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지병을 낫게 하고, 어떤 피로 회복제보다도 효과적이기에 그를 좇는 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채식주의. 마치 신흥종교 같은 기세로 번지고 있는 그 신비로운 세계를 들여다봤다.
의식주 중에서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식(食), 먹는 것이다.그래서 어떤 것을 먹느냐는 늘 시대를 초월해 핫 이슈였고,어떤 음식을 먹어야몸에 좋고, 나쁘다는 얘기는 각종 매체에서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다. 먹는 것에대한 이슈 중 근래에 가장 주목받는 것은 바로 채식주의(Vegetarianism)다.
채소를 뜻하는 영어 베지터블(vegetable)이 아닌, ‘전체의, 건전한’이라는 뜻의 라틴어 베게투스(vegetus)에서 왔다는 채식주의는 동물성 단백질을 끊고 식물성재료로 만든 식품만을 먹는다는 의미. 여기에 최근에는 동물 보호와 환경 보존의 의미까지 더해져 갈수록 많은 이들이 채식주의자의 삶을 선택하는 원동력이되고 있다. 고기를 먹지 않는 일반적인 베지테리언부터 가장 엄격한 채식의 단계인 땅에 떨어진 열매만 먹는 프루테리언까지, 어찌 보면 단순한 식습관일 뿐인데, 일반인부터 할리우드 스타들까지, 마치 종교인 양 떠받드는 데는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듯하다.
채식주의를 잘 모르는 이들을 위해, 또 시도해보려는 이들을 위해, 단계별 채식주의자의 특징과 그들이 먹는 음식을 알아보고 결코 채식주의를 포기하지 않을 3명의 채식주의자를 만나보았다
채식주의자의 종류
프루테리언(Fruitarian)
동물뿐 아니라 식물의 생명도 존중하는 사람들. 식물의 생명도 해쳐서는 안 된다는 원칙하에 땅에 떨어진 열매만 먹는 극단적인 채식주의자다.
비건(Vegan)
동물에게서 얻은식품을 일체 거부하고 식물성식품만 먹는 채식주의자. 유제품,닭고기, 생선도 먹지 않으며 모피나 가죽 제품도 사용하지 않는엄격한 채식주의자의 단계다.
오보 베지테리언(Ovo Vegetarian)
오보(ovo)는 라틴어로 달걀이라는 뜻으로, 달걀은 먹지만 다른 고기나 유제품은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를 말한다. 물론 닭고기도 먹지 않는다. 락토 오보 베지테리언(Lacto Ovo Vegetarian) 락토(lacto)는 라틴어로 우유라는 뜻. 유제품과 달걀까지만 먹는 채식주의자. 닭고기는 먹지 않는다.
페스코 베지테리언(Pesco Vegetarian)
생선 등의 해산물은 먹는 채식주의자를 말한다. 달걀이나 유제품까지 먹는 이들도 있다. 물론 닭고기는 먹지 않는다.
세미 베지테리언(Semi Vegetarian)
붉은 고기만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 달걀이나 닭고기, 생선이나 유제품은 먹는다.
- 비건 (박소연, 동물사랑실천협회 대표)
채식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여덟 살 때부터 채식을 했다. 어릴 적 동물을 아주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고기는 좋아하고 잘 먹었다. 그런데 우연히 정육점 앞을 지나다 동물의 형체가 고스란히 남은 고깃덩어리가 운반되는 것을 보았다. 그 후로 고기를 먹지 않았고, 지금은 달걀과 우유, 해산물까지 먹지 않는 비건이 되었다.
어떤 방법으로 채식주의를 실천하고 있나?불편하지는 않나? 난 아무런 불편이 없는데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것 같다. 외식을하면 어떤 음식점에 가든 난 먹을 수 있는 것을 먹거나 싸 가지고 다니는 것을 먹으면 되는데, 함께 가는 이들이 껄끄러워해 채식 전문 음식점을 가기도 한다. 사실 편의점에서는 녹차 외에는 살 것이 거의 없지만(C 브랜드 콜라 또한 색소에동물성 물질이 들어가 마시지 않는다고)조리해먹을 때는 어찌나 맛있는 메뉴들이 많은지. 아, 채식을 하면 혀의 감각이 되살아나 식재료 본연의 맛을 음미하며 먹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음식을 어떻게 조리하는지 궁금하다. 우리나라 음식이 채식주의자들에게는 아주 좋다. 된장찌개, 김치찌개 등은 고기만 넣지 않고 끓이면 되니까. 채소 국물로 육수를 대신하고, 김치는 젓갈을 빼고 담그는 식이다. 많은 사람들이 뭘먹고 사느냐고 묻는데, 그럴 때마다 난 “골라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한다. 매끼 뭘 먹을까고민할 정도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많다.
채식을 해서 좋은 점은 뭔가? 그리고 불편한 점이 있다면? 좋은 점은 건강해진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채식을 해서인지 심하게 감기를 앓은 적이나 피로가 쌓여 아팠던 적이 한 번도 없다. 얼마 전, 체질 검사를 했는데 의사 말이 몸이 거의 알칼리성이란다. 그래서 상처가 나면 특별히 치료하지 않아도 흉터가 남지 않는다. 충치가 생기는 것은 이를 잘 닦지 않아서가 아니라 입 안의 산도 때문이라던데, 난 입 안도 알칼리성인지 썩은 치아도 없다. 한마디로 대단한 건강 체질이 됐다. 불편한 점은 없다고 봐야 하나? 주변 사람들이 좀 불편할 수는 있겠지만.
