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배로 떠난 일본 여행 (큐슈의 아소 ,뱃부 ,유후인...)
이른 저녁시간 벌써부터 부산 국제선 터미날은
밤배를 타려는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일본 입국수속은 두 개의 지문과 사진찍는 일로
더뎌지고 여기저기서 불평하는 소리가 쏟아집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알고는 있지만
이성과 감정 사이에 괴리를 극복하지 못한 나 역시
불평하는 이들과 진한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뚜~우~ 배에서 부는 나팔소리에 맞춰 배가 떠납니다.
칠흑같은 밤바다의 물살을 가르고 떠나는 부관페리
콩나물 시루같이 복닥거리는 다인실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그닥 큰 변화가 없는 듯이 보입니다.
가끔씩은 너울에 출렁이기도 하며
배가 시모노세키항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3시
천지를 분간 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안개가 자욱히 피어납니다.
무심히 피어오르는 창백한 빛의
푸른 안개
우리의 참담하고도 가슴 아픈 역사를
떠오르게 합니다.
*아소산으로
쾌청한 날씨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밑으로 버스가 달립니다.
깔끔하게 정리된 논과 밭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그림같이 작은 집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을 실감나게 합니다.
휴게소, 식당 어딜 가든지
아담하고 깨끗함에 감탄합니다.
이곳의 대나무는 곧기도 하지만
수양버들처럼 축축 늘어지기도 해 신기합니다.
미혼의 아들 숫자만큼 걸어 놓는다는
잉어 모양의 깃발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도 일본을
처음 오는 나에겐 마냥 흥미롭습니다.
아소산 정상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찾아 길을 나섭니다.
원시림으로 뒤덮힌 울창한 숲이 있는가하면
산양들이 한가로히 풀을 뜯는
넓은 초지가 있기도 합니다
대자연의 신비함은 늘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정상을 코앞에 두고 구릉지 같은 곳엔
승마장과 호수가 있어 이곳이
활화산 지역이라는 것을 잠시 잊게 합니다.
조금 늦어 입맛이 더 당기는 현지식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부랴부랴 정상으로 향합니다.
아직도 뜨거운 용암을 간헐적으로 토해내는
아소산의 분화구를 보기위해서..
그러나" 전면통제'란 시그널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지독한 유황냄새속에 초초한 시간을 보낸 뒤
아소 화산 박물관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살아있는 세계 최대급 칼데라 화산 아소의 모습을
대형 스크린으로 감상한 후 그래도 남는
일말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뱃푸로 향했습니다.
*뱃푸
아소를 떠난 버스가 이름 모를 야생화로 뒤덮힌
산등성을 셀 수 없을 만큼 넘어 넘어 도착한 곳 뱃푸
쿠슈 최대의 온천 휴양지답게
마을 여기저기에서 무럭무럭 흰 연기가 피오릅니다.
평지엔 벚꽃이 진지도 벌써 여러날이 지났건만
산속 작은 마을엔 오슬오슬
한기를 느끼게 하는 바람이 붑니다.
이 지역에서 가장 크다는 대중온천 효탄에서
하루의 피로를 풀었습니다.
탱글탱글해진 피부는 새삼 신비한 자연의 힘을
실감나게 합니다.
*가마토지옥
이끼로 뒤덮힌 다소 침울해 보이는 고목과
커다란 가마솥이 지키고 있는 입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지옥의 이미지를
실감나게 합니다.
안으로 들어서면 사방에서
뜨거운 열탕을 견디지 못한 땅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으며 뭉게 구름처럼
솟아 오른 증기가 시야를 가립니다.
겉 모습은 지옥이지만 증기속을 뚫고 작은 길로
산책을 나서면 아름답게 핀 봄꽃들도 있고
요것조것 예쁜 소품들을 파는 가게도 만납니다.
증기로 쪄낸 계란을 먹노라니
어릴 적 소풍의 단골에 단골메뉴
삶은 계란이 생각나
그리움에 더욱 목이 멥니다.
무료로 하는 족탕에 발 담그고
가마토지옥 문을 나섭니다.
*유노 하나 재배지
뱃부의 무형 문화제 유노하나를 재배하는
곳은 날렵한 이등변 삼각형의 지붕을
달랑 기둥 하나가 받쳐주고 있는
작은 초막입니다.
초막속에는 돌과 짚을 깔아
땅에서 솟아나는 증기가 이곳을 통과 하도록 한후
지붕을 씌워 내부를 과포화 상태가 되도록 만들면
증기 속에 있던 여러 성분들이 결정이 되어
짚에 달라 붙게 되고
그것을 채취한 후 비누, 입욕제
등등으로 이용한다 합니다.
작은 것 하나도 간과하지 않고 꾸준히
계승 발전시켜 독특한 상품으로
만들어 낸 그들의 장인 정신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유후인마을
뱃부를 떠난 버스가 두어 시간을 달려 내려 놓은
유후인 마을은 고산지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맑은 공기와 조용하고 차분한 곳으로 일본인에게
인기가 많은 고급 휴양지랍니다.
크고 작은 예쁜 상점들이 우리를 유혹하는 길을
따라 주변 경치를 감상합니다.
길 가운데를 흐르는 개천엔 벚꽃 잎들이
하얗게 떠있고 수초들은
물결따라 하느적 춤을 춥니다.
머리카락을 가볍게 날려주는 미풍을 따라
나선 길 끝에서 만난 긴린코 호수
맑은 물속에 연두빛, 초록빛 나무 그림자가
떠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호수에 봄은
길게 드리운 물그림자만큼이나
낭만적이고 몽한적입니다.
찰칵 셧터 누르는 소리조차도
맑고 투명합니다.
