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꾸어 사는 삶
짧디짧은 인생, 응당 소원대로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살아야 하건만 왜서 그렇지 못하고 남의 인생을 꾸어서 살아야 하는가? 풀지 못한 수수께끼의 답안은 무엇인가?
터벅터벅…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있지? 저앞에 보이는 문바위 정수리에 서있는 꼬불꼬불 자란 애솔, 중턱을 빨갛게 물들인 진달래, 바위밑뿌리를 핥는 내두하… 어데를 봐도, 어디를 가도 낯설고 물선 고장은 아닌데 왜 설어보이지? 그 뒤꼬리를 무는 허탈감은? 집문턱을 넘을 때만 해도 분명히 떠나야 하고 떠난다는 생각이 확실히 자리잡음을 했을텐데 지금은 그 확실하던 존재가 가물가물해지면서 어쩐지 막연하고 시들먹하고 씁쓸하게만 안겨오다니? 장가들 때의 나의 첫날밤처럼…
글귀를 뜯어먹고 사는 글쟁이들은 먹물에 푹 잠긴 붓토리처럼 몸가짐이 헝클어지고 마음가짐도 나름대로여야 하는데 나만은 그렇지를 못했다. 곧은 지팽이처럼, 타다남은 부지깽이처럼, 힘에 부친 지게다리처럼…
나는 이렇게 살아왔고 나는 이렇게 약혼을 했고 나는 이렇게 첫날밤을 보냈다. 아니, 첫날밤만은 나는 나대로, 나대로의 인격, 나대로의 남자로 보냈었다. 처음으로 부모님들의 엄명을 어기고 처음으로 녀인의 기대를 저버리고 처음으로 남성으로서의 남성으로 살았었다. 남성으로 살았다? 거짓말. 남성으로 산것이 아니라 남의 풍에 덩달아 살았다고 말하는것이 더 편할것이다. 더 편한 정도가 아니라 사실이 그러했다.
그럼 신랑이였던 나는 첫날밤을 어떻게 보냈던가? 어떻게 돼먹은 판인지 나로서도 모를 일이였다. 어쨌든 신부는 너울도 벗지 못한채 눈물로 꼬박 밤을 새웠고 집에서는 신랑이 잃어졌다고 대소동이 일어났고…
첫날밤을 어떻게 보냈던지 나는 전혀 모르고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부어라 마셔라 하던 생각밖에는 없다. 나에게는 고중때부터 문학을 지향해오던 딱친구 셋이 있었다. 하루종일 술 한잔 마셔보지 못하고 잔치객들의 시달림을 받아오던 나는 장인어른이 파견한 상빈들까지 다 돌려보낸 다음에야 사랑방에 둥지를 틀고앉아 그 딱친구들과 술을 마셔대기 시작했다. 진짜 마음 편한 술좌석이였다. 술을 그만 마시고 어서 신부방에 들라는 부모님들의 불같은 재촉도 문밖에 팽개치고 말이다. 오늘은 나의 날인데 부모들이 다 뭐냐 하는 배짱과 오기로 부명을 거역해보기는 그날이 처음일것이다. 그때까지 부모에게 대답 한마디 바로 해보지 못하고 앉으라 하면 앉고 서라 하면 서던 나였다. 그러던 내가 어데서 그런 배짱과 오기가 나왔을가? 술기운? 자신에 대한 보복감? 부모에 대한 불만? 신부에 대한 고까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운 친구들인데, 어쩌다 만난 친구들인데, 고중때도 한학급이였고 대학때도 한학급이였던, 피와 살을 섞는 짜개바지들인데 마시고볼판이다. 자, 부어라! 진짜 내가 나를 가진 밤이였다. 내가 나를 가져보기는 이날이 처음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언제 나를 가져보며 살았던가? 결혼마저 부모들의 눈살에 못이겨 치르게 되지 않았느냐 말이다. 그러니 친구들아, 이 술좌석만은 내 세상이니 마음놓고 마셔라. 먹다 죽은 귀신은 없다더라. 자, 건배!
그 건배바람에 나는 고주망태가 되고말았다. 그리고 그뒤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고있었다.
이튿날아침, 김치움으로 김치 가지러 갔던 어머니가 김치움에서 쿨쿨 자고있는 나를 발견했단다. 소피보러 나왔다가 김치움에 빠졌던지 아니면 김치국물 마시려고 움에 들어갔다가 깜박했던지 어쨌든 첫날밤을 김치움에서 보낸 나였다.
김치움, 말만 들어도 소름이 끼친다. 아니, 말만 들어도 통쾌하다. 내 날을 내가 지배했으니까. 하하하… 그날 밤 나를 그리며 나를 찾으며 나를 근심하며 너울도 벗지 못한채 굳잠 한번 들어보지 못했던 안해에 대한 생각도 깨고소하고 귀한 자식 잃었다고, 신랑을 잃었다고 떠들썩하며 찾았을 부모와 친척들의 로고도 깨고소하고…
상상만 해도 기분나는 일이였다. 쥐거나 바퀴벌레, 쥐며느리, 부엉이… 밤에 먹이를 찾는 들짐승이거나 벌레를 내놓고는 세상이 죽어있어야 할 밤, 그것도 잔치를 치른 잔치집에서 주인공인 신랑을 잃고 장밤 헤맸을 부모와 형제 그리고 친지들을 생각하니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리는 기분이였다. 참, 내가 언제 이런 악한, 쌍놈, 개놈으로 변했을가? 악한이고 쌍놈이고 개놈으로 돼도 좋기만 하다. 나는 나대로 살았으니까. 나는 나야! 하하하… 하지만 그 시간은 짧기도 했다. 갈증을 해소하기도전에, 취기를 풀기도전에, 흙범벅이 된 첫날 차림새를 바꾸기도전에, 아버지의 어명이 떨어졌던것이다.
