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렇게 일찍 일어나는 브리가 아닌데. 아직
해가 뜨지도 않았는데 희안하게도 눈이
저절로 떠졌다. 말똥말똥하게 눈을뜨고 다갈색의 눈동자를 굴린 브리. 희뿌연 새벽이다.
왠일로 이렇게 일찍 일어났을까 자신이 기특하기도 한 브리는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스륵하면서 가운이
흘러내렸다. 이상했다. 어제 분명 너무 피곤해서
후안이 빠져 나가자마자 그대로 쓰러져 자버렸는데.
가운을 들어본
브리. 아무래도 브리가 입기엔 어깨가 너무 넓었다. 쿡, 하고 웃어보인 그녀.
후안인가? 성의는 고맙지만, 입기에는 무리다.
아무래도 화장대에 올려두고 바닥에 떨어져있는
잠옷을 입어야겠다 생각한 브리는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몸을 움직였다.
"아야!"
그러나 아래에서 큰 통증이 느껴졌다. 눈물을 찔끔 머금은 브리는 배를
움켜쥐고 후안을
바라봤다. 새근새근. 잘도 자는 후안을 보니 이상하게 억울하다. 같이 잤으면서 왜 브리는
이렇게
아프고 후안은 저렇게 멀쩡한건지. 게다가 어젯밤은 후안이 너무했다. 물론 첫날밤
보다는 좀 더 부드럽게 해줬지만 그것도 애무할때
까지만이었다. 너무 아프다고 우는대도
무자비하게 브리의 안으로 자신을 들이밀었다. 자기가 밑에 깔려있는 입장이라면 도저히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아프다고 애원해도 막무가내인 후안. 결국 브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후안의 등을 손톱으로
긁고 어깨를 꾹 깨무는것 뿐이었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후안이 끝난
뒤에 한번 안아주기라도 하면 참을 수 있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녀석은 다 끝나곤,
아팠어? 미안. 이러더니 피곤하다며 푹 쓰러져 자버렸다. 정말 피곤한건 브리였는데.
하는 수 없이 후안의 가운을 걸치고 어젯밤의 증거인듯, 장미빛의 동그란 자국이 가득한
가슴을 가린
브리는 조심스럽게 다시 후안의 곁에 누웠다.
후안 녀석은 엎드린채 쿨쿨 잘도 자고 있었다. 얄밉다. 조심스래 손을 뻗어 후안의
얼굴을
가린 그의 긴 머리칼을 넘긴 브리. 지긋이 눈을 감고 쌕쌕거리는 녀석의 자는얼굴은 꽤
예뻣다. 하긴, 원래
모난 얼굴은 아니다. 아니 모났다기보단 잘생긴 녀석이다.
지금은 먼 옛날처럼 느껴지는 공주였을때. 후안을 처음
만났던 것을 기억했다. 햇살이 정말
좋은 봄날이었다. 푸른색의 옷을 입은 상아빛 머리의 잘생긴 남자. 한눈에 반했던것을 기억한다.
그 얼굴은 지금도 여전했다. 오똑한 콧날에 연한 장미색의 굳게 다문 입술. 지긋이 감긴 눈은
유난히 길다. 후안의
이마부터 쓸어내린 브리는 곧 그의 볼을 주욱 잡아 늘렸다. 잘생긴 얼굴이
순간 늘어진다.
볼에 손을 때고
입을가리며 후안이 깰까 큭큭, 웃음을 참는 브리. 아랫도리는 여전히 쿡쿡
쑤셔오고 어젯밤 후안에게 내어주다시피한 몸은 온곳이
쑤셔왔다. 그런데, 무척 행복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어디 안
좋으세요?"
"..."
아무런 대답이 고개를 젓는 아네트. 도저히 일어날수가 없었다. 특별히
열이 나는것도
아니었고, 배가 아픈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두통이 심한것도 아니었는데 도저히 움직일수
없었다.
아주 예전에, 이런 식으로 어딘가가 아파 움직이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3년 전의 일이었고
처음으로 일을 나간 뒤
그 새벽에 느꼈던 고통이었다. 그녀가 아픈곳은 마음이다.
"..그만 나가 봐. 네 주인 시종을 들어야지."
"하지만 아네트님."
"제르제부인이 또 닥달할거야. 그만 가 봐."
