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계수필창작교실 8기- 후 3차시 습작품 합평작 (2023. 8. 26 토)
1. 힘빼기 / 김령은 1
1. 나이가 들면서 매달 발행하던 월간지는 부정기가 되고, 어느 순간 계간지가 되더니 그것조차도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들어 폐간하기가 무섭게, 마음의 감기라고 하는 우울증 잡지를 일간지로 발행하게 되리라고는 ‘정말로, 정말로’ 눈꼽 만큼도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2. 그런데 예고 없이 찾아온 갱년기 우울증은 무기력과 함께 자존감 한 올 남김없이 나를 끝없는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게 했다. 죽을 것만 같았다. 하루하루 버티어 내는 게 더 이상 버겁다고 느껴지는 순간 정말 죽을 것 같았고,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더럭 겁이 났다. 마음 한 편에서는 ‘내가 왜 이럴까, 나는 죽고 싶지 않은데, 살아야 하는데’라는 아우성이 귓전을 때렸다. 그래 이 상황을 이겨내야 해. 이렇게 생각하고 마음의 감기 처방약을 찾기 시작했다. 많은 처방약 중의 하나가 ‘자기탐구’였다. 그 중에서도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것이었다. 탐구 끝에 잘해서 즐기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것 세 가지를 찾았다. 골프, 노래 그리고 글쓰기.
3. 먼저 집 앞에 있는 스크린 골프장에서 골프 레슨을 등록했다. 골프를 가르치는 프로께서 최소 3개월은 레슨을 받아야 한다고 운을 떼었다. 그리고 첫 달은 레슨을 받더라도 혼자서는 절대로 연습을 하지 말라고도 당부했다. 첫 달은 충실히 프로의 말을 따랐다. 두 달째부터는 혼자서 연습을 해도 된단다. 그런데 웬걸 혼자서 연습하는 공은 늘 궤도를 벗어나거나 골프채가 바닥을 때리기 일쑤였다. 골프연습장 사장이 안타까운 눈으로 혼자 연습하는 나를 힐끗거린다. 땅을 너무 열심히 판 탓인가 레슨 두 달이 끝나갈 무렵에는 아침에 손가락을 구부리는 것은 물론이고 목과 어깨 통증으로 고개조차 제대로 돌릴 수가 없었다. 레슨 석 달째, 도저히 레슨을 이어갈 수 없을 정도로 지쳤다. 프로가 말한다. “어깨와 팔에서 힘을 빼세요. 골프는 힘으로 하는 운동이 아닙니다. 힘을 빼야 잘 칠 수 있어요. 하기는 사람들이 힘 빼는데 3년은 걸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되물었다.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는데 어떻게 힘을 빼지요?” 목과 어깨 통증은 심해져 누워서 잠을 잘 수도 없는 지경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레슨 3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중도 포기한 채 한의원 치료를 받은 지 한 달, 이어서 7개월째 골프채를 못 잡고 있다. 골프는 아무래도 더 늙어서 힘을 주고 싶어도 줄 수 없을 때까지 기다려서 배워야 하나 보다.
4. 자칭 음치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가사를 외워 부르는 노래가 없다. 골프를 쉬면서 이번에는 노래 배우기를 통해 우울증과 함께 음치 탈출을 시도했다. 가요교실이 아니라 독일에서 10년씩 유학하며 제대로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선생님께 개인 레슨을 등록했다. 레슨 첫날 선생님은 힘을 빼고 소리를 내보란다. “선생님, 어디에 힘을 빼야 하나요?”, “혀, 입술, 턱의 힘을 빼세요. 자 혀에서 힘을 빼고 ‘아르르르~’ 굴려보고, 입술 힘을 빼고 ‘뿌우르르르~’ 떨어보세요.” 그리고 입가에 침이 흘러도 되니 턱에 힘을 빼고 울림소리를 내 보란다. 그런데 웬걸 혀가 구르지 않는다. 입술이 떨리지 않는다. 더욱이 턱은 힘이 들어가다 못해 딱딱하게 굳었다. 어찌 이런 일이, 골프에서도 힘을 빼라더니 노래 부르기에서도 힘을 빼라고 한다. 노래조차 더 나이 들어 힘이 저절로 빠질 때까지 기다려 배워야 하나.
