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명 한학자 총재의 북한 방문 및 회담 내용
1991.11.30.-12.7
1991.11.16. 북경에서 박보희-김달현 회의,
중국 북경에서 박보희 김달현 만남,
김달현 부총리는 참부모님의 방북에 대한 부정적 입장,
“북조선 인민들은 지금까지 40년간 문선명 목사를 승공의 괴수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문목사를 환영할 수 있겠습니까? 그 동안 왔다 갔던 임수경, 문익환 목사와는 전혀 다른 완전 보수 반공의 총수를 뭐라고 환영합니까? 이것은 상상 밖의 일로 보입니다.”
박보희 세계일보사장이 그를 설득하였다.
“김부총리, 중국과 미국의 국교수립을 생각하십시오. 닉슨은 보수세력의 대표이고, 철저한 반공주의자였습니다. 그런데 중국이 그를 환영했고, 국교관계를 맺었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정상적인 국교관계를 만들었습니다.
이 결과 누가 이익을 보았습니까? 중국입니다. 이때부터 중국은 일약 세계무대로 도약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북조선은 문선명선생과 같은 극보수 인물을 친구로 만들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문선생의 방북이 성사되면 이익을 보는 쪽은 북조선입니다. 게다가 북한 정주 출신의 문목사 고향 방문을 허락하는 것은 인도주의적 명분도 있지 않습니까?”
이 말을 듣고 김달현부총리는 참부모님의 방북을 공감하였고, 김정일에게 보고하였고, 김정일은 김일성에게 보고하였다.
11.28 참부모님, 냉전종식에 종지부 찍기 위해 김일성 주석과의 담판에 앞서 하와이에 들러 정성을 들이심
11.29 참부모님 하와이에서 홍콩으로 가심.
11.30. 참부모님, 영국 항공 드레곤에어에 탑승하시어 북경으로 이동, 북경공항 귀빈실에 북한의 박종근 사장이 공식초청장을 갖고 대기하고 있었다.
초청장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통일교회의 교주 문선명 선생과 영부인 그리고 수행원 일행을 공화국에 초청합니다. 공화국은 재북 기간 중 그 신원을 보장하겠습니다.
1991년 11월 30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정무원 부총리 김달현
탑승자 8명 선정, 참아버님, 참어머님, 박보희세계일보 사장, 윤기숙 부인, 김효율보좌관, 윤기병 경호담당, 정원주 비서, 황엽주 북경 선교사,
오후 3시, 조선민항 특별기를 타시고 북한 평양 순안비행장으로 출발, 1시간 30분 비행.
해가 질 무렵에 도착, 참아버님의 누나(문효순,73), 여동생(문효선,64), 형수(지치숙), 형님 아들(문병선,49), 그리고 몇 명의 친족들이 환영을 나옴, 눈물 통곡
참아버님은 눈물을 흘리지 않으시고 그들을 달래셨다.
“나는 가족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왔고, 나라의 일을 위해서 왔으니, 이러지들 말고 기운을 차리세요.”
모란봉 영빈관에 도착하심. 국빈연회장 ‘목련관’에서 환영 만찬,
참아버님께서 환영답사를 하셨다.
“피는 물보다 진합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핏줄을 받고 태어난 역사적 수난의 형제자매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우리에게는 통일의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통일은 우리 민족의 숙명이요, 이 시대의 과제입니다. 우리들이 우리 때에 조국 통일을 실현하지 못하면 우리는 영원히 우리 조상과 후손 앞에 머리를 들지 못할 것입니다. 김일성 주석과 만나 감사의 뜻을 표하며, 나아가 우리 민족의 단결과 조국통일의 성업에 관하여 상담할 기회를 대망하고 있습니다. 김일성 주석의 건승과 조국통일의 과업성취를 위하여 축배를 들 것을 제창하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12.1.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제목으로 <노동신문>에 환영사 말씀 게재,
‘하나님’ 단어가 처음으로 기록
새벽 5시 경배식, 눈물과 은혜에 사무친 기도,
평양관광, 평양은 ‘주체사상의 성도(聖都)’, 만경대 김일석 주석 생가, 대동강변에 세워진 주체사상 탑, 예술을 가르치는 만경대 학생 소년 궁전, 파리의 개선문을 본 딴 평양 개선문, 평양 지하철, 옥류관 냉면집에서 저녁식사.
12.02(일, 聖日) 모란봉 영빈관에서 북한 인수식(새벽특별기도회), 만수대의사당에서 회담, 윤기복위원장의 주체사상 자랑,
참아버님의 오전 내내 말씀,
“주체사상 가지고 통일이 안 돼, 통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거라구, 하나님주의, 두익사상으로 밖에는 통일 할 수 없어. 통일은 내가 할 거야, 내게 맡겨보라고, 내가 북한을 살려준다. 알았어? 윤위원장! 내가 김주석을 좋아한단 말이야, 그러나 그 양반도 내 말을 들어야 살아. 내 말을! 알았어? 위원장!”
