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절 "가로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룻2:8)에서 말씀하시는 내 딸은 이삭을 줍고 있는 어린 딸 곧 첫째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기만 하는 딸이고, 여기서 말씀하시는 내 딸은 영광된 열매를 맺게 하시는 자로 인하여 함께 기뻐하며 영광을 돌리는 자라난 내 딸입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살리심 받은 생명이 그 속에 있고 함께 영광을 찬송하는 생명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제는 첫째 부활의 영광까지 보이셨으니 그 자리까지 이끄시고 찬송케 하시는 복 주시기를 원하는 그 복이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의 영원한 복이 되고 있습니다.
신랑 예수로 인하여 첫째 부활의 영광을 보게 하셨으니 만유를 임의로 주관하시는 (계20:6) 영광의 아버지로부터 악한 자들의 권세까지 역사 하게 하여 이루시는 그 복이 반드시 네게 있기를 원하노라 축복해 주시고 계십니다. 천년 왕국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하며 제사장 노릇하게 하시는 복입니다
"네가 빈부를 물론하고 연소한 자를 좇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보아스를 좇는 것은 재물이 부요 한 것을 보고 좇은 것도 아니니 비록 내가 가난하였더라도 좇았을 것이며 연소자를 좇지 아니한 것은 육신의 정욕을 만족시키는 것보다 차라리 순교를 통해서 첫째 부활의 영광을 더하게 하는 기쁨을 얻기 위한 것이니라,
세상의 부귀 영광이나 정욕의 쾌락보다 하늘의 영광과 고난을 통한 첫째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는 큰 기쁨을 보고 좇은 것을 나타내십니다.
(왕상1:3) 늙은 다윗왕에게 오는 동녀 아비삭을 보게 하십니다. 아비삭은 다윗왕이 늙었을지라도 얼마동안 왕비의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 늙은 다윗왕에게 온 것은 아닙니다.
(빌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말씀하십니다.
(롬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룻이 동서 오르바와 같이 모압 땅으로 돌아갔으면 부자로 젊은 남자와 결혼하여 세상의 부귀 영광도 누리고 육신도 정욕대로 쾌락을 누리며 자녀를 낳았겠지요 그러나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면서 나오미의 하나님을 보고 유대 땅으로 따라 온 그 룻에게 첫째 부활의 영광을 더 하셨습니다.
"너의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인애라는 말은 내가 사랑하지 아니하여도 될 자를 사랑하는 것이 인애입니다. 룻이 처음에 자기 남편 말론이 죽었을 때에 시모 나오미를 버리고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도 허물이 되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룻은 동서가 그 백성 그 신에게로 돌아 갈 때에도 나오미를 붙좇았습니다. 이제는 나오미로 인하여 시작된 그 믿음이 신랑 예수를 보는 자리까지 자라게 되었으니 나중 인애가 더 하다고 하십니다.
엘리야로 인하여 생명이 살았고 믿음이 자라난 엘리사는 아버지라고 불렀고 끝까지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부어 주며 따르다가 회리 바람을 타고 승천하는 엘리야의 겉옷을 받았습니다.(왕하3:11)
복음과 진리를 자기에게 전하여 살리심을 받은 그 믿음이 자랄수록 그 생명을 살려 주신 그 부모를 더 크게 존경할 것입니다.
이 인애를 더하는 자와 그 인애를 받는 자들의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은 그 자리에 있는 자만 알 것입니다.
(요삼:4) 말씀에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육신의 사랑으로 나서 키워 준 그 자녀들 중에는 부모를 거역하는 불효 자식이 있더라도 복음과 진리로 살려 준 그 자녀들은 끝까지 인애를 베풀게 되는 것입니다.
(왕상17:6) 그릿 시냇가에 숨어 있는 엘리야에게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오게 하시는 까마귀가 그들입니다.
11절 "내 딸아 두려워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보아스가 룻에게 내 딸이라고 부르는 것은 세 번째요 또 마지막 입니다. 마치 결혼을 앞둔 딸에게 시집가서 어떻게 생활할 것을 말해 주는 부모의 심정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부터는 룻이 신랑을 영접한 신부의 자리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순교하기까지의 모든 핍박과 환난과 고통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신부들의 영광을 더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악한 자들도 역사 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그 때마다 찬송케 하시는 기쁨을 더하여 이기게 해 주십니다.
