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씀 : 박 찬 덕 선교사
여러분들과 말씀의 교제를 나누게 된 것을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기쁘게 생각을 합니다.
레위기를 중심으로 지금부처 여러분과 교제를 나눌 터인데 과거에 두 번 정도 이 레위기에 대한 말씀을
여러분들과 교제를 나눴지만 조금 더 요약해서 이 계시의 말씀 특별히 우리에게 신약 성경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가장 중요하고 더욱 깊은 이 레위기의 말씀을 여러분들과 교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이 말씀은 구약의 39권과 신약의 27권인 이 66권 중에서 어떤 한 곳을 가리켜서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충분히 표현하거나 계시하시지는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이 성경을 통한 우리를 향한 계시는 구약 성경 39권과 신약 성경 27권을 통하여 조금씩 조금씩
한 지점에서 어떤 다른 지점으로 또 주님의 어떤 표현과 나타나심을 조금씩 조금씩 단계별로 이렇게 우리에게
보여 주고 계십니다.
아주 지속적이면서도 단계적으로 그리고 점진적으로 보여주고 계신 것이 하나님의 성경의 말씀 계시입니다.
모세로부터 시작한 창세기 말씀부터 사도 요한의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1500년 동안에 걸쳐 쓰여 졌는데 이 계시를 통하여 성경 말씀이 하나님을 표현함에 있어서 온전케 되었고 그리고 더욱더 완전케 되었다 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창세기는 하나님의 우주 만물에 대한 창조와 그리고 사람의 타락을 이렇게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데요
창세기 처음과 끝에는 창조로 시작하여서 요셉이 관에 들어가는 해골 뼈에 대한 이야기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하신 마음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뜻에 어울리지 못하고 그만 양심이 타락하고 영과 혼과 육이 타락하여서 하나님을 떠나고 그리고 우주 만물에 대해서 배역함과 그리고 인간 통치에서 점점
나쁜 단계 쪽으로 이렇게 나락으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대신에 우상을 섬기고 숭배하는 그런 악한 쪽으로 생각이 기울어지고 말았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면에서 인간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창조하셨지만
아담을 통하여 창조된 그 후손들을 어떠한 면에서는 포기하셨으나 하나님은 결코 자신의 목적을 포기하실 수
없으신 분이십니다.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으시고 아담 대신에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아브라함을 통하여 새로운 경륜과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새로운 시도를 하게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미리 아심에 따라 모든 것이 경륜 속에 포함된 과정입니다.
창조된 아담의 족속을 포기하신 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시작된 새롭게 부른 새롭게 선택되어져서 택하신 족속인 그 아브라함과 그 안에 있는 이삭과 야곱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이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시는 그 일을 400년 후에 애굽
그 타락한 세상으로부터 이렇게 분리시키고 격리시키고 구별되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이렇게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선하신 목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모양대로 인간들을 지으시고 창조하셨고 하나님
속에 있는 그 인격대로 표현할 수 있도록 인간들을 만들어 놨지만 사탄과 같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을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그리고 세상 속으로 세상의 권세자인 세상 임금인 세상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타락하게 되는 인간의 형편을 보게 됩니다.
지금의 우리 눈에 보여지는 이 화려하고 어떤 면에서는 아름답기까지 한 이 세상은 사실은 사단이 그 속에
깊이 감추어져 있는 사람의 타락한 모양의 표현이 바로 오늘날의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보여지는 이 화려한 네온싸인 불빛처럼 환하게 비춰진 이 세상은 사람의 극도로 타락한 관계에 있어서
마지막 단계의 최종 표현이기 때문에 이 세상은 나중에 깜깜한 어둠으로 바뀌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그 창세기 1장 1절 말씀과 그리고 창세기50장 끝절말씀을 제가 읽겠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에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50장:26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라는
말씀으로 창세기 말씀을 끝을 맺습니다.
모세 오경 중에서 첫 번째로 시작한 이 창세기의 말씀은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인격이 하나님의 그 모든
것이 인간을 통해서 표현하도록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곧 사람 인간은 하나님을 대표할 수 있도록 그 아담에게 곧 사람에게 자신의 통치권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창세기 1장 26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통치권을 이와 같이 모든 만물을 통치할 수 있는 통치권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인간을 통하여
하나님을 대표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다름 아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어진 인간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그리고 이삭을 통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하게 된 야곱을 통하여 야곱 안에서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어느 정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도록 야곱을 훈련시키셨고 그리고 연단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을 표현할 수 있는 이스라엘 하나님을 이긴 자라는 그런 뜻의 사람으로 이렇게 만드신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그리고 야곱을 통하여 야곱은 그리고 하나님을 표현할 수 있는 자로
만들어진 다음에 죽지만 그 후손이었던 열두 아들 중에 열한번째 아들이었던 요셉을 통하여 야곱이 하나님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임을 온전히 보여줄 수 있도록 한 사람이 바로 요셉입니다.
