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원 기업인 영화배우
출생 1966년 9월 27일, 서울 학력 도쿄 공업대학 사회이공학대학원 사회정보학 박사 데뷔 1981년 미스 롯데 선발대회 경력 1999.~ 원앤원픽쳐스 대표 수상 1985. 제21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여자 신인연기상
양 력: 1966년 09월 27일 음/평: 1966년 08월 13일 여자
시 일 월 년 @ 己 丁 丙 @ 丑 酉 午
丁 戊 己 庚 辛 壬 癸 甲 乙 丙 亥 子 丑 寅 卯 辰 巳 午 未 申 96 86 76 66 56 46 36 26 16 6.4
현재 나이: 59 세 (2024년 甲辰년) 대운 시작: 6 세 4 월 21 일 현재 대운: 辛卯
서울에서 동국대 영문학과 교수인 아버지 조정동(趙晶東)과 국민학교 교사인 어머니 노영희(盧英姬)의 2남1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1979년(14세, 병신대운 기미년) 부친 사망함.
1981년 7월 같이 걸스카우트 활동을 하던 고등학생 언니들이 탤런트 시험을 보러 갈 때 미스 롯데 선발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따라갔다가 방송국 직원의 권유로 즉석에서 원서를 쓰고 응모하여 미스 롯데 인기상 수상과 더불어 KBS 8기 탤런트로 선발되었다.
1982년 KBS 《TV 문학관》 1백회 특집인 이청준 원작의 〈소리의 빛〉 편에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배우로 데뷔하였다. 광고와 단막극, 특집극 위주로 출연하던 중 '보통 사람들' 유안나 역으로 인지도를 올린다. 하명중 감독의 영화 '땡볕'으로 대종상, 백상예술대상 등에서 신인상을 수상하고 영화는 제35회 베를린 영화제 경쟁작으로도 출품돼 전성기를 구가한다.
1985년(20세, 乙未대운 乙丑년) 11월 1일 오전 어머니가 운전하는 맵시나 승용차를 타고 등교하던 중 트럭과 충돌해 전치 10주의 중상을 입는 교통사고를 당한다. 얼굴에도 상처가 나 50바늘 이상 꿰매고 이 사고로 약 8개월간 활동을 중단한다.
1986년 여름 즈음 영화 '먼 여행 긴 터널'의 촬영으로 복귀해 활동을 이어가고 다시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였다.
1988년 후반과 1989년 초반에는 MBC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의 여자 MC를 잠시 맡기도 했다.
1990년 4월 와세다 대학에 석사과정으로 입학하면서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중간중간 개인 사정으로 입국하거나 연예계 일정을 소화하기도 했는데,
1995년 말 즈음 복귀를 위해 완전 귀국한다. 1996년까지 영화나 드라마에 간간히 출연했으며 1997년 뮤지컬 제작자로 전향했지만 실패했다.
동시에 기존에 살던 집을 팔고, 연극단 '원'을 창설하여 변우민씨와 함께 백일천사(101 1004)라는 연극과 다른 여러 연극을 하였지만, 얼마 지나지않아 1998년 금융위기가 찾아오면서 관객들이 급격히 줄어들어 실패했다.
이후에는 씨네버스라는 잡지를 창간하였다. 씨네버스 운영당시의 인터뷰내용을 참고하면 굉장히 열심히 씨네버스를 경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경영난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폐간하게 된다.
2003년 '명일천애'를 끝으로 더는 작품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2011년 지인의 말에 의하면 국내에 돌아와 비즈니스 활동을 준비 중이며, 방송연예 콘텐츠 제작자가 될 예정이라고 했다. 다만 결혼은 계획이 없다고 했다. 한창 나이에 불운의 여배우가 되었지만 새로운 꿈에 계속 도전하는 그녀의 자세를 보면 대단하다고 감탄할 만 하다.
2016년 4월 22일에 방영한 MBN 아궁이에서는 은퇴 이유가 3번의 교통사고 때문이라고 한다. 조용원 팬카페에 올려져 있는 인터뷰 영상에 따르면 조용원 본인이 일본에서 사주를 봤는데 교통사고를 2번 더 당한다고 하였으며 이는 정확히 맞아 떨어졌고 그 이후에 자신과 운명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 있었다고 한다.
2019년 8월 6일 SBS 불타는 청춘을 통해 시청자들이 보고 싶은 스타 첫순위로 뽑았다. 이후에도 포털사이트에도 이슈가 되고 있다. 그 중 고정출연자인 나이대가 비슷한 최성국, 강문영, 김광규는 추억을 되새기며 직접 찾아보라는 과제를 주었고 죽전에서 보았다는 시청자의 댓글 제보로 찾아나서게 되었다. 하지만 조용원의 지인은 은퇴 후 한국에 있지 않고 어머니가 아파서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들려주며, 조용원이 방송 등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꺼린다고 전했다. 그래서 이들은 직접 연락하는 대신 문자를 남기기로 했다. 이에 대해 메인 PD도 문자를 통해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 ‘4번의 교통사고’ 20살에 은퇴한 여배우, 떠날 수밖에 없던 이유… (+충격) 논현일보, 허재우 에디터, 2024.2.11.
