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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롯가수 마리아 공식 팬카페 SuperMa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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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언어라는 장벽을 여지없이 깨뜨려서 무의미하게 만드는 마리아의 천재적 언어 능력과 탁월하고 빼어난 노래 솜씨는 모두를 경이롭게 합니다
오원경 M 원주 추천 0 조회 586 23.01.30 10:46 댓글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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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23.01.30 10:47

    첫댓글 오늘 게시물에 올린 뮤직비디오 첫번째와 두번째, 세번째 곡은 가수 신형원 님의 '유리벽', '개똥벌레', '불씨'입니다.

  • 작성자 23.01.30 23:28

    신형원 님은 1958년 생으로, 1982년에 '웃기는 노래와 웃기지 않는 노래'라는 옴니버스 음반으로 데뷔를 했고, 1987년에 전 국민에게 사랑을 받은 음반 2집의 '개똥벌레' 라는 곡으로 MBC 아름다운노래대상 금상을 수상했습니다.
    무학여고와 동덕여대 학사, 단국대대학원 석사 출신으로 1993년에는 한국방송프로듀서상 가수상을 수상했습니다.
    현재는 경희대학교 포스트모던음악과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 작성자 23.01.30 10:48

    네번째 곡부터 여덟번째 곡까지는 추억의 감성을 불러 일으키는 포크 싱어 홍민 님이 부른 '웨딩드레스'와 '고향초', '고별', '석별', '보고싶은 얼굴' 입니다.

  • 작성자 23.01.30 10:49

    1970년대 세시봉 멤버들이 통기타로 여심을 사로잡았던 그 시절, 홍민 님 역시 혜성처럼 등장, 중저음의 애절한 보이스로 많은 사랑을 받았었습니다. 특히 당시 여성팬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는 원조 '오빠부대' 였습니다.  

  • 작성자 23.01.30 10:49

    그의 대표곡 '고향초' '고별' '석별'을 비롯해 인기를 얻은 대부분의 노래들은 아픔과 그리움이 진하게 배어 나오는 것이 그 특징이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홍민 님은 가슴 아픈 가족사를 가지고 있는 가수입니다.

  • 작성자 23.01.30 10:49

    1947년 경기도 화성시에서 교수였던 아버지와 성악가 출신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홍민 씨는 4살이 되던 1951년, 아버지는 가족들을 남겨두고 홀로 북으로 떠났다고 합니다. 1951년 9월 28일 당시 서울대 농대 교수였던 아버지 홍희유씨는 소설가 이문열 씨의 아버지인 이원철 씨 등과 함께 월북을 했다고 합니다. 당시 홍민 씨가 네 살, 누나가 여섯 살 남동생은 겨우 두 살이었다고 합니다.

  • 작성자 23.01.30 10:50

    이후 어머님은 홍민 씨의 누나와 함께 아버지를 찾으러 집을 나섰지만 행방불명이 됐고, 홍민 씨와 남동생은 외가집으로 보내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 역시 경기를 일으키며 죽었다고 합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있었던 일이라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기억과 추억 역시 없었고 홍민 씨는 오히려 담담하게 살아왔다고 합니다. 부모님에 대한 추억이 없기 때문에 그리움이란 감정 역시 막연했다고 합니다.

  • 작성자 23.01.30 10:50

    당시 홍민 씨의 외가집에서는 아버지의 월북 사실에 대해 아무도 입밖에 꺼내지 않았고, 그렇게 비밀로 묻어둔 채 조용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1980년대 중반까지 홍민 씨와 친척들은 아버지의 월북 사실을 숨기며 살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홍민 씨는 해외여행은 물론이며 여권 신청 또한 꿈도 꾸지 못하고 살았다고 합니다. 음악을 전공해 군악대에 들어간 아들이 신원조회에 걸려 문제가 될까봐 가슴을 졸였던 경험도 있다고 합니다.

  • 작성자 23.01.30 10:51

    한편, 일본 유학시절 공산사회주의 사상을 접한 홍민 씨의 아버지 홍희유 씨는 자진 월북하여 북한에서 학자로 인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확인 가능한 저서만 해도 수십 권이 될 정도라고 합니다. 홍민 씨는 아버지에 대해 그저 저서를 통해 1990년대 초반까지 생존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2019년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
    가수 홍민 님의 지난 세월 그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가슴 아픈 가족사입니다.