요셉 안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통치권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표하는 생명으로 결론을 다 짓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하나님 그리고 백성들을 인도하고 그리고 세상 나라를 세상 나라를 대표하고 있는 애굽을
통치하는 국무총리로서의 그런 위치에 있는 자로 표현이 됩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의 계획은 얼마나 뛰어나고 놀라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창세기의 말씀은 바로 신약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보여지고 표현하기 위한 그림자요 상징이요 예표일 뿐입니다.
창세기를 통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요셉의 시대에는 그 실체이신 그리스도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실체이신 그리스도가 옴으로 말미암아 구약 성경에서 이렇게 보여지고 있는 온전한 죄에 대한 문제가 속죄라는 것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지만 그 속죄는 온전하게 죄를 제거하는 것이 아닌 단순하게 덮어준다 라는 의미를 가진 속죄라는 뜻입니다. 이 속죄가 신약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구속으로 바뀌어지게 됩니다.
속죄는 온전한 것이 아닙니다. 온전하고 완전하게 되기 위해서는 죄가 완전히 사라지고 그리고 사라진 그 죄
안에 있었던 그 생명이 다시 새 생명으로 변화되고 새 생명으로 이렇게 창조되어지는 그러한 일들을 이렇게
표출시키신 분이 바로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는 구속의 문제가 해결될 수가 없습니다. 속죄만 있을 뿐입니다.
속죄는 잠시적으로 마치 아담이 가죽 옷을 입고 임시적으로 자기의 수치와 벌거벗음을 덮는 것처럼
그러나 그 수치가 완전히 제거되고 완전히 변화되고 전적으로 달라지게 할 수 있는 것은 구속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오셔야만 이 문제가 해결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면에서는 아담이라는 자를 만드셨지만 우리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는 아담을 창조하신 것이
어떠한 면에서는 실패처럼 보이고 대신에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신 새로운 사람이신 아브라함을 부르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택하시고 부르신 사람이 계속적으로 반복적으로 넘어지고 실족하고 연약한 가운데서 하나님은 결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특별히 야곱을 통한 연단의 과정을 통해서 온전케 만들고자
하는 하나님의 그러한 그 야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절대 바뀌어 지거나 실망하거나 그리고 하나님의 어떤
경륜을 폐하기 위한 마음을 가지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이 잘못된 길로 갈수록 하나님은 그 잘못된 길로 가는 자를 온전한 하나님의
경륜 속으로 들여보내게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손을 잡고 이끄시는 그러한 광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하신 마음을 우리가 들여다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후손들이 타락하여서 죄를 범한 그들을 죄를 덮어주기 위하여 속죄의 문제와 구속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서 이 땅 위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집인 하나님의 성막인 하나님의 거처를 만드시고 거처를
모세를 통하여 보여주시고 그 거처가 건축하시는 그런 단계로 이끄시기 위하여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고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건축의 장면을 보여주시고 그리고 하나님의 성막을 짓게 하시는 이러한 내용을 출애굽기를 통해서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창세기에서는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창조가 결국은 죄로 인하여 타락하고 하나님께 반역하고
배반함으로 말미암아 죽음으로 이집트에서 입관하는 요셉의 생생한 그런 마지막의 표현을 통해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그런 일들을 보여주고 계신 것이 바로 출애굽이라는 것입니다.
출애굽은 어떤 세상에서부터 죄로부터 벗어난다 탈출한다 라는 그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출애굽기는 세상에서 벗어나고 죄에서 벗어나는 그러한 일들 곧 사단으로 말미암아 죄는 곧 사단을 의미하고
사단이 그 죄를 짓게 함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사망을 당하게 되는 일이 바로 창세기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이 죄로부터의 벗어남 세상으로부터의 벗어나는 완전히 죽음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을 바로 출애굽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그래서 창세기의 시작은 창조로 시작하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표현인 요셉이 이집트라는 나라에서 죽음을 통하여 뼈가 입관된 관 속에 들어가는 그 일들이 기록돼 있지만 출애굽기 에서는
처음부터 이 관에서부터의 탈출 이 출애굽기는 요셉의 유골이 벗어나는 그런 장면을 이렇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출애굽기12장41절에 보면 사백 삼십년이 마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이 애굽 땅에서 나왔다 라는 것은 바로 사단이 지배하고 있는 바로는 사단을 상징하고 있다고 그랬죠
그리고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조들이 그 이집트 땅에서 죽음을 당했습니다.
