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리처드 후커, "교회 체제의 법에 관하여 5"
출간번역자, 성공회대학교 신학대학원장 노철래 사제
지난 9월 29일, 관구 설립 30주년을 맞아 서울교구는 성공회 신학의 뿌리라고 평해지는 리처드 후커의 저서 <교회 체제의 법에 관하여 5>를 번역, 출간했다. 이 책의 중요성과 대한성공회 던지는 의미에 대해 번역자 노철래 사제(이하 노)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편집자 주)
편: 리처드 후커의 책을 지금 이 시대에 번역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노: 사백년도 훨씬 지난 오늘날 리처드 후커의 저서를 다시 끄집어내어 읽는 것은 공허하고 헛된 그러한 일이 아닐까라는 주변의 의문 속에서 이번 번역 작업은 시작되었습니다. 16세기와 다르게 엄청나게 넓어지고 확대된 오늘날의 세계 성공회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누군가는 후커를 지역적으로 영국이라는 유럽의 특정 지역에 국한된 인물로 느낄 수 있으며 이 때문에 그의 저서를 다시 읽는 것이 과연 어떠한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을 표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타당한 의문이자 물음이며 후커를 읽을 때 항시 염두에 두어야 하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성공회 신학자 마크 채프먼이 말했듯 “성공회 신학을 한다는 것은 성공회가 걸어온 여러 시대의 역사를 현재와 관련시키면서 함께 파악하는 것"입니다. 즉 성공회 신학을 한다는 의미는 세계성공회공동체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19세기에 일어난 역사에 대한 해석을 바탕으로 종교개혁, 17세기의 역사와 신학 그리고 오늘날 세계 성공회 공동체가 직면한 문제들과 대화를 놓는 시도라는 것이지요. 종교개혁시기와 19세기, 그리고 오늘이라는 3자간의 대화라고나 할까요. 이런 점에서 종교개혁시기를 대표하는 신학자로 리처드 후커를 소환하는 것은 오늘날 "성공회 신학하기"에 타당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편: 책을 간략하게 설명하신다면?
노: 한마디로 후커의 <교회 체제의 법에 관하여>는 청교도들, 곧 성서(하느님께서 초자연적으로 계시한 법)로 법의 영역을 제한하려 했던 이들의 견해에 대한 논박의 글이라 할 수 있습니다. 후커의 <교회 체제의 법에 관하여> 1권에서 8권 전체에 대해 말하자면 서문과 처음 네 권은 1593년에, 5권은 1597년에, 마지막에 나온 세 권인 6권과 8권은 1648년에 그리고 7권은 1662년에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은 청교도 카트라이트뿐만 아니라 트래버스의 논지와 비난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제1권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법을 일정한 범주로 나누고 제2권에서 제8권까지 글의 형식은 청교도의 일부 견해를 요약한 표제를 제시한 다음 이에 대한 후커 자신의 논박이 이어지는 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성공회의 신앙과 예배에 관한 지침서로서 이 5권은 지난 수 세기 동안 세계성공회공동체 내에서 예배와 교회생활의 실천 및 이해에 관한 필수적인 안내서 역할을 하면서, 실로 성공회 신앙의 종교적 신앙과 실천에 관한 거의 모든 요소들을 설명하고 변론한 작품입니다(총 4권의 번역본으로 완성될 제5권은 이번 첫 권에서 예배, 교회, 설교 부분을 다루고 이어서 공동기도예식, 전례, 성사, 전통예식, 사목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까지 성공회신학교 성직후보생들을 위한 교육 과정에 남아있던 책입니다. 오늘날 우리 대한성공회도 이 책에서 우리 교회 전체에 활력을 주고 쇄신하는 데 필요한 신학적 재료들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 기억에 남는 대목이 있다면?
노: 특별히 리처드 후커가 당시 캔터베리 대주교 존 위트기프트에게 바친 헌정사 중의 한 대목이 생각납니다.
“확실히 우리의 법은 훌륭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 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습니다. 악법을 개혁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칭찬할 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고쳐야 할 대상은 바로 태만한 우리 자신입니다. 모든 면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향한 이전의 열정을 대부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러한 타락과 관련해 ‘예전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성 그레고리우스의 권면은 일리가 있습니다.”
저는 이 단락에서 사용된 "법"을 신학이라고 바꿔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신학은 훌륭하지요. 다만 우리 자신이 이를 캐내고, 탐구하고 체화할 열정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가 저 자신부터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편: 번역하시면서 어려웠던 점은?
노: 이 책은 오늘날 영어권 독자들이 읽기에도 쉬운 책이 아닙니다. 사백년이라는 시간상의 차이뿐만 아니라 후커의 문체 자체 또한 오늘날의 독자로 하여금 좌절하게 만드는 측면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이 책의 문체가 까다롭더라도 한국의 독자들이 읽기 쉽도록 번역해야 한다는 원칙은 번역 작업을 무겁고 고되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원전의 원래의 의미를 최대한 존중하면서도 쉽게 번역하고자 노력했습니다.
편: 향후 계획을 소개해 주신다면?
노: <교회체제의 법에 관하여> 5권은 총 4권의 번역본으로 완성될 예정입니다. 이번 책이 그 첫 권입니다. 매년 한 권씩의 번역본을 출간하기 위해 노력할 예정입니다. 앞으로 남은 3권도 순조롭게 번역작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여러분들의 관심과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번 이 책이 출간되기까지 수고하고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