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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녕서포구에서 출발하여
제주해녀박물관까지 이어지는
17.6킬로미터, 난이도는 '중'이다.
21코스가 시작되는 제주해녀박물관이다.
무심코 지나치며
시작점 표지석을 보지 못했다,
도로를 조금 지나면
세화리 해변에 닿는다.
바다에 잠긴 하얀 모래가 길게 뻗어있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부족한 여름을 아쉬움으로 즐기고 있다
사진틀 뒤 그라데이션을 보여주는
바다가 멋지다.
바다에 테왁을 던져넣은 해녀가
물속으로 들어간다.
너무나 투명한 모래해변 물속에
무언가 잡을 것이 있을까 싶은데...
바닷가 갯바위에 올라선 두 여인은
사진으로나마 시간을 붙잡고 있다.
12시를 넘어서고 있다.
지난 밤 과식하여 아침을 걸렀더니
몹시 시장하다.
배를 채우려 잠시 코스를 벗어나
구좌읍사무소가 있는 세화리를 찾는다.
시내 구간 도로 변에 추모 표지석이 서있다.
'세화지서 추모 표지석'.
1948년 4.3당시 무장폭도 사 십 여명이 난입,
지서를 점거하고 총기와 실탄을 탈취하고
근무중이던 경관에게 상해를 입힌다.
1948년 12월에는 폭도 110 여명이
당시 우익마을로 분류되던 이 지역을 습격하여
주민 오 십 여명을 집단 학살하고
피아간 사상자가 발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당시 순직한 경찰과 주민을 추모하기 위해
기념비를 세웠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무심한듯 흘러간다.
그 속에서 사상은 잔인하다.
생각이 틀리다고 서로 죽이고 해하는,
그 과정에서 집단으로 죽어간 무고한 생명들은 애닲다.
다시 코스로 돌아가는 길,
도로 너머 바다는 역시 청정으로 유혹한다.
그 속에 담긴 온갖 오물과 오욕은
티끌처럼 흔적도 의미도 관심도 없다.
'세화민속오일장'이다.
장 서는 날이 아니라 휑하다.
해안쪽 바다 사이 드러난 모래톱에
사람 몇이 보인다.
평안을 불러 일으키는 풍경이다.
'세화해녀잠수촌' 너머
'세화포구'가 보인다.
출입을 막아놓았다.
올레화살표는 그 너머 방향을 가르킨다.
안내문에는 사유지로 표시하고 있지만
옆으로 돌아 들어간다.
'벵듸길'이다.
'돌과 잡풀이 우거진 넓은 들판'을 뜻하는
제주도 방언이다.
그 이름이 무색하게 잘 정비되어,
돌은 밭담으로 들판은 깨끗한 밭으로 일구어졌다.
모래언덕을 지난다.
아주 오랜 옛날에는
이곳이 바다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방금 지나온 사구, 벵듸길을 돌아본다.
다시 마을과 밭길을 지나
바다에 닿는다.
평대리해변이다.
이내 해변을 벗어났다가
머지않아 해안도로에 오른다.
다시 해안을 빠져나와
숲으로
밭으로 길이 이어진다.
수확이 한창인 밭을 지나
동산에 설치된 연대에 다다른다.
'좌가연대'다.
오름 정상부에 세워진 봉수와 달리
연대는 해안가 구릉에 세웠다.
해안을 감시하고 유사시 봉수를 피워
위급상황을 중앙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풍력발전기가
큰 키를 한껏 자랑하며
아주 넓은 단지를 이루고 있다.
포장도로를 빠져
밭 사이 샛길로 올레가 안내한다.
옛스런 작은 밭담길이 정겹다.
행원리 마을길로 접어든다.
해안 뒤 벌판으로 길이 이어지고
다시 해안가로 닿아
길은 계속 이어진다.
'행원포구'다
갯담을 쌓아놓은 듯
바다에 긴 돌담이 보인다.
월정마을로 들어선다.
학생으로 보이는 무리가 보인다.
아마도 뭍에서 수학여행을 온 것으로 보인다.
중구난방이던 학생들이
하드를 사준다는 선생님 말씀에
일사불란하게 모여드는 모습이 재미있다.
월정리해수욕장이다.
많은 사람들이 차마 바닷물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모래사장 위에서 청정한 바다를 눈과 마음에 담고있다.
