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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월도 1박2일 섬산행
일시: 2024. 05. 04~05
참석: 14명
산행: 국사봉, 섬 일대 트레킹
25회 일요산행팀이 벼르고 벼르던 옹진군 자월도(紫月島)에서 1박2일 섬산행을 하고 왔다.
자월도에는 현재 총동창회 산악회장을 맡고 있는 30회 임승호 후배의 세컨드 하우스가 있다. 감사하게도 임승호 후배가 직접 배타는 것부터 산행안내, 숙박 및 귀가까지 모든 편의를 제공해 주었다.
작년 5월에도 자월도 산행을 계획했었으나 폭풍우로 배가 결항되는 바람에 무산되고, 일승 회장의 지인이 있는광주 초월읍 무갑리 콘테이너에서 하룻밤을 자고 무갑산(580m) 산행으로 대체했었다. 올해도 일요일에는 비가 온다고 해서 섬에 들어갔다가 배가 결항되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다행히 비가 약하게 내려 배는 정상 운항되었다.
자월도는 옹진군 자월면의 주도로 인천에서 서남쪽으로 35km 지점에 있고, 소이작도 · 대이작도 · 승봉도 등을 거느린다. 면적은 7.26㎢이고, 해안선 길이는 20.4km이며 동서로 길이가 약 6km 되는 길쭉한 모양이다.
자월도는 인천항 여객터미널과 안산 대부도 방아머리에서 각각 배편이 있다. 우리는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을 아침 8시에 출발하는 배편을 예약했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그 시간까지 도착하기도 만만하지가 않아 3개조로 나누어 승용차로 가기로 했다.
3조 성수가 6시 20분에 금정역에서 보미를 태우고, 산본 외곽순횐도로 진출로에서 나를 태우고 선착장으로 향했다. 안산 시화방조제를 지나 방아머리 선착장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바로 앞에 1조 일승이 차가 있었다. 주차장에 주차하고 선착장으로 갔다.
불행하게도 2조가 길을 잃고 헤메는 바람에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에 늦게 도착해서 자월도에 함께 들어가지를 못했다.
개찰을 하고 배에 오르니 30회 임승호는 배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차를 가져가느라 일찍 도착을 하였다. 큰 섬인 덕적도까지 가는 배이고 황금연휴라 그런지 선실은 이미 사람들로 꽉 차서 선실 밖 통로에 의자를 깔고 앉아서 갔다.
늦는 사람들을 기다리느라 정시보다 10분 늦게 출발을 하였다. 2조가 조금만 빨리 도착했으면 같이 갈 수도 있었다. 배 위에서 멀어지는 방아다리 선착장을 한참 바라보았다. 산행과 휴식을 위해 1박 2일 동안 모든 일상과의 작별이다.
해무가 옅게 껴서 시야가 멀리 열리지는 않았다. 새우깡 맛을 알아버린 갈매기떼는 배가 자월도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쫓아 왔다.
새우깡을 받아 먹는 스킬이 아직은 부족한 어린 갈매기들이다.
1시간 정도 바다와 갈매기에 취해 있는데 자월도 달바위 선착장에 도착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하선 준비를 하였다.
연휴라 휴가차 왔는지 자월도에 내리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 중에 백패킹을 하려고 엄청 큰 배낭을 짊어진 청년들도 있었다.
이 달바위 선착장에 옛날에는 달처럼 둥그런 바위가 있었는데, 70년대 중반 선착장 공사를 하면서 훼손되었다고 한다.
초록색 쪼끼를 입은 언내자의 인도 따라 선착장 좌측으로 걸어 올라가는데 무궁화 둘을 달고 있는 경찰 파출소장까지 나와서 직접 안내 감독을 하고 있었다. 선착장 시작점에는 붉은 초승달 조형물 두 개가 아치를 이루고 있다. 여행객을 맞이하는 듯한 모습이 촌스러우면서도 정겨웠다.
초승달 조형물 뒤에는 배 시간에 맞춰 섬 구석구석까지 다니는 마을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는 사람이 살고 있는 동네는 거의 다닌다고 한다. 우리는 버스가 아니라 승호네 스타렉스를 타고 간다. 스타렉스가 주차되어 있는 주차장을 가려고 선착장을 나와 왼쪽으로 꺾어 길따라 걸어갔다.
