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 19암자(개인 법당인 보문암과 무량암 포함)
1. 관음암 : 축서암과 함께 통도사 바깥에 있는 4 암자 중 하나. 관음암은 30여년 전 태응스님이 창건했다.
2. 보문암 : 관음암, 무량암, 축서암과 함께 통도사산외 4 암자의 하나이다. 무량암과 함께 개인 법당으로 통도사의 직할 암자가 아니다. '보문암' 현판은 월하 스님이 썼다고 한다
3. 무량암 : 무량암은 통도사 산외 4암자 중의 하나라고 하지만 보문암과 함께 개인 법당으로 통도사의 직할 암자가 아니다. 법당 현판 '무량수전' 글씨는 월하 스님이 썼다고 한다
4. 축서암 : 통도사 바깥에 있는 4 암자 중 하나. 축서암은 조선 숙종 37년(1711)에 창건했다. 축서암은 선화로 유명한 수안스님이 주석함으로써 암자의 명성이 크게 일어났으며 최근 감원을 맡았던 세봉스님의 원력으로 대웅전을 신축하고 길을 새로 냈다.
5. 비로암 : 고려 충목왕 원년 (1345) 영숙대사가 창건하고 선조 11년(1578) 태흠대사가 중건, 그리고 최근 원명스님이 중수했다. 높은 곳에 자리해 전망이 좋은데다 영축산이 가깝다. 경내는 꽃과 연못, 크지 않은 전각이 어울려 정원에 들어온 듯 편안하다.
6. 백운암 : 영축산 정상에서 가장 가까운 암자로서, 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의 선승(禪僧)인 만공선사가 31세에 두 번 째 깨달은 곳이 바로 백운암이다. 높은 곳에 위치한 백운암에 용왕각이 있다는 사실이 이채롭다. 신라 진성여왕 6년(892)에 조일대사가 창건하고 조선 순조 10년(1810) 침노대사가 중건했다는 정도의 기록만 전한다.
7. 극락암 : 당대 최고의 선지식이며 지식인 기업인 정관계인사들이 존경했던 경봉스님이 주석했던 곳이다. 영남에서 ‘극락’은 한국불교의 중심이며 자부심이었다. 고려시대 창건한 고찰이다. 극락암의 연못 극락영지(極樂影池)는 통도사 8경 중 하나다. 봄에는 벚나무가 장식하고, 여름에는 연등이 빛나며 가을에는 단풍이 연못에 잠기는 비경이다. 극락영지 위에 놓인 무지개 다리 홍교(虹橋)는 탐진치 삼독심에 물든 예토(穢土)에서 정토로 넘어가는 다리다. 경봉스님이 1962년 만들었다. 1955년 경봉스님이 33조사를 모신 삽삼전(三殿), 과거 선원 역할을 했던 정수보각, 경봉스님이 주석했던 삼소굴 등 많은 전각이 있다.
8. 반야암 : 불교학의 산실인 반야암은 대강백 지안스님이 1999년 창건했다. 매월 첫째주 일요일 거사림법회가 열린다. 퇴임한 교수 기업가 학자 등 부산 창원 등지의 나이 지긋한 남성불자들이 대거 참석한다. 한 분야에서 일가견을 이룬 노학자들이 대강백의 법문 한 말씀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 기울여 듣는 광경은 아름답다. 스님은 반야불교문화연구원을 만들고 반야학술상을 제정해 해마다 불교학 진흥에 공이 큰 학자를 선정해 상금을 전달한다.
9. 서축암 : 영축총림 초대 방장이며 종정을 역임한 월하스님이 1996년 창건했다. 절 입구를 들어서면 대강백 종범스님이 2011년 10월부터 매월 한 차례 25회에 걸쳐 서축암에서 했던 대중법회 법문을 엮은 설법집 <오직 한 생각> 소개가 눈길을 끈다. 경내는 깨끗하고 정갈했다. 다보탑이 영축산을 등지고 서 있고 경내는 경전 어구를 적은 안내문이 줄지어 서있다.
10. 금수암(金水庵) : 환경 전문가이며 부부불자인 이병인 이영경 교수가 최근 펴낸 <통도사 사찰약수>에 의하면 금수(金水)는 영축산의 두 신비로운 샘물 중 하나라고 한다. 영축산 백운암을 사이에 두고 금샘과 은샘이 있는데 각기 금수탕과 은수탕으로 계곡 줄기를 타고 흘러내린다. 그 중 금샘에서 내려오는 물이 금수암으로 흘러들어 절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1910년 창건했으니 이제 100년이 넘었다.
11. 자장암 : 통도사 17곳 암자 중 가장 특별한 지위를 갖는 암자인 자장암은 통도사 모태(母胎)다. 자장율사가 중국으로 유학가기 전 머물며 수도하던 곳이다. 금개구리(金蛙)도 자장율사와 관련이 있다. 자장율사가 움막을 짓고 공부할 때다. 계곡에서 공양미를 씻는데 개구리 한 쌍이 늘 물을 흐려 귀찮게 했다. 개구리를 죽일 수 없어 저 멀리 갖다 놓으면 어느새 또 찾아와 자장스님은 예사 개구리가 아님을 알고 특별하게 대했다. 입가에 금테가 두른 것을 보고 이름을 금와라 짓고 ‘세세생생 자장암을 지키며 살아라’는 수기를 주었다.
