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이 숨겨놓은 비밀 병기가 곧 공개될 모양이다. 그는 당시 최고의 관료조직이었던 군 조직 수뇌부 출신으로 관리문화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시스템으로 처리하는 능력을 가진, 즉 큰 국가조직을 운영할 능력을 가진 훈련된 사람이었다. 그는 예측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창의력을 지녔다. 그는 50년을 앞을 보고, 그 자식에게 컴퓨터 공학을 가르쳤다. 그 당시 누가 이렇게 발전된 컴퓨터 시대가 올 것으로 예측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박근혜 전 대표는 아버지의 창의성과 시스템 관리력으로 교육받은 사람이다.
박 전 대표의 그의 머리에는 인문학적 소양의 소프트웨어와 기술의 하드워어가 장착되어 있을 것 같다. 국민들의 뜻에 따라서는 그의 아이디어가 미래 대한민국의 지도자상을 정립시킬 수 있게 생겼다. 그러나 그에게는 시련이 적지 않을 것 같다. 그는 수 많은 비정규직과 346,000만 젊은 대졸 실업문제를 풀어야할 숙제를 안고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젊은 사람들이 돈보다, 끼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줄 만큼 창의적 지도자는 아닌 것 같다. 그가 좋아하는 4대강 사업, 과학벨트, 동남권 신공항, LH 공사 이전 등은 기껏해야 재정 적자만 낼 뿐, 일자리 창출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오히려 외국노동인력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할 뿐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미래는 하드워어에 장착된 소프트웨어가 일자리를 창출한다. 박 전 대표가 말한 줄푸세는 '작은 정부와 큰 시장'이고, '원칙이 바로선 자본주의'이다. 박 전 대표는 국가가 원칙을 세우고, 기획력만 갖겠다는 뜻이다. 컴퓨터 시대에 맞는 발상이다. 인간의 뇌가 몸의 움직임까지 다하지는 않는다. 뇌는 통제만 하고, 손발이 움직이게 한다. 그게 컴퓨터의 특징이다.
한국판 뉴스위크는 2월 2일 마리사 메이어 구글 부사장(Marissa Mayer)와의 인터뷰 기사를 게재했다. 동 기사는 "기술 분야에선 (여성 인력이) 15~17% 정도다. 하지만 구글의 경우는 20% 정도 된다."라고 했다. 또한 동 기사는 "스탠퍼드대에 입학한 첫 주에 컴퓨를 샀다. 내첫 컴퓨터였다. 마우스를 처음 봐도 직관적으로 사용 방법을 아는 사람이 많은데 말이다. 이듬해 봄 컴퓨공학 수업을 처음 들었다. 그리고 상징체계학(symboiic systems)이라는 매우 흥미로운 분야를 알게 돼 전공으로 택했다. 철학과 인지심리학, 언어학, 컴퓨터 공학이 합쳐진 특이한 분야다."라고 했다.
상징체계학은 사람 머리에 저장되있는 상징의 지식이다. 그 퍼즐을 잘 맞추면 리더십이 된다. 그 퍼즐은 정확하게, 원리원칙 대로 움직이다. 그게 '원칙이 바로선 자본주의가'가 된다. 중앙일보 2월 2일 사설은 '레이건 탄생 100주년 '정치는 타협이다'라고 했다. 그게 다름 아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퍼즐게임이다.
동 기사는 "숀 윌렌츠 프린스턴대 교수가 '그(레이건)가 정치에서 무엇보다 필오한 것이 타협이란 걸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현실정치에서 원하던 것을 다 얻을 수 없다는 사실도 잘이해하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그의 리더십은 상식 그 이상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지도자로서 탁월한 성고을 거뒀다. 상식을 실천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또한 동 기사는 "오바마가 레이건 팔로어(follower)로 나선 것은 지난달 25일 국정연설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는 재정지출 삭감과 조세제도 단순화, 사회보장제도의 개선을 역설했다. 모두 레이건이 재임 시절 추진했던 정책들이다."라고 했다. 한편 뉴스 위크 한국판은 "중간선거에 패한 이튿날인 1982년 11월 3일 기자회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원칙을 놓고는 절대 타협하지 않곘다. 우리가 경기회복에 필수적이라고 믿는 일은 '끝까지 밀어붙일(stay the course)' 생각이다.' 레이건은 사람들 앞에 나설 때'는 '배우는' 입장이 아니라 '가르치고 이끌어가는' 입장이었다."라고 했다. 그리고 그의 언어는 '쉽고 단순한 화법으로 국민에게 다가섰다.'라고 했다.