적어도 오늘 하루는
깨끗한 생각, 밝은 생각만 할 수 있는 힘이 될게다.
친구끼리 놀러온 것으로 보이는 일행이
모래찜질하는 친구 위에 앉거나 엎드려있다.
본래 명칭인 '무주포'가
1907년 '월정'으로 바뀐 유래가 있다.
한학자 두 사람이
테우를 타고 달 밝은 밤 뱃놀이를 나갔다가
바라 본 마을이 반달 모양 같다하여 '월정'으로 부르게 되었다.
월정해변의 옛 이름은 '한모살'이다.
'크고 넓은 모래밭'이라는 뜻이다.
예로부터 멸치잡이로 유명했던 곳이다.
눈에 들어오는 안내문이 보인다.
'수영위험 안내문'.
'이 지역은 해수욕 비지정 해변으로
물놀이 이용시 이용객 스스로 안전사고 등에
유념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주의문이다.
다시 마을길로 들어가
바다를 멀리두고 둘러간다
잠시 해안도로로 나섰다가
다시 해안가 들판으로 길이 이어진다.
역방향으로 걷는 중이니
20코스 시작점 까지 5킬로미터 남았다.
의리의리한 청기와 건물 수 동이 보인다.
특색있게 지은 리조트건물인가 했는데
제주 동부하수처리장 건물이다.
그 아래 '제주 밭담 테마공원'이 있다.
양쪽으로 뚫린 출입구가 있지만
막상 정낭은 출입을 막고있다.
양쪽에 큰 돌을 두고
그 가운데 작은 돌을 넣어 넓게 쌓은 '밭담'이다.
돌이 많이 나오는 밭에 주로 쌓았다.
맹지인 토지로 드나드는 길로 쓰여
이웃에 대한 배려가 깃들어있다.
한 줄로 걸치듯 쌓아 곳곳에 구멍이 생기는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외담'이다.
아래쪽에 큰 돌을 놓고
위에 작은 돌을 놓는 형태다.
이외에도 아래쪽에 작은 돌을 쌓고
그 위에 외담처럼 쌓는 형태인 '잡굽담'이 있다.
개간한 땅이나 경사가 심한 토지 경계부분 흙이
비에 쓸려 내려가는 방지한다.
'통시'라고 부르는 제주도 전통 화장실이다.
돼지우리를 겸하고 있어
'돗통시'라고도 한다.
바닥에 짚을 깔아 돼지분뇨와 함께 삭혀
밭에 거름으로 사용했다.
'작지왓'이다.
자갈을 뜻하는 작지에 밭을 뜻하는 왓이다.
즉 자갈밭을 이르는 말이다.
자갈이 많아 경작하기는 힘들어도
자갈이 수분을 머금어 농작물 성장에 도움이 된다.
서산으로 지고있는 해가
렌즈에 퍼져 색을 바래놓았다.
산소, 무덤을 둘러 쌓은 '산담'이다.
마소의 침입을 방지하고,
들불에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쌓았다.
일반적으로는 사각형의 겹담으로 쌓았지만
둥근 외담으로 쌓기도 한다.
화산섬 특성 상 잘게쪼개진 돌이 많았다.
집을 짓거나 땅을 개간하면서 나온 돌을
담으로 쌓았다.
특히 땅을 개간하면서 나온 돌을 이용한 농업시스템은
바람을 걸러내고, 토양 유실을 막고,
가축이나 짐승의 침범을 막고, 수분을 머금는 등
척박한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는 지혜가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2013년 '국가 중요농업',
2014년 유산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세계중요농업유산'에 등재되었다.
세계적으로 보전, 전승할 가치가 있는 전통농업시스템을
발굴, 심사, 등재하게 된다.
2014년 '청산도 구들장 논'과 함께 등재되었다.
제주 전역의 밭담은
약 이만 이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공원 앞 해안이다.
완만하고 얕은 수심과
자연 갯바위가 사방을 둘러 물결이 잔잔하다.
바닥이 보이는 '투명 카약 체험장'으로
마을에서 유료 운영하고 있다.
화산이 급속히 식으면서 만들어진
거북등절리다.
바다로 뻗은 너럭바위, 빌레 위
곧게 뻗은 실루엣이 보인다.
가까워지니 돌탑이 구분된다.
바위 표면이 조각퍼즐처럼 갈라져있다.