4백30년 동안 삶을 사는 동안에 이집트의 공동 묘지 이집트의 죽음의 땅인 그 땅에서 죽음을 당했지만
여호와의 모든 군대가 이 땅에서 나왔습니다.
요셉의 유골이 그 애굽에서 이렇게 나왔다 라는 것은 요셉의 유골 안에 모든 430년 동안 애굽에서
노예와 종살이를 하였던 이스라엘 백성 모두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성경 말씀을 읽을 때는 전체적으로 이해를 하는 것이 굉장히 필요합니다.
이 애굽으로 부터의 탈출은 바로를 상징하고 있는 사단으로부터의 탈출이요 세상으로부터의 구원이며 죽음으로부터의 탈출과 구원입니다. 영원한 어둠과 사망으로부터의 영원한 탈출이 바로 출애굽이라는 것입니다.
이 출애굽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왜 중요하냐면 하나님의 그리스도를 통한 전체적인 구속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탈출이라는 것은 내가 있어서는 아니 될 그 장소나 공간에서 벗어나서 다른 세계로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고 또 새로운 세계로의 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홍해를 건너 광야로 들어가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삶을 산다 라는
것은 그런 과정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속을 의미하는 것이 바로 애굽에서의 탈출이라는 것을
여러분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구속은 우리를 사단으로부터 그리고 노예와 종살이로부터 죄로부터 애굽 이라는 세상으로부터
그리고 요셉의 그 뼈가 애굽의 관속에 들어간 그 관 속으로부터 벗어나서 하나님의 품으로 되돌려지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속입니다.
구속이란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벗어나서 죽음은 죄로부터 비롯된 것이죠.
죄와 죽음으로부터 벗어나서 의와 생명이 있는 하나님께로 변화를 갖게 된 것이 바로 구속이라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과 의의 근원이신 하나님 품으로 되돌아가게 되는 사람들 그 되돌려 구속
받은 사람들 사단과 죽음과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벗어나서 하나님의 의와 생명으로 변화받은 사람들 구속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인 성막을 건축함으로 말미암아 그 성막을 그 하나님의 집을 통하여 함께 하나님이 살고 우리가 함께 사는 이 일을 이루기 위하여 모세가 시내산 에서 이 성막을 건축하는
일을 위하여 부름받았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만 죄로부터 사단으로부터 죄를 지어서 타락한 사람을 사망에서 유일하게 벗어나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벗어나게 한 자들로 하나님의 거처를 건축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 건축한 그 하나님의
집을 통하여 인간과 하나님이 함께 교제를 나누고 함께 거하고 누리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그렇게 인도하시고
이끌어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창세기의 그 마지막 장면 창세기 50장 26절에는 이집트에서 요셉이 관에 그 뼈가 들어가 있는 것이
기록돼 있는 반면에 출애굽기 맨 끝에는 무슨 말씀이 있는지 아십니까 출애굽기 40:34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주님의 영광이 성막을 가득 채우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을 가득 채우게 하기 위해서 모세를 통하여 성막을 건축하는 그러한 일들을 지시하시고
가르쳐주신 다음에 성막을 만들게 하고 그리고 그 성막 가운데서 하나님과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이렇게
영광 가운데 교제를 나누게 하게 하시는 것을 우리가 출애굽기 40:38을 통하여 볼 수 있습니다.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
이 하나님의 성막 하나님께는 성막이지만 사람이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그 성막이라는 대상은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는 회막으로 불려집니다. 회막은 좀 더 하나님과 교제를 깊이 가깝게 교제를 나누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 바로 회막입니다.
바로 그 회막을 덮은 구름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의 바깥 부분이며 외적인 법궤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성막 지금의 교회 생활을 통하여 이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영광을 체험할 필요가 있다라는
것을 여러분에게 주지를 시킵니다. 이 여호와의 영광의 구름은 성막위에 계속 머물러 있고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였는데요 인도하고 안내한 것은 바로 이 영광의 구름입니다.
그 영광의 구름은 바로 성막 위에 하나님의 성막 하나님의 거처를 결코 떠나지 않았습니다 .
하나님의 성막이 없이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인도하심이나 안내하심이 절대
없었다라는 것을 여러분에게 다시 한 번 말씀을 드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영광의 구름이 머무는 그 성막을 계속 따라가기만 하면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누림과 함께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이 창세기 마지막 에서는 개인적인 야곱이라는 한 사람을 통하여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거처에 조그마한
축소판으로 표현되고 나타내고 산출되어지지만 그런 야곱을 통하여 하나님이 자신을 표현하시고 특별히
야곱 안에 있었던 요셉을 통하여 자신의 권위를 통치 가운데 행사를 하십니다.
출애굽기 에서는 출애굽기의 시작과 중간을 지나 마지막 단계를 보면 전체적인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의 군대가 되면서 여호와의 군대 단체적인 이스라엘이 되어버립니다.
