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21.土. 맑음
혜자惠子가 장자莊子에게 말을 건넨다...
惠子 : 내게 굉장히 우람한 가죽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온 몸이
혹 투성이라 울퉁불퉁하지.
작은 가지들마저 요리저리 비틀어져 목재로 쓰기엔 어림도 없다네.
그게 길 가에서 자라고 있음에도 눈 여겨 보는 목수가 없더군.
평소 자네가 한 말이 바로 이 큰 나무와 같지 않은가.
크되 쓸모가 없어 누가 믿으려 하겠나?
莊子 : 자네는 여우와 들고양이를 본 적이 있나.
먹이를 구하고자 날뛰는 몸부림이 그만이지.
그러다 그들도 종종 덫에 걸려 함정에 빠져 죽곤 하지.
한데 들소라는 놈은 집채만한 몸집이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한 덩이 구름 같잖나.
그러나 그놈은 둔해서 쥐새끼 한 마리 못 잡아본 위인이라네.
자네는 그 큰 나무의 쓸모없음을 걱정하지만 말고
그걸 넓은 장소에 심었더라면 그 나무 그늘 아래서
담소를 즐기며 장기도 두면서 편히 쉴 수 있지 않겠나.
쓸모없는 나무라 자연히 베어 갈 사람도 없을 터이니
걱정할 필요조차 없지 않은가.
장자莊子가 혜자惠子에게 권한다.
그런 큰 나무가 있다면 그것을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에 심어서
유유히 옆을 산책하고 한가하게 나무 그늘에서 쉬면 그 얼마나 좋은가.
쓸모없다고 끙끙 앓지 말게나.
가을빛이 솜 방귀처럼 퍼지는 아침,
아무 것도 있는 것이 없는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에
텅 빈 충만을 맛보러 장자莊子나 만나고 올까?
( 울림 가라사대 - 가죽나무 -)
첫댓글 옛말씀은 수 백년이 지난 지금에 들어도 무릎치며 깨우침에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그런데, 이런 똑같은 글을 누가 어떻게 표현하는냐에 따라 마음에 와 닿는 깨침의 크기가 다릅니다. 그래서, 저는 [울림 가라사대]의 왕팬입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한 덩이 구름 같은 들소' '가을빛이 솜 방귀처럼 퍼지는 아침' 옛말씀이 시 한 수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