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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부부의 사랑 이야기를 “사는 이유”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비슷한 제목으로 이 글을 쓰고자 합니다. 아무도 인간이 태어나는 진정한 이유를 모릅니다만 누구나 열심히 살아야할 의무를 가집니다. 그러나 살다보면 여러 가지를 겪으며 많은 사람이 삶과 죽음을 결정하여야 합니다. 그래도 인간은 ‘죽음’을 결정할 능력이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삶’ 또한 영원히 고집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받아들일 때 받아들여야 한답니다.
이 곳 방송 중 “Revenge”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어렸을 때 항상 함께 놀아주던 아빠가 보는 앞에서 갱단에게 살해당하자 ‘복수’를 결심합니다. 이제 어른이된 주인공은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여 아빠를 죽인 갱단의 가족을 하나 둘 죽이거나 파멸에 빠뜨립니다.
서양 문화의 관점에서 볼 때엔 복수는 멋있고 당연하고 인간의 관점에선 ‘당분간’ 그 것도 하나의 사는 이유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영원할 수는 없겠지요. 그렇게 무언가를 성취하고 났을 때 오는 허무감은 곧 ‘사는 이유’가 끝났기 때문에 죽음으로 가야할지도 모르니까요. 그러할 때 자연(신)의 은총만이 삶과 죽음을 결정하기 때문에 인간은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삶과 죽음 자체가 자연 속의 ‘1’과 ‘0’ 즉 ‘있다’ 또는 ‘없다’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연 속의 동물들을 보면 좋은 종자를 후손에게 물려주려고 혈전을 벌이곤 합니다. 즉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물리치고 살아 남습니다. 그 것이 인간에게 그대로 이어졌지만, 이제는 인간 스스로가 여러가지 제도를 만들어 강하고 약한 자가 함께 공존(共存)하고자 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강함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과거엔, 동물의 삶을 살려면 강해야 하고 약하면 곧 죽음이었습니다. 즉 순수한 자연 속에서는 강해야만 살 수있습니다. 그러한 원리가 남아있는 것이 각종 스포츠 경기이며 아직도 강해야지만 살아남을 수있다고 믿습니다. 물론 인간 세계에서 지금은 몸이 강한 것만이 최고가 아니죠. ‘돈’ 이나 ‘학벌’ 그리고 ‘관계’ 등이 또 다른 강함으로 등장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강한 것’이 최고입니다.
인간으로서 더욱 겸손해야할 신체적으로 약한 사람이 돈과 학벌 등의 강함을 얻었다고 잘난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과연 무엇이 못나고 무엇이 잘났을까요? 자신의 약함을 돌아보지 못하는 것처럼 슬픈 것은 없다고 봅니다.
우리 부부는 조만간에 울루루(Uluru)의 호주의 중앙이나 캐언즈(Cairns)와 다윈(Darwin) 등이 있는 북부 지방으로 여행을 가려고 합니다. 그 것이 바로 우리 부부의 ‘삶의 목적’입니다.
(2013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