  • 작성자 23.01.30 10:52

    아홉번째 곡부터 열두번째의 곡까지의 뮤직비디오 영상은 가수 장현 님이 부른 '미련'과 '나는 너를' '석양' 그리고 '마른 잎' 입니다.

    1945년 부산에서 태어난 장현 님은 매력적인 저음과 어딘가 쓸쓸함이 묻어나는 창법으로 1970년대초에 대단한 인기를 누렸던 가수입니다. 장현 님의 본명은 장준기이고 명지대를 졸업하였습니다.​

  • 작성자 23.01.30 10:52

    '나는 너를', '석양', '미련', '마른 잎' 등의 추억돋는 힛트곡을 남긴 장현은 거의 대부분의 힛트곡들을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2017년 한국 뮤지션 최초로 미국 버클리 음대 명예 박사학위를 수여 받음)에게서 받았습니다.
    대구의 호텔 나이트에서 밤무대 가수로 무명시절을 보내던 그는 1970년대초 신중현에게 부탁해 곡들을 받았고, 소위 말하는 신중현사단에서 연대장급의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펄씨스터즈, 김추자, 김정미 등 여자 가수들이 신중현사단에서 맹위를 떨치는 가운데서도 어찌보면 남자 가수로서는 최고의 인기를 사단내에서 누렸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 작성자 23.01.30 10:53

    열세번째 곡부터 열여섯번째 곡까지의 뮤직비디오 영상은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곡들로서
    'Another Brick In The Wall(벽 속의 또다른 벽돌), 'The Dark Side of the Moon'(달의 어두운 저편), 'Wish You Were Here'(네가 여기 있었으면 좋겠어), 'Time'(시간) 입니다.

  • 작성자 23.01.30 10:54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는 1965년 영국 런던에서 결성된 전설적인 록 밴드입니다. 이그룹은 대중음악사에서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하고, 범세계적으로도 거대한 영향력을 발휘한 그룹 중 하나입니다. 처음에는 사이키델릭 록 음악을 연주하면서 인정받았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프로그레시브 록으로 장르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핑크 플로이드는 장르의 폭이 넓고 실험적인 노래와 철학적인 가사, 정교한 라이브 공연 등으로 유명한 록 밴드입니다.

    특히 핑크 플로이드의 곡 중에서도 많이 명곡으로 꼽히는 "Wish You Were Here"는 동명의 앨범 자체가 전 멤버였던 "시드 바렛"(Sid Varret)을 기리는 앨범이라고 합니다. 시드 바렛은 초기 핑크플로이드를 이끌었던 인물로서, 조현병과 같은 정신병에 시달리며 그 고통을 잊으려하다 그만 약물에 중독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국은 약물중독 때문에 밴드를 탈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 작성자 23.01.30 10:55

    그리고 핑크 플로이드와 페이스북과 관련된 일화가 공개되어 세계인들에게 화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다음 아래의 글들은 매일경제 인터넷 신문의 기사를 발췌한 것입니다.

  • 작성자 23.01.30 10:55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가 전설적인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전 멤버 로저 워터스에게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했다고 합니다. 저커버그가 인스타그램 광고 음악으로 핑크 플로이드의 노래를 사용하려 했지만 워터스가 욕설과 함께 "꺼지라"고 면박을 줬기 때문입니다. 2021년 6월 14일(현지시간)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저커버그가 핑크 플로이드 노래를 인스타그램 광고에 사용하겠다며 워터스에게 거액을 제시했지만 거절당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지난 10일 촬영된 영상에 따르면 워터스는 미국 정부 기밀문서를 폭로한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 지지 집회에서 저커버그가 핑크 플로이드 노래를 광고에 사용하겠다고 제안하면서 엄청난 액수를 제시했다고 밝혔습니다.

