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억말아먹기-
안녕하십니까. 황영현입니다. 아실분은 아실 그 황영현입니다.
이제 가을의 절정에 선 가운데, 그래도 점수 좀 받아 보고자 졸필을 놀려봅니다.
사실 저는 인생을 그다지 신나게 살아오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23년이란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못 믿을 사람이 여럿 있겠지만- 교통사고나 화재나 병원신세조차 겪어보지 못했습니다. 아프고 불행한 것이 신나는 것은 아니고, 또 그런 신나는 것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얼마 안되는 인생을 돌아보니 남은 건 늘어난 뱃살 뿐이었습니다.
제목이 시사하고 있는 그 사건이 아니었다면, 저는 인생이 그닥 신나지 않은 것이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겠지요. 그래서 저는 그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 합니다. 그 사건의 발단은 저의 휴학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항공특성화학교로 다녔습니다. 경남항공고등학교라는, 겉은 번지르르한 학교였지요. 하지만 실상은 격납고가 하나 더 있는 보통의 공고였습니다. 하지만 경남 유일의 항공고등학교라는 멍에를 명예로 바꾸고자 하시는 선생님들 덕택에 항공기 기관에 대해서는 조금이나마 그 원리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는 2006년 4월 3일, 공군에 입대했습니다. 공군이 외박이 많고, 여가시간이 많아 자기계발에 힘쓸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맞는 말이었습니다. 공군은 대체적으로 군생활이 쉽습니다. 오랫동안 복무하긴 하지만 외박도 자주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망설이지 않고 공군에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오판이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때 항공기기관 과목을 집중적으로 공부했었습니다. 그래서, 특기도 항공기기관으로 가면 좋을 줄 알았지요. 특기지망 1순위로 그대로 받았습니다. 그때까지는 좋았습니다.
하지만 훈련단에서 수료하고 나온 후부터, 좋지 않은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기관특기가, 신이 버린 특기라는 것입니다. 신이 내린 특기 '제작(용접-선반-밀링등)'특기와는 비견되는 소문이었기에, 얼마나 절망스럽길래 그런가 싶었습니다.
그렇게 의혹속에서 F-16전담으로 교육받은 후, 자대 배속을 19비행단으로 받았습니다. F-16을 80대가까이 보유하고 있는 큰 비행단이었습니다. 딱히 팰콘을 정비한다는 것이 뿌듯하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아, 편했으면 좋겠다. 편했으면 좋겠다.'
위와 같은 마인드를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저를 비롯한 동기들은 신병으로서 19비에 도착했습니다. 왜인지 불안했습니다. 하늘은 누렇게 떠 있었고, 불안한 공기가 맴돌고 있었습니다. 수송버스가 통합내무실 앞에 멈춰서 우리를 내려 주었고, 우리는 짐을 부려놓은 후에야 그 불안의 정체를 알 수 있었습니다.
-쐐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액-!!-
심장을 떨리게 하는 엔진소리였습니다. 1km넘게 떨어진 활주로에서 울려퍼지는 굉음에 '내가 저런걸 고쳐야 되나?'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술학교에서 보았던 그것. 추력 2만3천파운드의 괴물.
하지만 그 괴물보다도 더 두려운건 소문이었습니다. 기관특기가 무조건 갈 수밖에 없는 곳, 야전정비대대. 그리고 기관중대. 공군 기지중 최고의 출격수를 자랑하는 19비, 그중 최고로 힘들다고 말하는 야전정비대대, 그 야대내에서도 혀를 내두른다는 기관중대... 저와 동기들은 공포에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우리가 견학을 갔던 이글루(항공기 격납고)의 기체특기의 중사가 우리의 특기를 물어보더니, 한숨부터 내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연민이 가득한 눈길로 "군생활 열심히 해라..."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기관이 어떻길래? 당장 보기에도 기체특기가 너무나 힘들어 보였는데, 그런 그들이 우리를 동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저와 동기들은 공포속에서 자대배치를 받았습니다. 찌는 듯한 이병의 여름. 중대 행가(격납고가 아닌 큰 건물)의 바닥을 제 땀의 소금으로 하얗게 물들이며 저의 군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전반적인 저의 감상은 속았다! 였습니다.
뭐가 여가시간이 많다는 건지. 아침 7시에 출근해 청소정비정비정비정비정비 점심먹고 정비정비정비정비 저녁먹고 정비정비정비... 덕택에 매일 북두칠성의 위치를 숙지하며 퇴근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뭐가 편하다는 건지... 참고로 저는 50일휴가(최근 100일휴가가 폐지되고 50일휴가가 새로 생겼습니다) 때 90kg을 찍었었습니다. 훈련소때의 혹독한 훈련에도 빠지지 않던 살이, 자대배치받고 정비일 시작한지 1달만에 70kg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주말동안 쉬는 것을 제하면 하루에 1kg씩. 예. 지금 돌이켜 보니 그것 하나는 마음에 드는군요.
그래도 시간이 지낢에 따라 상황은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견디기 시작한 것도 있을 테고, 그동안의 노력으로 항공기가동률이 높아져서 일거리가 줄어들어서 그런 것도 있을 것입니다. 허나 한가지 확실한건, 군대라는 조직에 익숙해진 것이었습니다.
세간에 떠돌던 기관중대에 대한 루머도 어느정도 과장된 것이란 걸 알게 되었고,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란걸 인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일에 익숙해져서 하루하루가 무료해진 어느날이었습니다.
2006년 한겨울, 엔진 한대가 입고되었습니다. 군산의 38전투비행전대에 배치할 팰콘에 장착할 엔진으로, 19비에서 제일 썩어빠진 엔진을 고르고 고른 것이었습니다.(그래야 우리가 정비하기 편하기 때문에...)
