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흐른 뒤 2020년대 세계 산업 분야는 어떤 키워드로 정의될까요.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등장, 전기차의 보급, 로보틱스의 산업화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하나만 고르라면 아마 반도체가 될 겁니다. 다른 모든 혁신을 가능하게 한 것이 첨단 반도체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이 진행되면서 첨단 반도체 공급망을 둘러싼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미국은 중국이 첨단 반도체 영역을 노리는 것을 어떻게든 막고 싶다는 입장입니다. 기술 종주국인 미국은 또 한국과 대만 등에 내줬던 반도체 생산기지 역할까지 되찾아오겠다는 각오입니다.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대국인 일본도 생산능력 확충에 나섰습니다. 압도적인 생산능력을 갖춘 대만은 미국 등에 생산기지를 만들면서도 핵심기술만큼은 자국에 남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미국의 기술 장벽을 돌파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중국이 A급 반도체를 만들 수는 없지만 B급 수준의 반도체를 만들어 계속해서 대응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성능과 가격 경쟁력은 떨어지더라도 거대한 자국 시장과 막대한 정부 보조금으로 한계를 넘어선다는 구상입니다.
이들 주요국이 반도체 산업에 쏟아붓고 있는 자금 규모는 현기증이 날 정도입니다. 세금을 인하하는 수준이 아니라 기업에 막대한 현금 보조금을 앞다퉈 얹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현금은커녕 세금을 줄이는 정도의 정책도 제때 나오지 않습니다. 만들어진 법안은 의회의 문턱을 넘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 길게 봐서 4년. 반도체 산업에서 한국의 위상이 유지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2020년대를 돌아보며 반도체 분야에서 '시의적절하지 못했다'는 회한이 나오지 않을까 두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