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윤
2009년 《21세기문학》 신인상 등단. 2014년 시집 『타르쵸 깁는 남자』, 2023년 디카시집 『죽어도 가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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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은 빗줄기에 발이 묶인 채 방안에 갇혀,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가며 트로트 방송을 찾아 함께 흥얼거린다. ‘비 내리는 호남선 / 남행열차에 흔들리는 차창 너머로 / 빗물이 흐르고 내 눈물도 흐르고 / 잃어버린 첫사랑도 흐르네 –김수희 <남행열차>’를 따라 불러보기도 한다.
<비 내리는 호남선> 승차권 한 장 손에 쥐고, ‘목이 메인 이별가를 불러야 옳으냐 / 돌아서서 피눈물을 흘려야 옳으냐 // 비 나리는 호남선에 헤어지던 그 인사가 야속도 하더란다 –손인호 <비 나리는 호남선>’의 궂은비 가락이 가슴속으로 스며든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대전발 0시 50분 / 세상은 잠이 들어 고요한 이 밤 / 나만이 소리치며 울 줄이야 / 아~아~ // 목포행 완행열차 –안정애 <대전 블루스>’의 기적 소리 흐느낌인 듯 절규인 듯 구슬프다. 종착역에 이르러도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 삼학도 바다 깊이 스며드는데 //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이난영 <목포의 눈물>’마냥, 잦아들 줄 모르고 비는 하염없이 내린다.
거기에 어쩌자고 장윤정은 첨단 고속전철 시대에도 <목포행 완행열차>를 불러대는지. 이제는 잊힌 이름의 ‘비둘기호–통일호-무궁화호-새마을호’를 떠올려 보기도 한다. 아무튼 시대에 걸맞지 않게 동남풍의 트로트 바람이 거세다.
비는 여전히 그치지 않고. 심심풀이 삼아 7월 한 달 운세와 오늘의 운세를 점쳐 본다. ‘12월 비’ 괘가 나오지만, 이 우중에 손님이나 친구가 찾아올 리 만무하다. 파전 몇 장 붙여준 것으로 하루 소임을 다한 아내는 이제 불러도 대꾸조차 없다. 커피만 몇 잔째 홀짝이며 우(雨)자로 파자(破字) 놀이를 해 본다.
'기라로쉬 발포 우산' 하나(一) 수건(巾) 쓰듯 머리 위에 받쳐 봐도, 뚝뚝(::) 떨어져 죽지가 아닌 마음을 적시는 것이 비(雨)다. 산등성이(嶺) 분수령에 떨어져(零) 서로 다른 강이 되어 흩어졌다가, 다시 생명의 모태(母)인 바다(海)에서 하나가 된다. 이윽고 증발하여 하늘에 이르면(云) 구름(雲)이 되고, 또 비가 되어 내린다.
이슬(露)은 발길(足) 닿는 길 가(路) 풀잎에 맺힌 비요, 가랑비(霂)는 머리카락을 적실(沐) 정도로 가늘고 촉촉하게 내리는 비요, 우박(雨雹)은 둥근 알갱이가 총을 쏘듯(包) 쏟아지는 비요, 소나기(驟雨)는 말(馬)처럼 벌판을 가로질러 달려오는(驟) 비요, 장마(霖雨)는 수풀(林)처럼 그치지 않고 사흘 이상 내리는 비다.
오후 두 시 방향으로부터 적란운(積亂雲)이 점령군처럼 몰려온다. 금세 바깥이 어두워지고 덩달아 머리도 어지럽다. 이젠 파자 놀이도 심드렁하고 에라! 잠이나 한숨 자야겠다.
