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인
- 안현미
검룡소 이후 여행은 고요 속에서 이어졌다
당신은 태백에 먼저 도착해 있었고
나는 그만 깜빡 잠이 들어 태백을 지나쳐 묵호까지 가버린 터였다
여름이었고 자정이 지나 있었고 비릿한 바다내음이 흐미한 묵호역 대합실에는
바랑을 메고 만행(卍行)을 떠나는 비구와 나 단둘이 앉아 상행선 기차를 기다렸다
지나쳐온 길을 다시 끌어당겨 운수납자(雲水衲子)처럼 되짚어가야 하는 길
불현듯 우리를 태백으로 견인했던 것도 구름과 물과 바람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검룡소 이후 여행은 고요 속으로 이어졌다
고작 황지연못 근처 동아서점에 들러 당신의 책을 사 싸인을 받은 것이 전부였다
여름이었고 당신의 글씨가 적힌 책과 여행가방을 끌고
구와우마을 해바라기 꽃밭 속에서 먹는 늦은 점심
마음에 해바라기 씨 같은 점 하나 찍는 점심
검룡소 이후 여행은 고도를 향해 이어졌다
사북을 지나 만항재까지 녹음 짙은 여름산은 무서웠고
어느 겨울 큰눈 속에 갇혀 생을 놓아두고
시원으로 돌아간 연인들의 이야기는
아름다워서 슬프고 슬퍼서 아름다웠다
정암사 적멸보궁 옆 열목어 서식지처럼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