“그 녀석 불러와!”
나는 술기가 채 가시지 않은 흐리터분한 기분 그대로 아니, 아버지의 말씀 듣는 그 순간에 아뿔싸 하는 반짝하고 튀는 불찌를 느끼며 넥타이도 바로잡을 새 없이 웃방으로 올라갔다. 으흠 하며 곰방대를 재떨이에 터는 아버지의 손동작과 나를 흘깃 보는 치째진 눈길에서 또 불호령이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 녀석, 지난밤 너 어데서 잤지?”
“저…”
“왜 말을 못해?”
“저…”
몸이 떨려, 혀가 굳어져 좀체로 말이 나오질 않았다. 어느땐가 개똥녀네 집 오이를 따먹고 아버지앞에 불리워갔을 때처럼…
“첫날밤에도 제 녀편네를 지키지 못하면서 장가는 왜 들어?”
그때에야 나는 내가 장가를 든 몸이란걸 직감했다. 내가 장가들었어? 장가라는 그 말마저 서먹서먹하게만 들렸다.
내가 장가를 가다니? 언제? 어데서? 엊저녁에?
“잘못했습니다. 아버님.”
나는 털썩 주저앉으면서 용서를 빌었다. 아니, 사나이다왔던 엊저녁 나는 어데로 가고 당금 시래기상이 돼? 내 날이니 내가 지배한다며 마셔라 건배다 하면서 호기를 부리던 나는 어데로 갔단 말인가? 나는 죽어있었다.
“아니 잘못했다면 다야? 집안망신을 다 시켜놓고 그 말 한마디면 다냐 말이다.”
“죄송합니다, 아버님.”
“한다는 소리가 고작 그뿐이야? 이때까지 너한테서 그 두마디밖에 들어보지 못하고 살아온 나야! 그래도 사내라고 장가를 들어? 자식!”
이때 나를 구해준건 어머니였다. 내가 아버지한테서 곤경을 치를 때마다 나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쳐준이는 항상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그토록 나를 아껴주셨다.
“아유- 친척들이 한구들 덮였는데 웬 사설이예유? 얘야, 어서 나가 옷을 갈아입고 며느리의 너울이나 벗겨주어라. 어유- 이놈 집안이 언제 가야 말썽이 잦겠는지 쯔쯔…”
나는 이때라싶어 슬쩍 몸을 빼고말았다. 친척들에게 때투성이요, 거지상이요, 썩은 호박 같은 내 모양새를 보이기 싫어 현관에 나서자 바람으로 신방문을 떼고 들어섰다. 도적놈처럼 말이다. 그때까지도 신부는 너울을 쓴채 꼼짝 않고 앉아 울고만 있었다. 내가 신부를 데려오던 어저께만 해도 화장덕을 입어 꽤 곱살하게 보이던 신부의 얼굴이 눈물로 밭고랑을 만든통에 엉망이 되여 진짜 꼴불견이였다. 고양이 락태상이라더니 그때의 나의 안해가 그런 상이였다. 하지만 장밤 울고있었을 안해를 생각하니 갈비뼈가 저려나는 아픔도 없지는 않았다. 불쌍한 녀인, 썩은 감자 같고 물렁팥죽 같은 나 같은 사람도 남편이랍시고 믿고 시집온 안해가 측은하게만 느껴졌다. 악착 같은 녀인, 찰거마리 같은 녀인이라고 속으로만 욕을 퍼붓던 지난 일들을 가맣게 잊고말았다.
“미안해!”
나는 돌부처처럼 꼼짝 않고 앉아있는 안해앞에 다가가 너울을 벗겨주며 말했다. 그러자 안해가 벌떡 일어서며 내 뺨을 철썩 후려치는것이였다. 하느님 맙시사! 한이불속에 들기도전에 남편의 뺨을 치다니? 전혀 예기치 못했고 무방비상태였던 나는 미처 피할 길 없이 얻어맞고말았다. 도담한 녀자, 이런 녀자가 세상에 어데 있단 말인가? 측은해지던 마음이 울컥하는 망짝 같은 분에 깔리면서 나의 손은 저도 모르게 주먹으로 변해버렸다. 단매에 쓰러뜨리려고 작심했지만 때리자고보니 공간이 없을 지경으로 차넘치는 집안의 친척들속이라 내 주먹은 저도 모르게 풀리고말았다. 때리면 싸울것이고 싸우면 소문날것이고 소문나면 내 얼굴이 어찌되나 말이다. 하느님, 이럴 때 나는 어째야 하나요? 무릎을 꿇으면 내 한생 안해의 손에 쥐여 살아야 하니 그럴수는 없잖아요. 때려요? 그럼 내 체면은요? 안해에게 얻어맞고 안해를 쥐여박았다는 남성, 남편, 사나이의 자존심은요?
