.
하늘과 구름, 그 푸르던 바닷물조차 붉게 물들게 하는 남서일몰전망대도 중요한 관광코스 중의 하나다. 남서일몰전망대는 사태구미 해안변에 병풍처럼 펼쳐진 단애절벽과 기암괴석 그리고 넓은 수평선을 바라보며 사색을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바람이 만들어낸 황토굴의 고장 ‘황토구미’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내려오는 전설에는 황토의 맛이 짠맛, 매운맛, 쓴맛, 단맛 등 아홉 가지 맛이 난다 하여 황토구미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곳은 서면 태하리 마을에서 바닷가로 나아가 우측 해안을 따라가면 누런 황토를 띤 흙들이 바위와 같이 굴을 형성하고 있다. | |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우리 땅 ‘독도’
반만 년의 역사 우리 땅 ‘독도’.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홀로 서 있는 모습이 전혀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홀로이기에 더 강인하고 굳건해 보인다. 독도는 원래 하나의 섬이었지만 오랜 침식작용으로 인해 동도와 서도 두 개의 섬으로 나뉘었다. 그 주위에는 89개의 부속 섬들이 보석처럼 또 형제처럼 빼곡하게 박혀있다. 마치 두 동생들이 형을 따르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삼형제굴바위’와 그 바위 왼쪽에 위치하고 있는 ‘장군바위’, 권총바위라고도 불리는 ‘촛대바위’가 가슴 벅찬 웅장함을 뽐내고 있다. 특히 동도의 끝자락에 위치한 한반도의 모습을 닮은 ‘한반도바위’는 이미 독도 스스로가 자신을 대한민국의 땅이라고 외치는 듯했다. 독도는 ‘해양 동식물의 보고’로도 잘 알려져 있다. 바다제비, 괭이갈매기, 황조롱이, 물수리, 노랑지빠귀 등 약 60여 종의 철새들과 쇠비름, 쑥부쟁이, 박주가리, 해국, 땅채송화 등 60여 종의 야생화가 조화를 이루며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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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불과 100년 전 건축물을 보고 ‘근현대문화유산’이라고 부른다. 또한 1천 년 전 유적을 보며 ‘보물’이란 칭호를 아끼지 않는다. 그렇다면 1억4천만 년 전의 생태계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우포늪은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경남 창녕의 우포늪은 1997년 생태계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됐고 1998년에는 국제습지조약에서 보존습지로 지정했다. 또한 지난 2008년 이곳에서 람사르 총회가 열리면서 한반도에 있는 생태계 보물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 |
창녕 우포늪 지도 보기
우포늪의 새벽
우포늪은 사진작가들의 출사지로도 유명하다. 물안개가 낀 우포늪에 조각배가 떠가는 모습의 사진작품은 우리가 주변에서 자주 접한다. 새벽풍경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아직은 어둑어둑한 시간 우포로 향했다. 입구 안내판에서 일출을 볼 수 있다고 표시된 지점으로 걸어가자 이미 몇몇 사진작가들이 삼각대를 걸쳐놓고 해가 뜨기를 기다린다. 새들도 아직은 잠에서 깨지 않았는지 고요하다. 동이 트자 희뿌연 안개 속에서 우포의 모습이 드러난다. 사진작가들은 연신 셔터를 눌러대고 날갯짓을 하는 오리들과 풀벌레소리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우포늪의 동쪽, 3.1km의 대대제방의 직선 길은 안개로 끝이 보이지 않는다. 자전거를 타고 안개 속으로 들어간 마을 주민은 금세 모습을 감췄다. 일출을 보고 났으니 이제 방향을 바꿔 서쪽으로 향했다. 해를 등지고 산책로 옆에 피어난 꽃을 보며 목포제방을 향해 길을 걸었다. 초가을의 새벽이라 춥기보단 선선하다는 표현이 적당하다. 밤새 뿜어져 나왔을 산소와 탁 트인 우포의 경치는 가슴 속까지 맑게 해준다. 산책로 가까이 물가에도 오리가족이 자맥질을 하고 있다. 방해하지 않으려 조용조용 걸어도 눈치 빠른 녀석들은 금세 푸드덕거리며 날아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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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포늪에서 새들이 무리 지어 날고 있다. <이다일기자>