  • 작성자 23.01.30 10:56

    저커버그가 사용하고자 한 노래는 핑크 플로이드가 1979년 발표한 앨범 '더 월'의 수록곡 '어나더 브릭 인 더 월 파트2'였습니다. 이 노래는 획일화된 교육 등 기성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표현한 곡으로 "우리는 교육 따위 필요 없어"라는 가사가 인상적입니다. 워터스가 단독으로 작사 작곡한 곡입니다.

    영상에서 워터스는 종이 한 장을 들어보이며 "이것은 제가 오늘 직접 폴더에 넣어 챙겨온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무엇인지 상상도 못할 것이다. 바로 인스타그램 광고에 '어나더 브릭 인 더 월 파트2' 사용을 요청하는 문서"라며 "저커버그에게서 온 매우 큰 액수가 적힌 편지"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워터스는 이어 알파벳 'F'자로 시작되는 욕설과 함께 "꺼져라. 절대 안 된다는 게 내 대답"이라고 말했습니다.

  • 작성자 23.01.30 10:56

    워터스는 저커버그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에 대해 "페이스북은 세상의 모든 것을 지배하려고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다"면서 "나는 그런 짓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워터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저커버그는 "프로젝트를 고려해주셔서 감사하다. 우리는 이 노래의 핵심 정서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필요하다고 느낀다"며 "얼마나 이 노래가 시대를 초월한 작품인지를 말해준다"고 썼습니다.

    워터스는 저커버그 말이 사실이라면서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은 내 노래를 이용해 지금보다 더 많은 권력을 가지려고 하고 있다"고 불쾌감을 표시했습니다. 워터스는 페이스북이 지속적으로 사용자 콘텐츠를 검열하고 어산지가 대중 앞에 서는 것을 막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 작성자 23.01.30 10:57

    워터스는 페이스북의 전신인 '페이스매시(Facemash)'를 언급하며 저커버그를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저커버그가 하버드대 시절 개발한 페이스매시는 여학생의 외모를 품평해 순위를 매기는 사이트였습니다. 워터스는 "어떻게 '저 여자는 이쁘군, 5점 만점에 4점을 주지. 저 여자는 별로야 1점만 주자'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멍청한 놈이 힘을 얻었느냐"며 "여전히 저커버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바보 중 한 명"이라고 비난했습니다.

    1943년 영국에서 출생한 워터스는 1965년 시드 배럿 등과 함께 핑크 플로이드를 결성했고 1985년 탈퇴하기 전까지 사실상 리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는 팀내 불화로 핑크 플로이드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후 워터스는 솔로로 활동하며 앨범 네 장을 냈습니다. 현재는 사회운동가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커버그가 사용을 원했던 '어나더 브릭 인 더 월 파트2'가 담긴 앨범 '더 월'은 전 세계에서 3000만장 이상이 판매됐습니다. 

    < 2021-06-15 매일경제 기사 전문 >
    [신혜림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 작성자 23.01.30 10:58

    열일곱번째와 열여덟번째 뮤직비디오 영상의 곡은 그룹 Foreigner(외국인 또는 이방인)가 부른 'I Want To Know. What Love Is'(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요)와 'Waiting For A Girl Like You'(당신같은 여자를 기다리고 있었어요)입니다.

  • 작성자 23.01.30 10:58

    포리너(Foreigner)는 1976년 결성된 음악 그룹이고 현재까지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멤버는 믹 존스, 제프 제이콥스, 톰 김벨, 켈리 한센, 제이슨 본햄, 제프 필슨으로 이루어져 있고 미국그룹이지만 영국인들도 일부 포함되어 그룹 이름을 Foreigner(외국인 또는 이방인) 라고 그렇게 지은 것 같습니다.

  • 작성자 23.01.30 11:00

    열아홉번째의 곡부터 스물 한번째 곡까지 뮤직비디오는
    체로키 인디언(Cherokee Indian)의 후예 리타 쿨리지(Rita Coolidge)의 노래 'We're All Alone'(우리는 모두 혼자랍니다)와 'Higher and Higher'(높이 조금 더 높이) 그리고 'My Crew'(나의 승무원) 입니다.