야곱이라는 개인적인 이스라엘이 이제는 200만 명 가운데 60만 명이라는 그 여호와의 군대를 통해서
하나님의 집으로 표현되고 나타내지고 산출되어집니다.
그리고 그 여호와의 군대 이스라엘 전체의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 하나님을 표현하고 하나님 자신의
권위를 행사하게 하십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특별히 야곱을 통하여 하나님을 대표하고 하나님을 표현하고 하나님의
권위를 나타내게 했지만 출애굽기 에서는 전체적인 여호와의 군대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하여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고 보여지게 하며 표현하고 하나님의 권위를 이렇게 드러나게 하시고 하나님 자신을 대표하게 합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인 하나님을 표현하고 하나님의 권위를 행사하고 하나님을 대표하게 하기 위한 그 전체적인 한 무리 여호와의 군대라는 백성이 하나가 되는 그 시점이 하나님의 거처 하나님의 성막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단체적인 여호와의 군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막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거처가 되어서
영원토록 하나님을 표현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드러내기를 갈망하십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보여지게 하고 그리고 대표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와 출애굽기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창조되어진 인간이 비록 창세기 끝에는 죄로 인하여 타락하여진 인간이 죽음이라는 요셉의 뼈가 입관되는 것으로 끝나지만 출애굽기를 통해서 그 뼈가 이 애굽에서 요셉이 가나안 땅 선조들의 무덤에 인도함 받는 그런 상황의 과정을 통하여 출애굽기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성막 하나님의 거처로 끝을 맺게 됩니다.
그것이 출애굽기 40장 34절 말씀입니다. 그때 구름이 회막을 덮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을 가득 채웠다.
예 성경 전체는 하나님의 영원한 장막 새 예루살렘으로 최종 완결되게 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라는 이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거처가 되어서 하나님을 드러내고 표현하고 권위를
보여주게 하고 하나님을 표현하게 했던 이 개인적인 하나님의 그러한 집이 커져서 이렇게 여호와의 군대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되고 신약 시대에는 교회라는 이 집합적인 단체들을 통해서 새 예루살렘으로 최종 완결되게 하기 위한 그 교회 일들이 은혜의 시대인 지금을 통하여 계속적으로 이렇게 점진적이고도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집이 거쳐가 건축되는 이런 일들이 있음을 성경은 지금 보여주고 있습니다.
계시록 21장 1절 ~5절 말씀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합니다.
1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4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이렇게 새 예루살렘에 대한 표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창세의 끝에는 죄로 인하여 이집트에서 요셉의 몸이 뼈로 안치되어 있는 그 죽음의 장면이
보여지고 있는 반면에 출애굽기 끝 40장 34절 끝에는 살아계신 영광이 함께 머무는 하나님의
영광의 성막이 이렇게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정말 어떻게 이렇게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으로 그분들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어진 인간이 하나님의
경륜과 목적과 뜻대로 살지 못하고 반역과 배역의 정신을 가진 사탄과 하나로 연합됨으로 말미암아
전적인 타락을 가진 그 인간을 하나님께서 절대적으로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관여하셔서
실체이신 그리스도의 구속을 이루기 위하여 성막을 통하여 하나님의 속죄를 이루는 사업을 갖기 위해서
하나님의 성막을 갖는 일을 출애굽기 에서는 이렇게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면 성막과 회막이라는 것이 나오는데요.
성막은 하나님의 거하심을 위한 하나님의 순수한 거처를 위한 것이라면 회막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기 위한 특별한 장소가 회막입니다 똑같습니다.
하나님의 거처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나는 중심의 교제의 곳인가에 따라서 성막이 되기도 하고
회막이라고 불려지기도 합니다. 회막은 하나님과 자신의 구속하신 백성들의 특별한 만남을 위한 장소입니다.
그럼 오늘날의 교회는 무엇일까요? 성막이며 회막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하나님의 거처이며 교회는 우리가 구속하신 백성들 변화받은 새롭게 인도함 받은 거듭난
자들이 하나님과 만남을 위한 장소가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인 교회를 가지기를 굉장히 원하고 갈망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이 교회를 통하여 우리가 교회와 연합되어 거 하는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서로 더불어
만나기를 원하고 하나님과 함께 만날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에 바로 교회를 하나님은 소유하기를 매우 원하시고 소원하시고 갈망하신다라는 사실을 여러분 인지하시기를 바랍니다.
바로 구원받은 사람들과 구원하신 하나님과의 만남이 바로 회막이요 성막인 교회입니다.
