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거두어도 큰 보상이 되지만 ..
마을의 아이들이 거두어 갈 때 얻는 보상도 만만치 않다.
여름들살이 둘째날이 밝았습니다.
평화랑에서 자고 일어난 아드님들은 아침을 먹고 배움터로 출발합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은
마을의 정겨운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만나뵙기로 한 날입니다.
붓글씨를 멋지게 쓰셔서, 전시관을 여시는 '김장수' 할아버지
명절 때, 김 맬 때 노래를 구성지게 불러, 다른 이들을 흥겹게 해주시는 '이옥춘' 할머니
음식을 정성껏 또 맛나게 만들어 이웃들을 즐겁게 해주시는 '안동식' 할머니 를 만나뵈러 갈거에요.
그에 앞서,
하루를 열며, 고운노래로 시작해요.
그리고 오늘 어떻게 보낼지 이야기 듣고,
마지막으로 어르신들에게 선물할 노래와 춤을 연습하기로 했지요.
모두 일어나서 마음을 모아 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우리를 초대해 주셨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 없지... 멋진 모습을 보여드려야지... ^^
마음을 한데 모아 연습하니.... 우리 들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먼저 춤을 익힌 혜윤이를 바라보며,
'얼굴찌푸리지 말아요' 노래와 춤을 익혀 봅니다.
진지하게 바라보고, 익혀가는 표정들을 담아 보았어요.
자, 그럼 선물도 준비했고...
마을 어르신들 만나뵈러 .. 출발 ..
청솔내(청량2리) 마을 전시관을 먼저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려 주시는 '김장수' 할아버지 (청량골 할아버지)
몇 년 전에 우리 친구들에게 서예도 가르쳐 주셨었지요.
청량골 할아버지는 마을의 박선수 할아버지와 함께 그동안 작품들을 모아 작은 마을 전시관을 열었어요.
작품도 많이 걸 수 없다보니, 작품들을 작게 만들어 여러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드셨다고 해요.
노자의 도덕경
명심보감
동경대전
이해인 수녀님의 글귀
안창호, 윤동주 등
마음에 새길 수 있는 글들을 담아 예쁜 붓글씨와 서각으로 만드셔서 전시하고 계셨어요.
특별히 명심보감의 일부를 우리 친구들과 나누고 싶다고 하셔서,
오늘 나날 선생님으로 함께 하신 정호선생님의 묵직한 목소리로 들어 보았습니다.
'통일을 염원하는 시'는 직접 지어 붓글씨로 쓰셨는데,
(원래 자랑을 안하시는 분이라 제가 대신 자랑하면.. 통일부장관상 받으신 작품이랍니다.)
글도 직접 읽어주셨어요.
"
여보게
언제까지
문 닫아
걸 건가
녹쓴
철조망
걷어버리고
서로 왕래하며
살아 보세나
평양에
대동강
모란봉도 가보고
제주에
한라산 백록담도
궁금하지
않나
남북의
꿈
꼭 이루어
보세
"
작품을 다 둘러 볼 무렵에
선물을 주고 싶으시다고
화선지를 하나 쫙 펼치고
벼루에 먹물을 붓고
글을 직접 써주셨어요.
한 획 한 획 그을 때 마다 아이들의 감탄이 이어집니다.
수십년 써 온 붓글씨의
그 무게가 느껴지시나요?
아래 영상과 함께 보시죠.
이런 아름다운 글씨를 써주시고는 저희 들 보고
"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 주위에 학생들 이름을 적어도 좋고, 쓰고 싶은 것을 쓰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진짜 작품이라고...
주저 주저
머뭇 머뭇 하던 학생들
이내 붓을 들어 조심스레 자기 이름을 적어 봅니다.
한 참 동생인 발해는 발도장을 쿵 찍고, 샘이도 자기 이름을 엄마와 함께 써 보지요.
아름다운 작품과 직접 붓글씨를 작성해서 써주시는 시현까지 보여주시고,
학생들과 함께 멋진 작품을 만들어 주신 청량골 할아버지께 다시한번 '고맙습니다.!'
이어 찾아간 곳은
청솔내(청량2리)마을 노인정이에요.
이곳에서 이옥춘, 안동식 할머니와 김장수 할아버지의
살아오신 이야기를 들었지요.
제일 나이가 많으신 이옥춘할머니는 35년 생으로
올해로 88세 셨어요. 안동식 할머니와 김장수 할아버지는 79세
왜정때 부터 광복과 한국전쟁, 보릿고개, 강원도의 추운겨울 이겨내며
이 땅에서 유쾌하고 즐겁게 살아오신 이야기를 들었지요.