5. 글쓰기 공부를 하고 싶어 6개월을 기다려 문학관 수필창작반에 입문했다. 수업 첫 시간 맨 뒷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선생님의 수필 창작 강의에 귀를 기울였다. 아니 그런데 내가 잘 못 들었나. 여기서도 힘을 빼란다. ‘힘을 빼야 잘 쓸 수 있고, 좋은 글이 나와요.’ 아이고 여기서도 힘을 빼라네, 이건 또 무슨 ‘힘’인가.
6. 중년이 되어 뭐 하나 배워보고 싶어 여기저기 기웃거리건만 하나같이 힘을 빼라고 한다. 그래야 잘 할 수 있단다. 그런데 문제는 그까짓 힘이 쉽사리 빠지지 않는다. 나는 힘을 뺀 것 같은데 보는 이는, 듣는 이는, 읽는 이는 아직 힘이 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7. 지인에게 나의 우울증 탈출 학습기를 들려주며, 어딜 가나 온통 힘 빼기를 강조하는데 그게 내 마음 같지 않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 교회를 다니는 그녀는 “좋은 종소리도 힘을 뺄 때 나온다”는 말을 넌지시 흘린다.
2. 전세계 / 이명조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나가서 엿 공장에서 청소를 하고 9시 될 때 동안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담배를 피우고 9시가 되면 공장에 가서 일하고 점심이 되면 밥 먹고 1시까지 자고, 1시가 되면 또 일하고 5시에 밥 먹고, 아들 아니면 딸을 데리러 간 다음 일하다가 10시에 컴퓨터로 고스톱을 치고, 계속지면 술 먹고 들어오고, 부인을 때리고 코를 골면서 잔다.”
2004년 3월 상주시 화동초 3학년인 전세계가 쓴 ‘30년 후의 나의 하루 생활’이라는 제목의 글짓기 내용이다. 많지도 않는 17명의 10살 어린 아이들은 대부분 선생님, 요리사, 가수, 경찰관, 과학자, 간호원, 패션디자이너의 직업을 가지고 결혼을 하고 자식들과 배우자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을 하루 생활을 상상하며 썼다. 그러나 세계의 글은 예상을 뒤엎었다. 충격이였다. 그 곳 작은 시골 마을 화동에서 세계제과공장을 경영하는 아버지와 30살이나 나이 차이가 나는 젊은 어머니와 할머니 누나 매형과 함께 사는 대가족의 다복한 가정을 가진 세계였다. 더구나 세계는 작은 키와 통통한 다리로 폴짝폴작 뛰며 늘 얼굴에 웃음을 달고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 호박엿, 곳감엿. 조청을 수시로 학교에 가져다주어 전교생과 선생님들께 환영을 받았다.
“역시 세계는 이름대로 전 세계를 들썩이게 하는 특별한 사람이 될 꺼야!” 하면서 우리 모두 응원했다. 그리고 얼마 전 특활 수업 시간 중에 ‘칭찬 릴레이’프로가 진행할 때였다. 반 아이 모두 둥글게 원을 만들며 둘러섰다. 제각각 자기 오른 편에 서 있는 친구 칭찬하기 놀이였다. 이윽고 세계 차례가 왔는데 칭찬 상대가 하필 윤석이라는 혈우병을 앓고 있는 친구였다. 반 아이들 모두가 일시에 세계의 입을 바라 보았다. 윤석이는 결석이 잦고 공부도 못하고, 옷차림도 남루했다. 더구나 혈우병이니 부딪쳐 다쳐 피라도 흘리면 안되니 서로 피하며 조심하였다. 그래서 윤석이는 늘 외톨이였다. 세계는 잠깐 생각하더니 또렷하게 말했다. “윤석이는 따뜻해요”
세계는 그런 아이였다. 나는 고작 10살의 아이가 친구에게 그런 칭찬의 말을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놀란 가슴을 손으로 쓸어 내리며, 세계 글 쓴 것을 가지고 전담임을 찾아가 의논을 했다.