이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곧 장막과 거처를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오셨다라는 것이
출애굽기 40장2절에 이렇게 기록이 돼 있습니다. 2너는 정월 초일일에 성막 곧 회막을 세우고
이 성막이 이 땅 위에 세워지는 문제가 왜 중요하냐면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은 하늘에만 계신 분입니다.
그러나 성막이 이 땅 위에 건축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더 이상 하늘에만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고 영원히 동떨어진 분이 아니라 볼 수 있고 접촉할 수 있는 하나님 이라는 것을
성막을 통해서 회막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만나기 위해 하늘로 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이 땅으로 내려오셔서 우리와 만나는 것은 너무나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시내산에서 성막을 건축하는 일을 아주 자세하게 그 많은 공을
들여서 가르쳐 주시고 이 장막을 세우게 함으로 말미암아 성막 가운데 회막 가운데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것이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입니다.
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나기 위해서 이 땅에 사람으로 성육신 하셨습니다.
하늘에만 계셨던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성육신 하심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하나님의 장막이 되셨습니다.
이 사람이 이 예수님이라는 뜻은 여호와라는 뜻이죠 임마누엘는 우리와 함께 계신 바로 그러한 예수님
이 예수라는 이 뜻 안에는 구원자라는 여호와의 신분과 그리고 임마누엘이라는 우리와 함께 하신다라는
그런 인자의 그런 모두의 뜻이 동시에 이렇게 두 가지 뜻이 합류가 되어 있습니다.
이 땅에 사람이신 예수님 성육신하신 바로 그 예수님이 하나님의 장막이 하나님의 성막이 되셨음을 뜻하는
것이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도무지 만날 수 없는 접촉할 수 없는 볼 수 없는 그 하나님이 높이 계신 그 하늘로부터 삼층 천에 계신
그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의 형체를 취하셨고 우리가 만질 수 있고 우리가 볼 수 있는 사람의 형체를 입고 사람이 되셔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은 멀리 계신 그 삼층천에 계셨던 하나님께서 우리가 볼 수 없고
만져볼 수 없고 접촉할 수 없는 교제를 나눌 수 없었던 그 하나님이 2천년 전에 어느 날 성육신 하셔서 곧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셔서 땅 위에 장막이 되셨음을 땅 위에 거처가 되셨음을 계시하고 있는 것이 바로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말씀이라는 것을 여러분들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땅에 내려오신 그 예수님은 이천년 전에 우리 가운데 나타나신 그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의
모양이 아닌 사람의 모양으로 인간의 모양으로 자기 자신을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나타내셨습니다.
그분이 누굽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사람입니까 ? 아닙니다.
여호와 그는 구원자라는 뜻의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마리아의 몸을 빌어서 성령님에 의하여 잉태된 거룩한 본성을 지니신 사람이십니다.
그분이 창세기에서 모든 우주 만물과 생명체인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과 접촉할 수 없고 인간과 교제 나눌 수 없고 인간과 하나가 될 수 없는
그분은 완전한 하나님이시지만 우리의 관점에서는 온전한 하나님은 아니시기 때문에 그분이 성령님에 의하여
마리아의 몸을 빌어서 사람으로 태어나시고 33년 반 동안의 삶을 사시고 특별히 3년 반 동안의 공생애를
사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그리고 3일 만에 부활하시고 그리고 승천하시는 이러한 여러 가지 복잡한 다단한
과정들을 통하여 우리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접촉할 수 있는 온전한 하나님이 되실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창세기에 나타난 하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지만 우리 눈으로 볼 때는 접촉할 수 없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사람으로 오셔서 여러 태어나심과 삶과 생애와 그리고 십자가의 죽으심과 3일 만에 부활하심과
그리고 승천하신 것을 통하여 이런 복잡다단한 수순과 단계와 과정을 통하여 그분이 부활의 영이 되셔서
우리 영과 연합되어서 거처를 이제는 성도들과 함께 거처를 건축하게 함과 동시에 교회라는 단체적인 성전을
이렇게 건축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온전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을 창세기 ,출애굽기 이러한 성경에 모든 역사적인 세월들을 통해서 우리와 하나되신 온전한 하나님으로
이렇게 나타나신 분이 하나님 이 복잡다단한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진정한 우리의 하나님 완전하고도 온전한 하나님이 될 수 있으셨다라는 얘기입니다.
바로 그 예수님은 사람이십니까 ? 아닙니다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십니까 ?아닙니다 사람이십니다.
그러나 사람이시면서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늘에서 있으실 때는 하나님이셨지만 이 땅에 오셨을 때는 사람이셨습니다.
