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5회 목포세계마당페스티벌 폐막난장(극단 갯돌)이 지난달 27일 목포 구도심지 청소년 광장에서 열렸고 앞서 34년 역사의 목포 극단 갯돌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하는 ‘마당극 씻김’을 선보였다. |
목포가 낳은 서편제의 배우 오정해, 그 소리꾼 오정해가 있다면 ‘목포의 눈물’ 의 가수 이난영의 소리는 일본 제국시대 슬픈 여인을 그려낸다는 평이다. 남도 예맥의 도시이자 국도 1·2호선 출발지를 알리는 기념비가 솟아있고 그 30여m 위로 구 일본영사관이 위치해 있다. 옛 일본영사가 영사관에서 바라본 목포항을 바라보면 삼학도로 이어진 당시 국내 3대 미항을 연상케 한다.
유달산 노적봉 아래 목포역 인근 오거리는 일제시대 한일거주인들의 접점지대로 조폭문화를 잉태케 했다는 설도 있다. 현재 구도심지에는 적산가옥 250여채만 덩그러니 남아 있지만 신도심지로 인구가 몰리면서 오히려 구시가지 문예 부흥이 일어나는 것은 통영과도 별반 차이는 없다.
부동산에 밀리면서도 부동산 가격을 좇아가는 문화의 흐름도 목포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목포 1935(안치윤 대표, 061)243-1935) 게스트하우스는 한옥체험 공간이자 여행객들을 위한 숙박과 전시와 공연 문화의 장이다. 지난달 28일 목포 1935에서 공연한 김숙희 소리꾼은 울들목 물결 센 소리마냥 공간을 울리다가도 민어 맛처럼 감미로운 우리네 가락을 들려줬다. 또 무안군 예술고등학교 학생들의 가야금 연주와 목포시립교향악단 단원들로 구성된 MUZ 클래식 앙상블 공연도 목포 1935를 고스란히 전했다.
29일 4시간가량 목포시티투어에서 만난 박용환(68) 문화해설사는 ‘팔굉일우(八紘一宇)’를 설명했다. 이는 천황제 파시즘의 핵심 사상이자 제국주의 침략 전쟁을 합리화하기 위해 내세운 구호로써, 그는 최근에 발견돼 목포근대역사관에서 보관중인, 일본 해군장교가 새겨논 비석 ‘팔굉일우’를 이날 보여주지 못해 안타까워했다.
고려청자, 탐진(耽津)에서 바다 건너 탐라(耽羅)로
상감기법 무늬·S라인 곡선, 옥빛 고려청자의 근원지 강진
지난 27일부터 8월 1일까지 목포를 기점으로 이훈동 기념관 방문, 강진청자축제, 국립제주박물관을 중심으로 이동했다.
강진(康津)의 옛 이름은 탐진(耽津), 제주를 뜻하는 탐라(耽羅)인데 특이하게도 ‘즐길 탐(耽)’이 닮았다.
이훈동 가옥 내부로는 직접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일본 규슈 사가현 가라쓰의 다카토리 고레요시(高取伊好 1850~1927)의 2층짜리 2,300여평 대저택과 삼나무에 그린 71점의 ‘란마’를 연상케 할 정도로 이훈동기념관도 특출했다.
기념관 안내인은 이훈동 기념관의 금강산 보덕굴(1940년 作 남농 허건 1908~1987)을 두고 장대한 운림산방의 예맥이자 5대째 화가를 배출한 한국 최고의 예맥을 확인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남농은 소치 허련의 손자이자 허형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소치 허련은 초의선사를 통해서 추사 김정희와 교우했고 강진과, 해남 그리고 제주를 오갔다. 조선내화 창업자이자 전남일보 발행인 성옥 이훈동 선생을 기리는 곳인 기념관 내 고려청자들은 옥빛 바다를 품어내며 찬란함을 전하고 있었다.
국립목포해양박물관 학예사의 설명도 솔깃했고, 바다에서 건진 보물도 일품이었다. 통영에서 제작한 통구밍이배를 전시 관람케 했지만 이순신 관련 유물 전시와 안내는 빈약했다.
특히 2010년 태안 마도 해역에서 건져 올린 청자상감국화모란유로죽문매병과 청자음각연화절지문매병은 서울이 아닌 목포에서만 볼 수 있는 ‘가장 지역적인 보물임’에 틀림없었다.
강진청자축제장을 지난달 28일 찾았다. 목포에서 강진읍까지 버스로 1시간, 또 강진 고려청자 요지(康津 高麗靑瓷 窯址)까지는 차로 20여분이 더 소요됐다.
강진군립 강진청자박물관의 고령의 해설사는 “고려청자의 발전은 해상왕 장보고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가능했고, 일본은 임진년 이후 잡아간 도공들로 인해 패전의 국가에서 도자기를 통한 세계 부흥을 일궈냈다. 네덜란드 상인들이 명·청 혼란기를 피해 중국도자기 보다는 일본 도자기를 유럽에 알렸고 대동아 전쟁 침탈 발판이 그 도자기의 자신감에서 초래됐다”며 “고려시대의 전폭적인 지원에서 태조 이성계의 조선 건국으로 인해 강진은 쇠퇴하고 말았다”고 소개했다.
지난 31일 만난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사에 따르면 “제주 현무암이 강진에서도 발견되고 있는데 이는 제주말 등을 싣고 배의 평형수를 맞추기 위해 배밑에 현무암 돌들을 실었다가, 식량과 도자기들 싣고 현무암을 두고 온 격”이라고 전했다.
지난 27일 국립목포해양박물관 해설사는 1975년 발견된 보물선인 ‘신안선’을 설명하면서 “보물로 가득찬 1323년 타임캡슐로써 선박의 우측만 보존된 것은 갯벌의 독특한 역할이다. 갯벌이 아닌 수중속 좌측 선박 나무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라졌지만 갯벌에 묻힌 우측 배파편은 고스란히 남게 됐다”고 말했다.
신안선은 1323년 중국 푸젠(福建)성 촨저우(泉州)항을 떠나 고려를 거쳐 일본 후쿠오카 하카다(博多)항으로 가던 중 침몰했다는 것이 학계의 조사 결과다.
▲ 국립목포해양박물관에 전시된 보물선 신안선으로 1975년 발견됐다. 도자기 2만여점을 비롯해 인도산 향신료인 후추 등 ‘1323년 보물 타임캡슐’이다. 선박의 우측만 보존된 것은 서해안 갯벌 때문이다. |
▲ 가수 이난영이 근무하기도 한 목포 구 도심지 인근 방직공장 |
홍경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