  • 작성자 23.01.30 10:59

    'We're All Alone'(우리는 모두 혼자랍니다)은
    1976년에 발표한 보즈 스캑스(Boz Scaggs)의 앨범 [Silk Degrees] 의 수록곡입니다. 블루스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인 보즈 스캑스는 1969년 데뷔앨범을 발표하며 활동을 시작하였고 우리에게는 매우 친숙한 스티브 밀러 밴드의 멤버이기도 했습니다. 보즈 스캑스는 그래미를 수상한 솔로 앨범 [Silk Degrees]를 발표하였고 수록곡인 'We're All Alone'이 크게 히트하며 세계적인 뮤지션으로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리타 쿨리지 (Rita Coolidge)가 이곡 'We're All Alone'을 리메이크 한 버전이 광고와 영화음악등에 삽입이 되며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는 팝의 명곡입니다.

  • 작성자 23.01.30 11:01

    리타 쿨리지는 1945년 생으로 미국 테네시주 라파예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침례교회 성직자로 체로키 인디언의 피가 흐르고 있었으며 그녀의 어머니는 스코틀랜드의 피가 흐르는 두개의 정체성을 가진 여성으로 성장했습니다. 따라서 그녀는 자신의 뿌리인 인디언의 정체를 숨기지 않았고 늘 마음의 고향으로 삼고 있었으며 노래를 통해 가슴 속에 담고 있던 조상의 음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기 위해 그녀와 그녀의 동생 프리실라 그리고 프리실라의 딸 로라와 함께 '왈레라'(Walela)라는 아메리카 원주민 음악 트리오를 결성해 가슴 속에 숨겨진 영혼의 노래집을 발표했습니다. [ WALELA - Cherokee Morning Song ]

  • 작성자 23.01.30 11:02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그녀의 노래는 Billboard 잡지의 팝, 컨트리, 성인 현대 및 재즈 차트에 상위 랭크 되어 있었고
    동료 음악가이자 남편인 Kris Kristofferson과 함께 2개의 그래미 상을 수상했습니다.

    우리 말에는 '피는 속일 수 없다' 는 말이 있습니다.
    리타 쿨리지는 대 스타로 최고의 하이라이트를 받으며 살았었고 또한 한때는 최고의 섹시한 보이스를 가진 가수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녀의 가슴 속에는 늘 조상인 체로키의 아련한 소리가 울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 작성자 23.01.30 11:02

    체로키(체로키어: ᎠᏂᏴᏫᏯ 아니이위야, 영어: Cherokee)는 북아메리카의 원주민족이며, 이로쿼이 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합니다. 1650년에는 인구 22,000명이었으나 그 후 천연두의 유행으로 절반으로 감소되었습니다.
    영국의 식민지배 과정에서 백인의 문화를 대폭 수용하였으며, 미국 정부는 원주민 교육의 시범 케이스로 1769년 다트머스 대학을 설립하였습니다. 북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고유 문자를 가진 원주민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원주민들은 19세기 후반 오클라호마의 원주민 보호구역으로 강제 이주당하였습니다. 이들은 흔히 문명화된 다섯 부족으로 불리는 부족 중 하나입니다.

  • 작성자 23.01.30 11:03

    스물 두번째의 뮤직비디오 영상의 곡은
    'Indian Reservation'(The Lament Of The Cherokee Reservation Indian)으로 폴 리비어(Paul Revere)가 이끄는 그룹 레이더스(Raiders)가 1971년 발표한 앨범 타이틀곡으로 미국 1위, 캐나다 2위에 올랐습니다. 

  • 작성자 23.01.30 11:04

    처음엔 1959년 체로키 후손인 마빈 레인워터(Marvin Rainwater)가 Pale Faced Indian이란 제목으로 발표를 했고 1968년 영국 뮤지션 존 파든(John Fardon)이 'Indian Reservation'으로 리메이크 해 영국 3위, 캐나다 18위, 미국 20위 등을 기록했습니다.