- 2 우포늪은 낙동강을 끼고 발달한 국내 최대의 내륙습지다. <이다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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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4천만 년 전 생태계가 그대로
이 동네 사람들은 우포를 ‘소벌’이라 불렀다. 우포 북쪽에 있는 우항산(일명, 소목산)을 하늘에서 보면 마치 소의 목처럼 생겨서 소가 목을 내밀고 우포늪의 물을 마시는 모양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1.8km의 제1탐방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보니 한걸음마다 곤충과 새들 그리고 식물의 경치가 다르게 느껴진다. ‘관찰대’의 작은 구멍으로 늪을 바라봤다. 새들의 안방을 훔쳐보는 듯 자연모습이 그대로 눈에 들어온다. 우포를 한눈에 바라보려면 전망대를 올라가는 것이 좋다.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계단 길로 약 100m를 올라가면 나무의 키를 훌쩍 넘긴 높이에서 우포를 바라볼 수 있다. 해가 조금 더 높이 떠오르자 멀리서 새들이 무리 지어 날고 풀벌레 소리가 들리며 조금씩 파릇하게 변해간다. 이곳이 1억4천만 년 전의 생태계 모습을 아직까지 갖고 있다는 얘기가 허투로 들리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런 풍경에 있었다. 실제로 우포늪이 속한 창녕군 유어면 세진리에는 공룡발자국화석이 발견됐다. 이뿐만이 아니라 오랜 시간 생명체가 태어나고 죽어간 늪의 바닥은 두터운 부식층을 형성해 ‘살아있는 자연사 박물관’이라 불린다. | |
걷기 좋은 습지, 기능도 다양해
소벌이라 불리는 '우포', '나무벌 목포', '모래펄 사지포' 그리고 '쪽지벌'까지 우포늪은 4개의 지역으로 구분된다. 각기 다른 늪마다 2~4km의 탐방로가 마련돼 있다. 게다가 주변엔 1000여 종의 생명체가 살아 숨 쉬고 있으니 이곳을 걷다 보면 마치 자연과 한몸이 된 느낌을 받는다. 제주의 올레길이 넓고 푸른 바다를 보며 걷는 길이라면, 우포의 길은 아기자기한 생명체와 호흡을 같이하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길 옆에선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가 필사의 탈출을 시도하고 있고 귀여운 새끼오리들은 어미를 따라 먹이사냥에 나섰다. 우포가 혼자 걸어도 외롭지 않은 이유는 바로 다양한 생명체들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주차장 바로 앞에 있는 생태관에서 볼 수 있는 습지의 기능은 참으로 다양하다. 수생식물, 어류, 조류를 비롯해 수많은 생명체의 서식처가 되고 이것은 그대로 인간이 식량을 얻을 수 있는 자원이다. 또한 습지가 머금은 물은 홍수를 예방하고 지구 온난화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 게다가 차곡차곡 쌓인 생태계의 모습은 우리가 살고 있는 생태계 연구를 위한 훌륭한 교재가 된다. 람사르 협약이 아니더라도 이 땅의 습지를 지켜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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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경상도... 부산에서 여섯 시간 걸렸던 그 곳.
가까운 송도 장군봉 둘레길을 걸은지도 두 달인데...
054-683-8983 지금 예약할까??ㅋㅋ~
언니 차가없으..ㅎㅎ 더우니까.. 더 맘은 콩밭에 있는것 가타요
경상도도 꾸불 꾸불 차암.. 넓다능~
생각보다 갈곳은 많아요.. 다만 돈과 시간이....
음....걷고싶다...
경남 쪽있나 봤지만 다 경북....하아....가고싶다....
경남은 남해, 거제도, 배냇골 다 아는곳이자나요..
아~ 여기도 참.. ㅡ_ㅡ; 우리 가까운 밀양호라도 가자~ 담엔 배내골에 발담그게 해주꼐~ ㅎㅎㅎ 아니면 내원사 계곡에 가서~ 백숙이나 먹던지~
좋은 곳 많군요. 다 돌아봐야 할 것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