◈ 참 고 ◈ (피조물의 구별)
(롬8:19) 피조물들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육신으로 세상에 사는 동안에 영광된 열매를 맺는데 쓰여지게 하시기 위해서 지으신 것을 보고 그 일에 쓰여지기를 고대하는 피조물이 있으니 본래의 뜻대로 있는 피조물이고,
(롬8:39) 다른 아무 피조물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 중에서 가장 아름답게 지음 받은 천사장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 범죄 하여 영원한 지옥의 심판을 받고 나서 흑암에 가두셨기 때문에 자기로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지옥을 가져다주고 멸망을 가져다주는 피조물의 본래의 뜻과 다른 목적으로 역사 하는 마귀와 그에게 속한 모든 악의 역사까지도 결국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을 더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첫째는 에덴 동산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실과를 따먹게 하여 지옥의 심판을 가져다주었으나 하나님은 그 아들의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고,
둘째는 육체 안에 거하는 정욕과 원죄로 역사 하여 범죄 하게 하여 멸망을 가져다주고 있으나 하나님은 성령의 역사로 열매를 맺게 하시고 나 같은 죄인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사랑 안에서 감사하며 찬송케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피조물은 마귀와 그에게 속한 자들의 역사까지도 우리 자녀들의 영광을 위해서 이루시는 역사가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범죄 하여 지옥의 심판을 받은 마귀가 잠시 동안의 지옥의 심판을 통하여 영원한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면 여자가 따먹으려 해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따먹지 못하게 하였을 것입니다.
네 말대로 내가 행하는 것도 아니요 내 말대로 네가 행하는 것도 아니요 네 말대로 내가 네게 다 행하여 주실 것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이 말씀이 순교하게 해 주시는 신랑 예수님의 말씀이 되고 있습니다.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현명한 여자는 주의 말씀을 빨리 깨닫는 지혜 있는 여자요 현숙한 여자는 그 말씀을 믿음으로 인하여 아름다운 생활로 나타내고 있는 성령의 사람입니다.
나의 성읍 백성들이라고 하셨으니 영광의 주께서 세우시고 다스리시는 영광의 성읍이요 그 성읍에 사는 백성들은 진리의 영으로 역사 하여 하늘의 산 소망 안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함께 진리 안에 사는 자는 룻을 다 알아보지만 진리 안에 살지 아니하는 자들은 도리어 이단이라고 핍박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성읍 백성들은 다 아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12절 "참으로 나는 네 기업을 무를 자나 나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으니"
참으로 참된 기업으로 물려주는 친족이 있고,(영에 속한 교역자) 거짓으로 거짓된 기업으로 물려주는 친족도 있습니다.(육에 속한 교역자)
나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라는 말씀은 현재 눈앞에 있는 세상 축복을 보여 주고 있으니 가까운 친족이 되고 신랑 예수께서는 천년 왕국 때에 이루실 영광을 주시니 가깝기는 가깝지만 세상 축복을 말하는 자들이 나보다 더 가깝습니다.
똑 같은 세상에 있는 소망인데 하나는 첫째 부활의 날에 주시는 천년 왕국의 영광이고 하나는 현재 이 육신이 사는 동안에 받아 누리는 부귀와 영광입니다.
13절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여기서 말씀하시는 이 밤은 아직도 어두움의 권세 곧 악한 자의 권세를 두려워하는 때입니다. 순교자의 영광은 보면서도 끌어다 죽이게 하는 악의 권세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아침이 되었으니까 어두움 곧 환난을 통하여 이루시는 영광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족된 그가 기업을 물러 줄자의 책임을 성실하게 행하면 얼마나 큰 영광이 그에게 더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자녀들을 보내실 때에 하늘의 영광된 열매를 맺게 하시는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모압으로 내려가는 엘리멜렉과 같이 다 버리고 세상에 치우쳐 사는 자 되었을 때에 하늘의 영광된 열매 맺게 하시는 생명으로 살려 그 기업의 땅으로 물러 주는 교역자가 됩니다.
교역자 자신이 하늘에 속한 자가 되었을 때에야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성실히 행하게 됩니다.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코자 아니하면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행하리라"
보아스는 육신대로 살고 있는 그 친족 된 사람이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이행하지 아니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세상에 속한 교역자들은 모두가 교인들에게 하늘의 소망을 보여주는 유익보다 자기의 세상 유익을 앞세우기 때문입니다. 목회 하는 근본 목적을 바로 가져야 합니다.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는 것은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까지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소금 언약의 말씀입니다.(민18:19)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행하리라고 말씀하시는데 신랑 예수께서 반드시 순교하게 하셔서 천년 왕국에까지 인도하실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침까지 누울찌니라"
지금까지의 말씀은 날이 밝기 전 아직 어두움의 권세 아래 있는 룻에게 밝은 빛이 비취는 아침이 되어 이 모든 사실들을 볼 수 있을 때까지 그 발치 이불 아래 누워 있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 때까지 누워 있지 아니면 내가 내 목숨을 주를 위하여 버리려는 베드로가 됩니다.(요1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