  • 작성자 23.01.30 11:04

    이곡은 미국의 싱어 송 라이터 존 라우더밀크(John D. Loudermilk)가 작사작곡하여 만들었습니다. 라우더밀크는 AT40 DJ 케이시 케이즘(Casey Kasem)과의 인터뷰에서 “체로키 족의 블러디 베어 투스(Bloody Bear Tooth)라는 분과 만난 적이 있는데요. 그 부족의 힘겨운 삶을 듣게 되었어요. 그래서 만들게 되었죠”라고 말했고 비바와의 인터뷰에서는 “폭설 때문에 어느 작은 체로키 부족에게 도움을 받았는데요. 거기 지도자인 블러디가 자신들의 힘든 삶에 대한 노래를 한 곡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라우더밀크는 아버지가 백인이고 어머니가 미국 원주민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의 갈등을 그린 'Half-Breed'란 곡도 만들어 미국 100위권에 올려 놓기도 했습니다.

  • 작성자 23.01.30 11:05

    스물 세번째 뮤직비디오 영상의 곡은
    ‘Ghost Riders in the Sky’(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영화 <고스트 라이더>의 주제곡) 입니다.
    The Outlaws(무법자들)의 곡을 올렸습니다.

  • 작성자 23.01.30 11:05

    “Ghost Riders in the Sky: A Cowboy Legend”는 컨츄리 내지 카우보이 스타일의 노래로 1948년 6월 5일 스탠 존스(Stan Jones)가 작곡하였습니다. 다음해인 1949년이 되자 여러 형태의 유사한 곡이 팝 차트에 올랐습니다. 이들은 미국 가요 데이터베이스인 ASCAP에는 ‘Riders in the Sky’란 제목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Ghost Riders, Ghost Riders in the Sky, A Cowboy Legend 등 여러가지 제목으로 불려졌으며, 구대륙 유럽에 비해서 짧은 역사 때문에 항상 컴플렉스를 가지고 역사와 전통에 목마른 신대륙 미국 사회에서 이 노래는 마치 카우보이의 상징곡처럼 애창이 되었습니다.

  • 작성자 23.01.30 11:06

    지금까지 50명 이상의 가수가 다양한 버전으로 이 노래를 부르고 녹음했는데, 그 중에서 차트에 오른 것으로는 Vaughn Monroe, Bing Crosby, Frankie Laine, Marty Robbins와 Johnny Cash 등이 있고, 그밖에 1949년에 제작된 영화 ‘Riders in the Sky’ 에서 주제곡을 부른 Gene Autry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2007년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영화 ‘Ghost Rider’에서 Frankie Laine이 부른 노래도 있습니다.

  • 작성자 23.01.30 11:06

    스물 네번째 곡부터 스물 스물 여섯번째 곡까지는 독일그룹
    스콜피온스(Scorpions)의 너무나 유명한 곡들입니다.
    Holiday(휴일), Always Somewhere(항상 어딘가에), Wind of Change(변화의 바람) 입니다.

  • 작성자 23.01.30 11:07

    스물 일곱번째 뮤직비디오 영상은 잭슨 브라운(Jackson Browne)이 부른 'The Load Out' 그리고 연속으로 이어지는 'Stay' 입니다.

  • 작성자 23.01.30 11:08

    'The Load Out'은 잭슨 브라운(Jackson Browne)이 1977년 발표한 라이브 앨범 <Running On Empty>에 수록한 곡입니다. 앨범에서 다음곡인 모리스 윌리암스(Maurice Williams)의 곡을 커버한 'Stay'와 이어집니다. 미국의 많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두 곡을 메들리로 틀어 싱글에 “Stay”라는 태그가 함께 붙어 판매되었습니다. Stay가 20위까지 올라서 이 곡도 20위까지 오른 것으로 치는 것 같습니다.

  • 작성자 23.01.30 11:08

    잭슨 브라운과 브라이언 가로팔로(Bryan Garofalo)가 만들고 잭슨 브라운이 프로듀서를 맡았습니다. 가사는 공연을 함께 하는 스태프, 로드 매니저, 관객들에 대한 트리뷰트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The Pretender> 앨범 공연 중 메릴랜드 콜롬비아의 메리웨더 포스트 파빌롱에서 공연한 것을 녹음한 것으로 세 번째 앙코르가 나왔을 때 더 이상 부를 곡이 없어 이 곡을 불렀다고 합니다. 잭슨은 편곡이 완성된 상태가 아니여서 망설였지만 드럼을 치는 러스 쿤켈(Russ Kunkel)이 "그냥 해보자"고 해서 잭슨이 자신의 밴드와 공연에서 처음으로 연주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Stay'는 기타를 치는 데이빗 린들리(David Lindley)와 백업 보컬을 맡은 로즈마리 버틀러(Rosemary Butler)가 함께 불렀습니다. 팔세토로 고음을 내는 건 데이빗 린들리입니다.