긴린코란 이름은 투명한 물밑으로
고기떼의 비늘이 노을에 반사되어
황금색으로 빛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붙여졌다 합니다. 해질 무렵의 긴린코 호수가
얼마나 멋질까 보고는 싶지만
발길을 돌립니다.
미련과 아쉬움을 그 곳에 묻어 놓은 채로
* 다자이후의 텐망궁
후쿠오까 근교에 있는 다자이후
한때는 쿠슈 총독부가 있어 행정수도 역활을
한 적도 있었으나 지금은 한적한 도시입니다.
그래도 이곳에 있는 텐망궁은
전국에 있는 텐망궁의 총 본산이라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다 합니다.
스가와라 미찌자네란 사람을
학문의 신으로 모시고 있답니다.
처음은 신사였으나 2차 대전후 궁으로
승격 되었다 합니다.
때 마침 커다란 신궁 본전에서
일본 전통 복장을 한 남녀가
학문의 신께 예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알지는 못해도 새로운 문화 체험은
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형태는 다르겠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합격을 기원하는 마음은 다 같지 않을까
나름 짐작하며 텐망궁을 나섭니다.
관문대교를 지나 시모세끼항에 도착하므로써
4일 동안의 일본 여행을 마감했습니다.
밤배로 떠나고 밤배로 돌아온 여행
조금은 생소하고 불편했지만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는 데는
한 치의 오차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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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도 23일 이곳으로 여행 가는되 앉아서 미리 구경 다 하고 갑니다 ^^*
아~ 코스가 비슷하니까요. 또 다른 느낌의 멋진 여행 하시기를 ^^*
아름다운 여행 다녀오셨군요. 몽골에서 돌아온지 이제 겨우 이틀째인데 불현듯 또다시 길 떠나고픈 생각이 드네요...
초원에서의 여행~ 바람 소리, 야생화의 수줍은 미소, 하늘을 바다로 만든 별들... 부럽습니다. 여행의 중독성 우리 앓는 사람들만 아는 불치의 병 입니다..
일본 여행은 그 뒤끝이 참 상큼하지요? 감정적으론 아직도 찌꺼기가 남아있는 일본이라는데, 만나보면 얄미울 만큼 완벽한 모든 것들에 감탄을 하고 말지요? 작은 것조차 섬세하게 풀어주신 여행기에 저도 여행에 함께 했던 듯 싶네요.
나일 먹어 호호 백발이 되면 영감 할멈 손잡고 온천이나 갈까했습니다만 의외로 좋더군요 금련화님이 표현 역시 입니다.하긴 떠나는 데 어딘 들 좋지않겠습니까마는요 ㅋㅋㅋ
벳부 온천장의 자욱한 김서림,오래전에 다녀온 아소산 분화구의 모습이 기억납니다.기모노를 입은 여인,거리 풍경에서 일본 냄새 물씬나는 사진이 best님의 특별한 출사여행길이 상상됩니다요. 머무르다 갑니다.
공유할 수 있는 추억들 그래서 여행은 사람과 사람사이를 더 진한 끈으로 이어주나 봅니다.
海地獄 에서 온천에 삶은계란 사먹던..(먹은것만 기억나나 ㅋ) 분화구는 못들어가게해서 멀리서만 바라봤죠.잘보고갑니다 ^^
해지옥도 가보고 싶었습니다만 뱃푸에 유명한 지옥 순례만 해도 하루 해가 짧겠더군요
일본은 " 마쯔리 <축제 > " 의 천국 이라고 할 만큼 각종 마쯔리가 많은 나라지요 . 옛날부터 천재지변이 많아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경외감과 평안을 기원하는 마음의 표현인 것 같아요 . 저도 일본에 살았을 때 잉어 깃발을 매 달아 본 경험이 있는데 아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 기원하는 뜻 이라고 해요 . best 님 덕분에 40 년 전 추억을 들쳐봅니다 .
스스랑님이 늘 부럽습니다. 뜨내기~ 흥분해서 겉돌다 보면 정작 놓치고 오는 것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스스랑님은 규슈에 사셨나봅니다. 방울꽃을 '스즈랑'이라고 하는데 닉이 특이해서요. ㅎㅎ
아주 젊었을때 규슈가 아니고 고베에서 2년간 살았었지요 . 일본은 지방마다 독특한 마쯔리가 많더라구요 .... 미션님 , 반가워요 !!
고베요~지진의 흔적은 남아 있어도 멋진 범선이 떠있는 항구도 아름답고 활기찬 거리도 아름답더군요...^^*
세계최대의 분화구 아소산 칼데라는 가까이서 바라보면 아래가 코발트 빛이더라구요. 참 신비했습니다.
순간으로 볼 수 있고 없고가 정해지는 곳이 더군요.인생사 다 그런 것이라 해도 무척 섭섭하드라고요..
일본을 여러번 여행했어도 best님이 다녀오신 벳부온천은 아직 못 가보았네요 여행길에따라 붙었다면 좋았을텐데... 욕심만 부리지요? ㅎㅎㅎ 언제나 깔끔하고 셈세한 글과 사진속에 머물다 갑니다
담엔 같이 가죠. 온천마다 특징이 있고 녹아 있는 성분이 다르겠지요마는 아직 변별력이 없는 저는 그곳이 그곳 같아요 ㅎㅎㅎ
오랜만에 들어와 반가운 글을 보네요. 잘 지내지요? 일본 여행을 같이 하고픈 마음이 들어요. 깨끗하고, 음식 맛있고, 정다운 친구가 있다면 더 없이 좋은 여행일테니까...
그래요 같이 갑시다 거리도 짧고 어쩌니 저쩌니 해도 정서도 생김새도 비슷하죠~ 웬만하면 미국 생활 접고 빨리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