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고릴라 외 1편
이지영
도시 뒤에 살던 고릴라가 나타났다
어떤 기술이 그를 데려왔을까?
사진관 옆 동아테크놀로지 화단에 사는 인형
하얀 털들이 삐져나오는 팔을 늘어뜨린 채
하늘을 미는지 땅을 누르는지
엉덩이를 쳐들고 코는 처박고 있다
한 번도 바뀐 적 없는 자세
내려오지 않는 두 다리 사이로 사람들이 산다
계획 없이 눌러살게 된 곳
수년째 바뀌지 않는 주소
바라본 사람은 있어도 다가간 사람은 없다
계절만 어슷한 두께로 지나갔다
땅을 맛보고 있을 혀처럼
잎사귀가 혓바닥을 내밀면
그는 점점 사라질 것이다
그는 동아테크놀로지 앞에 산다
이제 고릴라를 야생으로 놓아주고 싶다
여운餘韻
이사 나간 집, 소쿠리 하나 바닥을 보고 엎드려 있다
일생을 머물던 곳에 절이라도 하는 것처럼
한동안 일어설 줄 몰랐다.
낡은 등짝이 담담하게 예를 갖추며
오래된 기억을 챙길 때
바람이 걱정스레 다가와 살짝 건들자
잠들었을지도 모를 그의 어깨가 들썩이더니
뒷걸음으로 뒷걸음으로
야윈 손을 흔들며 떠나갔다
미처 챙기지 못한 대나무 뼈 하나
소쿠리 머물던 마당 한가운데
또 혼자 남았다
이지영_2023년 《시와소금》 신인상으로 등단. 현재 청소년 교육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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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시
이지영/도시 고릴라 외 1편(2024년 봄호)
양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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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2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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