나는 어깨를 으쓱해보이며 돌아서려 했다. 그런데 이건 또 뭐야? 귀신의 작간이냐 아니면 도깨비의 장난이냐? 글쎄, 안해가 와락 내 목을 끌어안으면서 가슴을 파고드는것이 아니겠는가!
“용… 용서하세요. 너무… 너무 무례했어요 흑흑…”
아유- 녀성은 애물, 녀성은 꼭두각시, 녀성은 생명, 녀성은… 도대체 나는 무엇을 믿어야 하나? 병 주고 약 주고 하는 안해를 두고… 수학적수자는 물론 천문학적수자로도 계산할수 없는 녀자의 마음, 등차급수가 아니라 등비급수로 계산되는 녀성의 비등점, 세상의 모든 문학용어를 다 동원한대도 다 묘사할수 없는 녀성의 심리, 녀성은 도대체 뭐냐 말이다. 하늘의 달? 별? 아니, 다 아니야.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이야. 어떤 때는 폭설을 내리고 어떤 때는 폭우를 내리고 어떤 때는 단비를 내리고 어떤 때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그런 구름장이야. 웃었다 울었다, 푸르렀다 맑았다 하는 그런 구름장이야. 그래, 그런 구름덩이구말구.
나는 가슴을 파고드는 안해를 꼭 끌어안았다. 밤을 새운 안해가 가긍스럽고 불쌍하고 처량해서였다. 누구는 남성은 해라고 했다. 해? 웃음거리. 이때까지 해로 된 남성을 나는 보지 못했다. 세계의 명인, 령수인물들을 다 포함해서… 남성의 진짜가치는 구름에 깔리운 그늘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구름이 없으면 그늘도 없어지는 그런 바보, 그런 멍청이, 그것이 진짜남성의 속성이 아닌가싶다. 나도 그래서 안해에게 뺨을 얻어맞고 되려 안해를 포옹하고있지 않는가!
이것이 나의 첫날밤 이야기다. 흐리터분하고 멀쩡하고 혼탁한 그날 밤 이야기, 지금의 기억에도 알둥말둥하고 망글망글 뇌세포를 간지럽히는 지나간 추억 말이다.
터벌터벌…
내가 지금 뭘 하고있지? 문바위가 가까와지고 애솔의 영상이 또렷해지고 진달래의 색조가 더 진해진걸 보면 길을 조이고있는것이 분명한데 왜 자리드팀을 한것처럼 생각되지 않지? 어데로 무얼 하러 가는걸가? 집층계를 내리며 마누라의 악다구니를 등뒤에 달았을 때만 해도 무엇때문에 어데로 하는 분명한 결단이 내렸을텐데 지금은 확실했던 그 결단이 썩어빠진 무우밑둥처럼 이리 넘어지고 저리 번져지면서 아릴사하게, 매울사하게, 새큼하게 허파 한쪽을 채우다니? 안해에게 속히웠던 그때처럼…
왜서 마음에 없는 결혼을 했는지? 말하기 게면스럽고 멋적지만 부끄러운대로 고백을 한다면 단 한번의 아차 하는, 순간적인 실수때문이였다.
우리 세대는 진짜 가련하고 불쌍한 세대였다. 정치에 짓밟히고 운동에 휘말리우고 로동개조에 만신창이 된 대학생들이였다. 배우지 못하고 입만 까지고 손에 장알만 박힌 대학생들이였다.
우리 대학교 졸업생들이 집단농장의 세례와 로동졸업장을 쥐고 연길로 돌아왔을 때 나는 이미 30 고개를 바라보는 더꺼머리총각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에게는 녀자친구가 없었다. 문학에서 성공하기전에는 녀자와 담을 쌓고 살겠다는, 고집이라면 고집이고 집념이라면 집념인 그 고질병때문이였다. 녀자를 가까이하지 않는다 해서 남들보다 공부를 더 잘한것도 아니고 문학에서 더 뾰죽해진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하지만 문학에 대한 갈망, 작가로 돼보겠다는 욕망은 그렇듯 지꿎게 내 덜미를 잡고있었다. 그 덕분이였는지 아니면 아버지 덕분인지는 몰라도 나는 내가 그토록 바라던 모 편집부에 배치를 받았고 여리고 가련하고 보잘것없는 소설이지만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의 곁에는 독자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고 한다하는 작가들까지 나를 외면하지 않았다. 더더구나 가관인것은 초학자들이 하나둘이 아니라 소대별로, 중대별로 나를 둘러싸고 포위망을 좁히는 그것이였다.
워낙 나는 사회라는 그 자체는 단세포로 이루어졌고 또 단세포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여겨왔었다. 하나의 리념은 하나의 세포로 구성되여야지 다세포거나 이색적인 그 어떤 잡세포가 끼여들거나 섞인다면 사회 전체가 오염된 존재로 남을것이라는 현실적인 안목과 실제적인 자밖에 갖고있지 못하였다. 하여 내가 상대하고있는 모든 인간, 내가 접촉하고있는 사회적 제 분야, 내가 보고있는 모든 사회를 내 방식대로 단순하고 간단하고 가볍게 받아들였고 또 내 생각대로 진실하게, 거짓없이 내 모든것을 주려 했고 주었다. 하지만 혁명이요, 운동이요, 개조요 하는 모진 세파속에 닥달이 되면서야 사회라는 망망한 대해는 언제나 잠들고있는것이 아니라 파문도 있고 물갈기도 있고 파도도 있고 암류도 있다는것을 알았다. 단순한 사고방식으로부터 격변을 일으킨 복잡한 사유구조를 갖게 된것이다.
