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진아! 가자.
07년도 하계암벽훈련을 설악산에서 리지 등반으로 결정을 하여 참가하기로 결정을 하면서도 “따라 갈수 있을까” 하는 걱정 반 고민 반을 하면서 막연한 두려움에 고민에 쌓인다.
드디어 홈페이지에 산행계획이 잡히고 참가신청을 받기에 나도 휴가를 내고 간다고 과감히 신청을 한다.
내두 남잔 디 이까지 것 못하겠냐싶다.
출발 전전일도 전일도 출발하는 날 까지도 신문, 방송에서는 강원도 쪽에 집중호우니 도로가 없어졌다니 영 아니다 싶다.
무슨 비가 이리도 많이 오고 또 온다하니 심난해지면서 작년에 아들 면회 때의 지나간 필름들이 머릿속에서 돌아간다.
업무를 보면서도 홈피를 계속 들여다본다.(무슨 변화가 있을까 하는 약한 마음으로)
출발 2일전 짊어질 배냥 을 꾸려본다.
충기님 한티 전화로 물어보면서.
바지 긴것, 짧은 것 해서 3벌, 반티, 긴티 4벌, 빤쓰 2벌, 윈드자켓 1벌, 양말, 수건, 모자, 장갑, 면 런닝, 취사도구, 비상식량, 장비(암벽화, 안전벨트, 헬멧, 하강기(리버소, 8자), 카라비너 3개, 슬링3개, 퀵도르 5개, 확보기, 주마, 자일 1동, 리지화, 잠금비너, 샌달, 쵸크백), 텐트, 침낭, 헤드랜턴, 약품, 화장지, 물주머니, 매트리스, 카메라, 가스등, 아이스박스, 버너, 나침반, 등등 머시 이렇게도 많은 거여?
큰 배냥 1개, 작은 배냥 1개해도 따로 쇼핑백을 만들어야했다.
짐이 30kg은 넘겠네.
출발2일전 이제 몸만 가면된다.
10일 저녁출발이 연기되어 강원도쪽 일기불순으로 11일 아침으로 결정이다.
11일 아침 일찍 일어나 씻고, 밥 묵고 응아하고 전주사는회원님 하고 만날 장소를 약속하고.
남전주 IC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10:00쯤 여회원님의 애마가 부드럽게 들어온다.
승차후 고속도로를 잠깐 나가니 대장님의 차가 갓길에 주차 되있다.
짐과 인원에 맞게 4인 3인으로 차량에 나누어 타고 기나긴 여정을 달려간다.
휴가기간인만큼 영동에서는 차량이 상당히 정체된다.
14:15분경 원주휴계소 에서 점심으로 탕으로 한그릇씩 비우고 미시령을 넘어 설악동에 도착하여 관리사무소에가 허가증을 수령하고 이제어디서 숙박 및 야영을 하느냐를 의론 끝에 낼은 천화대를 가되 야영장에서 숙박하기로 결정하여 텐트비, 주차비를 주고 베이스캠프를 설치하고 등반준비를 미리 해놓고 18:30분경 이른 저녁을 먹고 잠을 청한다.
12일 새벽 03:15분이 조금 넘었는데 대장님이 깨우기 시작하여 마지막으로 일어나보니 식사준비 완료 상태로 빨리 먹고 출격준비 하란다.
차량으로 이동하여 매표소 안에 관광호텔 마당에 주차해놓고 거대한 배냥 들을 메고 천화대로 향한다.
새벽의 공기를 가르고 걸어가니 상쾌하기 그지없지만 개인적으로는 걱정이 앞선다.
어떻게 해서 양말을 빼놓고 와 첨부터 고생인지 앞날이 까마득하다.
덕분에 산행 끝날 때 까지 발바닥이 무지 고생했다.
비선산장을 지나 철문을 통과하니 날이 조금씩 밝아져온다.
천화대 리지 초입에서 식수를 채우고 산을 오르기 시작하는데 초입부터 사자봉 입구를 연상케 한다.
05:50분 충기님이 항상 그래왔듯이 선등으로 올라선다.