“세계 엄마는 20살의 어린 처녀로 객지로 떠돌다 상처 자리에 결혼하여 세계를 낳고 잘 살고 있지요. 층층시하 대가족속에서 늙은 시모와 30년 연상의 남편 잘 받들고 오직 세계의 장래를 위해 참고 애쓰며 잘 살고 있습니다만 세계 아버지가 좀 폭력적 입니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모두 알면서 모른 척하고 있는 실정이고요. 그래도 이 곳 화동읍의 유지라 더욱 쉬쉬합니다 특히 세계 엄마가 더 감추려고 합니다. 이선생 님! 아는 척 하지 말고 그냥 넘어 가이소” 전담임이 충고를 해 주었다.
부드럽고 달콤한 곶감같은 동그란 손, 환히 웃을 때마다 흔들리는 작은 어깨, 포동포동 얼굴에 피는 연분홍 볼우물꽃을 가진 전세계, 그 때 윤석이를 향한 따뜻하며 다정했던 눈빛의 세계를, 20년이 지난 지금도 결코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아버지의 폭력을 솔직하게 드러 낸 세계만의 고발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방임만한 비겁한 담임이였다. 그 밝고 부드러운 어린 싹을 반듯하게 지켜내지 못한.
그 후, 이내 울산으로 전근 오면서 소식이 끊겼다. 이래저래 세월은 흘렸지만 세계의 현재가 늘 궁금했다, 몇 년전 대학을 못갔다는 얘기는 얼핏 들었는데, 수소문 해봐도 친구들도 세계의 근황은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한 달 전 대구에 방하나 얻어 히끼코모리로 산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으며 마음 한 구석이 쓰렸다.
내가 살면서 진심을 다해 누군가의 이름을 크게 불러 보고 싶다면 전세계이다
3. 작은아들/백복순1
1.큰아들이 중학교 3학년 때 두 아들과 유명 철학관에 갔었다. 상담사는 아들 각자에 대한 설명과 사주, 책상위치, 침대머리방향, 어울리는 색깔, 키워야 하는 애완동물 등을 적은 메모지를 주었다. 큰아들의 진로가 시급하여, 철이 좀 늦게 드는 것 외 무난하다는 작은아들의 메모지는 잊고 있었다.
2.다음주부터 고등학교 2학년 작은아들의 기말고사다. 중간고사 성적표를 냉장고 문에 붙여 아들 자존심을 긁어보려 했으나, 아들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하위권 성적에도 늘 여유로운 반면 조바심과 조급함은 엄마몫이다.
근무시간에 아들에게 톡을 보냈다.
‘아파트 독서실에 1인실 자리 빈다는데 신청할까? 오늘부터 바로 와도 된대.’,
예상 밖 반가운 답톡이 왔다. ‘응!’
철이 갑자기 들 수도 있나 싶어 급히 독서실 결제부터 했다. 불현듯 철학관 메모지가 생각나서 조퇴를 했다. 서랍속 철학관 메모지에 ‘침대 머리 북쪽‘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들방 침대를 낑낑대며 돌렸으나 구조상 침대머리가 정북쪽으로 향하지 않아 엇비슷 하게 두는데 아들이 집에 왔다. 아들은 놀람도 질문도 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시작했다.
3."침대머리가 북쪽으로 해야 공부를 잘한다는데 완전 북쪽은 안되네.. 누울 때 비스듬히 자. 독서실 오늘부터 가도 되니 얼른 밥차릴까?" 줄줄이 여러마디 끝에 아들은 그만하라는 듯 “응” 하고선 바로 드러누웠다. 나는 서둘러 주방으로 갔다. 기분이 좋아야 서둘러 독서실을 가겠지 싶어 아들이 좋아하는 신김치볶음과 돼지목살을 바싹하게 굽고 노란 조를 넣은 솥밥을 차릴 생각이었다.