내가 얼마를 사회에 주면 사회가 얼마를 나에게 줄것이라던 천진한 사고방식은 물거품으로 되고 내가 기대했던 사회로부터 한발두발 멀어지기 시작했다. 멀어질수 밖에 없었다. 내가 멀어지게 한것이 아니라 사회가 멀어지게 했다. 왜냐하면 투쟁이거나 운동은 언제나 파괴성을 그 주요측면으로 하고있기때문이였다.
현실 자체는, 사회는 그전에 내가 생각했던것처럼 그토록 순수하거나 담백하지 않고 깨끗하거나 청렴하지 않다는것을 알고있으면서도 나는 언제나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여린 희망만은 그냥 갖고있었다.
어느날 퇴근무렵이였다. 한 녀인이 달달 말아쥔 원고를 갖고 나를 찾아왔었다. 예민한 총각의 눈썰미때문인지는 몰라도 얼핏 스치는 눈저울에 이십대 초반으로 느껴지는 처녀였다. 피뜩 안겨오는 얼굴모습은 예뻐보였지만 하나하나 자상히 뜯어보면 그 어느 한곳도 미인축에 들 오관은 갖지 못한, 그렇다고 밉게 보이는 처녀는 아니였다. 거리에 나서면 흔히 볼수 있는 수수한 얼굴, 그 어디에도 모가 나지 않은 수더분하게 생긴 얼굴이였다. 체격도 멋지게 빠진 처녀라고는 말할수 없었지만 구두뒤축에 손두께만한 신창을 더 대면 꽤 멋져보일것 같았다. 어렸을 때 왜 어머니 젖 한달쯤 더 먹지 못했느냐 하고 아쉽게 생각할 그런 키꼴이였다.
“김선생님, 제가 잘못 보지 않았다면 김신철선생님 맞지요?”
“녜, 그렇습니다. 신철입니다.”
때마침 우리 편집실에는 나 혼자뿐이였다. 다른 편집선생들은 원고조직이요, 취재요 하면서 다 나가버리고 나 홀로 편집실을 지키면서 다음 기의 소설을 편집하고있었다.
“벼르고 벼르다 찾아왔어요. 전 리경애라고 불러요.”
꽤 당돌하면서도 어디엔가 순직한 마음이 슴밴 목소리였다.
“무슨 용무시죠?”
나는 손에 돌돌 감아쥔 종이두루마리를 보고 대뜸 짐작이 갔지만 직방 물을수가 없어 모르쇠를 대고말았다. 익숙한 사이라면 “원고를 갖고 왔지?” 하고 속내를 꼭 짚으련만 초면이라 차마 그럴수가 없었다.
“선생님께 시끄러움 끼칠가봐…”
“무슨 일인데요?”
“잘되지 않은 글이지만 선생님의 지도를 받을가 해서 찾아왔어요.”
“시끄러울게 없습니다. 그건 우리 편집일군들이 응당 해야 할 일입니다. 원고는 갖고 오셨습니까?”
“녜.”
그제야 경애는 호-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손에 쥐였던 원고를 내미는것이였다. 그 원고를 받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고말았다. 경애의 손이 닿았던 원고지 겉면이 촉촉히 땀에 젖어있었던것이다. 얼마나 긴장하고 마음 조였으면 원고지가 젖도록 손땀을 흘렸으랴. 나도 그런 체험을 맛볼대로 맛본 사람이다. 대학교때 소설을 써가지고 편집부로 찾아갔지만 어찌나 속이 떨렸던지 감히 문을 노크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한참씩 바장이다가 다시 큰마음 먹고 문을 두드리지 않았던가. 경애의 심정 꼭 마치 그때의 나 같았을것이다. 그런 동정과 렬등의식을 떡반죽하면서 나는 급히 원고지를 펼쳤다.
소설이였다. 제목은 “사랑의 로맨스”. 사랑의 로맨스? 나는 그만 와들짝 놀라고말았다. 사랑을 취급한 제재가 금지구역이 아닌 금지구역으로 되고있는 이런 때 사랑의 로맨스를 쓰다니? 나는 경애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경애는 그토록 조용하게, 그토록 태연하게 나를 쳐다보는것이였다. 나는 경애의 그 태연함과 당돌함에 당혹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왜 놀라세요?”
“미안하지만 우리 편집부에서는 이런 글을 싣지 못합니다.”
“소설인데두요?”
“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안합니다.”
“실망했습니다. 문학을 하는 당당한 편집부에서 청년남녀들의 사랑을 배제해버린다는건 비극이 아닐수 없어요.”
“아무리 잘 쓴 소설이였대도 이런 제재는 취급할수 없습니다. 아니, 취급하지 않습니다.”
“정말 유감이군요.”
경애는 이 말 한마디만을 남기고 덮치다싶이 자기가 쓴 원고를 쥐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기적같이 나타났다가 기적 같은 말을 남기고 기적같이 날아가버렸다.
