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동호랭이(본명 이호양) 사망의 원인은? 신사동호랭이 사망에 가요계도 충격..최정훈·소연 등 추모 물결
저작권 부자로 알려진 작곡가 겸 프로듀서 고(故) 신사동호랭이(41세, 이호양)가 사망했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가요계도 충격에 빠졌다.
사진(스타뉴스)
소속사 관계자 등에 따르면 신사동호랭이는 지난 23일 숨진 채로 발견됐다.
확인 결과, 최근 한 지인이 신사동호랭이와 연락이 닿지 않았고 모처에 쓰러진 신사동호랭이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한 걸로 드러났다. 이에 소속사 측은 "빈소는 서울성모병원에 마련되며, 장례 절차 및 발인은 유가족의 뜻에 따라 가족 친지들, 동료들만 참석해 조용히 비공개로 치를 예정"이라고 밝혔다.
신사동호랭이는 최근 티알엔터테인먼트의 총괄 프로듀서로 재직하며 걸그룹 트라이비를 론칭했다. 트라이비는 새 앨범 '다이아몬드(Diamond)'를 발매, 이날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또한 그는 보이그룹 TAN의 컴백을 함께 준비하고 있던 걸로 알려졌다.
그러나 갑자기 충격적인 사망 소식이 전해졌으며 트라이비 역시 큰 충격과 슬픔에 빠진 상태. 소속사는 "트라이비의 데뷔부터 지금까지, 애정을 갖고 함께 달려와 준 신사동호랭이의 마지막 앨범이 눈부시게 빛날 수 있도록 당사를 비롯한 트라이비 멤버들 모두 최선을 다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사진=소연 인스타그램
신사동호랭이가 그동안 K팝 히트곡 제작자로 활동해온 만큼, 가요계 관계자뿐만 아니라 아티스트들 역시 슬픔에 빠졌다. 먼저 밴드 잔나비 보컬 최정훈은 ""작곡가 신사동호랭이 형의 비통한 소식을 들었다. 잔나비에게도 그렇지만, 저 개인적으로도 생의 은인이라 여길 정도로 커다란 에너지를 준 형"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힘겨운 일이 있을 때면 늘 유쾌하고 호탕한 조언으로 힘을 실어 주던 형이었다. 형이 없었다면 아마도 몇 개의 시련은 도무지 견뎌내지 못하고 무너졌을지도 모르겠다"라며 "따뜻하고 재미있고 성실하고 무엇보다 진심 어린 사람이었다고... 황망한 제 심정과 함께 글을 써 올리면 가시는 길 조금이나마 따뜻해지려나 하는 마음에 이렇게 애도의 글을 올린다"라고 고인을 그리워했다.
또한 "존경받아 마땅한 음악가이자 프로듀서이기 전에 잔나비의 의리 넘치는 동네 형이었다. 고인의 명복을 마음 깊이 빌어달라"며 "정말 아주 고마웠다. 호랑이 형! 그곳에선 부디 평안했으면 좋겠다. 형이 힘든 시절 저에게 준 용기, 형이 해줬던 말들... 죽는 그 순간까지 절대 잊지 않겠다. 고맙다 형! 나중에 보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벌써 많이 있다"라고 씁쓸한 마음을 전했다.
과거 신사동호랭이와 함께 일해왔던 티아라 출신 소연은 "해외에서 비보를 듣게 됐다. 덕분에 수많은 추억을 얻을 수 있었다. 정말 감사했다. 몸도 마음도 모두 평온한 그곳에서 내내 평안하시길 기도하겠다"라고 전했다.
사진(연합뉴스)
유명 작곡가 신사동호랭이가 23일 오후 사망했다. 향년 41세.
서울 강남경찰서는 "신사동호랭이가 숨진 채 발견된 게 맞으나 시간과 장소 등은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현재까지 범죄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요계에 따르면 신사동호랭이의 지인이 작업실에서 쓰러져 있는 그를 발견해 119에 신고했지만 숨졌다.
신사동호랭이는 포미닛의 '핫 이슈'(Hot Issue), 티아라의 '롤리폴리', 에이핑크의 '노노노'(No No No)·'러브'(LUV), EXID의 '위아래'·'아 예'(AH YEAH), 모모랜드의 '뿜뿜' 등 많은 히트곡을 쏟아내며 가요계 대표 '히트곡 메이커'로 불렸다.