그것의 덕트(엔진의 케이스)를 떼내서, FDT(터빈)를 뽑아내고 Core(로터,스테이터,연소실이 있는 엔진의 핵심)를 바꿔 다는게 그 작업의 핵심이었습니다.
엔진을 정비할때 주의해야 할 점은, 어떠한 것도 함부로 떨어뜨려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FO(Forigne Object)라고 부르는데, 활주로 바닥에 뒹구는 볼트나 돌조각이 항공기 Intake(흡기구)의 빨아들이는 바람에 휩쓸릴 경우 60억짜리 항공기 엔진이 그대로 박살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그 힘은 어찌나 센지 사람은 견디지 못하고 빨려 들어가 너비아니반죽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정비할때에도 만에 하나 떨어뜨리면 모르는 채로 엔진을 돌려 버려서 비싼 엔진이 박살이 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만전에 만전을 기합니다.
하지만 그 만전에 만전이 하필 그때 허물어지고 말았습니다. 저는 들고 있던 너트를 떨어뜨리고 만 것입니다. 그것은 나를 비웃듯이 굴러굴러 코어모듈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게다가, 하필이면 아무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입니다.
'안돼~ 어떡하지? 얘기해야 하나?'
지금 이 시점에서 그 사실을 얘기했다면 저는 상병병장이 아닌 중사나 상사, 혹은 아래로 타고 내려가지 않고 준위들에게 직접적으로 둘러싸여 욕을 먹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였을까? 저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엔진은, 너트를 속에 품은 채 항공기에 장착되러 떠났습니다. 그래도 무사하겠지, 다른 정비사들이 발견하겠지 생각하며 저는 애써 외면했습니다. 그래도 불안한 것은 불안한 것이라, 그 엔진의 일련번호를 외울 지경이었습니다. 활주로에서 엔진이 박살난다면, 그 책임은 우리 중대로 올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2월이 되었는데도 그런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곳의 정비사들이 너트를 발견하고 빼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너트같은 IO(Inner Object)가 들어있다면 엔진 소리에서 확연히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너트를 넣었다는 사실을 잊어 가던 2월 중순-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2007년 2월 13일, 충남 보령앞바다에 팰콘이 추락한 것입니다. 비행단은 대번에 시끌시끌해졌습니다. 같은 기종인
그리고 몇시간 후, 어 끔찍한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추락한 팰콘은 군산기지 소속이며, 장착하고 있던 엔진은, 바로 제가 정비했던 그 엔진인 것입니다...! 날벼락을 서른마흔다섯번은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죽고 싶지는 않아.'
지금이라도, 검색해 보면 아실 겁니다. 3백억-무려 3백억! 30,000,000,000\!!-짜리 F-16이 떨어진 여파는 컸습니다. 조종사야 살아서 파티라도 벌였겠지만, 기관중대는 아니었습니다. 전 공군에서 정비기강확립을 철저히 하라고 공군참모총장이 직접 지시를 내렸고, 그 참모총장은 항공기 추락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것입니다. 국방부에서 조사단이 수차례 내려왔고, 엔진 제작사인 캐나다의 PW에서 전문가들이 긴급파견되기도 했습니다. 후임 참모총장인 김은기 대장은 직접 중원기지 기관중대까지 내려와 정비품질의 향상을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갯벌에서 인양한 엔진의 잔해는 참으로 참혹했습니다. 어찌나 참혹했던지, 엔진안에서 같이 묻어온 조개로 조개탕을 끓여먹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어쨌든, 너트 하나가 3백억을 말아먹고 참모총장도 갈아치운 것입니다.
다행히도, 잘린 사람은 없었습니다. 3백억을 물어낸 사람도 없었습니다. 당시 엔진을 고칠때엔 있었지만 지금은 퇴직한 군무원이 총대를 매어 주는 덕분에 기관중대는 공군 전체의 칼날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 정비업무는 더 가혹해졌지만 불평할 수는 없었습니다.
지금 돌아서 보니, 추락이 꼭 제탓인지는 불확실했습니다. 전문가들도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했고, 부품이 노후되어 있었던 것이라 추락했을 수도 있습니다. 부서진 것이 다른 부품일 수도 있고, 애초에 정비불량이 아니라고도 볼 수 있을 겁니다.
결국 제가 원인이라는 것은 단순히 저 혼자만의 생각이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은 미스테리로 남겠지요. 하지만 저는 믿습니다. 제가 떨어뜨린 너트가 엔진 어딘가에 곱게 끼어 있다가, 하필 그날 전투기가 심하게 기동하면서 떨어져 나와, 엔진을 박살냈다고...
이제와서 생각해 봅니다. 참모총장을 갈아치운 그 너트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요... 아마도, 갯벌 한가운데에서 고이 잠들어 있겠죠...
첫댓글 300억?? 흐~음 뭔가 낚일것 같은 느낌이 ㅡㅡㅋㅋㅋ
타짜냐? 쫄리면뒈지시던가?
신고하면..어케되?? 신고되??ㅋㅋㅋ
와......난 최고의 자주포 k9과 군생활 했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넌 F16;;작살이다.....군무원님의 희생이 감동인데? 명예때문에 총대매기 힘들텐데...좋으신 분이군...
역시 군대 얘기는 장문이라도 다 읽는 맛이있다능
타짜냐? 쫄리면뒈지시던가?(2)
군대이야기는 그만좀해
아주 긴박감 있게 잘 썼구만.. 지금이라도 이 글 보고 잡으러 오면 우짤라고. ㅋㅋㅋ
군대예기..~_~;;신고 하면 지금 영창 가나?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