제법 넓은 주차장의 끄트머리 바다쪽에는 커다란 열녀바위가 있다. 바위 계단을 오르자 꼭대기에 '붉은 달을 품은 섬, 자월' 빨간 초승달 포도존과 어부상이 있다. 인증 사진부터 찍었다. 열녀바위는 그 옛날 어느 부부의 애틋한 사랑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먼 옛날 이 섬에 금실 좋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바다에 나간 어부가 사흘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부인이 바닷가에 나와 남편을 찾아다녔는데, 큰 지네 몇 마리가 어떤 시신을 뜯어먹고 있었다. 부인은 그 시신이 남편인 것을 알고 까무러쳤는데 며칠 뒤 남편 없는 삶을 살 수 없다며 바다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 주민들은 그 부인을 추모하고, 남편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그리며 그녀가 몸을 던진 바위를 열녀바위라 불렀다.
어부상이 있는 열녀바위 꼭대기는 작은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선착장, 큰말 해수욕장, 독바위 일대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선두 승호 차에, 나머지는 일승이가 운전하는 스타렉스를 타고 선착장 앞을 지나 서쪽의 1리에 있는 승호네 집으로 향했다.
차안에서 승호가 자월도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자월도에는 3개 마을이 있다. 섬의 중앙에 가장 큰 1리가 있고, 동쪽에 2리, 서쪽에 3리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달바위 선착장에서 왼쪽으로 난 도로가 자월서로, 오른쪽으로 난 도로가 자월동로다. 선착장 앞은 서에서 동으로 일방통행이다. 자월서로를 따라가면 1리와 3리가 나온다.
자월도에서 면사무소, 경찰 파출소와 하나로마트가 있는 가장 큰 1리 마을 앞에는 장골해수욕장이 있다. 자월도 주민은 모두 600여 명, 반농반어를 주로 하는데 근래에 수산업 비중이 줄고, 펜션업이나 카페, 음식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단다.
승호네 집에 도착하자마자 점심 도시락과 라면 끓일 준비물을 들고 국사봉을 향해 출발했다. 마을길 빨간 동백이 우리를 반겼다.
승호가 길을 안내하였다. 1리 마을 뒷길을 빙돌아 사거리에서 왼쪽 임도로 국사봉으로 올라갔다. 1리 마을 모습이 무척 평화롭다.
산쪽은 해가 내리 쬐고 맑아졌지만 바다쪽은 아직도 해무가 옅게 끼어 있어 멀리 있는 섬들이 희미하게 보였다. 이작도인가?
8겹 벚꽃이 땅바닥에 꽃잎을 흘리며 아직도 피어 있는 사거리 갈림길에서 잠시 쉬었다. 갈림길 안내판의 지도를 밑에서 보면 자월도는 승호의 말처럼 그 모습이 마치 방아쇠, 가늠자가 달려 있는 옛날 권총처럼 생겼다.
달빛이 유난히 붉다는 섬, 자월도 이름에 대한 전설도 섬답게 전해 온다. 조선 인조 때 한 선비가 이곳에 유배를 왔다가 억울함과 가족을 향한 그리움 때문에 달을 보고 하소연을 했는데 갑자기 달빛이 빨갛게 변하고, 폭풍우가 몰아쳤다고 한다. 선비는 달님도 나의 억울함을 알아주는구나, 하면서 섬 이름을 자월도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측의 임도를 따라 올라갔다.
커다란 저수탱크 3개가 나란히 있는 곳을 지나자 또다시 갈림길이다. 좌우는 넓은 임도이고 국사봉은 가운데 산길이다. 우측 넓은 임도로 국사봉을 뒤로 올랐다가 가운데 길로 내려오기로 하였다. 임도는 그늘이 지고 평탄하고 넓어서 걷기에 무척 편했다.
집에 들르자마자 급히 출발하느라 정작 라면 끓일 물을 안가지고 올라왔다. 가지고 있는 생수병을 모아 몇 개라도 끓일 수 밖에 ---
오른쪽 나무들 사이로 장골해수욕장 옆에 있는 작은 섬 독바위와 해안의 바위인 안독바위가 보였다. 안독바위는 사리 때 물이 휘어 도는곳으로 바위 모양이 안쪽 독과 같다하여 이름 붙여졌고, 독바위는 안독바위 밖에 있어 큰 독과 같다하여 붙여졌다. 독바위로 가는 길이 썰물 때라 드러나 있는데 밀물 때는 바닷물로 채워진다. 옛날에는 군부대가 있었으나 현재는 종교단체 사유재산이라 함부로 들어갈 수가 없단다.
좌우 임도가 다시 합쳐지기 직전, 우측 임도에서 나무 계단을 올라 국사봉을 뒤로 오르는 산길로 들어섰다. 달바위 선척장에서 바로 오르면 지금 산길과 만난다.
자월도 섬능선길인데도 싱그런 숲이 빽빽이 우거져서 좌우로 조망은 없다.