그후 경애는 더는 다시 나를 찾지 않았고 나도 경애를 차문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의 그 당돌하던 경애의 모습은 잊혀지지 않았다. 그때 왜 “사랑의 로맨스”를 보지 않았을가? 보지 않은것이 후회되였다. 어떻게 썼을가 하는 궁금증도 궁금증이겠지만 어쩐지 구미를 바짝 돋구는 제목이였다. 그 제목만 봐도 죄를 짓고 옥살이할것 같은 공포증에서 거부감이 앞서기는 했지만 보지 못한것이 여간 후회되지 않았다. 나도 젊은이이고 총각이기때문에 사랑을 체험하고싶은 일종 욕구를 갖고있지 않는가? 하지만 그런 사랑과 욕구는 불가항력적인 압력에 사멸되여야 하며 영원히 존속할수 없는 존재로 버림받아야 한다. 자아를 짓밟는 피해의식, 자아를 배타하는 도피의식, 자아를 훼손시켜야만 하는 피해망상증이 유령처럼 횡행하고있는 때라 누가 감히 사랑을 운운하랴? 그런데 경애의 그 소설만은 보지 못한것을 아쉽게, 안타깝게, 섭섭하게 생각하는 때가 많았다. 모르긴 해도 그 소설속에서 저도 모르게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킬, 만족시키지는 못해도 미소한 위안이라도 받을수 있는 그런 기대와 갈망이 나의 혈관속을 맴돌고있기때문이 아닐가싶기도 했다.
그후 오래도록 경애를 보지 못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그녀를 볼줄이야? 우리 편집부에서는 과외작가창작모임을 가졌었는데 내가 소설에 대한 강의를 하게 되였다. 그 모임에서 나는 나의 소설창작담까지 곁들어가면서 시대적정신이요, 주류요, 사명감이요 하면서 꼭두각시처럼 내 말이 아닌 남의 말로, 내 마음이 아닌 남의 마음으로 일장 열변을 토했고 열정적인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날 저녁 만찬이 끝나고 차물을 마시는데 경애가 나를 찾아왔다.
“선생님, 저녁에 잠간 뵐수 있을가요?”
몸가짐이거나 말본새거나 처음 나를 찾았을 때처럼 전혀 흔들리지 않고 흩어지지 않은 그 맵시 그대로였다.
“있구말구. 환영하오.”
“여섯시 정각. 부르하통하 강뚝에서 기다리겠어요.”
역시 그 말 한마디만을 남겨놓고 치마꼬리를 날리며 내앞에서 사라졌다. 알고도 모를 녀인, 수수께끼같은 신비스러운 녀자였다.
그 신비스러운 녀자가 약속한 장소에서, 약속한 시간에 일분의 간격도 없이 나타났다. 헝클어지지 않은 자태, 깔끔한 자태 그대로.
“약속을 지켜줘서 감사합니다.”
경애는 깍듯이 인사하며 말했다.
“나는 약속을 어기는 사람을 제일 미워합니다.”
“그러세요? 약속을 어기는 사람에겐 믿음이 가지 않지요. 오지랖이 좁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저는 그런 사람이 질색이예요.”
“동류항, 저도 그런 사람입니다. 그건 신용의 전주곡이니까요.”
어쩐지 이 면에서는 경애와 나의 마음이 일치했다. 일치하자고 해서 일치해진것이 아니라 단둘의 세계, 단둘의 공간에서 나눈 마음에서 그런 일치를 보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여기에 만약 제삼자가 있다거나 제삼자가 거들었다면 이런 일치가 없었거나 있을수 없다고 여겼기때문이다. 경애의 그 말과 일치가 어쩐지 싫지 않았고 다행으로 여겨졌다. 아니, 고맙게, 감사하게 받아지였다.
우리는 강뚝을 따라 조용히 거닐기 시작했다. 마치 련인처럼… 련인처럼? 내가 언제 녀인과 함께 둘만의 세계에서 어둠을 썰며 걸어봤던가? 성공하기전에는 녀인을 모르고 살겠다던 내가. 그러자 내가 나 같지 않고 나답지 않다는 당혹감에 사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혹여 아는 사람을 만나거나 눈에 띄울가봐서였다. 녀자를 알아야 할 나이가 지난지도 10여년, 그러나 그것이 그토록 부담스러울줄은 몰랐다. 단둘만의 세계에서 녀자와 만난다는것이.
“자, 우리 앉아서 이야기합시다.”
“겁나세요?”
경애가 내 마음을 넘겨짚고 숨통을 찔러왔다.
“아니, 그런것이 아니라…”
“겁도 많네요. 좋도록 합시다.”
경애는 내 앉은자리에서 주먹 나들만한 사이를 두고 옆에 앉았다. 련애를 하는가, 사랑을 하는가, 우리사이엔 별로 말이 많을것 같지 않았다. 사무적이고 필요한 말외엔 오갈것이 있을상싶지 않았다.
