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면서도
격조있는 결혼식, 신성함마저 감돌았다
‘발렌타인데이’인 날을 일부러 골랐을까. 지난 2월 14일 서울 하얏트호텔 리젠시룸에서는 특별한 결혼식이 열렸다.
특급호텔 결혼식이면 으레 연상되게 마련인 화려한 결혼식도, 고급차들이 즐비해지는 하객 행렬도, 결혼식의 의미보다는 하객들끼리의 소란스러움이 더 두드러지는 광경은 찾아볼 수 없었다. 조용하면서도 격조 있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신성함만이 감돌았다.
‘조용하게 치르겠다’는 ‘혼주’인 앙드레 김의 뜻에 따라, 앙드레 김의 네임 밸류면 화환으로 가득 채웠을 식장 앞에는 연세대학교 김우식 총장과 주한 외교 사절이 보낸 화환 2개, 김민자 서울대학교 생활대학장이 보낸 대형 난 하나만이 놓여 있었다.
120여 명의 하객들이 이날 결혼식을 축하했다. 하객들은 대부분 주한 외교 사절과 가족, 친지, 신랑 신부의 친구들이었다. 앙드레 김은 일일이 하객들과 인사를 나누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예의를 갖추어 공손하게 참석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축의금은 받지 않았다. 하얏트호텔 로비에 마련된, 행사 안내판에는 ‘김중도·유은숙의 결혼식’이라는 영어 안내가 짤막하게 이날의 행사를 알렸다.
신랑의 아버지인 앙드레 김이라는 글자도, 신부의 아버지도 나와 있지 않았다.
3~4개월 전부터 아들 김중도군(24)의 결혼식을 철저하게, 완벽하게 준비해온 앙드레 김에게는, 이러한 문구 표시가 필요 없었다. 이미 결혼식에 참석할 하객들에게는 정중한 초대장을 발송했고 전화로 다시 한번 알린 터였다.
결혼식이라고 해서 앙드레 김의 의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느 신랑 아버지 같은 양복 정장을 입는 대신, 27년 전부터 직접 만들어온 백색 의상을, 그날도 고수했다. 자신이 직접 제작한 거니까 나름대로 의미를 둔 것이다.
예식 시간인 오전 11시 30분 훨씬 전부터 앙드레 김은, 패션쇼를 연출하듯 빈틈없는 결혼식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결혼식장에는 앙드레 김 숍(앙드레 김 아뜰리에)의 직원들이 모두 여느 때와 다름없이 깔끔한 의상 차림으로 나와 있었고, 평소 패션쇼 때 볼 수 있었던 스태프들도 대부분 눈에 띄었다. 그의 패션쇼에 늘 나와 있던 8명 가량의 경호업체 직원들도 대기 중이었다. 워커홀릭, 완벽주의로 정평이 높은 앙드레 김은 이미 석 달 전부터 구체적으로 준비를 해왔고 결혼식 전날에는 리허설까지 치른 터였다. 그렇게 이날은, 그에게 일생일대 최고 중요한 날 중 하루였다.
아들이 불편할까봐 집으로 손님을 데려오지 않는다는 이야기 유명
여느 부모나 다 마찬가지겠지만 그에게 아들인 중도는 생명과 같은 존재다. 생후 1년 6개월 때 중도군을 입양한 이래로 ‘내 인생의 동반자’라고 부를 만큼 사랑을 쏟았다. 아들이 불편할까봐 손님을 집에 데려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손님이 있으면 ‘아가’는 방에서 나오지 못하고, 그렇게 위축되는 것은 ‘아가’의 인생을 위해 축복스럽지 않다고 여긴다. 특히 식탁에서는 ‘아가’가 자유로움을 느껴야 한다고 믿는다.
TV 본 얘기, 신문에 난 얘기, 학교 친구들과 선생님에 관한 얘기가 편안하게 오가야 한다는 것.
그는 2002년에 낸 『앙드레 김, My Fantasy』에서 이렇게 애절하게 아들에 대한 사랑을 털어 놓기도 했다.
“’아가’가 생기면서 처음으로 죽음을 두려워하게 됐어요. 내가 죽으면 아가도 혼자가 될 텐데. 나처럼….”