능선길은 더덕 향기가 코를 짜르고, 커다란 힌 줄이 있는 검은 나비도 눈에 보이고, 작은 새 울음소리가 귀에 요란하였다.
가파른 굵은 바위길을 올라서자 자월도 국사봉 봉수대가 나타났다.
작년 말에 옹진군이 주관해서 복원한 봉수대는 국사봉 동쪽에 있는 봉우리로 위급한 사실을 중앙에 알리는 통신 수단으로 쓰였다.
복원 전까지는 둥글게 돌을 쌓아 놓은 곳이 그대로 남아 있어 탑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국사봉 봉수대를 지나서는 내리막이 이어지다가 다시 완만한 오르막 숲길을 따리 올라갔다.
초록의 숲 향기가 무척이나 싱그러웠다.
갑자기 숲이 없어지고 햇살 내리 쬐는 언덕에 홀로 우뚝 서있는 커다란 정자가 눈 앞에 들어 왔다.
국사봉은 자월도에서 제일 높은 곳으로 해발 166m이다. 나라에 국상이 생겼을 때 왕도를 바라보며 국운을 기원하던 곳이다.
국사봉 팔각정자 위에는 먼저 온 단체손님들이 있었다. 내려가시는 분들을 붙잡고 라면 끓일 생수를 되는 대로 챙겼다. 고맙게도 생명수 몇 병이 생겼다. 라면을 끓여 도시락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라면을 포기했다가 모두 끓여 먹었으니 더 맛있는 것 같았다.
정자에서 단체로 인증사진을 찍고 국사봉을 내려갔다.
지그재그 가파른 나무계단길을 천천히 내려갔다.
길 좌우에는 어디선가 보았던 낯익은 식물부터 처음보는 식물까지 다양한 꽃과 나무들로 가득했다.
해변으로 내려가려고 임승호 안내자를 따라 국사봉 갈림길 삼거리에서 오른쪽 임도로 들어서 한참을 갔다가 되돌아 나왔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고, 간만에 올라오다 보니 자기 동네에서 실수를 했다!
국사봉 삼거리 갈림길에서 더 내려가서 벚꽃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가야했다.
잔뜩 떨어진 벚꽃을 밟으며 천천히 내려갔다. 경사가 급한 곳에는 시멘트 포장을 해놓았다.
사람 냄새를 맡았나 보다. 하루살이가 발걸음을 따라 가며 눈앞에서 왔다갔다 하였다. 하루살이도 하루를 바삐 살고, 한 해 살이 풀이라 해도 한 해를 열심히 살고 있다. 곤충도 풀도 나무도 최선을 다해 살고 있음을 산행을 통해 배운다.
승호왈, 자월도에는 뱀이 많아 집 주변의 습한 곳이나 임도에 자주 보인단다. 말 그대로, 내려가는 임도에서 차에 깔려 죽은 어린 뱀을 발견하였다. 자동차도 엄청나게 드물게 다니는 산길인데 그 뱀은 재수가 오지게 없었다.
이정표에서 우회전하여 내려가니 메리해변이다.
해변 입구에는 실어내갈 쓰레기 부대자루가 엄청 쌓여 있었다. 관광객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청소를 하고 있으니, 이 근처의 쓰레기는 다 모아 놓은 것 같았다. 쓰레기를 싣고 왔는지 낚시꾼들을 태우러 왔는지 봉고차가 사람들을 태우고 서둘러 올라갔다.
메리는 자월도 북쪽 오지의 조그만 해변이다. 수영금지이고, 고립주의 지역이다. 특히, 야간에는 더욱 위험하니 출입금지이다.
메리해변의 위쪽은 모래, 아래쪽은 몽돌 두 모습이고, 좌우 양 끝은 바위들이 많다. 자월도 등산로 둘레길에서도 조금 벗어나 아는 사람들만 오는 곳이다. 바위에 앉아 호젖하게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나 찾아올 것 같다.
서해 치고는 물도 맑다. 해변 바위에 앉아 물멍을 하며 한참을 쉬었다. 눈앞에 펼쳐진 바다는 보기만 해도 시원하였다.
영숙이 이렇게는 안되겠다 싶었는지 갑자기 신발, 양말을 다 벗었다. "양말 신고 가! 발 다쳐!" 여동들 말에도 그냥 물로 들어갔다.
다행히 물속은 몽돌 자갈밭이었다.
한편, 아침 첫배를 놓치고 오후 12시 30분 배편에 들어오는 친구들도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늦은 김에 근처 식당에서 아침부터 공짜 막걸리 한 잔을 마시고, 갓지은 솥밥으로 아침을 단단히 챙겨 먹었다.