원조 하이틴 스타 조용원 4번의 교통사고로 은퇴 ‘불타는 청춘’ 출연 거절
지난 2022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배우 강수연이 화제가 되며 그의 젊은 시절 라이벌로 불렸던 원조 하이틴 스타 조용원의 근황이 재조명됐다. 아역 시절부터 연기 생활을 해왔던 강수연은 성인이 되어서도 무서운 성장 속도를 보여주며 최고의 인기배우로 등극했다.
여기에 그의 고등학교 동창인 조용원이 데뷔와 동시에 뛰어난 미모와 청순한 이미지로 주목받으며 이 둘은 연예계에서 손꼽히는 라이벌로 불렸었다. 강수연을 동아시아 최초의 베니스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로 만들어준 영화 ‘씨받이’의 임권택 감독은 본래 주연으로 염두에 두었던 조용원이 얼굴에 큰 상처를 입으면서 영화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밝혔다.
조용원은 김희애, 전인화와 함께 중앙대 트로이카로 불렸으며 그중에서도 대중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배우이다. 조용원의 전성기 무렵인 1985년 매니저로 활동하던 어머니의 차를 타고 이동하던 그는 마주 오는 트럭과 정면으로 충돌하며 차 밖으로 튕겨 나가 크게 다치게 됐다.
팔과 다리 신경 수술 등 큰 수술을 해야 했던 조용원은 이 과정에서 설상가상 왼쪽 눈썹 위 이마에 52바늘을 꿰매는 수술로 인해 얼굴에 큰 흉터를 가지고 살아야 했다. 청순한 이미지로 ‘한국의 소피 마르소’라고 불렸던 조용원이었기에 당시 언론은 사고 전후의 얼굴에 집중하여 보도했고 이에 상처받은 조용원은 대인기피증으로 연예인의 삶을 이어가지 못했다.
연예계 은퇴 후 어릴 적부터 성적이 좋았던 그는 연예계 은퇴 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으나 그곳에서도 불운한 사고는 계속됐다. 와세다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우등생이었던 그는 3번의 교통사고가 연달아 나면서 회복 중이던 얼굴에 다시 한번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조용원은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기에 얼굴에 상처가 난 것이 크게 상처가 되진 않았다고 하며 국내의 언론에 받은 상처가 더 컸음을 시사했다. 이후 어머니의 병환으로 귀국하게 된 그는 1997년 뮤지컬 제작자로의 전향과 잡지 출판 사업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한편 조용원은 2019년 SBS ‘불타는 청춘’을 통해 시청자들이 보고 싶은 스타 첫 순위로 뽑히며 시청자의 제보를 받는 등 그를 찾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조용원은 출연 제의를 정중히 거절한 것으로 밝혀졌다. 조용원의 지인은 은퇴 후 한국에 있지 않고 어머니가 아파서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들려주며 조용원이 방송 등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꺼린다고 전했다. ----------------------------------------------------------------------------- 조용원 출생 1966년 9월 27일(57세)[1]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국적 대한민국 직업 배우, 기업인 활동 기간 1981년 ~ 소속사 무소속 부모 조정동 (아버지) 노영희 (어머니) 형제자매 2남 1녀 중 장녀, 남동생 조용현, 남동생 조용훈 웹사이트 조용원 - 한국영화 데이터베이스 위키데이터에서 편집하기
조용원(한국 한자: 趙容瑗,[2], 趙容媛[3], 1966년 9월 27일[1] ~ )은 대한민국의 배우이자 기업인이다. 1980년대 중반 강수연 등과 하이틴 스타로 인기를 끌었다.
젊은 시절 조용원은 1966년 9월 27일[1] 서울에서 동국대 영문학과 교수인 아버지 조정동(趙晶東)과 국민학교 교사인 어머니 노영희(盧英姬)의 2남1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동생 둘은 조용훈(趙容勳)과 조용현(趙容賢)이다. 조용원의 아버지는 그녀가 중학교 1학년 때 사망하였는데,[4] 그녀의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아버지가 없다는 좌절감을 주지 않으려고 아버지는 미국에 있으며 언젠가 돌아온다고 세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거짓말을 하였다.[5] 조용원은 미동국민학교를 졸업하였다. 중학교에 진학한 후 걸스카우트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조용원이 성정여중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81년 7월 같이 걸스카우트 활동을 하던 고등학생 언니들이 탤런트 시험을 보러 갈 때 미스 롯데 선발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따라갔다가 방송국 직원의 권유로 즉석에서 원서를 쓰고 응모하여 미스 롯데 인기상 수상과 더불어 KBS 8기 탤런트로 선발되었다.[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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