아네트는 괜찮으니
걱정말라는듯 화사하게 싱긋 웃어주었다. 아무래도 걱정이 되는지
쉽게 떠나지 못하는 자넷이지만, 자기의 이름을 크게 부르는
제제부인의 목소리가 들리자
황급히 인사를 하고 아네트의 방을 빠져나갔다. "알았어요! 간다구요!" 라는 다급한
목소리를 남긴 채.
횅한 아네트의 방. 자넷이 열심히 치운 덕분에 윤기가 날정도로 반질거렸다.
며칠전 후안이 선물해준 옷을입고 외출을 하려고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푹신한 침대에 몸을
기대고 이불을 끌어올린 아네트. 텅빈 옆자리가 허전
하기만하다. 이러다간 더욱 아파질것 같았다. 어젯밤, 후안이 오지 않았다.
관계를 하지
못하면 옆에서 꼭 안아주면서 같이 잠이라도 잤는데.
시원한 아침공기를 마시는 편이 더욱
나을거라고 생각한 아네트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후안은. 정말 아이가 생겨서 마음이 돌아선것일까? 도대체 그 아이는 언제 생긴걸까?
후안은 하루도 빠지지않고 아네트를 찾았다. 정말 적어도 잠이라도 같이 잤는데 도대체
언제 브리를 안고 언제 아이가
생겨버린건지 알 수 없었다. 또 아기는 왜이렇게 빨리
들어선것인지. 같이 있는 시간을 비교하면 오히려 아네트가 아이를 갖어야
정상이었다.
쿡하고 웃어보이다 다시 한숨을 내쉰 아네트. 그런 생각. 부질 없었다.
아직 오월이지만 아침은
무척 추웠다. 가디건을 어깨에 걸친 아네트는 창문을 열었다.
시원한 아침바람이 연분홍의 벚꽃잎꽈 함께 들어왔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자 한결 기분이
나아진것 같았지만 미소가 생기지 않았다.
창가에 턱을 괜체 정원을 내려다보는 그녀. 언제봐도
심심한 정원이다. 델프라..아니 세계에서
가장 부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가문이, 왜 저렇게 정원관리엔 인색한지 모르겠다.
하다못해 분수라도 있었으면 햇볕쏟아지는 날엔 무지개라도 볼 수 있었을탠데 말이다.
녹색잎만 가득하고
드문드문 인조장미가 펴있고, 멋없이 높이 솟아있는 나무들이 있는
심심한 정원을 훑어내리던 아네트는 높은 정문에서부터 정문과 현관을
이어주는 긴
대리석길을 따라 훑고 내려왔다.
그러나 검붉은색의 커다란 쌍두마차의 곁에 서있는 상아빛 머리를 보곤
금새 고개를
돌려버렸다.
반 루앙과 한참 얘기를 하다 잠시 위를 바라본 후안은 3층의 어느 방
창가에서 흠칫하고
다시 창가뒤로 숨어버린 검은 머리의 여자를 발견했다. 반 루앙에게는 알았다고 닥달하며
대충 그를
마석에 앉힌 후안은 마차에 오르는척 하다 이내 내려왔다.
"어이~!"
창밖에서
후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본 것이 분명하다! 화들짝 놀란 아네트는
창가쪽으로 다시 가기위해 걸음했으나 이내 멈춰버리고
말았다. 그러다 다시 용기를 내고
창가로 향했다. 검은머리가 빼꼼 다시 모습을 들어내자 후안이 피식 웃어보였다.
소심하게 다시 모습을 들어낸 아네트는 후안을 주시했다. 어제 한번 보지 못해서그런가?
원래 잘생긴그였지만 오늘은
한결 더 빛나보였다. 찰랑거리는 상아빛머리에 도자기같은
새하얀피부. 어쩌면 공주에게 뺏겨버릴지도 모를 아네트가 갖고있는 마지막
사람.
눈물이 날만큼 아름다웠다.
아네트가 눈주위에 손을 대는것을 볼 수 있었다. 태양빛에 무언가가
반짝였다. 눈물이다.
봄바람 답지 않게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마음까지 싸해졌다. 이 저택에서 믿을 사람이라곤
후안밖에 없는 아네트. 혹시 자신을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까봐 마음이 아팠다.
후안에게 버림받으면 아네트는
갈 곳이 없다. 후안은 그녀를 버릴 수 없다.