가지고 간 참외도 깍아 주어 디저트로 먹었다.
대부도 방아다리 선착장 가까이 있는 바다향기 테마파크를 구경하였다.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없어 한적하였다.
바다향기테마파크는 한국농어촌공사가 시행하는 시화간척지 매립사업에 따라 조성 중인 77㏊ 규모의 간척지로, 안산시는 2012년 갈대숲을 조성하고, 2016년부터는 시험·연구 목적의 초화류 파종, 작물경작 등 공공용도로 사용해왔다. 2024년부터는 공공용 목적의 조형물(예술작품) 설치 등 문화관광 및 예술 전시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입구에 설치된, 당신의 뱃살은 안녕하십니까? 나무 기둥 통과에서 어떤이는 30대, 또다른 어떤이는 20대?
어째 나무 간격이 문제이거나 몸이 정상이 아니거나, 여하튼 측정을 잘 못한 것 같다.
강한 아침 햇살에 우산을 펴 들고 습지관찰데크를 한 바퀴 돌았다.
커피 한 잔하고, 자월도의 승호네 집을 찾아 가려고 갑숙이 차를 싣고서 12시 30분 배를 탔다.
아침보다 하늘이 더 맑아졌다.
선실에서 싸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밖으로 나와 갈매기 나는 것도 보며 시원한 바다를 구경하였다.
2조도 승호네 집에 도착하자마자 국사봉으로 올라갔다.
오전 조들과는 반대로 국사봉부터 오르고, 봉수대를 넘어 임도로 내려왔다. 편안한 숲길에 기분이 좋아 웃음이 절로났다.
걷기 좋아하는 장용이는 따로 임도를 한 바퀴 더 돌고서 늦게 내려왔다.
2조가 산행을 하는 동안, 집에 있는 여동들은 부엌에서 재료들을 다듬어 오징어 부추전을 만들 준비를 하였다.
그에 발맞춰 남동들은 마당에서 커다란 가마솥을 닦아내 밥할 준비를 해놓고, 화목과 장작을 피워 고기 구울 준비를 하였다.
야외 식탁에서 오징어 부추전을 부쳐내고, 가마솥 뚜껑을 뒤집어 삽결살을 구워서 갑숙이가 챙겨준 고량주부터 동을 냈다.
보미의 회심작품, 어마하게 많은 양의 오징어가 들어간 오징어 부추전은 먼저 때깔로 시선을 끌고는 맛으로 손이 가게 만들었다.
밀가루는 조금 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재료를 풍성하게 넣은 것이 포인트였다. 만들자마자 금방 없어졌다. 2조 것도 남겨주라!
요즈음 제주도를 다녀오는 사람들마다 비싼 비계덩어리 흙돼지 삽겹살을 먹었다고 말들이 많은데, 일승이가 이마트에서 골라온 삽겹살은 비계와 살이 적당히 섞여 있는 진짜배기 삽겹살이라 맛있기만 하였다.
주석 잔으로 차거운 맥주를 마시고, 바로 소주가 주거니 받거니 이어졌다. 오래간만에 우정이 철철 넘치는 술자리가 되어 버렸다.
기분이 좋아 급히 마셨나 보다. 알딸딸 해지고 얼굴이 붉어지며 취기가 돌았다. 하지만, 사명을 다하려고 사진은 열심히 찍었다.
2조가 산행을 하고 내려와서야 소고기 등심을 구웠다. 상추에 싸먹어도 그냥 먹어도 부드럽고 맛있었다.
오징어 부추전도 부치기가 무섭게, 소고기 등심도 굽기가 무섭게 금방금방 없어졌다. 무섭게들 먹고 마셔 댔다.
장용이는 시종일관 막걸리다. 여동들도 고기를 쌈 싸먹으며 잔을 맞대고 술을 술술 넘겼다.
자월도 마을 인심이 참 대단하다. 언제 우리를 보았는지?
승호네 이웃집에서 방금 산에서 캤다며 손님들과 먹으라고 더덕 한 보따리를 가져다 주었다. 크고 양도 많아 너도나도 만져보았다. 다음 날에는 다른 이웃이 고사리 말린 것을 우리 인원수대로 14봉지나 가져다 주었다. 값으로 따져도 꽤 나갔다.
일주일에 한 번 올지라도 승호네가 이웃에 많이 배풀은 결과일 것이다.
먹고 마시고 난 다음에 노래가 빠지만 섭섭하다. 당연히 노래가 나외야지!