4.밥상은 준비되어 가는데 아들은 방에서 꼼짝을 하지 않았다. “아들! 목살 구웠어. 먹을 준비해” 답이 없어 아들 방에 갔다. “독서실 진짜 갈꺼지?” 했더니 누워서 돌아지도 않고 “응”이라고 했다. 기대와 다른 시큰둥한 댓구에 겸연쩍게 아들 방을 나왔다. 밥은 하지만 신경은 온통 아들 발걸음 소리인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솥밥 뜸을 들이면서 좋아하는 블루베리를 한 움큼 들고 다시 아들방으로 갔다. 누워있던 아들이 반쯤 일어나 블루베리를 받아먹었다. "밥 다됐어. 옷 갈아입어야지?”하고 돌아서 나오는데, 아들은 블루베리를 다 삼키지도 않고 다시 누웠다. 보고 있자니 슬슬 열이 올랐지만 아직까지는 이해하는 척 했다.
5.식탁에 음식을 다 차려가는데도 인기척이 없어, 아들 방을 거쳐야 가는 안방을 이유 없이 몇번이나 왔다갔다했다. 지나가면서 힐끗보니 누운 자세 그대로다. 시계를 보니 벌써 8시다. 저녁 운동을 가야 하는 내 마음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식탁에 수저를 두는데 인조대리석이라 소리가 났나 보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아들이 터벅터벅 걸어나왔다. 눈뭉치만큼 큰 밥숟가락을 몇 번 뜨니 밥 한 공기가 금새 사라졌다. 아들은 깎아놓은 사과를 우적우적 씹으며 화장실로 갔다. ‘이제 씻고 가려나 보다’..독서실에 보내고 바로 운동갈 생각으로 서둘렀지만, 화장실에 들어간 아들은 20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몇 번이나 누른 화를 결국 참지 못하고 강하고 간결하게 내질렀다. “야!!” 엄마는 아들 눈만 봐도 마음을 안다더니, 아들 또한 엄마 목소리만 들어도 이후의 있을 일을 아나보다. 바로 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나더니, 샤워기 물소리도 들렸다.
6.아들은 그냥 둬도 마를 짧은머리를 10분이 넘도록 말리더니, 흐느적흐느적 옷을 갈아입었다. 책가방을 챙기다 휙 돌아보더니 “엄마, 오늘 운동 안 가? 오늘은 늦게 가?”
영 마음에 안든다는 표정으로 방문에 기대어 있던 나는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보이지 않는 압박에 억지로 독서실 이용에 대답은 했지만, 오늘 당장 갈 마음은 아니었나보다. 엄마를 이길 재간이 없는 아들은 밤 9시가 지나 집을 나섰다. 나도 같이 나섰다. 시간이 늦어 운동을 잠시하고 집에 들어서니 아들 방에 이미 불이 켜져 있었다. 독서실 위치만 확인하고 온건가...엄마는 아들 공부하러 가는 뒷모습을 섣불리 기대했고, 아들은 엄마가 운동간 이후 자유시간을 내심 기대했던 목표가 서로 다른 저녁이었다.
7.나이 들어 후회해도 소용없다. 고등학교 2년 고생이 평생을 좌우한다.. 내가 그맘때 수도없이 들어온 잔소리를 그대로 아들에게 반복하는 하는 중이다. 아들은 공부가 아닌 것으로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는 세상이라 하지만 엄마는 아직도 그런 세상이 영 불안하다.
8. 다음날 아침 아들 방문을 열고 깜짝 놀랐다. 아들은 침대 넓은 곳을 두고 등을 구부린 채 북쪽으로 머리를 대고 자고 있었다. 공부는 하기 싫지만 내심 미래가 불안하기는 아들도 마찬가지인가보다. 좀 늦다는 아들 철드는 시기가 몹시 궁금하다.
