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5일, 용인시 수지구 고기리에 있는 李百祿 이순신 장군 할아버지 묘소를 다녀왔다. 오래 동안 벼르던 일이다.
임종삼 경기시조시인협회 부회장과 택시로 가보니 고기초등학교 바로 옆이다. 낙생저수지(고기저수지) 근처다. 고기동에 충무공의 조부 풍암(楓巖) 이백록(李百祿)의 묘소와 재실인 덕풍재(德楓齋)가 있고, 조카 이완장군 묘는 거기서 백 미터 떨어진 장군봉 자락에 있다.
향토사학자 임부회장 설명에 의하면, 李百祿 이순신 장군 할아버지는 平市署奉事란 벼슬을 했는데, 평시서(平市署)는 시장의 상도의(商道義)를 바로잡는 일이 주된 업무라 한다. 성격이 호탕해 종로 일대 건달들이 술자리에 초대하자 응했고, 그것이 빌미가 되어 해직되었다. 그 바람에 외아들인 이순신 장군의 아버지 李貞은 벼슬길이 막혔다. 할아버지 李百祿은 해직이 되자 용인 고기동으로 낙향했는데, 그 이유는 흠모하던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1482~1519)가 기묘사화(1519)로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묻혔기 때문이다. 조광조 묘와 고기동 이백록 묘는 직선거리 약 6km 이다.
디지털아산문화대전 자료에 의하면 1545년 한성부 건천동(현재 서울 중구 인현동)에서 이백록의 외아들 이정(李貞1511년~1583년)과 초계변씨(草溪卞氏)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난 충무공(忠武公)은 12세 정도 될 무렵, 어머니의 고향인 충청도 아산으로 가족이 이사를 한 후 줄곧 아산에서 성장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할아버지 李百祿이 일찍이 용인으로 낙향하였을 때 외아들인 이순신의 아버지 이정이 부친을 모시고 용인에서 함께 살았을 것이다. 그 시대에 외아들이 부모 모시는 건 너무나 당연지사이니까. 그후 할아버지가 돌아갈 즈음에 이순신이 태어났으니 가족이 살아간 과정을 고려해보면 이순신이 서울서 태어났다는 건 뭔가 순서가 맞지않는다. 또 서울서 태어났다는 사료의 출처도 분명하게 밝혀놓지 않았다.
추정컨대 외아들인 충무공의 부친 李貞은 고기동으로 낙향한 부친을 모시고 와서 함께 용인에 살면서 조정에 탄원을 올려 부친의 누명을 벗기고, 부친 李百祿이 돌아가신 그 즈음에 이순신이 탄생했다는 자료는 있다. 그런 점에서 이순신의 탄생지는 용인 수지란 추론이 타당하다. 부친 李貞은 아버지 李百祿이 돌아가신 후에 부인의 고향인 아산 처가 동네에 가서 살다가, 후에 벼슬길에 오르자 서울 남산 밑 회현동에 이사 간 것으로 추론된다. 거기서 이순신은 나중에 영의정이 된 유성룡과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사료에도 이순신이 어디서 태어났다는 정확한 자료가 없다.
이순신은 영국의 넬슨 제독 보다 높은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해군의 제독이다. 전세계 역사서 어디에도 모든 전투에서 전승을 거둔 사례는 없다. 이순신이 유일하다. 일본의 전설적 해군 제독 '도고 헤이하치로'는 '자기를 넬슨에 비교하는 것은 가능하나, 이순신에 비교하는 건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 했고, 영국 해군 조지 알렉산더 발라드 제독은 '영국인의 자존심은 그 누구도 넬슨 제독과 비교하길 거부하지만, 유일하게 인정할 만한 인물을 꼽자면 한반도의 이순신 공으로,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실수가 없었으며, 모든 면에서 완벽해 흠잡을 점이 전혀 없을 정도다'라 기술했다.
이런 세계적인 인물의 탄생지가 어디인가? 새로 문제 제기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첫댓글 이순신 에 대한 공부 잘했습니다.그래도 조상이 잘 보살피고 있어서 다행 입니다.충무공의 탄생지가 어디인지 문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