이옥춘 할머니는 왜정때 학교에서 숫자만 배우고, 한글은 해방 후에 야학에서 배우셨다고 해요.
15세에 시집와서 한 달 만에 동지사변(한국전쟁을 그렇게 표현하셔요)이 터져 횡성으로 괴산으로 피난 가셨다 돌아온 이야기
추운 겨울에 마을에 마르지 않는 샘물이 하나있어 거기 가마솥 걸고, 빨래삶고, 빨래하던 이야기
옷에 이가 하두 많아서 가마솥에 넣으면 '타다닥' 소리와 함께 구수한 냄새가 올라온다고 하셨어요.
옷도 한벌 가지고 있는게 전부인 아이들이 많아서 단벌치기로 빨래 할 때면, 그냥 벗고 다니기도 하고
빨래도 15일정도에 한번 하니 옷이 그냥 검무튀튀 했다고 ... 그 땐 그렇게 살았다고 하셔요.
김장수 할아버지는
보릿고개 때 미처 여물지 않은 보리 이삭을 따다가 맷돌로 갈아서 죽을 끓여 먹던 이야기
간식으로 개구리 뒷다리 메뚜기, 매미, 잠자리를 감자랑 같이 구워 먹기도 하고
그 때는 정말 먹을 게 없어서 아주어려웠다고 이야기 해주셨어요.
안동식 할머니는
이름이 '동식'이라는 남자 이름 같아서, 어렸을 때 별명이 '돌멩이'였는데 그걸 가지고
아랫집 오빠가 그렇게 놀려서 힘드셨다고 해요. 한 15살 되니까 안놀렸는데,
그 전까지는 "돌멩이 굴러간다" 라는 이야기 듣기 싫어서 아랫집을 지나 내려갈 때는
쏜살같이 뛰어 내려가셨다고 했어요.
또 어렸을 때 '공기'를 그렇게 좋아하셨는데, 어른들이 그렇게 일만 시켜서
어찌나 공기를 하고 싶었는지.. 여기저기 숨어서 하셨다고 해요.
요즘은 늙어서 잘 못하지만, 예전에는 정말 잘하셨다고 해요.
우리 친구들이 '공기'라는 말에 눈이 휘동그래져서
할머니랑 언제 한번 공기해봐야지 .. 생각했던 것 같았어요.
이옥춘 할머니는 명절 때 놀러 다닌 이야기도 해주셨는데
서낭당 나무에 모여 처녀들 새댁들이 놀면
아이업은 새댁들이 뒤에 아기들 모가지가 떨어질 정도로 뛰며 춤추며
노셨다고해요.
그 때 불렀던 노래들, 몇가지 불러 주셨어요.
이야기를 듣고, 노래도 듣고 하면서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한국의 어두운 근현대사를 거쳐 오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식민과 분단, 전쟁으로 인한 배고픔과 가난의 세월들이 힘겨웠지만...
또 마을에서 더불어 살며 유쾌하게 아리랑 고개를 넘어오셨던 것을 들으며 ...
새롭고, 그 때와는 다른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살아가는 데 큰 힘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또 우리아이들이 넘어가야 할 아리랑 고개가 있겠지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깨걸고 신명나게 넘어왔던 고개를 생각하며,
알 수 없는 길 ... 더불어 잘 살며 넘어가길 소망해봅니다.
힘주시고, 영감을 주신 할머니 할아버지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들도 초대해 주신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감사의 선물을 드려야겠지요.
준비해간 춤과 노래, 그리고 직접 만든 모기기피제와 죽염연고를 선물로 나누고 왔습니다.
돌아가려는데, 안동식 할머니께서 어린이들 준다고 수정과 한통을 가져가라고 냉장고에서 꺼내주셨어요.
세상에서 제일 맛난 수정과를 맛 보았는데, 할머니께 이렇게 또 빚을 지고 갑니다.
이렇게 마을 아이들을 아껴주시는 어르신이 있으니 ... 행복한 마을이지요!! ^^
첫댓글 정말 ‘배’우늘 즐거‘움’ 가득한 시간이었겠어요. 만남이 인상깊었는지 들살이 마치고 집에 와서 할머니, 할아버지께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주더라고요. 어린이들에게 소중한 글과 이야기, 노래 선물해주신 마을 어르신들이 건강하게 오래 계셨으면 좋겠네요.
소중한 만남을 했네요.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와 삶이 어린이들이 살아가는 동안 문득 떠오르겠지요? 그때 울림있는 힘이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