4. 회복의 공간, 숲/이태령1
지난 주말에 가족들이랑 대운산 치유의 숲에 다녀왔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고 진입로도 덜 붐볐다. 숲 아래에 주차 공간은 여유가 있었다. 그늘을 찾아 주차하고 걸어갔다. 숲 입구까지는 땡볕이었지만, 숲속 여기저기서서 계곡을 따라 물 흐르는 소리와 새 지저귀는 소리가 경쾌했다.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맺힌 땀을 한방에 날려주었다. 숲으로 이어진 길은 나무 데크로 평평하게 깔려있어 남녀노소 누구라도 걷기에 편해 보였다. 숲으로 올라가는 동안 자리를 깔고 앉았다가 쉴 수 있도록 반석과 누각도 어우러져 있었다.
비 온 지 며칠 되지 않아서인지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물소리가 제법 우렁찼다. 세수한 듯 말끔히 씻겨진 바위들이 햇빛을 받아 반들반들 윤기가 났다. 녹음이 드리워진 평지에서는 사람들이 체험활동을 하고 있었다. 두 손을 합장한 채, 걷다가 멈추기를 반복하는 것을 보니 걷기 명상을 하는 것 같았다.
편백 숲속에 지어진 누각에서는 아예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산림욕을 하는 이들도 보였다. 나뭇가지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즐기고 있었다. 아마도 이들은 우거진 숲속에서 나무그늘을 이불 삼아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을 테다.
숲은 사람들의 시간을 느리게 가게 한다. 도심에서 쫓기듯 바쁘게 걸었던 종종걸음도 숲에 들어오면 느긋해진다. 숲길을 따라 걷다가 시원하게 내려오는 폭포를 만났다. 폭포에서 하염없이 떨어지는 물을 보았다. 걸음을 멈추고 잠시 넋 놓고 물멍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폭포수는 언제부터 떨어지기를 결심했을까? 최고의 경지로부터의 낙하! 한치의 망설임도 없는 수직으로 하강할 단호한 결심!’ 숲에서는 시인 아닌 사람도 시를 상상하게 한다.
계곡물은 우직하게 흘러갔다. 아쉬움이 없는 듯이 뒤돌아보지 않고 흘러가는 물을 보면 숙연함마저 느껴졌다. 편한 자리라고 계속 머물지 않고, 또 새로운 곳으로 흘러가기를 멈추지 않는 물. 큰 돌에 부딪혀도 불평하지 않고 여유롭게 돌아가고, 울퉁불퉁한 바닥을 만나도 매끄럽게 흘러간다. 태곳적부터 부드러웠던 물의 덕인지 숲에는 모난 돌들보다 평평한 돌들이 많았다.
물길이 잠시 머문 계곡에는 푸른 하늘, 흘러가는 구름, 짙어진 숲이 드리워져 있었다. 투명하게 비친 물을 보며 나도 잠시 어린아이처럼 발을 담그고 싶어졌다.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는 순간, 욕심, 화, 근심 모두가 씻겨져 내려갈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끝없는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 비켈란트 조각공원의 돌기둥처럼, 서로를 짓밟고 엉겨 붙어 올라가며 채우려 했던 욕심도, 숲에서는 내려놓을 수 있을 듯했다.
물소리를 따라 한참을 걷다보니 소나무가 울창하게 산을 덮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시원했다. 몇 해 전 발령받은 직장에도 나무가 많았다. 그중에 누렇게 색이 변해버린 소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처음에는 나무가 워낙 많으니 그 중 몇 그루가 말라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소나무는 촘촘한 가지들로 바람길도 막혀있고, 틈새없이 엉켜있었다. 그대로 두면 나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 의사 이야기를 듣고 약도 치고 영양제를 꽂아주었다. 몇 주가 지나자 누런 솔가지 잎 끝자리부터 다시 새순이 나기 시작했다. 더디지만 조금씩 초록으로 변해가며 소나무는 생기를 찾아갔다. 나무 의사는 식물들에도 영양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고 했다. 좋은 음악과 예쁜 말을 많이 들려주면 건강하게 잘 자란다고 덧붙여주었다.