1피치 앞에서 복장을 갗추고 바위에는 물기가 있어 좀미끄럽겠다 하는 생각이 나를 어렵게만든다.
두번째팀의 선등은 대장님이 시작을 하여 한명씩 올라서는데 모든 분들이 무난하게 잘 올라가신다.
1,2피치가 무난히 끝나니 주마로 오르자 하신다.
나도 이번에 구입을 했기에 사용을 해보았는데 이거 아주 좋더라구.
충기님 말이 간혹가다 빠지는 수가 있으니 조심하라하여 신경을 쓰면서 아주 편하게 오름 짓을 해보았다.
자일을 두동만 가져왔어도 했는데 하는 아쉬움으로 목에다 걸쳐서 오르고 허리에다 메고 오르고 하니 아-구 힘들다.
하긴 한동를 가져왔든 두동을 가져왔든 내몫은 있지만.
여회원님이 등반을 천천히 한다고 막 머라 하시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구간이 그럴수밖에 없는 상황인디.
이따가 쉬는시간에 설명을 해줘야겠다.
아직은 세상천하에 최고라는 풍경은 없다.
그리 어렵지 않은 구간 구간만이 있을뿐.
왕관봉이 눈앞에 있다.
정말 생긴게 왕관같이 생겼네. 내가 옛날에 삼국을 통일할 때 쓰던거랑 똑같아.
좌우의 골짜기에서는 운무들이 춤을 추는구나.
우리의 등반을 환영하는것 마냥.
그나저나 하강은 왜 이리도 많이 하는거여.
1년치를 한번에 다하는게비.
60M 하강이라 조금은 부담이 되구먼.
13:50분 제기헐.
드디어 바위하고 사랑해버렸네.
하이고 아파라. 피도 흐르고 조심한다고 했는디 막판에 왜 이런거여?
좀있은니 원로선배님이(61세) 빈혈이 난다하신다.
??? ㅎㅎㅎㅎㅎㅎ 알고보니 바위에 검지 두째마디가 부딧혀 살이 쬐끔 벗겨졌는디.
하긴 피가나긴났거든.
간식을 조금 먹고 마지막 구간을 향하여 걷는다.
드디어 마지막 하강 바로 앞 구간을 지나가는데 왜 길이 이렇게 빌어먹게 생긴거여.
무슨 써커스 하는것마냥.
그래도 충기님은 젤루 선등에서 잘도 가는디.
하강준비 하는데 비가 쬐끔 오는디 갑자기 몸이 추워진다.
아! 이런땔 대비해서 원드자켓을 준비하라고 하는가보다.
16:45분 마지막 하강완료.
이제 골짜기로 해서 걸어서 내려 갈일만이 남았다.
걸고, 또걸고, 또, 또, 또 와 돌겠다. 갈길이 머나먼디.
19:50 비선대에 도착
코오롱 등산학교 팀들이 수업중이네.
쓰-----버 하-- 이런선. 여기서 막걸리 한잔 한다 해서 간신히 왔는디.
내 복에 무신.
다시 걷는다.(오늘도 걷는다. 정처 없이 걷는다.-----)
무슨 불빛일까?
어--어 우리님들이 딱 허니 앉아서 시원한 좁쌀막걸리를!
아이고 하나님!. 한사발의 막걸리에 피로가 한번에 가신다.
오늘은 저녁밥두 사먹고 잠두 여관에서 자자고 말씀을 드려본다.
너무나 힘든께.
20:50분 필하우스를 잡고 밥은 취사장에서 바로해서 소주와 맥주를 입가심으로 먹고 잠을잔다. 너무나 피곤해서 생각도 없이.
13일 06:00 기상
방에 오늘도 아무도 없네.
허 이거원! 유구무언이다.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끝내고 오늘은 “한편의 시를 위하길” 을 향해서 출발
08:00 설악동매표소를 지나서 좌측다리를 건너다.
“한편의 시를 위하길”리지 초입머리는 잘 들어섰는데 우측으로 길을 선택하는 덕분에 워밍업을 겁나게 해 부렸어.