아네트가 여전히 자신을 보고있는것을 확인한 후안은 갑자기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고는 손을 아네트쪽으로 쭉 뻗었다. 싱긋 웃은 후안 다시 두 손을 모아 동그란, 어떻게
보면 하트라고도 볼 수 있는 모양을 만들어 그 손으로 후, 하고 바람을 분다.
창가에 턱을 괸 아네트가 고개를
숙였다. 뚝뚝. 창가로 눈물이 떨어졌다. 그런데 입은
웃고있다. 손으로 웃는 입을 가리다 우는 눈을 가린 아네트. 그러다 곧 싱긋
웃곤
후안을 보며 손을 흔들어준다. 아네트처럼 손을 흔든후안. 그러다 반 루앙이 어서
마차에 타지 않냐고 재촉을
하자 알았다고하며 서둘러 마차에 오른다.
"어떡해.."
아네트가
있는 3층의 아랫방. 즉 2층 후안의 방의 창가에도 여자가 한명 있었다. 역시
창가에 기대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이지만
웃고있는 여자.
"무슨일 있으십니까?"
자넷과 함께 방으로 들어온 제제부인이
창가에서 떠날줄 모르는 브리를 보고 물었다.
얼굴이 붉어진 브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고. 제제부인은 의아한듯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창가에서 다시 침대로 향한 브리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열심히 속으로 주기도문을
외웠다. 그러나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잊혀지지 않는다.
후안이 먼저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브리를 가리키고 갑자기 손으로 하틀르 만들더니
그 하트를 불어줬다.
"나,
너, 사랑.... 사랑해?"
사랑해란 말을 내뱉고 자기도 모르게 입을 막아버린 그녀. 혹시 나의 착각일까?
두근두근하는
마음을 도저히 주체할 수 없는 브리는 나른하게 느껴져오는 몸의 통증도 잊고 침대로 털썩
누워버렸다.
그날 밤
"..흑...아흣.."
삐걱삐걱 침대소리와
함께 연한 신음소리가 흘렀다. 연신 흔들거리는 작은 그녀는 송골송골
땀이 맺힌 손으로 침대시트를 꾹 쥐고 손톱으로 뜯어냈다.
그만큼 아프고 힘들었다.
어젯밤의 상처도 아직 아물지 않은 국부에 후안이 또다시 들어온다는 것은 조금은
무서운일이기도 했다. 오죽하면 붉게 부어오른 브리의 그곳을 보고 후안이 오늘은 넘기자고
했을까. 그러나 브리는
후안을 끌어안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오늘, 브리가 이상하다.
후안이 꽤 늦었다. 오늘은 델프라
지방 지부의 사람들이 한달에 한번 업무보고를 위해 올라
오는 날이었는데 후안이 취임한지 처음으로 있는 모임이었기에 상당히
이야기들이 길어졌다.
새벽 한 시. 아무래도 잠이 많은 브리는 이미 쿨쿨 자고있을 시간이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후안을
기다렸다. 분명 어젯밤 첫관계 이후. 두려움반, 통증 반으로 관계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자고 있을것이라 생각했었는데 브리가
깨어있으니 의외였다.
"하아..악..하아...하아..."
가슴도 아프고, 국부도
무척 아파왔다. 영원처럼 느껴지는 긴 그 시간 오직 통증만을 느끼며
시트를 부여잡고 후안에게 몸을 맡긴 그녀.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참게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후안이 멈추고 따듯한 어떤것이 브리의 몸안에 들어왔다. 드디어 끝난것을
깨달은 브리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피식, 웃음이 나왔다.
"..왜 웃는거야? 아프지
않아?"
털썩, 하고 후안이 곁에 누웠다. 새벽까지 이어진 업무에 후안도 무척이나 피곤한 기색이었는데
남자쪽에서 체력소모가 더 큰 관계후엔 오히려 피곤함이 가신 얼굴이다. 역시, 젊음일까.
턱을 괴고 물어오는 후안을
바라보는 브리. 빙그레 미소지으며 대답한다.
"아파. 엄~청 아파"
"그러니까 아까 내가
말했을때 들었어야지."
"그래도, 참을 수 있었어."
"아픈걸 참는건 안 좋아."
"나.. 아이를
빨리 갖고싶어."
브리의 말뒤로 침묵이 이어졌다. 브리는 말똥말똥하게 눈을 깜빡이며 후안을 바라봤고.