상상하건데, 직장에서 고민을 어딘가에서든 풀어야 했다면 바로 그 소나무 그늘 아래였지 싶다. 그곳에서 뒷담화도 하며 스트레스 해소를 해왔지않았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유독 두 그루 소나무만 누렇게 변해있었을까!
숲은 회복의 공간이다. 질풍노도 시기의 사춘기 아들 둘을 키울 때도 하루에도 몇 번씩 화가 올라오고 아이들도 나도 갑갑함을 해결하기 위해 주말이면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했다. 여름날, 태풍과 폭우가 지나가고 잠시 주춤해진 때였다. 하늘을 향해 쭉 뻗은 나무들이 산책로를 따라 자리잡고 있었다. 미끈하게 뻗은 나무 위에 수십 갈래의 잔가지들이 작은 잎들을 매달고 있었다. 폭풍이 시샘하듯 잠잠하던 숲을 다시 한번 휘몰아쳤다. 나무 끝에 잔가지들이 꺽여 금방이라도 실 끊긴 풍선처럼 하늘로 달아날 것 같았다. 바람을 따라 미친 듯이 흔들리던 나뭇가지를 뿌리는 힘줄 툭툭 튀어나온 손가락마냥 땅바닥을 부여잡고 있었다. 바람이 잦아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심하게 흔들리던 가지들이 차분하게 제자리를 찾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춘기 아이들, 그들을 붙잡는 부모의 마음을 보는 것 같았다. 웬만한 갈등은 숲에서 산책하는 동안 해결된다는 것을 체감하게 했다.
숲은 그러한 곳인가 보다. 어지러웠던 마음을 재워주고 붙들어주는 곳, 사람들이 내뱉는 한숨을 고스란히 받고도 계절별로 새로운 풍광을 선보이며 날마다 기적을 만들어 주는 곳. 나무는 숲을 이루고 숲은 사람들을 회복하게 하는 곳이다. 깊숙한 곳까지 찾아주는 한 줄기 햇살이 고맙고, 잔가지를 흔들어놓던 거센 바람마저 추억할 수 있는 곳, 태초에 음지 식물은 음지 식물대로 양지 식물은 양지 식물대로, 서로 엉켜서 자라면 자라는 대로, 휘어서 자라면 휘어진대로, 초록 가시나무에 앉은 청개구리도, 낙엽 속에 숨은 벌레들도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곳.
이런 아름답고 평화로운 숲은 짧은 기간에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관리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국도를 달리다 보면 도로변의 산림이 깎일 대로 깎여 황폐한 속살을 드러내고, 아슬아슬한 경사지에 공사장이 있는 광경을 보면 아찔할 정도다. 봄철 미세먼지, 대기 오염 문제로 늘어나는 호흡기질환, 여름철 장마에 토사유출과 토사 붕괴, 겨울철 산불 기사들이 자주 보도된다.
사람이 자연을 함부로 한 결과가 고스란히 다시 사람에게 돌아온다. 숲을 가꾸고 보존하는 문제를 정부나 일부 공무원의 일이라고 더 이상 외면하거나 방치 하여서는 안 될것이다. 숲을 이용하는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다. 숲이 앞으로도 이상기후와 사람들의 무분별한 개발에 맞서 녹음 가득한 산림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는 우리 모두의 노력에 달려있다.
회복을 위한 공간, 숲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사람과 숲이 공존하는 길로 잘 가고 있는지 무심코 행동했던 일들에 제동을 걸어봐야 할지도.....
첫댓글 2학기 습작품 올리시는 분은
작품 번호를
2학기부터 새로 1,2,3 순으로 붙여 주세요.
예
가출하는 길동이/홍길동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