  • 작성자 23.01.30 11:09

    스물 여덟번째 뮤직비디오 영상의 곡은 독일 권투 선수 '헨리 마스케'의 은퇴 경기에서 사라 브라이트만(Sarah Brightman)과 안드레아 보첼리(Andrea Bocelli)가 불러 더욱 유명해졌다는 노래 'Time to Say Goodbye'(안녕이라고 말해야 할 시간입니다).

  • 작성자 23.01.30 11:09

    이곡의 원곡 제목은 'Con te partirò' 로 '당신과 함께 가요'라는 뜻인데 이를 'Time to say goodbye' 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니까 '함께 떠나'면서 '이곳'과 작별할 시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 작성자 23.01.30 11:10

    스물 아홉번째 뮤직비디오는 루드비히 반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의 Moonlight Sonata(월광 소나타) 입니다.

  • 작성자 23.01.30 11:10

    서른 번째의 뮤직비디오 영상은 'Air on the G String'(G 선상의 아리아)로 요한 세바스찬 바흐(Johann Sebastian Bach)의 곡을 대한민국의 첼리스트인 첼로댁(CelloDeck) 조윤경 님이 연주했습니다.

  • 작성자 23.01.30 11:10

    서른 한번째의 뮤직비디오 영상의 곡은 프레데릭 프랑수아즈 쇼팽(Frédéric François Chopin)의 'Nocturne No. 20' (야상곡) 입니다.

  • 작성자 23.01.30 11:11

    마지막으로 서른 두번째 뮤직비디오 영상의 곡은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의 'Serenade'(소야곡) 입니다.

  • 23.01.30 20:54

    다시한번 님의해박한지식과마리아님에대한 사랑이느ㄲㅕ지네요~~이까페에 없어서는안될분이라는것을 느끼네요 감동입니다^^

  • 작성자 23.01.30 23:20

    야간운전을 하는 직업이다보니 바로 답글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이제 막 퇴근해서 답글을 드립니다.
    너무 과분한 칭찬이십니다. 감사합니다.
    젊은 시절부터 워낙 다방면의 음악을 좋아하다보니 음악과 관련된 이야기에도 관심을 갖게되고 또한 글 쓰는 것도 좋아하다보니,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의 원픽 가수인 마리아님의 팬으로서 마리아님을 응원하고 성원을 보내고 격려하는 마음에 수퍼 마리아 팬 카페에 주제 넘은 글과 게시물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 작성자 23.01.31 18:01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를 않는 군요.
    마리아님의 신곡 '한 많은 금발소녀' 와 '거시기하네' 음악 동영상(*Luminant Archive)이 유튜브에 올려져 게시된지가 벌써 11일째인데도 또 저도 이런 점에 대해서도 제 게시물에도 마리아님의 신곡 동영상도 올렸고, 그래서 팬 분들이 직접 유튜브 해당 동영상에 가서 마리아님에게 응원의 댓글과 조회수 상향을 위해 자주 시청해 주시라고 간곡히 부탁을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수퍼 마리아 팬 카페 회원님들의 응원의 댓글을 좀체로 찾아볼 수도 없고, 게다가 조회수도 이제 겨우 1,439회와 1,122회 정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마리아님의 신곡에 대해 이정도로 무관심하고 배타적일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수퍼 마리아 팬 카페의 능력이 겨우 이정도 밖에 안된다는 것에 대해 정말 너무 실망스럽고 대단히 충격적입니다. 벌써 1만회를 훨씬 넘기고도 남을 기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오버하는 것일까요? 어쨌든간에 팬 카페에 대해 너무 실망스럽습니다.

  • 작성자 23.01.31 17:06


    제가 이렇게 실망할 정도인데 정작 당사자인 마리아님은 얼마나 실망스럽고 충격적 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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