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조궁(東照宮)>
닛코(日光)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묘소와 사당 도조궁(東照宮), 한중일 왕들의 세계관과 백성에 대한 태도를 비교해볼 만한 곳이다. 엄청난 크기와 화려함으로 사람을 압도하는 중국과 일본의 왕릉 문화와 아담한 봉분에 고향의 억새를 심어 보통 사람의 마음을 보여주는 동구릉 태조릉이 얼마나 다른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왕릉 위세를 보니 백성 노릇의 고단함이 먼저 떠오른다.
1.방문지 대강
명칭 : 日光東照宮
위치 : 〒321-1431 栃木県日光市山内2301
입장료 : 2,400엔(보물관 포함) 경로할인 없음
방문일 : 2023.8.28
2. 둘러보기
*찾아가기
복잡한 방법으로 찾아갔다 도쿄역에서 신간센을 타고 오쓰노부야시?에 가서 다시 전철을 타고 일광역에 내렸다. 화장실에 간 사이 버스가 가버려 가까스로 택시를 타고 갔다. 구경을 다하고 돌아오려는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소나기였다. 양산으로 처마밑에서 비를 피하다고 택시타는 곳에 갔으나 비가 오는 오후여서인지 택시가 하나도 없었다.
버스를 타려 걸어내려왔는데, 버스정류소에 또한 버스도 시간 안내문도 없었다. 30분 정도 기다렸을까. 지나가는 택시가 손님이 있음에도 태워줬다. 일광역에서 다시 거꾸로 전철타고 만두의 도시로 돌아가 동경 신간센을 타고 돌아왔다. 오늘은 만두와 도조궁 관람으로 채워진 하루였다.
* 관람
극도로 화려한 묘소 일원, 화려할 뿐만 아니라 도조궁이 전국에 500개나 되었다니 생전이 그의 시대였을 뿐만 아니라 사후에도 일본 전역을 그의 영역이었고, 일본 역사가 그의 시대가 되었다. 메이지유신까지는 그의 시대였다. 새 울음소리를 듣기 위해 새가 울 때까지 기다렸다는 도쿠가와 이에야쓰, 임진왜란 조선파병을 거부하고 때를 기다린 그가 불모지 에도로 이주해야 했을 때도 담담히 받아들이고, 오히려 에도를 세계의 중심으로 바꾸어 놓고자 했던 저력과 지혜와 끈기가 신사와 묘소로 나타나 지속되었다.
일본은 화장을 하므로 도조궁 뒤의 묘소는 간소하지만 그 위패를 모신 사당과 신사는 피라미드나 타지마할과 견주어야 할 정도로 웅장 화려하다. 중국 황제의 묘소는 웅장하지만 이처럼 화려하지고 섬세하지는 않다. 장인 1만 5천 명과 인력 450만 명을 동원해 만들었다는 도조궁은 거꾸로 일본에서 백성은 얼마나 아무것도 아니었는지를 보여준다. 전쟁이 없어도 이렇게 동원되어야 했다. 조선 정조는 수원 화성을 축조하면서 인부에게 품삯을 지불했을 뿐만 아니라, 아프면 약도 지어 주었다. 둔전을 일구던 소들을 무상분배하여 수원갈비의 기원을 이루었다.
일본의 백성들은 눈 귀 입이 없이 살아야 하고, 살라고 지정해 준 곳에서 지정해주는 방식대로만 살아야 했다. 드러난 생활 뿐 아니라 숨은 생각까지도 통제 당했던 백성의 삶을 화려한 사당의 원숭이 모습에서 확인한다. 지진과 화산은 자연재해지만, 이것은 도리어 더 피할 수 없는 인재이다.
손바닥만한 공간에서 차 한잔으로 마음을 다스리며 전쟁 전에 마음을 가다듬었다는 무사들의 긴장과 수양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던가. 농민과 적을 베는 긴 칼과 내 목을 베는 할복용 작은 칼을 차고 다녔던 무사들도 행복하지는 못했을 터. 과연 누가 행복했을까.
2-1.소개
1617년 건립되었으며, 처음에 구노잔 도쇼구에 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유골이 긴 행렬 끝에 이곳에 안장되었다. 도쿠가와 막부의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 때 크게 확대되었다. 에도 시대에 에도 막부는 닛코 가도를 따라 에도에서 닛코 도쇼구까지 장엄한 행렬을 거행하였다. 오늘날에도 이를 재현하는 천인무자행렬(千人武者行列)이 거행된다.
닛코 도쇼구의 8개의 건축물이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있고 34개의 건축물이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있다. 또한 신사에 있는 두 개의 검은 국보로 지정되어있고 그 밖에 다른 유물들이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있다. 도쇼구의 유명한 건물은 화려하게 장식된 양명문(陽明門)이다. 두 번째 문인 당문(唐門)은 흰 장신구로 장식되어 있다.