그 인성으로 오신 사람이 죽음을 통해서 3일 만에 부활하시는 일들을 통해서 인성의 그 본성이 온전히
해방됨으로 말미암아 인성과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과의 연합을 이룸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우리의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만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 접촉하고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장막이 되어서 사람의 모양 안에서
이 땅으로 내려오신 장막이면서 사람의 모양으로 인간의 형체를 띠고 이 땅에 오신 사람이지만 그분은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분은 땅으로 오신 하나님이시면서 땅에서 사신 사람이십니다.
이분이 바로 우리의 성전 되시고 회막이 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인간은 그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신 장막을 통하여 장막 안에는 바로 법궤가 있죠.
법궤 안에는 하나님의 십계명이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이시며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교제를 나눌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장막을 건축하게 하셨는데
이 장막을 통하여 인간은 들어갈 수가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육신 되심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되셨고 사람이 되셨을 뿐 아니라 그리고 하나님이 계신 그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도록 휘장을 완전히 분리시켜 놨습니다.
찢어 놓았습니다.
이 거듭난 백성들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이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이 권리와 특권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를 제사장 나라가 되도록 정하셨고 이게 베드로 전서 말씀이기도 하고요
출애굽기 19장 6절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
베드로전서:2:9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계시록 1장 6절에도 이 말씀이 있습니다.
6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계시록 5장 10절에도 이 말씀이 계속적으로 똑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10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하리로다 하더라
여러분 이 성경을 읽지 않으면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이해하는데 좀 난해할까 봐 계속 읽어 드리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거처인 깊은 장막 안으로 성소에 제사장들이 들어갈 수 있었고 대제사장만이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성소와 지성소의 가운데에 가로막혀져 있는 이렇게 담으로 형성되어 있는 그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완전히 찢어지는 일을 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바로 제사장이 된 우리를 바로 하나님의 은밀한 하나님의 거처가 있는 그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도록 모든 기틀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우리 지금 그리스도 안에 믿는 이들은 이 제사장들 그리고 제사장들 나라인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이제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거처안에 거할 수가 있다 라는 의미에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구약은 이런 것들에 대한 설명에 대한 과정들이라면 신약 성경은 하나님 안에 우리 제사장 나라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가 하나님안에 거할 수 있다라는 것을 이렇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성경 말씀입니다.
그것이 요한일서 4장 13~15절에 이 말씀이 기록돼 있어요.
13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14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15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여러분 이게 참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요한일서 3장 24절 말씀도 한번 읽어 볼까요 24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요한 일서 2장 6절도 한번 읽어볼까요.
6. 하나님 안에 있다고 하는 사람은 자기도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과 같이 마땅히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7.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은, 새 계명이 아니라, 여러분이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입니다. 그 옛 계명은 여러분이 들은 그 말씀입니다.
8. 나는 다시 여러분에게 새 계명을 써 보냅니다. 이 새 계명은 하나님께도 참되고 여러분에게도 참됩니다. 어둠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9. 빛 가운데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는 사람은 아직도 어둠 속에 있습니다.
성육신 하신 하나님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인간이 하나님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누림의 장소로서 하나님의 집인 그 장막을 통하여 상막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처를 통하여
우리의 거처가 되게 하시고 우리의 집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거처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이렇게 신앙생활을 통하여 삶을 생애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진정으로 경배 받을 수 있고 그리고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한 이런 교제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좋은 것을 온전히 우리가 누리고 하나님을 접촉하는 일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야 될까요.
이러한 삶에 이 하나님이 원하는 그러한 삶 하나님의 거처 안에 들어오기 위해서 하나님의 그 생명 되시고
우리에게 좋은 곳의 모든 것이신 그러한 그리스도를 온전히 누리게 하는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온전한
경배를 해야 됩니다.
온전한 경배를 하기 위해서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는 그런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고 그리고 좋은 것의 모든 것이신 그리스도를 누리게 하고 그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경배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거룩한 삶입니다.
바로 레위기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계시는 어떻게 하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라는
그러한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어서 하나님의 거처에 들어가며 그분의 영원한 분깃을 그리스도 를
통해서 누릴 수가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레위기 말씀입니다.
우리는 창세기의 말씀을 통해서 그리고 출애굽기와 레위기에 있는 말씀들을 통해서 창세기에는 창조 얘기를
하고 있죠 그러나 타락을 하여서 죽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창세기 끝에 말씀입니다.