나죽겠네.
원로 선배님.(두분 모두 61세) 봉진아 가자! 연달아 말씀하시네.
결국하산해서 살펴보니 아 이런! 좌측길이네.
드디어 “한편의 시를 위하길”리지 초입을 찾아 1피치는 그냥 걸어서 그 외 4피치까지는 주마링 으로 8피치까지도 그런대로 가다 9피치에서 직벽 크랙이 나를 망설이게 했다.
하지만 별 어려움 없이 정상에 도달했는데 하산길이 내발목을 잡는다.
클라이밍다운이라지만 간뎅이가 작아서는 현기증이 돌 정도여.
클라이밍다운도중 왼편으로 경원대 리지, 별을 따는 소년들 리지, 노적봉 리지 등이 보이는데 3-4팀이 각리지마다 붙어있다.
광주우암산악회 “암벽등반길잡이” 책자표지 마냥.
딱 보아하니 낼은 저기를 가자고 할것 같다.
난 죽었다. 아니 난 못간다. 발바닥도 물집이 잡히고 정강이의 힘줄도 고장이다.
고참선배님이 내눈치를 보더니 너 안갈려고 하지? 허--참내.
이제 골짜기를 걸어서 갈일만 남았다.
그래도 오늘 리지는 좀 수월하다.
다만 8피치부터 대학생들이 지체를 너무하는 바람에 시간이 걸렸는데 걱정이 앞선다.
저런 장비준비로 암벽을? 하-! 내자식들이 저런다면?
오늘은 야영장에서 비박하기로 하고 가는데 물회를 먹으러 가잔다.
오-우! 외식이다. 그것두 물회로, 땡이야.
세수대야같이 큰유리그릇에 무우채김치같이 생긴 음식을 가득주는디 어! 이거 생각보다 맛있네.
갈증나는디 시원하고. 거기다 국수까지 막 삶아서 주니 오늘 저녁밥은 최고의 성찬이네.
야영장으로 귀가하여 취침 준비후에 맥주한잔씩 한후에 잠자리에 들다.
졸려서 눈이 감기는디 원로선배님이 한잔 더 하잔다.
낼 산에 가실분들은 아닌디.
여회원님과 충기님은 잠자리에 들어서도 할말이 많은가보다.
현재 시간이 새벽 01시 54분인데도 두런 두런이다.
14일 06시 나와 원로선배님을 빼고 5분이 경원대 리지를 향해서 출발했다.
모처럼만에 늦어지게 한숨자고 쉬어보자.
근디 완전히 계산이 틀렸다.
부지런한 원로선배님 덕분에.
산행출발후 설것이를 끝내고 한 대 태우는디 어제 젓은 장비를 찾아서 말리자하시는데 금방 끝났줄 알았지만 해도 해도 끝이 없다.
그간 사용했던 개인장비들도 전부 배냥 에서 꺼내 말리고 음식물은 전부 구분하여 모으고 아이스박스는 씻어서 엎어놓고 오전 내내 정비를 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다니.
오후에 한숨자고 일어났지만 머릿속이 개운치 않다.
원로선배님은 한시간에 한번씩 산행의 위치를 가름하시네.
어디쯤 갈것인디, 비오면 안되는디, 무리를 해서라도 산행을 할것인디를 연발이시다.
글먼 큰일나는디.
수도관에 무리를 주면 안되는디.
내가 어제 포장기를 생각 했을때 준비를 해놓는건데.
하늘에는 소방헬기가 계속 왔다갔다 시끄럽구먼. 재들 땀시 잠도 편하게 못자겠네.
어디쯤 통과하셨다고 통과했다고 간간이 걸려오는 전화소식에 하우스보이의 걱정은 덜어진다.
드디어 20:00 정도해서 등반을 마치고 귀가하시면서 횟감을 사러가잔다.
오-우! 듣던중 반가운말씀
집에서 산행때 먹으려고 가져온 꿀팩을 한 개를 잡수시라고 드렸는데 입맛에 안맞나?
충기님이 생선회를 뜨러가는 내내 목덜미가 땡긴다고 하니.