컴퓨터 공학과 같은 뇌 연구가 활발한 모양이다. 중앙일보 박방주 기자는 1월 19일 이길여 가천길재단 회장과 인터뷰 기사를 게재했다. 그는 '과학은 2등 기억 안해..세계뇌과학 허브가 목표'라고 했다. 동 기사는 "MRI와 가튼 고부가가치 의료기기 기술이 우리나라에 있느냐, 투자시기를 놓치면 결국 다른 나라의 뒤를 쫓아갈 수밖에 없다. 기초과학은 최소한 10~20년 앞을 봐야 한다. 더구나 이번에 14T MRI의 개발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이런 호기가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라고 했다.
컴퓨터 공학이 뇌공학과 연계되어, 산업으로 육성이 된다고 한다. 한국판 뉴스 위크 소낸펠드(Jeffrey Sonnenfeld)는 '천재의 딜레마'에서 "잡스는 애플에 철저한 비밀주의 문화를 심었다. 신제품 정보가 미리 흘러나가면 김이 새기 때문에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가 신제품 발표회를 열어 대단한 입소문으로 대박을 터뜨렸다."라고 했다.
세계일보 조정진 기자는 2007년 2월 《신문과 방송》에서 "민정이양 후에도 박정희 정부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여러 차례의 계엄령·위수령·긴급조치 등 비상대권을 발동했다. 그럴 때마다 첫 계엄령 포고문 2조는 어김없이 부활, 언론을 옥죄었다. 대통령과 정부 정책은 성역이었다. 어떤 언론사든, 어떤 언론인이든 성역을 침범할 수 없었다. 만일 조금이라도 선을 넘으면 어김없이 영장 없는 체포 구금이 잇따랐고 심지어 해고와 테러 혹은 회유가 뒤를 이었다."라고 했다.
다른 한편으로 『과학대통령 박정희와 리더십』(MSD 미디어, 2010)에서 민동필 이사장(서울대 물리학과 교수)은 '박 대통령은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 과학기술이라는 점을 간파하고 국가지도자로서 먼 장래를 내다보는 혜안으로 과학시술을 육성하고 우수한 인재를 양성했다'고 평가했다. 민 이사장은 '오늘날 우리의 번영은 물론이고 우리가 갖고 있는 과학기술 분야의 자산과 우수 인력이 당시에 그런 국가대계의 결과'라며 '우리 모두는 과학기술이 그로부터 40~50년이 지난 오늘에도 변함없이 국가발전을 견인하는 원동력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라고한다(p.47).
동 서적은 "내(박완희 박사)가 1987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에 입학한 당시만 해도 서울 공대에 여대생이 두세 명에 불과했던 점에 비춰보면 1970년대 초반에 '공대 여학생'은 어떤 대학도 수십 년 만에 한 명 있을까 말까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시절이었던 만큼 박 대통령이 장녀인 박근혜 전 대표를 공대(전자공학과)에 보낸 것은 당시로서는 물론이고 지금도 결코 단순한 일로 볼 수가 없다."라고 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그로부터 42년에 대선을 도전하게 된다. 1960년대 말, 박 대통령은 컴퓨터 공학이 지금과 같이 국민 생활, 전자정부, 산업 등에서 이렇게 발전될 것을 내다봤다. 박정희 대통령의 생각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들어 맞았다. 언론과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독재자 박정희'라고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예지력과 창의력은 정확했다. 그 창의력으로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 오늘이 한국이었다. 컴퓨터 하더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그의 머리는 컴퓨터와 같았다. 그 유전자(DNA)가 한국 미래를 책임질 준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