금와를 둘러싼 신기한 일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6·25 때 통도사는 전국 각지에서 피난 온 스님들이 모여 살았다. 금개구리 이야기를 듣고 신기해서 바루에 넣어 통도사 보광전에 왔는데 바루 안에 들어있어야 할 개구리가 없었다. 다음날 자장암에 갔더니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
자장암을 통도사 중심이라고 하는 이유는 자장암 주변에 대부분 암자가 모여 있기 때문이다.
자장암 마애불은 개화파 선각자 김홍조가 화주해 조성했다.
12. 사명암 :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6년 전 1573년 창건했다. 사명대사는 이곳에 모옥(茅屋)을 짓고 수도하면서 통도사 금강계단 부처님 진신사리를 수호했다. 대사는 왜구의 침탈을 우려하여 진신사리를 2과로 나눠 스승이 계신 묘향산에 보냈는데 휴정은 묘향산 역시 안전하지 못하므로 통도사 금강계단을 잘 수호하여 모시라고 되돌렸다. 이에 1과는 금강계단에 다른 1과는 태백산 갈반지(葛盤地)에 모셨으니 오늘날 정암사 적멸보궁이다.
사명대사를 기리기 위하여 대사의 법명으로 가람 이름을 붙였다. 오늘날은 단청의 산실로 유명하다. 국가중요문화재 단청장 제48호 혜각스님이 주석하였으며 동원스님이 스승의 뒤를 이어 단청장 맥을 잇고 있다.
13. 백련암 : 만일염불회로 유명한 백련정사다. 종단 교육원장과 통도사 주지를 역임한 원산스님이 주석하는 명찰이다.
공민왕 23년(1374) 월화대사가 백련암을 창건했다. 700년 된 은행나무가 우뚝 서있는 백련암은 1938년 성철스님이, 1940년 구산스님이 정진한 유서 깊은 암자이기도 하다.
14. 옥련암 : 옥련암의 현판은 대적광전(大寂光殿) 대신 한글로 쓴 ‘큰 빛의 집’이라고 적혀 있어서 눈길을 끈다. 법선스님이 40여년 주석하며 어린이 법회를 이끌고 한글로 불교를 편다고 한다.
공민왕 23년(1374) 쌍옥대사가 옥련암을 창건했다.
15. 서운암 : 야생차밭으로 유명한 서운암은 백련암 옥련암을 창건한 2년 뒤인 고려 충목왕 2년(1346)에 창건했다. 오늘날의 서운암은 성파스님의 손길이 만들었다. 서운암에서는 엄청난 숫자의 된장 장독들을 만날 수 있다. 알려져 있기는 장독 수가 5천 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리고 서운암 주변에는 100여 종이 넘는 다양한 토종 야생화들을 볼 수 있다. 서운암의 장경각에는 16만 도자 대장경이 소장되어 있다. 성파스님이 10여 년에 걸쳐 도자기에 새겨 완성한 16만 대장경 도자기 도판이 보관되어 있다.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강경보다 두배로 많은 숫자인데, 팔만대장경은 목판 양면에 새겨진 것이고 장경각의 16만 대장경은 도자기 한 면에만 새겨서 그렇다고 한다. 내용은 둘 다 동일하다고 한다.
장경각 앞마당에는 울주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를 본따 만든 작품을 수조에 전시하고 있다. 성파 스님의 '나전옻칠 반구대 암각화' 그림은 옻칠과 나전칠기 공법을 통해 생명력을 불어넣은 더욱 생생하고 율동감 있는 작품으로 감동을 주고 있다. 잊힐 수 있는 귀중한 인류문화유산을 되돌아보게 되고 특히, 수중전시라는 독특한 방법을 통하여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다. 반구대 암각화의 실물과 같은 크기로 7.8 x 4.4(m)로 만들어졌고, 제작하는 데 3년이 걸렸다고 한다.
주차장 입구의 삼천불전에는 성파 스님이 도자기로 3천 개의 불상을 조성하여 모셨다.
16. 수도암 : 고려 공민왕 21년(1372) 이관대사가 창건했다. 암자 중에서 가장 단촐하다.
17. 안양암 : 고려 충렬왕 21년 (1295) 찬인대사가 창건했다. 통도사 팔경 중 하나인 안양동대(安養東臺)는 안양암에서 바라보는 통도사의 비경을 일컫는다. 민간 도교신앙인 칠성각을 받아들여 북극전(北極殿)이라는 전각이 안양암의 전부였다가 그 후 여러 전각을 지어 별도의 암자로 독립했다.
18. 취운암 : 보살선원과 나란히 있는 취운암(翠雲庵)은 통도사 율원이다. 다른 암자와 달리 크고 웅장하다. 조선 효종 1년(1650)에 창건했다.
19. 보타암 : 유일한 비구니 암자다.
양산시 영축산 통도사
19 암자 위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