윤위원장과 스텝들이 모두 화를 내었다.
참아버님은 태연하셨다. 점심을 드시면서 말씀하셨다.
“내가 뭐 김일성 주석을 만나러 왔나. 나는 진리를 말하러 왔다구. 하늘은 내가 할말을 다하고 떠나기를 바라신다구. 이게 또 김일성을 테스트하는 것이야. 어디 두고 보자.
그 인물됨이 어느 정도인가. 졸장부인가 대장부인가 두고보자. 안만나주면 그야말로 졸장부이지.”
사실 이 보고를 들은 김정일은 이렇게 말했다.
“그래, 그 양반 아주 재미있군, 문총재 그 사람 정직한 사람이야. 배짱도 있군, 역시 큰 인 물이구만! 더 흥미진진해지는구만. 내가 수령께 보고를 해서 만나시도록 할 거야”
12.3 금강산 관광, 김달현부총리가 안내, 만물상 구경,
12.4 구룡폭포 구경, 너무나 절경이어서 노래가 만들어졌다.
“금강에 살어리랏다. 금강에 살어리랏다. 운무(雲霧) 데리고 금강에 살어리랏다.
홍진(紅塵)에 썩은 명리(名利)야 아는 체나 하리오.“
동양 3대 절경 중의 하나인 삼일포 구경, 경치가 하도 좋아서 임금이 3일간 머물러서 이름이 삼일포가 되었다. 금강산에서 숙식하심.
12.5 평양으로 돌아오심. 두 대의 헬리콥터로 30분간 이동하여 정주 고향 방문, 참아버님이 탄생하신 방에서 기도, 양친(문경유, 김경계) 묘소 헌화, 묘비 뒤에는 ‘묘주 룡수, 룡명’이라고 기록됨, 여동생 문효선이 통곡하심, 참아버님은 눈물을 안 흘리심.
“어머니는 하늘에서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다구. 내가 이렇게 하는 심정, 내가 왜 모르겠나. 그러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어서 눈물을 닦아라.”
주위를 둘러보셨고, 묘두산을 찾으셨다. 거기서 기도하시며 예수님을 만나셨다.
참부모님의 친족들이 오찬을 준비하여 대접
헬리콥터로 평양으로 돌아오심.
윤기복 위원장이 희소식을 전함, 내일 아침 흥남으로 가셔서 김일성 주석과의 만남이 있으실 것이라는 통보
12.6 김일성 주석과 회담 및 오찬, 함경남도 흥남시 마전 김일성 주석 공관, 이동 중에 ‘흥남질소비료공장’이 있었다. 거기서 참아버님께서 2년 5개월 동안 극심한 옥고를 치르셨다.
공관 앞에는 김일성 주석이 기다리고 있었다. 뜨거운 포옹이 있었다. 역사적이고 기적적인 장면이었다.
“나는 김주석을 부모의 심정으로 만났다. 참사랑에는 원수라는 개념이 없는 법이다.”
1992년부터 남북이산가족 찾기 운동에 합의, 핵전쟁 불가 합의,
중식, 백두산 들쭉으로 만든 들쭉술, 언감자국수, 은어 회, 사냥이야기, ‘금강산 관광단지로 개발할 것을 합의’, 1992년 북한 동해안에서 3만쌍 국제합동축복결혼식 진행에 합의(그러나 이는 남한 정부의 거부로 성사되지 못함)
김주석의 손을 잡고 복도를 걸어 나오심,
김달현의 고백,
“나는 문총재님을 만나고 나서 절반은 통일교 신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위대한 수령께서 그렇게 기뻐하시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역시 큰 인물은 큰 인물을 알아봅니다.
이번 문총재님의 공화국 방문이 우리 공화국에 천운이 도래한 것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12.7 북한 출발하여 중국 베이징 도착, 담화문 발표
12.9 문선명 총재의 방북 설명회, 세계일보 국제연수원
* 문선명 총재와 김일성 주석 사이에 합의된 내용 요약
1. 남북통일 1단계로써 1992년부터 이산가족 상봉 실시,
2. 핵에너지는 평화적 목적으로 사용, 북한은 공정한 국제 핵사찰을 받는다.
3. 북한에 경제투자 실시, 통일그룹도 동참한다.
4. 남북정상회담 추진
5. 김일성 주석의 요청으로 문선명총재는 금강산 개발을 국제적 안목에서 실시할 것.
https://youtu.be/ZVWrWnBkZx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