채식을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한마디. 채식은 동물 보호 차원에서 꼭 필요할 뿐 아니라 자신의 건강, 나아가 환경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모두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채식이다. 물론 지금까지의 습관을 한번에 버리기는 힘들것이다. 하지만 조금씩 줄이는 것이 더 힘들다.차라리 한번에, 과감하게, 우선 6개월 동안만 실천해봐도 좋겠다. 그럼 좋은 것을 먹고 몸이 건강해지면서 느끼는 행복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원래의 식생활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 라이브 베지테리언 (정연빈, 프리랜스 디자이너)
채식은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했나? 미국에서 대학을 다녔는데,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채식 인구가 훨씬 많다. 마침 친한 미국인 친구가 비건이어서 나도고기를 거의 먹지 않고 지내던 터였다. 그런데 그 친구가 비건 중에서도 생과일
이나 생채소만 먹는 로 비건(Raw Vegan)으로 바꾸면서, 한 달 만에 피부에서 빛이 나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나도 채식을 하기로 했다.
친구처럼 비건인가? 난 생선만 가끔 먹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이었는데, 열을 가하지 않고 조리한 채소만 먹는 라이브 비건인 친구를 따라 대부분 생으로 먹었다. 식사는 거의 채소와 과일로 만든 샐러드와 굽지 않고 만든 빵으로 했다.
채식을 하면서 느낀 좋은 점과 불편한 점은? 가장 좋은 점은 몸이 가벼워진다는 것이다. 몸무게가 준다기보다 피로 때문에 오는 몸이 묵직한 느낌이 사라진다는 의미다. 신기한 것은 기운 없을 때 먹어야 한다는 고기를 전혀 안 먹는데도 에너지가 넘친다는 사실이다. 끼니 사이에 간식처럼 과일이나 채소를 갈아 주스처럼 마시는데, 그럼 더욱 힘이 솟고 머리도 맑아진다. 불편한 점은 위가 약한 편이라 처음 채식을 할 때 소화가 너무 빨리 되어 그런지 약간 속이 쓰렸다는 것 정도다.
채식을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채식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된다면 아예 하지 않는 편이 낫다. 먹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으면 언젠가는 다시 먹을 수밖에 없으니까. 진정한 베지테리언이 되려면 음식에 대한 관점을 바꿔야 한다. ‘고기류나 동물성 식품은 원래 먹지 않는 것’이라 생각하는게 외려 편하다. 그래야 몸이 더 쉽게 받아들이고 채식에 빠르게 적응할수 있게 된다.
- 페스코 베지테리언 (문지현, 스튜어디스)
채식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2년 전, 키우던 강아지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관련 사이트에 가입했다. 그곳에서 우연히 동물 학대 장면을 담은 동영상과 고기를 어떤 과정을 거쳐 얻게 되는지에 대한 동영상을 본 뒤로 육류를 먹을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채식을 시작했다. 혹시 베지테리언이 되고 싶은데 쉽게 결정을 못 하겠다면, 이런 영상을 보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한 번만 보면 다시는 고기를 먹지 않게 될 테니까.
직업상 집 밖에서 생활하는 일이 많을 텐데, 채식 식단을 어떻게 지키나? 음식을 싸 가지고 다니는 편은 아니다. 직업상 그렇게 하기도 힘들고. 채식을 하지 않는 이들과 식사할 일이 많은데, 그때는 먹을 수 있는 것만 먹는다. 고기를 먹으러가면 채소로 쌈을 싸 먹고, 다른 음식점에 가도 샐러드나 채소로 만든 메뉴를 주문한다. 원래 육류와 함께 조리한 음식도 먹으면 안 되지만 함께 식사하는 이들이 불편할 수 있어 음식점을 고르는 데 크게 까다롭게 굴지는 않는다. 채식을 해도 의외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많다. 사실 생선류도 먹고 싶어서 먹는다기보다, 비건이 되면 주위 사람들이 너무 불편해할 것 같아 생선류는 조금 먹는 것이다. 혼자 식사를 할 땐 더 철저한 채식 식단을 고수한다.
채식을 시작하고 느끼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다면? 좋은 점은 동물과 환경을 보호하는 데 동참한다는 사실, 그리고 피부가 맑아지고 자주 생기던 변비가 싹 사라졌다는 것. 불편한 점이라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낼 일이 많아, 가끔은 그들이 불편해한다는 것 정도다. 사실 내가 불편한 것은 거의 없다. 많은 이들이 채식을 하면 먹는 즐거움이 사라진다고 생각하지만 채식주의자가 즐길 수 있는 맛있는 음식들이 아주 많다. 외식을 할 때 선택할 수 있는 메뉴도 꽤 많고. 게다가 사랑스러운 동물들까지 보호할 수 있다는데, 어떻게 동참하지 않을 수 있겠나.
MC CREDIT
에디터: 서지혜
포토그래퍼: 류형원
출처: www.marieclaire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