“선생님은 오늘 하신 강의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니 이 처녀가? 선생님이라고 호칭하면서 이런 당돌함이 웬 말인가? 내 말을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가구? 틀에 박힌 말, 사전에 째여진 말, 훌륭한 극작가에게서 잘 씌여진 극본, 저명한 연출가의 연출로 무대에 올린 성공적인 공연… 말하자면 그것이 전부일것이다. 나의 강의엔 다른것이 있을수 없었다. 통일된 리념, 통일된 구호, 통일된… 모든것이 통일된것이고 그 통일에서 벗어갈수 없었다. 그 통일의 궤도를 벗어난다면 탈선한 기차처럼 나는 전복되고말것이다.
“물론 많이 듣던 소리였겠지. 앵무새로 돼버렸으니까.”
나는 묻지 말아야 할 말을 물어오는 경애에 대한 반감, 자신을 해탈하지 못하고 갑속에 든 사람처럼 살아가는 무능력한 자신에 대한 혐오감으로 시쁘둥하게 말했다.
“정치가도 아닌 작가의 입에서 어찌 저런 말만 나오나 하고 놀랐어요. 저의 경박함을 용서해주세요. 선생님의 창작담은 참말 재미있게 들었어요. 그런데 그 창작담을 기존리념과 기존리론에 복종시키고 거기에 맞춰가면서 말씀하신것이 서운했어요. 선생님의 창작담은 현존 리념과 리론의 희생품이였어요.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되지 않아요?”
“좋도록 해석하오. 나는 남의 견해를 강박하는 습관이 없소. 거기에 너무나도 신물났으니까.”
“선생님, 저는 작가라 하면 먼저 인간들의 본질적인 속성을 써야 한다고 봐요. 인간들의 참사랑과 욕구, 삶의 희열과 비극적운명 등 모든 인간들이 회피할수 없고 밀어버릴수 없는 그런 동물성일면과 리성적일면 말이예요. 실패와 좌절, 실망과 환멸이 현실을 낳는다면 현실은 미래를 창조하는 밑거름, 미래의 희생품이 아닐가요? 선생님, 저의 당돌함을 용서해주세요. 선생님앞에서 선생으로 되고싶은 생각은 꼬물만치도 없어요. 그저 선생님을 위한 마음뿐이예요. 선생님의 손에서 더 훌륭한 소설이 나올것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예요.”
“경애, 나는 요즈음 이런 생각을 했댔소.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인간은 방황하는 사람이라고.”
“방황하면서도 왜서 방황하는지를 모르는 사람들이지요.”
“내가 그런 사람이지?”
“아니, 선생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 할 말도 없었고 더 할것도 없었다. 련인사이라면 밤시간이 아깝겠지만 우리사이에는 아까울것이 없었다. 자석처럼 끄잡아당기는 흡인력도 없었고 흠모의 정을 나눌 감정적인 접촉도 없는 메마른 공식적담화, 그것이 전부였다. 쥐면 빈 공간, 안으면 어둠뿐이 두 사람 사이, 그래서 일찌감치 자리를 떴던것이다.
하늘이 점지하신 운명이였던지 우리는 그날 저녁의 접촉을 스타트선으로 삼아 자주 만나게 되였다.
썩 후에야 안 일이지만 경애는 부련회 아동권익부에서 사업하는 애숭이처녀였다. 나처럼 작가를 갈망하고 중앙민족학원 조문학부를 졸업한 그녀는 사업에서도 열성가요, 소설창작에서도 재간둥이였다. 그런데 가장 골치거리는 그녀의 소설이 발표될적마다 평론가들과 여론계의 단두대에 올라 피못이 되도록 칼부림당하는 그것이였다. 그럴 때마다 경애는 나를 불러놓고 내가 평론가인것처럼 나보고 항변하는것이였다.
“선생님, 이러면서도 우리의 문학이 전도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이봐 경애, 작가는 평론가들의 말을 씹어삼키라고 했어. 씹다가 찌꺼기만 뱉어버리고 안 그래?”
“하지만 살인을 할수 있다는것도 잊지 말아야 해요.”
경애는 이렇게 도담한 녀성이였다. 나는 그 점이 마음에 들면서도 미적지근했다. 특히 나와 경애의 결합을 놓고 생각할 때면 더더욱 그러했다. 발걸음이 잦아지고 만나는 차수가 늘어감에 따라 나는 자주 경애와의 결합을 생각했었다. 만약 우리들이 한가정을 이룬다면 내가 녀자질하고 경애가 남자질할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이 자주 들군 했다. 그 우려때문에 일년나마 사이 좋게 지내면서도 나는 경애를 가지지 못했고 또 가질수도 없었다. 가지다니? 포옹 한번 못해보고 키스 한번 못해봤는데 뚱딴지같이 가진다는 소리는?
어느 일요일 저녁, 경애가 처음으로 자기 집에 나를 청했다. 처음 베푼 호의인데 거절할수 없었다. 거절이 아니라 가고싶은 마음과 기쁨이 더 컸다. 미워보이던 얼굴이 처음 만날 때처럼 그렇게 싫게는 느껴지지 않았고 당돌함도 크게 기분 나쁘게는 안겨오지 않았다. 헝클어뜨리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그 자태가 어엿하게 보일 때도 있었다. 지어 한주일쯤 만나지 못하면 보고싶고 이야기를 나누고싶고 데이트를 하고싶은 충동에 내 몸이 흔들리는 때가 많았다. 이것이 사랑이라는걸가? 이것이 사랑이라면 작가들은 왜 이토록 쉬운 사랑을 그토록 신비하게, 그토록 유혹적으로 묘사하는걸가? 나도 작가축에 드는데 왜 소설을 쓸 때 련애에 대해 한마디도 써보지 못했을가? 오- 그렇지. 쓰게 못했으니까. 아니, 쓰고싶으면서도 쓰기를 꺼려했으니까.