요셉이 이집트에서 뼈가 입관되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출애굽기를 통해서 이 반역함으로 말미암아 타락하여서 잘못되어진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죽음과
죄와 사망 안에 거하게 되어 있는 종살이와 노예살이를 하고 있는 사단의 도구화된 인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전을 하나님의 거처가 만들어져야 되는데 그래야 접촉하고 교제하며 교통하며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분깃을 나눠가지게 할 수가 있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죄가 완전히 제거되는 구약에서는 속죄함
죄가 덮어지는 그 일들 속죄 곧 실체이신 그리스도의 구속의 길로 나아가게 해야 하고 그 구속의 길을 나아가게 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하나님의 거처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이 레위기 에서는 일상생활의 삶을 살고 있는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게 하시려는 것이 바로 레위기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땅 위에 하나님의 거처를 갖는 것뿐만 아니라 그 거처를 하나님이 변화된 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처를 소유함과 동시에 그들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그리스도의 온갖 좋은 것들을 누림으로 말미암아 야곱처럼 개인적인 야곱 전체적인 이스라엘 여호와의 군대로 표현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을 표현하고 하나님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권위를 드러내고 하나님을
통하여 세상 모든 것들을 다스릴 수 있는 그러한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계시로 나타낸 책이
바로 레위기의 말씀입니다.
이 출애굽기에서는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높은 시내산에서 말씀하셨지만 레위기에서는 하나님이 출애굽을
통해서 지으신 장막인 하나님의 성막에서 회막에서 말씀을 하십니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은 일반적으로 창세기를 통해서 간혹 가다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특별히 야곱을 통해서 그들을 만날 때는 간헐적으로 육체로 나타난 이 천사와 성육신 하기 전에 그리스도께서 땅에 있는 사람들인 아브라함과 야곱을 이렇게 만나러 오셨지만 창세기에서는 바로 사라지는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높이 3층천에 계셨던 그 하나님이 이제는 점점 아래로 아래로 인간과 접촉하기 위해서 내려오는 장면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창세기에서는 일반적으로 이렇게 계시로 말씀하시는 그리고 간헐적으로 사람들을 방문하고 그리고 사라져버리는 하나님을 볼 수 있지만 출애굽기에서는 높은 산인 시내산에서
모세와 만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레위기에서는 지어진 그 성막 곧 인간과 하나님의 만남의 장소인
회막 안에 계셔서 사람들과 이렇게 교제를 나누십니다.
높이 계셨던 하나님께서 점점 땅으로 아래로 내려오는 장면 급기야 2천년 전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 땅 베들레헴에 이렇게 내려오신 그 장면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볼 수 없는 하늘에 계셨던 분입니다.
그러나 출애굽기에서는 그 하늘에 계셨던 그분이 이 땅에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게 하는 조성하게 하기 위해서 모세에게 성막의 청사진을 계획도를 모세에게 자세에게 가르쳐주기 위하여 시내산으로 내려와서 40일 동안
이렇게 머무시는 것을 반복적으로 이렇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레위기에서는 그 만들어진 하나님의 회막 하나님의 성막 안에 계셔서 회막 안에서 성막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레위기 1장 1절에 보면은 이게 하늘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도 아니고 시내산 높은 산 꼭대기에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창세기에서 하늘에 계셨던 그분이
출애굽기에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던 그분이 레위기 1장 1절에서는 여호와께서 모세를 부르시고
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얼마나 가까운 얼마나 우리와 하나되게 하기 위해서 가까이 내려오신 하나님이십니까
예 레위기에서는 하나님께서 회막 안에 계셨습니다.
이 레위기 회막에서 말씀하셨던 그분이 이제 교회 하나님의 거처인 하나님의 장막인 주님께서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그 교회 안에서 하나님은 이제 항상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교회를 우리가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그 옛날 구약 성경에서의 성막과 회막은 지금 이 시대에 그리스도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성령님이 되신 이후에 우리에게 교회라는 것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항상 있습니다.
하나님이 교회 통해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교회를 통해서 우리와 교제를 나누시고 교회를 통해서 이렇게
하나가 되길 원하십니다.
성막이 회막이 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그곳이 바로 회막입니다.
그러나 성막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장막과 그 모든 기구들만 그곳에 있는 곳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거처를 비슷하게 모방을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있느냐 없냐에 따라서
이것은 결코 모방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하심은 교회를 통해서입니다.
선교회 또한 마찬가지죠 교회와 선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하심은 유일합니다.
이 교회를 통해서 전적으로 하나님이 이렇게 자신을 드러내시고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성막 곧 회막으로 하나님과의 인간과의 교제가 있는
하나님의 거처인 교회로 항상 발걸음을 인도 받아야 될 것입니다 .
만약에 하나님이 말씀하심이 없다면 그 교회는 하나님의 거처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거처 하나님의 성막 하나님의 이 집이 귀중하고 우리가 존귀하게 여기는 것은
그 안에 화려함 때문이나 어떤 큰 규모 때문 높이 솟아 있는 건물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 하나님의 말씀하심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귀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이 출애굽기 에서는 하나님의 어떤 공의를 표현하는 율법에 기초한 어떤 그 타오르는 가시나무 떨기 위에
타오르는 어떤 불꽃의 모양이 있었다면 하나님 불꽃의 모양은 하나님의 공의를 표현하는 율법의 기초하는
것이 바로 타오른 불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레위기에서는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는 이 그리스도의 구속에 근거한 무한한 은혜가 있습니다.