이것저것 골고루 석어서 푸짐하니 사와 우리님들의 입을 즐겁게 하루의 피로를 생선회로 멋지게 풀고 회덧밥 으로 마무리를 하니 영양보충은 충분하겠다.
경원대 리지가 재미도 있었지만 힘도 많이들었나보다.
연3일의 산행에 모두들 피곤해하신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가신다.
15일 07:30 오늘도 어김없이 젤루 늦게 일어나 설거지만 한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서로들 한다.
취침도구, 취사도구, 산행장비등 각자의 것을 정리하는데 이거 채선배님의 코펠 뚜껑이 없다니? 어제 엿 바꿔 먹어버렸나?
이상하다. 설것이할때 빠진것없이 다챙긴것 같은디.
드디어 집으로 출발이다.
구미시령 길로 접어드니 울산바위가 장관이다.
울산바위의 전설에 따르면 “조물주가 금강산의 경관을 빼어나게 빚으려고 잘생긴 바위는 모두 금강산에 모이도록 불렸는데. 경상남도 울산에 있었던 큰바위도 그 말을 듣고 금강산으로 길을 떠났으나 워낙 덩치가 크고 몸이 무거워 느림보 걸음걸이다 보니 설악산에 이르렀을 때 이미 금강산은 모두 만들어져 울산바위는 그 한 많은 사연을 간직한 채 고향 울산으로 돌아갈 체면도 없어 설악산에 눌러앉고 말았다 한다.
또한 설악산 유람길에 나셨던 울산 고을의 원님이 울산바위에 얽힌 전설을 듣고 신흥사 스님에게 울산 바위는 울산 고을의 소유이니 신흥사에서 그 차지한 대가(對價)로 셋돈을 내라고 하여 해마다 세를 받아 갔는데 어느 해인가 신흥사의 동자승이 이제부터는 세를 줄 수 없으니 울산바위를 울산으로 옮기라고 하였는데 이에 울산 고을 원님이 바위를 재로 꼰 새끼로 묶어 주면 가져가겠다고 하였더니 동자승은 청초호와 영랑호 사이에 많이 자라고 있는 풀(草)로 새끼를 꼬아 울산바위를 동여매 새끼를 불에 태워 재로 꼰 새끼를 만들었는데 울산 고을의 원님은 이 바위를 가져갈 수 없었으려니와 세를 내라는 말도 더는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일이 있고부터 청초호와 영랑호 사이가 한자로 ‘묶을 속(束)’자와 ‘풀 초(草)’자를 써서 속초(束草)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위의 이야기들은 속초라는 한자 지명의 뜻을 풀과 묶음에서 찾고 있지만 모두 전설입니다“.
차량 소유주인 (김용애, 배록현) 두분이 어려운 길을 왕복하여 운전을 해주신덕에 안전하고 즐겁게 전주까지 잘올수가 있었는데 익산IC 입구에 설치해놓은 이동용속도측정기를 발견하지 못하였으니 준비중 이었다면 다행이고 아니면 우리가 십시일반 해야할것 같습니다.
남전주IC로 빠져나와 갈비탕과 소주로 해단식을 성대하니 치루고 우리는 집으로 5분의 선배님들은 1시간의 여행.
19:30분 원로선배님으로 부터 잘도착하여 광주에서 기다리시는 우리님들과 한잔씩 하신다는 전화를 받고 07년도 하계훈련은 잘마쳤구나.
산행의 뒤끝이 집에 돌아와서도 멍멍하다.
2007년 8월 19일 22시 15분
첫댓글 구름을 벗삼아 젊음을 품어내시는두꺼비님께 박수를.....
감사합니다.
한편의 기행문을 보는 듯 넘 잼나게 보았네요^^* 즐겁고 행복해 보이는 시간들 .. 사진으로나마 잠시 엿보고 갑니다^^* 함께 다녀오신 법우님의 횐님들께도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해봅니다 ^^
감사합니다.
즐거운 산행 하셨네요...운무도 아름답지만 벼랑에 피어난 꽃이 곱네요...더위 조심하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