경애는 푸짐한 음식상을 차려놓고 나를 기다리고있었다. 처음으로 함박꽃처럼 웃으면서 말이다.
“약속을 지켜줘서 감사해요.”
“우리사이엔 약속을 갖고 감사하다는 말 엄금하기로 하지 않았소?”
“그렇지만 오늘저녁엔 김선생님을 우리 집에 청한 첫 약속이 아닌가요?”
“그럼 경애를 우리 집에 청할 때에도 나는 감사하다는 말을 해야겠구만.”
“자, 됐어요. 어서 앉으세요.”
“부모님들은 어데 가셨소?”
“왕청에 잔치가 있어서 갔어요.”
“우리 둘뿐이요?”
“겁나요?”
“아니, 어색해서…”
“전 김선생님이 다 마음에 드는데 남자다운 맛이 없는것이 서운해요. 자, 걱정 말고 앉으세요. 우리 오늘저녁엔 취토록 마시자요. 저도 어쩐지 취하고싶어요.”
우리는 서로 마주앉아 술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몇잔을 비우고나자 누가 문을 떼고 불쑥 들어서면 어쩌나 하는 근심이 차츰 가셔지면서 담이 커지고 나는 남자다운 남자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경애가 일어나서 록음기를 틀어놓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록음기를 갖고있는 집이 연길시를 통털어도 몇집 되지 않았을것이다. 경애의 아버지, 어머니 모두가 방송국 기무부에서 사업하고계셔서 마련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몇집 되지 않는 록음기소유가속에 경애네도 들어있었다.
록음기에선 베토벤의 교향곡 제3번이 흘러나왔다. 달도 잠재우고 별도 잠재우고 땅도 잠재우고 물도 잠재울듯한, 세상의 만물을 잠재울듯한 아름답고 고요하게 흘러나오는 선률. 잠자는 날새들까지 눈물 흘리게 하는 눈물없이는 들을수 없는 비애의 영달, 바위를 물어뜯고 바위를 산산쪼각 내고 바위를 통채로 삼켜버리는 파도의 세찬 노호와 같은 울분… 그 모든것이 이름있는 조각가의 손에서 잘 다듬어진 조각품처럼 내앞에 우렷이 나타났다.
나는 어려서부터 베토벤의 교향곡을 제일 좋아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귀에 익은 곡이여서 그런지 이 저녁 나의 정서는 비등점을 넘어섰다.
“자, 한잔 듭시다.”
“듭시다.”
우리는 음악을 감상하면서 계속 술잔을 기울였다. 음악속에서 술을 마셔보기는 이날 저녁이 처음일것이다. 술이 음악의 정서를 높여주었는지 음악이 술맛을 돋구어주었는지 음악과 술맛은 정비례였고 우리의 정서는 기하학적수치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선생님, 사교무 출줄 아시지요?”
“대학교때 배우다말았는데…”
“저 곡에 맞춰 저에게 춤을 배워주세요.”
“그러다 누가 오면…”
“별걱정 다하시네요. 올 사람 없어요.”
경애는 창문의 카텐을 닫고 내 손목을 잡아일으키는것이였다. 나는 목덜미로 올리뻗는 술기운과 남자다운 멋이 없다던 경애의 말에 반발을 하여 벌떡 일어섰다. 내 체면보다도 경애의 앞에서 남자로 돼보이겠다는 그 욕망과 오기가 내 몸 전체를 달구고있었다.
경애는 사교무와 전혀 접촉해보지 못한 처녀였다. 사교무라는 말만 알았지 사교무와 접촉할수 있는 기회가 없었고 그런 기회를 가질수 없는 년령층차의 녀인이였다.
나는 사교무자세를 취하면서 경애의 허리를 가볍게 안았다. 개암벌레처럼 포동포동 살찐 경애의 허리에서 맞혀오는 부드러운 살감각이 향긋하게 안겨왔다. 그런데 경애가 발 뗄줄 알아야지? 춤을 추려고 시작하면 발과 다리가 서로 부딪치고 몸과 몸이 맞붙으면서 춤이 되지 않았다. 그럴수록 우리의 마음과 몸은 더욱 달아올랐다.
“선생님!”
더는 참을수 없었던지 경애가 내 목을 와락 끌어안으며 젖가슴을 밀착시켜왔다.
“절 꼭 안아주세요!”
그때의 나는 남자였다. 남자로 되고싶어서 된것이 아니라, 남자로 돼달라고 해서 된것이 아니라 진짜 남자로 되였다. 나는 경애를 포옹했다. 그리고는 경애의 입술을 감빨기 시작했다. 참, 녀성들의 입술은? 그토록 달고 그토록 부드럽고 그토록 향기로 넘치고 그토록… 그토록. 그토록 우리는 오래오래 키스를 했다. 달아오른 열기와 숨결이 목구멍을 막을 때까지. 그리고 나의 한손은 저도 모르게 경애의 가슴으로 옮겨졌고 저도 모르게 젖무덤을 파기 시작했다.