경북 포항 출신인 그는 아버지 직장을 따라 초등학교 시절 전남 광양으로 이사했고, 중학교 시절 몰래 밤업소에서 드럼을 배우는 등 음악에 심취했다. 그는 처음에는 가수의 꿈을 가지고 2000년부터 약 4년 동안 오디션을 보고 다니며 어려운 생활을 했다. 그러다 우연히 언더그라운드 힙합 레이블에서 프로듀싱 기회를 잡은 그는 2004년 당시 김건모, 왁스, 자두 등이 소속된 제이엔터컴을 찾아가 작곡가 최준영 밑에서 '막내' 생활을 시작하며 작곡가로 진로를 틀었다.
신사동호랭이는 이후 비스트, 포미닛, 티아라 등 당대 인기 아이돌 그룹의 대표곡을 만들며 저작권료만 연간 수억원대에 이르는 정상급 작곡가로 거듭났다. 또 자신의 작곡 필명을 하나의 '브랜드'로 끌어올리며 각종 TV·라디오 프로그램과 광고에까지 등장했다.
신사동호랭이는 2011년에는 작곡가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음반 제작자로 변신해 AB엔터테인먼트를 설립, 이듬해인 2012년 걸그룹 EXID를 선보였다.
신사동호랭이는 그러나 2017년 "사업 지인으로부터 비롯된 채무가 발생했고, 또 다른 업체에 빌려준 자금까지 회수하지 못했다"며 법원에 회생 신청을 냈고, 이듬해 빚 중 70%를 10년에 걸쳐 갚는 것으로 회생 계획안이 받아들여지는 등 경제적 어려움도 겪었다.
그는 근래에는 티알엔터테인먼트의 총괄 프로듀서를 맡아 2021년 걸그룹 트라이비를 선보였다.
트라이비는 지난 20일 그가 프로듀싱을 한 네 번째 싱글 '다이아몬드'(Diamond)를 발표했고, 이날 KBS 2TV '뮤직뱅크'에 출연할 예정이었다.
신사동호랭이는 사망 2일 전인 지난 21일에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트라이비의 신곡 안무 시안을 공개하거나 양양에 다녀온 사실을 알리며 외부와 소통해왔다(출처/스타뉴스.연합뉴스).
신사동호랭이의 갑작스런 죽음은 음악인들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습니다. 기사 내용을 근거로 했을 때 신사동호랭이의 죽음은 극단적인 선택이라기보다는 정신 증상에서 오는 갑작스런 죽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일들은 음악이나 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겐 간혹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그리스 조각가인 야눌리스 할레파스는 이전 예술가들과 조금 다릅니다. 그가 가지고 있던 정신 질환은 그의 예술 스타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독특하게도 그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고 수십 년을 보내거나, 작품을 만들자마자 파괴했습니다.
할레파스는 비교적 조용히 예술 활동을 시작했고 뮌헨에서 공부한 후 아테네에 아틀리에를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1878년 즈음, 그는 정신 질환의 첫 증상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할레파스의 어머니는 예술로 인해 아들이 아프게 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에, 할레파스가 조각하는 것을 말렸습니다. 1916년 어머니가 죽은 후에야, 그는 다시 작업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전문가들은 이 시기에 그가 더 자유로운 조각품을 만들기 시작했고, 신고전주의적인 이상에 애착을 가지지 않았다고 평가합니다.
“예술은 방황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편안한 사람들을 방황하게 만든다.”
정신 질환과 예술에 대한 주제는 최근에 자주 논의되었습니다. 실제로 정신 분열을 앓고 있는 일반인이 그림을 그리면 나타나는 특징들이 있습니다. 전체적인 구성은 해괴하지만 그림의 모든 부분이 디테일하다는 것인데, 이는 주의력 결핍으로 인해 모든 사물들에 다 관심을 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술가들은 많은 것을 잘 인식하고 사물을 깊은 시각에서 바라보며 다른 차원의 감정을 경험한다는 점에서 일부 유사한 특성을 보이는 것도 같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술적 창작을 질환에 대한 결과로 보기 보다, 질병을 대응할 수 있는 하나의 밸브로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일 것입니다.
창작을 필요로 하는 스타 작곡가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과거의 영화와 현실에 대한 불안입니다. 이러한 불안은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감이 동반합니다. 스타들이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영화롭게 보이지만 실상 스타들은 고독한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