준석이의 기타 반주에 노래 몇 곡 불렀다. 준석이는 기타를 가지고 오려고 일부러 수원서 차를 끌고 방아다리 선착장까지 와서 배를 탔다. 흥이 살아나다 보니, 기타로는 부족해 승호의 섹스폰 연주에 맞추어 춤도 추고, 돌아가며 노래도 불렀다.
마이크 노래소리가 너무 커서 동네사람 욕할까봐 갑숙이 종종거리며 걱정을 하였지만 정작 집주인은 괜찮다며 신경도 안썼다.
온 동네가 떠들썩하게 한바탕 놀고는 옥상에 올라 지는 석양을 한동안 바라보고 내려왔다.
정면으로 바다 저 멀리 보이는 섬이 승봉도와 대이작도이다.
나는 취기에 못이겨 집안으로 들어가 소파에서 한동안 잠을 잤다. 눕자마자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단다.
소란스러움에 일어나니, 그 사이 가마솥에 밥을 지어 놓고 부엌에서 반찬을 만들고 있었다.
김치, 마른 반찬과 계란부침으로만 밥을 먹을 수는 없었다. 국물이 있어야 밥도 술술 넘어가지!
기다리라고 하고는 남은 돼지고기, 두부, 양파, 호박, 파, 마늘을 썰어 넣고 후다닥 된장찌게를 끓여냈다.
역시 신의 한 수, 냄비 바닥까지 동을 내며 다들 맛있게 저녁식사를 하였다.
저녁을 먹고는 노래방 기계에 맞추어 노래 몇 곡 부르고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피곤하지만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새벽 5시에 눈이 떠졌다.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더 일찍 일어난 박영이 화장실을 독차지 하며 샤워까지 하느라 밖에서 20여분을 기다리는 그 사이 대기자가 여러 명 되었다.
후다닥 들어가 5분만에 샤워만 하고 나왔다. 박영과 장용이는 비오는 와중에도 국사봉 임도를 한 바퀴 돌고 내려왔다.
부엌에서 보미를 도와 잘게 썬 오이 물도 짜 주고, 순자를 도와 황태를 물에 불렸다 짜주었다. 오이는 마늘 넣고 기름에 볶아 오이볶음이 되고, 황태는 들기름에 볶은 다음 물을 넣고 끓인 후 콩나물과 두부를 넣고 황태콩나물 해장국을 만들었다. 시원한 황태콩나물 해장국에 밥을 말아 아침을 먹었다.
아침을 먹고는 베란다 앉아 수박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잠시 멍 때리며 조용히 비를 바라보는 것도 좋기만 하였다.
벼르고 벼르다 자월도에 왔으니 비를 맞고서라도 움직이며 한 구석이라도 더 구경을 해야했다.
농협 앞에서 자월서로를 따라 다싯물선착장까지 걸어갔다. 썰물이라 다싯물선착장의 모래 위에 배들이 놓여 있었다.
선착장 뒤 모래사장 아래로 돌무더기 자연 굴밭이 넓게 깔려 있다.
자월도는 자연산 굴이 많이 자라는 섬이다. 섬 곳곳에는 굴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주민들이 굴부리 또는 굴뿌리라고 부르는 곳은 자연산 굴밭으로 굴이 많이 자란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굴 채취는 자월도 주민의 겨울 한철 생계수단이다.
지금 우리가 있는 굴부리 일대에서도 바위에 붙어 있는 굴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굴의 크기는 손가락 한마디도 채 되지 않을 만큼 작았다. 몇 개 때어서 속을 까봤더니 너무 작아서 한 입에 털어 넣을 것도 없었다. 작지만 아린 특유한 굴맛이 강했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여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비도 오고 출출한 김에 승호가 돼지 껍데기를 삶은 후 잘게 썬 고구마, 고추가루와 양념을 넣고 볶아 내줘서 술 한 잔 하였다.
한 점 남았을 무렵, 장용이가 자월도 동쪽마을인 2리까지 3시간 동안 걸어갔다가 돌아왔다. 승호가 남겨둔 막걸리를 내주었다.
비빔국수로 점심을 먹고 집안에서 쉬다가 오후 3시에 달바위 선척장으로 가서 배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중에도 바람과 비는 조금 강해져 정박하고 있는 작은 배가 크게 흔들리며 선착장에 부딪쳤지만 배는 정시 들어왔다.
3시 45분 배를 타고 대부도 방아다리 선착장으로 돌아와 조별로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흐리다 맑았다, 비가 왔다가 그쳤다 다시 오고, 불규칙한 날씨에도 섬산행을 하며 즐거운 1박2일을 보냈다.
숙박과 섬안내를 제공해준 30회 임승호 총동산악회장, 기획하고 준비한 일승 대장과 신경순 총무에게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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