사나이의 일은 그것으로 끝난것이 아니였다. 욕구의 정점은 젖무덤에 있지 않았다. 나는 경애를 버쩍 들어안고 그녀의 침실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나는 총각을 잃었고 경애도 처녀를 잃었다.
그날 저녁 내가 언제 어떻게 경애의 집을 나섰는지 그후에도 그랬고 지금도 기억되지 않는다. 그저 라체로 되였던 경애의 모습, 하아얀 살결과 봉긋한 젖무덤, 곡선미를 잘 이루었던 허리와 신비했던 그곳만이 떠오를뿐이였다.
경험해본후에 명확해진것은 인간은 워낙 동물이라는것, 본질적인 속성은 워낙 동물성이라는 그것이다. 단 하나의 차이라면 리성을 갖고있는 동물이라는것이다. 그 리성만 없다면 완전동물이다.
동물성을 거세해버리거나 리성을 거세해버린다면 인간이라는 그 자체의 존재성을 상실하게 되는것이다. 그래서 동물성의 향취도 알았고 리성의 소중함도 알았다.
포옹도 쉬웠고 키스도 쉬웠고 섹스도 쉬웠다. 전혀 힘들지 않았다. 그런데 왜 전에는 그 모든것을 그렇듯 힘들게 그렇듯 심오하게 생각했을가? 단 하나, 동물이면서도 동물이 아닌체하는 그것이다. 자기는 동물이면서도 남들에게는 동물성을 거세해버린 리성만 가진 빚어만든 인간으로 되라고 강요한 그것이다. 불쌍한 족속들, 야박스런 세상인심이다.
경애와 몸을 섞은후에 나의 어깨를 누르는 하나의 무거운 짐이 있었다. 경애가 임신을 하면 어쩌나 하는 그것이였다. 임신하면 경애와의 결혼으로 마무리지으면 되지만 결혼을 생각하자 미타한 점이 많았다. 경애와의 접촉이 싫지는 않았지만 나의 마음이 확 끌리는것은 아니였다. 훌륭한 친구로는 사귈수 있어도 훌륭한 안해로는 될수 없다는 생각이 뒤꼬리를 무는것은 어쩔수 없었다.
내가 바랐던 녀성은, 내가 바라고있는 녀성은 성녀처럼 현숙한 녀인, 그러면서도 시비를 쫙쫙 가를줄 아는 “암펌” 같은 녀성이였다. 화장을 옅게 했지만 화장기가 진해보이는 녀성, 입술이거나 눈에 모든 남성들을 몽땅 감빨아들일수 있는, 그러면서도 추파를 던지지 않는 그런 녀성이였다. 뚱보는 아니지만 남성들을 자극할수 있는 부위가 크고 발달하여 남성들을 회피하면서도 모든 남성들을 한품에 안을수 있는 그런 성감적인 육체를 갖고있는 녀성이였다. 얌전하면서도 야해보이는 그런 자극적인 녀성이였다. 그런데 경애는 그런 녀성이 아니였다. 그런 일면이 전혀 없는것은 아니지만 내가 바라는것에 미치지 못하는 그런 녀성이였다. 그래서 경애의 임신을 걱정했고 그래서 후사를 근심했었다.
아니나다를가 경애는 임신했었다. 현병원에 가서 진찰해보니 임신 석달이라는것이였다. 청천벽력이였다. 앞이 캄캄해났다. 단 한번 그토록 쉬운 행사 한번에, 그것도 어떻게 진행되였던지 기억에도 아리숭한 그 한번에 임신을 하다니?
“병원에 가서 긁어버리오.”
“뭐라구요? 신철씨, 방금 뭐라고 하셨죠?”
“긁어버리라고 했소.”
경애는 나를 뚫어지라 쳐다보기만 했다. 예상치 못했던 말을 들었거나 예상치 못했던 일을 당했을 때처럼… 경애의 그 눈길에서 나는 오열을 느끼며 머리를 돌려버렸다.
“그것도 말이라고 하나요? 그것이 진짜 어엿한 작가의 입에서 나온 말인가요?”
“아무런 준비도 없는데 잔치를 어떻게 하오?”
“잔치가 문젠가요? 이 배속에는 신철씨의 자식이 들어있어요. 신철씨의 자식! 잔치를 갖고 한 생명과 투전을 벌릴 셈인가요?”
“어쨌든 결혼은 못하겠소!”
그날 저녁 오고간 말은 이처럼 간단명료했다. 그런데 경애가 아버지를 찾아갈줄이야? 그때 아버지는 기관당위원회에서 당위서기로 사업하고계셨다. 그러니 아버지는 트림없이 나의 앞날보다 자신의 체면과 존엄을 더 중히 여겼으리라. 아버지는 경애의 청을 고스란히 받아주었고 나는 아버지의 “회초리”맛을 볼만치 보게 되였다.
우리의 결혼은 이렇게 총망중에서 치르게 되였고 나도 김치움맛을 보게 되였던것이다.
그런데 임신한지 석달이라던 경애가 잔치를 치른지 일년이 넘도록 해산을 하지 않았다. 배도 불어나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나는 그때에야 경애의 속임수에 들었다는것을 알았다. 악착스런 녀인, 경애는 바로 그런 녀인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