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행궁터 발굴 조사를 벌이고 있다.
★*…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잇따라 겪은 조선의 왕들은 언제 다시 외적이 침략해 올지 몰라 늘 불안했다. 위기 때 나라와 사직을 지켜줄 것으로 기대했던 남한산성이 청나라의 화포 공격에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수모를 당한 터라 도성 방비를 위해 더 튼튼한 성이 필요했다.
숙종은 한양 도성과 가까우면서 지세가 험준해 방어에 유리한 환경을 갖춘 북한산을 주목했다. 삼국시대부터 중요한 군사요충지로 꼽혀온 북한산은 백제 개루왕 5년(132년)에 처음 토성을 축조했고, 고려 때 거란과 몽고의 침입을 막기 위해 증축했다고 전해진다. 북한산성 축조를 두고는 숙종 즉위 이전부터 수십년 동안 수많은 찬반 논란이 있었지만 막상 공사를 시작하자 승려와 군인, 주민들이 총동원돼 불과 6개월 만인 1711년(숙종 37년) 천혜의 요새가 완성됐다...
▲ 백운봉과 인수봉, 만경대를 중심으로 영취봉, 원효봉, 의상봉, 문수봉, 보현봉 등 북한산의 주요 봉우리를 연결해 12.7㎞에 이르는 성벽과 13개의 성문과 3개의 수문이 세워졌다. 성 내부 면적은 6.2㎢로 여의도(윤중로 안쪽 2.9㎢)의 2배가 넘는 규모다. 현장을 답사한 숙종은 대서문 쪽이 취약해 보이자 산성 안에 중성문과 성곽을 이중으로 쌓아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사진:> 북한산성 안에 있는 행궁. 고양시 제공
★*… 11일 오전, 대서문을 통해 숙종이 행차했던 길을 따라 진입한 북한산성 안쪽 등산로는 평탄했다.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국립공원’이란 기네스 기록을 보유한 산답게 평일인데도 등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중성문을 지나 태고사 인근의 백운동계곡 가에서는 가림막에 가려진 채 산영루의 막바지 지붕 공사가 한창이었다.
‘산 그림자가 물에 비치는 곳’이란 뜻을 가진 산영루는 수원 화성의 방화수류정과 남한산성 수어장대에 견줄 만큼 아름다운 조선 후기 건축물로 꼽힌다.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 선비들이 즐겨 찾았던 이 누각은 1925년 대홍수로 10개의 주춧돌만 남긴 채 건물이 유실됐다. 경기도와 고양시는 5억원의 예산을 들여 지상 1층, 연면적 50㎡의 팔각지붕 형태로 산영루를 복원해 다음달 준공을 앞두고 있다.
▲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올리자” 고양시 중심 5개년 복원계획 행궁·성벽 조사발굴 50% 진척 계곡 옆 ‘산영루’ 다음달 준공<사진:>산영루의 옛 모습. 고양시 제공
★*…산영루에서 대남문 방향으로 20분 거리인 상원봉 아래 깊숙한 곳에 유사시 임금이 머무는 장소인 행궁터가 나타났다. 불볕 아래에서 연구원과 대학생, 인부 10여명이 중장비 등을 동원해 발굴 작업에 한창이었다. 숙종과 영조, 세자 시절의 정조가 다녀갔던 행궁터에서 1~2m가량 흙을 걷어내자 기단석과 계단, 주춧돌뿐 아니라 용과 봉황이 새겨진 기왓장, 온돌, 구들장, 아궁이, 수로 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산성을 쌓은 이듬해(1712년) 완성된 북한산 행궁(양주행궁)은 내전 정전 28칸, 외전 정전 28칸, 부속건물 68칸 등 모두 124칸으로 지어졌지만 1915년 7월 대홍수로 휩쓸리거나 묻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행궁 등 산성 내부 전체와 성벽 3분의 2가 속한 경기도 고양시는 2011년 경기도, 경기문화재단과 함께 북한산성문화사업팀을 꾸려 5개년 계획으로 행궁과 성벽, 성랑지 발굴조사에 나서 현재 50%가량의 진척을 보이고 있다...
▲ “남한산성이 활과 창·칼 등 근력무기시대의 마지막 산성이라면, 북한산성은 화약무기 공격에 대비한 최초의 산성이고, 그 종결판은 수원 화성이라 할 수 있다.” <사진:>북한산성의 성벽은 화포 공격에 대비해 낮고 두껍게 쌓았다. 돌 쌓는 기술이 최고조에 이르러 300년이 지나도록 원형대로 보존된 곳이 많다. ★*…실제로 남한산성은 화살을 막기 위해 성벽을 얇고 높게 쌓은 반면, 북한산성은 화포의 공격에 견딜 수 있도록 성벽의 두께를 2~5m가량 두껍고 낮게 쌓았다. 산성 안 행궁의 위치도 남한산성에서 청나라의 ‘홍이포’에 당한 경험 때문에 성 밖에서 공격할 수 없도록 깊숙한 곳에 자리잡아 왕실 보전에 만전을 기했다. 남한산성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협곡에 축조한 북한산성은 거주공간이 부족해 주민이 많이 살지 않았지만 삼국시대 이래 역사·문화의 중심지답게 문화유산들이 즐비해 산 전체가 종합박물관이라 부를 만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북한산성에는 행궁지와 태고사 원증국사탑 등 국가지정문화재 5건과 경기도지정문화재 7건이 있으며, 서암사지·중흥사지·부왕사지 등 사찰 문화유산이 곳곳에 흩어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양/박경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