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의 뿌리
김옥전
때로는 허공에라도 기대고 싶을 때가 있다
답답한 것들 속에서 살았다
사각의 문을 열면 하늘마저 사각이던 바깥
새들이 깃털을 펴 말리는 넓고 맑은 하늘이 있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표정 없이 사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화단에 핀 원추리 꽃을 무심히 바라보던 여자가
쭈그리고 앉아 벽돌을 심는다
벽돌과 벽돌 사이로 고개를 내민 꽃들은
염을 마친 주검처럼 시드는 중이고
어떤 돌은 잎사귀도 향기도 없이 피어나는 중이다
그들은 서로 무심한 체하며 각자의 방향을 모색한다
격자무늬로 이어지는 생은 회유형 삶과 다르지 않아
내 유전자는 사각으로 심어 놓은 벽돌담이었다가
벽돌담 사이에 심은 꽃이었다가
피기 전에 져버린 계절이기도 했다
달궈진 마음을 모른 채 하는 일
젖은 생각을 잊어버리는 일
자기에게조차 객관적인 듯
아득히 멀어져가는 오후
표정을 다 지어 본 후에야 무표정을 알게 된다
나는 열었던 사각의 문을 닫는다
어제처럼 꽃 피고 내일처럼 돌이 시드는 정원에
또 무엇인가 심기 위하여
더 깊은 마음속으로 들어간다
허공도 때로는 자신을 심고 싶을 때가 있다
23년 《공정한 시인의 사회 》12월
첫댓글 피기전에 져버린 계절...
빈 가슴에 맺히는 게 없는 허공을 오늘도 심으며 살아가는 우리
심고 또 심어 가슴에 가득 차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