한참을 자고 일어나도, 비는 여전히 내리고. 아침인지 저녁인지 분간이 안 된다. 비(積雨)는 여전히 내리고 내려 쌓이고. 무료함에 지쳐 시시때때로, 시시콜콜 시답잖은 것들을 시랍시고 끼적거려 보는 장마철이다. <김석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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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 김석윤
!!!!!!!!!!!!!!!!!!!! 빗줄기
쏟아지는 처마 밑 감옥
i 혼자
우두커니, 내다보는 창살 밖
傘 傘傘 傘 傘 소나무들
푸른 우산을 쓰고도 비를 맞고
ㅛㅛㅛ ㅛㅛㅛ 벼들은
새끼치기에 여념이 없는데
非 非 새 한 쌍
어디로 가는 것인지
․ ․ 점점
멀어지고, 방 안 둘러보면
? ? ? ? ? ? 옷걸이마다
생각에 젖어 마르지 않는 빨래들
첫댓글 장마철 갈 곳은 없고 없는 작은 며느리나 불러 민화토나 칠까 하는 시가 생각나고 없는 애인 불러 술이나 하자 할까 엉뚱한 생각이 나기도 하는 장마철 입니다.
기호, 형태 장마시가 예사롭지 않아 몇 번을 다시 봅니다.
저도 김사인 선생님
긴 긴 "장마"를 공감하며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리한 장마라는 영어에 갇혀서도
그럴싸한 시 한 편 얻을 수 있다면
장기 복역수라도 자청하리라!
그런 심정이 들기도 합니다.
공감의 말씀 고맙습니다.
장마란 시의 형식이 새롭습니다
음미하는 시라기 보다 보는 시 역할을 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디카시가 그렇듯
상상력에 의한 이미지 연상작용이 아닌
시각적인 텍스트를 구현해 보려고
나름 시답지 않은 시시콜콜한 것들을
그러모아 보았습니다.
ㅎㅎ 재밌게 읽어보는 시의 문자
기호표에 가락이 즐겁습니다~♡
공감해 주시고
거기에 가락까지 얹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남행열차
비 내리는 호남선
대전발 0시 50분
대전 블르스
사공의 뱃노래
목포의 눈물
목포행 완행열차
선생님 덕분에 이 노래들을
다 흥얼거려봤네요ㅎ
비 내리는 날 완행열차를 타고
남쪽으로 여행하는 상상을 하면서요.ㅎ
장윤정의 목포행 완행열차는 오늘 종일 흥얼 거리게 생겼습니다.
저는 "목포의 눈물"은 언급만 했을 뿐,
노래를 부르지는 않았습니다요. ㅎㅎ
오늘은 저도 선생님 따라
덩달아 장윤정의 '목포행 완행열차'
연속듣기 티켓을 구매했습니다.
디카시보다
시작노트가 맛있어서
냠냠 또 냠냠😋
만날 비가 와야겠습니다.
선생님 글로 배부르니 좋습니다^^
디카시든 시작노트든
아무튼 맛있게 드셨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비를 워낙 좋아하는 저라서
매일처럼 비가 오면 좋겠지만
제 우산도 팔아야겠지만
짚신장수도 장사를 해야 하니
이 여름 조화로운 계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1세기문학 동네에서 타르죠를 깁는 남자와 죽魚도 가오리다 . 저도 선생님 흉내 좀 내볼랍니다. *^*
??????
무슨 말씀인지
!!!!!!!!!!!!!!!
느낌이 오지 않습니다.
?!
흉내란 무엇을 이름일까요.
@타깁남(김석윤) ㅇ아이쿠 깊은 뜻 없어요. 김 시인님 프로필 보다 널어 놓아봤어요. 오늘은 선선하네요. 행복한 날 되세요.
비상한 두뇌십니다
비비새 한 쌍은 빗속에 어디로 가는 걸까요
오늘밤은 생각에 젖는 꿈길이 될 것 같습니다^^
과찬의 말씀 고맙습니다.
하지만,
저는 "비상한 두뇌"보다는
'비상한 상상력'을 갖기 소망합니다. ㅎㅎ
하여,
늘 생각에 젖어 눅눅하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