닛코 도쇼구를 방문하면 여러 가지 건물에 다양한 동물들을 볼 수 있다. 당문 주변에는 히다리 진고로가 만든 잠자는 고양이가 조각되어있으며 평화로움을 상징한다. 신사의 마구간에는 세 원숭이의 8개 부조 그림이 조각되어있다. 원숭이는 말을 수호하는 동물로 알려져있다. 8개의 그림에는 원숭이의 일생이 그려져 있고 이것은 인간의 평화로운 생활 방법을 나타낸다고 한다. 이들은 나쁜 것은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가르침을 전달하고 있다.
수 백개의 계단은 삼나무 숲을 거쳐 이에야스의 무덤까지 이른다. 도리이 현판의 글씨는 고미즈노오 천황이 쓴 것이다. 5m 높이의 청동탑에는 이에야스의 유골이 담겨있다.(위키백과)
2-2
동조궁(東照宮 도쇼구)은 일본의 센고쿠를 통일하고 에도 막부를 세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위패를 모신 신사 및 사당이다.
1616년 이에야스가 세상을 떠나자 닛코에 웅장한 도쇼구를 건설하고 이듬해 그 유골을 안장하였다. 이후 일본 각지에 그의 위패를 모신 도쇼구가 속속 세워져 에도 시대에는 그 수가 500여개소에 이르렀다. 메이지 시대 초기에 상당수의 도쇼구들이 철폐되거나 통합되는 수난을 겪었고, 무녀들도 추방되었다. 어떤 것은 세월이 다소 흐르면서 복구되기도 했다. 현재 남아있는 도쇼구는 130여개소 정도이다.(위키백과)
2-3.
*도쿠가와 이에야스
일본의 마지막 바쿠후인 도쿠가와 바쿠후[德川幕府 : 1603~1867]의 창시자. 본명은 도쿠가와 다케치요[德川竹千代]. 아시카가 바쿠후가 세력이 약해져 군웅할거하는 1세기에 걸친 혼란시대를 종식시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켰다가 사망하면서 국내에서 힘을 비축한 이에야스는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로 강력한 정적들을 제압하고 일본을 통일했다. 그리고 자신의 근거지 에도에 바쿠후를 열고 정치체제를 안정시켰다. (다음백과)
*눈을 막고, 귀를 막고, 입을 막고 있는 3마리 원숭이 조각.
번잡한 세상사 듣지고, 보지도, 말하지도 말면서 초연하게 살라? 사실은 명령 대로 살라는 강압의 표현 아닌가. 일본 사람은 대체로 평생 직업도 소속회사도 안 바꾸고 심지어 대를 물려서까지 지속하면서 습명이라는 습속으로 이름까지 대물림하기도 한다. 정해준 대로 당대는 물론 대대로 살면서 내 삶의 결정권을 다른 사람에게 내주는 것을 인정한다.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봉사 3년같이 힘겹고 어려운 삶을 참고 견뎌야 한다는 보통 인간의 삶을, 혹자는 인고의 세월을 견디면서 일본 천하를 차지한 도쿠가와 이에아스의 삶을 상징한다고도 한다. 어떤 의미라 해도 자연스러운 삶과는 대조되는 삶이다. 외부든 내부든 통제에 익숙한 삶을 살라는 주문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니 보는 사람도 편치 않다.
묘소
도리이
도리이 뒤쪽 가운데 건물이 오모테문
참관권 판매 매표소
오중탑. 이 5층탑은 1650년에 다이묘가 기부해 세워졌으나 화재로 소실되어 1818년에 재건되었다. 각층은 "흙", "물", "불", "바람", "하늘"을 각각 나타낸다. 에도시대 후기의 공법으로 지어져 지진이나 바람의 진동 조절 기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매표소
오오테문
오모테문 뒤쪽의 신큐사의 산자루. 신큐는 신마가 있는 마구간. 이에야스를 태운 승마가 신마로 지정되었다.
일본에는 원숭이가 말의 건강안전을 지킨다고 하는 신앙이 있다. 원숭이 조각 중 귀와 입, 눈을 가린 ‘미자루.이와자루.기카자루’의 ‘산자루’가 유명하다.
유명한 원숭이 일대기 조각
원숭이 일대기
양명문
양명문. 국보 '요메이문’이다. 높이 11미터, 508체의 조각으로 덮여져 있다.
#일본가볼만한곳 #도꾸가와 이에야스 #동조궁 #니꼬도조궁 #도조궁 #도쿠가와이에야스사당 #일본쇼군릉 #왕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