후안은 아무래도 브리를 이해할 수 없는지 난해하단 표정으로 브리를 바라봤다.
여자들은 원래 이렇게 남자를 헷갈리게
하는걸까? 예전엔 아네트가 알 수 없이 그를
떠났듯, 라이넌을 사랑하고 - 물론, 그만의 생각이다 - 아이는 갖기 싫다고 했으면서
아픈것을 궂이 참아가면서 후안을 받아들이고, 이젠 아이가 빨리 갖고싶다고 한다.
"헷갈려."
라고 말한 후안은 다시 엎드렸다. 그리고 입을 가린채 하품을 하곤 그대로 자려는지 눈을
감았다.
또 다시 관계후에 별 말없이, 안아주지도 않고 자버리는 후안을 야속하게 보는 브리.
행동은 어제와 똑같다. 그런데
아침에 그건 뭘까? 브리가 생각하는 뜻이 아니었을까?
그때, 브리가 뚫어져라 쳐다보는걸 느꼈는지 후안이 눈이 번쩍 뜨였다. 자기도
모르게 놀라
눈을 감아버린 브리.
"잘자."
라는 목소리와 함께 툭툭 머리를
누르는 후안의 손이 느껴졌다. 그리곤 부시럭 소리가 들렸다.
한참 그렇게 눈을 감고있다 다시 살포시 눈을 뜬 브리. 피곤했는지
후안은 등을 돌리고 자고
있었다. 이불을 입까지 끌어 당기는 브리. 물끄러미 후안의 등을 바라보다 아무래도 웃는 것인지
커다란 눈이 반달이 됐다.
주절 ♡
얼마전에 40편을 올렸다고 들떠있었는데, 벌써 50편을
올렸습니다.
시간 정말 빨리가는군요. 생각해보니 이 소설을 3월달에 올렸더군요.
이제 벌써 5월인데.
사실 완결은 일찍 냈는데, 수정하면서 이것저것 들어가고 조금씩
바뀐부분이 있고하니까
편수가 더 늘어나고 있는것같아요. 사실 이번편은 원래 없던 편이었답니다
-_-;
어느편이었나 수정하면서 세부내용넣고 그러다보니 너무 길어져서
한편 더 늘린게
어느덧 이지경까지 ;;;;
엣헴, 어쨋든 ㅎㅎ
끈기없는 제가 50이라니. 역시, 여러분이 아니면 정말 힘들었을거에요
♡
장편 잘쓰는분들은 쳇, 뭐 50가지고. 이러겟지만. 저에겐 크답니다
=_=*
정말, 감사드립니다 ♥ (꽉찬하트에요ㅋㅋ)
수능이 6개월밖에 남지않아, 부담이지만. 책임감있게 완결까지 풀엔진 가동하겠습니다. 물론 열공도하구요 ㅎㅎㅎ
모두모두 행복하세요~! ♥
|
첫댓글 으하핫, ; 제가 첫 리플인가요. 재밌게 읽고 가요.! 아네트의 앞날이 어찌 될 듯 심히 궁금해 지는군요.! 그러면서도 아네트가 정말정말 불쌍합니다.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망치고 말이죠.. (그러면서도 제 예상 속에선 브리와 후안이 잘 될 것 같아요; 으하하;)
처음뵙는분이네요 반가워요~~♡ 코멘감사드립니다 ㅎㅎ 아네트가 밉상이긴하지만 가여운것도 사실이죠ㅠㅠ 앞으로 아네트가 어떻게될지 지켜봐주세요 =_=//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앗 오늘이다, 셤잘보셨어요? (조심조심;) 앞으로있을 시험도 화이팅!
삭제된 댓글 입니다.
왜안들어가질까요? 제가 태그설정을 해서그런가? ㅜㅜ 아님 제가 또 수정하고 있을때 들어가신거...=_=;
히제이님! (왠지 가시연님이 더 좋음) 저희 학교 오늘 시험쳤는데 2학년 녀석들이 -_- 제 책을 재활용상자에 넣는 바람에 - - ; 대략 난감. 내일 또 시험을 쳐야 하다니 ... 짜증나영! 일찍 마쳐서 좋긴 하지만.
그럼 가시연이라구 부르세요 좋으신데로 ^^ 학년끼리 반을 바꾸나보군요 -_-... 가서 따지세요! 내일시험도 화이팅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