용암이 땅위를 흘러가다 온도가 낮아져
앛부분이 먼저 굳으면
뒤에서 흐르던 용암이 앞으로 흐르지 못하고 부풀어
언덕처럼 솟으면서 만들어지는 것이 빌레다.
용암이 식으면서 부피가 줄어든 형태가
4각형 또는 6각형 형태를 만드는데
거북등을 닮았다하여 '거북등절리'라고 부른다.
거북등절리 위,
초원을 이룬 언덕에 돌탑이 수백기 서있다.
해안 풀밭으로 길이 이어진다.
해안가에 길고
제법 높은 돌담이 서있다.
삼별초군의 항몽유적,
환해장성이다.
바다를 둘러 쌓은 장성으로
'제주의 만리장성'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최초 고려 관군이 삼별초군을 막으려 설치했지만
제주도를 장악한 삼별초군이
여몽연합군에게 항쟁하기 위해 수리, 증축하였다.
이후 조선시대 말기까지
수리, 증축되었던 기록이 확인된다.
제주도 해안을 따라 약 120킬로미터,
300리에 달하였지만 상태가 양호한 곳은
제주도기념물로 지정, 관리하고있다.
지리산, 영주산, 산방산, 청산과 더불어
제주도의 5대 산이라고 부르던 산이 두럭산이다.
하지만 두럭산은 이 앞바다에 잠겨있다.
밀물 때에는 잠겨있고
썰물 때 잠깐 드러나는 커다란 바위산이다.
음력 3월 보름 날, 온전한 모습으로 떠올라
그 신비를 더한다.
한라산에서 걸출한 장군이 태어날 때
그 장군이 탈 용마가
두럭산에서 나올것이라는 전설이 있다.
또한 설문대할망이
한라산과 성산에 두 발을 딛고 앉아
두럭산을 빨래판 삼아 빨래를 했다고도 전해온다.
환해장성 안으로 길이 이어진다.
일부구간에 말이나 도보로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든 길로
회곽도라고 한다.
서해로 넘어가려는 해가
바다와 가까워졌다.
덩개해안으로 올레가 들어간다.
우천시에는 반드시 우회하라는
주의 안내문을 세워놓았다.
조금 전 지나온 길을 돌아본다.
해안으로 걷는 길이 편안하게 나있다.
건너편 바다로 뻗은 김녕항 방파제와
안쪽으로 김녕해수욕장, 세기알해변이 있다
올레는 초원 풀밭으로 이어진다.
김녕항방파제가 보이고
왼쪽 해안으로 풍력발전기가 연이어 있다
해안 석축 위 갖가지 원색 차단봉이
길을 안내한다.
김녕해수욕장으로 더 알려진
김녕성세기해변이다.
모래유실을 방지하는 천을 씌워놓았다.
모래가 바람에 날려
도로와 마을길 덮는 것을 방지한다.
깨끗한 모래사장과 바다가 불러모은 사람들이
제법 보인다.
방파제와 덩개해안이
강하게 몰아치는 파도를 진정시키는 작용을 한다.
김녕해수욕장 인쪽에 있는 세기알해변이다.
김녕리 마을길로 들어선다.
돌담을 두른 '제주돌집'이다.
'제주 GEO하우스' 명패를 달고있다.
'이 곳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지질 테마 숙소
'지오 하우스'입니다.'는 설명이 있다.
오른쪽에 구멍 난 화산석을 소재로한
조형물이 보인다.
바다에 닿을듯한 해안가 집이
보는 이에게는 위태롭다.
'김녕서포구', 이름이 무색하게
감싸안는 방파제가 없고 넓다.
그 앞에서 오늘 여정을 마무리 한다.
스마트폰 앱으로 대중교통을 검색하니
1시간 40분 에서 2시간 10분대 조회된다.
실제 환승을 포함한 버스시간이 맞지않으면
더 길어질수 밖에 없다.
동료들이 배려해 줘
김녕해수욕장에서 기다리고 있다.
연락하여 20코스 시작점 표지석에서 만나
편안하게 숙소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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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랫만에 들어와서 차장님 글 쭉 읽고 복사도 해놓았습니다..이제 방학기간동안 나도 멀리 좀 나가 볼랍니다...ㅎㅎㅎ
파르라니님의 올레길 기행이 많은 자료가 되겠습니다
인간의 사소한 감정을 초월하시고 변함없는 끈기에 감동이됩니다
수고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