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제봉 기슭에서
마른장마가 지속되는 칠월 초이틀이다. 정기고사 기간이라 아이들이 하교한 오후엔 자유로운 시간이 허여되었다. 점심나절 집으로 돌아와 산행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봄날 북면 일대 산나물을 뜯으러 다니느라 들릴 틈이 없었던 용제봉 기슭으로 방향을 정했다. 용제봉에도 참취나 고사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근래 삼정자동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 산행객들이 많아 찾아가질 않는다.
집 앞에서 101번 시내버스를 타 대암고등학교 부근에서 내렸다. 대체국도로 오르내리는 나들목을 돌아 아파트 단지 뒤를 거쳤다. 삼정자동 마애불상을 거쳐 널따란 길을 길었다. 산 아래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등산로를 겸한 산책로였다. 상점 고개에 이르는 갈림길에서 용제봉을 향해 올랐다. 용제봉은 산기슭이 워낙 너른지라 계곡에서는 맑은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평일 오후였지만 산속에 든 사람들이 더러 보였다. 용제봉에 오르는 가장 짧은 코스다. 용제봉은 대암산을 거쳐 오기도 하고 불모산에서 건너올 수도 있다. 장유에서도 오르는 등산로가 몇 갈래 있다. 창원 근교에서 드물게 고산지대 식생을 볼 수 있는 산이다. 나는 예전에 대암산을 올랐다가 용제봉 거쳐 장유계곡으로 내려간 적이 몇 차례 된다. 쉬엄쉬엄 하루 종일 걸리는 길이다.
반나절 산행이라 용제봉 정상까지 오를 생각은 없었다. 물이 흘러내리는 계곡에 손을 담그고 한동안 명상에 잠겨 쉬었다가 나가는 정도였다. 숲속에는 용제봉으로 오르는 여러 갈림길이 나왔다. 나는 사람들이 적게 다닌 희미한 길을 택해 올랐다. 산기슭 어디쯤 계곡 물가 바위에 앉아 쉬었다. 인적은 없고 물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도회인의 지친 심신을 치유하기 알맞은 계곡이었다.
숲은 소나무들도 있지만 참나무를 비롯한 활엽수림이 우거져 있었다. 나는 앉아 쉬었던 계곡 바위에서 일어나 숲속으로 들었다. 등산로를 벗어난 숲에는 여러 풀들이 자랐다. 그래도 높은 나무가 드리운 그늘인지라 풀들이 무성하지는 않아 걷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나는 숲속을 거닐면서 식생을 살펴보았다. 이 정도 숲이라면 여름철이면 식용이나 약용으로 쓰는 버섯이 있을 법도 하였다.
여름이면 숲이 우거진 산중은 간간이 식용 버섯으로는 목이버섯이 있다. 엊그제 양곡 뒷산에 올라 말랑말랑 펴져 자라는 목이버섯을 본 바 있다. 용제봉 기슭에도 숲이 우거져 삭은 나무둥치에 목이버섯이 있을까 싶었다. 절로 고사목이 된 나무들은 더러 보였으나 목이버섯을 쉬 찾을 수 없었다. 한참토록 두리번거리다가 어느 삭은 나무 둥치에서 자색 영지버섯이 보여 몇 개 채집하였다.
근래 중동호흡기증후군인 메르스가 온 나라 안을 들쑤셔 놓았다. 사실 이만큼 치료제도 없고 위험한 질병이 있다. 늦은 봄부터 가을까지 숲속에서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작은소참진드기에 물렸을 때 나타난다는 중증열성혈소판 증후군이다. 내가 겪어 보기로는 산행 이후 집에까지 배낭이나 등산복에 작은소참진드기가 붙어 따라온 경우를 더러 보았다. 소년기 소 먹이러 다닐 때 보았던 가분다리보다 크기는 더 작은 작는소참진드기였다. 이젠 숲에도 마음 놓고 들어가기 어렵다.
그간 내가 산에 오르면 무서워하는 것이 셋이었는데 하나 더 늘었다. 멧돼지나 뱀 같은 산짐승은 들지 않는다. 내가 비켜주거나 길을 먼저 가도록 기다리면 해결되었다. 나는 약간의 고소공포가 있어 출렁다리나 낭떠러지 앞에선 몸이 오르라든다. 숲속에 꿩이 숨어 있다가 내가 가까이 다가갔을 때 퍼드덕 날아오르면 화들짝 놀란다. 다른 하나는 옻나무이다. 나는 옻을 잘 타 아주 민감하다.
숲속에 들어 작은소참진드기를 걱정하면서 영지버섯을 찾아보았다. 이제 손가락만한 자루에 갓이 펴지는 것들이 몇 개 보였다. 작은 것은 남겨두고 갓이 펴진 것들만 골라 채집했다. 반시간 가량 숲속을 거닐다 계곡으로 내려가 땀을 씻었다. 집으로 돌아오다 모처럼 연락이 닿은 지인과 집 앞에서 맑은 술을 한 잔 기울였다. 많지 않은 양이었지만 영지는 마주앉은 지인한테 몽땅 보냈다. 15.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