이제 어엿한 24살의 멋진 청년으로 자란 아들을 보며, 그는 다 큰 성인이니까 자신의 인생을 잘 개척해나가리라 여긴다. 그의 주변 지인들은 “아들을 패션 디자이너로 키울 생각은 없느냐, 후계자가 있어야지”라고 말하지만 그는 아들을 패션 디자이너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없다. 본인이 하겠다면 시키겠지만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것. 아들에게 예술적 민감성이 있다고 해도, 디자인은 취미가 있지 않으면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또 취미가 있다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아들이 존경받는 사람이 되는 것은 좋지만, 단지 ‘인기인’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가 자신의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한 것으로 꼽는 것은 단연 아들. 그 다음이 일이다.
아버지로서 그는, 아들에게 진실과 성실 그리고 교양과 예의를 지키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일부러 말하지 않아도 아들은 잘 따른다. 굉장히 진지하다는 것. 학교 공부도 열심히 하고 그가 이야기를 하면 금방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중도군이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다 여자친구가 있는데 나도 사귀면 안 되냐고 물어서, 대학 가거든 그렇게 하라고 일렀다는 앙드레 김.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잘 따랐다. 한국외국어대 불어과 99학번인 중도군은 대학 와서야 여자친구를 사귀었다. 이날 결혼식을 올린 여자친구 유은숙양과는 꽤 오랜 시간 사귀었다.
아직 학생인 김중도군과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유은숙양은 모두 어머니가 곁에 없다. 이런 공통점 외에 유은숙씨가 ‘앙드레 김 아뜰리에’에서 오랫동안 디자이너로 일해온 까닭에 정서적으로 많은 부분 통한다는 것이 사랑의 감정을 무르익게 한 요인. 또 4세 가량 연상으로 알려진 유은숙씨가 포근하게 중도군을 감싸줬던 점도 결혼이라는 결실을 맺게 한 원동력이었다.
아들의
결혼으로 자신과 같은 길을 걷는 며느리를 얻었다
두 사람을 오랫동안 지켜봐온 지인들은 한결같이 두 사람이 잘 어울리고, 서로를 감싸안을 수 있을 것이라며 축복을 아끼지 않았다. 중도군은 요즘 젊은이들 같지 않게 신중하면서도 차분하고, 유은숙씨 또한 평범한 집안의 잘 자란 규수로, 단정하고 차분한 스타일이라는 것.
아들의 결혼으로 앙드레 김은 자신과 같은 길을 걷는 며느리를 얻은 셈이다.
이날 신부는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가장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시아버지이자 스승인 앙드레 김이 정성을 다해 한땀한땀 사랑으로 수를 놓은 웨딩드레스는 그가 디자인한 드레스 중 최고의 판타지를 선사했다. 우아함, 순결, 행복, 품위, 지성으로 촘촘히 박힌 드레스는 신성(神聖) 그 자체였다.
영화에서 나올 법한 꼬마 화동들이 결혼식을 알리며 먼저 입장한 후, 천천히, 동시에 웨딩마치의 발걸음을 옮긴 신랑 신부. 먼저 입장한 화동들은 주례를 맡은 현승종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장의 양쪽에 섰고, 신랑 신부는 동시 입장해서 주례 앞에 다다랐다. 은은하고 클래시컬한 남녀 합창단의 엄숙하면서도 경건한 화음이 식장을 가득 메웠고, 두 사람의 순수한 사랑도 눈물겹도록 숭고하게 결실을 맺었다.
이날 현승종 회장은 진솔한 사랑으로 진실한 가정을 꾸릴 것을 주문했고, 없던 길을 만들어가며 살아온 아버지 앙드레 김을 인생의 스승으로 본받을 것을 강조했다. 오후 2시쯤 2시간에 걸친 결혼식이 끝나자 하나 둘 일어서는 하객들. 오랜만에 엄숙하면서 격조 높은 ‘고급 결혼식’을 맛본 하객들은 앙드레 김에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와 축하를 다시 한번 전했다. 앙드레 김의 눈가가 물기에 젖어 있었다.
취재_강은영기자 2004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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