거기는 불꽃이 있었다면 레위기에서는 이 속죄 계속 제물이라는 제사 의식을 통하여 제물이라는 것을
통하여 속죄 곧 죄가 덮어지는 곧 실체이신 구속의 그리스도의 구속에 근거한 한량없는 은혜가 그곳에 잠재되어 있습니다. 무한한 말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구속에 근거한 은혜들이 그곳에 감춰 있습니다.
출애굽기에서는 계속 불꽃이 타오릅니다.
그 불꽃을 볼 때 우리는 두려움과 무서움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율법이 선포되었으며 하나님의 공의가 바로 그때 입증되어졌습니다.
그러나 레위기를 통해서 그 성경 말씀들을 통해서 보여지고 있는 것은 어떤 두려움과 무서움에 타오르는
불꽃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는 하나님의 공의의 표현이 아니라 제물들로서 번제 속죄제 속건제 그리고 화제
이러한 이런 어떤 제물들을 통해서 죄가 덮어지고 실체이신 그리스도의 구속 완전한 제거를 위해서 죄가 제거되고 사라지는 그것의 전 단계인 속제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라는 것이 아주 중요한 계시의 내용입니다.
레위기에서는 실체이신 그리스도의 구속을 나타내기 위해서 속죄를 계속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죄를 제거하기 위한 죄를 사라지게 하기 위한 속죄의 방법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출애굽기에서는 정죄하는 율법을 보여주고 있지만 레위기에서는 정말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내지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가 감춰져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출애굽기에서 보여주는 불타오르는 어떤 불꽃이 아닌 두려움과 무서움이 엄습해오는
그런 불꽃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긍휼로 표현된 무한한 은혜를 드러내기 위해서 속죄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물들을 통해서 죄가 덮어지는 방법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출애굽기에서는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만 레위기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은혜
가운데서 이일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자신의 구속된 백성들에게 베푸신 유일한 은혜이신 하나님의 임재가 바로
이 속제의 제물이 되신 번제가 되시고 속건 제물이 십자가를 통하여 보여주신 번제요 십자가의 제물을 통해서
보여주신 속죄 제요 그리고 속건제요 화제 이 제물의 실체가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하나님의 유일한 구속의 은혜이신 하나님의 임재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유일한 은혜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출애굽기에서 나오는 타오르는 불꽃 가운데 나타내신 하나님은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고 막 천둥 소리와 번개 이런 것들 통해서 사람을 정말 공포 가운데 이렇게 처해 있게 하였지만 레위기에서의 보여지는 하나님의
임재이신 그리스도의 구속은 그때 구약에서는 속죄했죠 속제 곧 그리스도의 구속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점점점 쉽게 교통하고 교제하고 접촉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레위기입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두렵고 무서운 하나님이셨습니다.
감히 그분께 가기 위해서는 너무나도 큰 제약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까이 가지 못했지만
레위기에서의 그 제사장을 통한 드려지는 그 제물들의 실체이신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하여 사람들은
제사장과 대제사장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점점 가까이 접근하게 하고 말을 듣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게 하는 일이 있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레위기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 교통을 나누고 접촉하고 가까이 지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거처에서 일을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 거처에서 그분과 그 하나님과 함께 먹고 하나님과 함께 즐기고 친밀하게 교제하고 교통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너희가 이러이러한 삶을 살아야 된다라는 것이 바로 레위기에서의 계시의 말씀입니다.
그분과 아주 가깝게 친밀하게 아무 제약 없이 방해 받지 않고 온전한 교제를 나눌 수 있도록 하게 하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특별한 음식이신 그리스도 제물 대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온전한 교통과 교제를
나누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처 안에서 하나님의 거처는 누구죠?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의 음식은 누구죠? 제물되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처이신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음식이신 하나님의 제물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전한 기쁨과 즐거움과 만족을 하나님께 드려서 하나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편안한 그 하나님의 그 사귐 안에서 우리가
평안을 누리기를 원하는 것이 이러 이러한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이 바로 레위기 속에 나타난 말씀이다 라는 것을
끝으로 말씀을 드리면서 이 레위기 의 대략적인 내용을 1부 교제의 시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2부 부터는 더 구체적이고 그 방법을 상세하게 풀어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
첫댓글 레위기의 개괄적인 내용의 말씀을 정리 하였습니다 뒤에 연이어 올려질 구체적인 내용들을 이해 하실려면 개괄적인 내용을 먼저 숙지 하시고 보시면 도움이 되실것 같아 건너 띄울까 하다가 올려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