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군 수북면 두정리 용정마을 김영순 씨 ‘된장적’
대숲바람 더해져 세월이 품어낸 맛
시간과 자연이 빚어내고 정성이 어우러진 된장이 맛의 원천
채소와 조화, 씹을수록 구수한 맛…세월은 가도 향기로 남아
혁신의 아이콘으로 돌풍을 일으킨 국민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의 창업자. 지난해 미국 블룸버그(Blooomberg)통신이 순자산 135억 달러, 우리 돈으로 15조 4천억 원의 재산을 보유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제치고 한국 최고 부자로 등극했다고 보도했던 기업인. 더욱이 우리나라 서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산의 절반인 ‘조’ 단위의 통 큰 기부를 약속하여 언론지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화제의 인물. 그는 바로 국내 최고의 IT기업을 일궈낸 김범수이다.
흙수저로 알려진 그는 어릴 적에 상경한 부모 밑에서 어려운 형편을 견디며 공부하여 명문대를 거친 후 자수성가한 기업인이다. 개인의 영달일지라도 이 또한 가문의 영광이 아니겠는가. 종손인 그가 문중의 시제를 지낼 때 찾아가는 곳이 있는데, 바로 담양군 수북면 두정리이다. 이곳은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고향이고 현재 그의 종조모가 살고 있다.
한적한 시골길을 한참 달려가면 수북면의 최북단에 두정리가 있다. 이곳에 사람들이 살게 된 것은 조선 광해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주 김씨 중시조(中始祖) 계림군(雞林君) 균(稛)의 10세손 향진(香振)은 전북 임실 출신으로 제주목사를 지낸 후 여생을 보낼 곳을 물색하던 중 두정리에 반한다. 그의 후손들이 이 마을에 정착한 후 언양 김씨, 밀양 박씨가 이주해 오면서 다양한 성씨들이 어울려 살고 있다.
두정리는 조선시대에 광주군 갈전면에 속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두동리, 용정리, 경호리 일부와 담양군 고면의 구연동 일부를 합하여 담양군 수북면에 편입됐다.
두동의 두(斗)자와 용정의 정(井)자를 합한 두정리는 왕봉산 아래 용정, 경산, 두동이라는 3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지는데, 예부터 전답농사를 지어 쌀, 보리, 콩 등 농산물로 생계를 꾸려가는 평범한 농촌마을이다. 1970년대까지는 대나무를 사서 만들었던 죽제품이 이 마을의 중요한 소득원이었는데, 플라스틱 제품들이 생산되면서 자취를 감추게 됐다.
두정(斗井) 마을의 한자에서 알 수 있듯이, 동네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우물이 오랜 세월에도 마르지 않고 현존하고 있는데 용정마을에 있는 ‘용구샘’이 바로 그것이다.
10가구도 채 안 되는 작은 용정마을의 이 샘물이 두정리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웃음꽃, 이야기꽃을 피우게 한다. 바닥이 환히 보일 정도로 맑은 용구샘에 손을 넣어보니 마치 얼음물처럼 한여름 더위를 싹 가시게 한다. 이 보약 같은 샘물은 전통장을 오랜 시간 숙성할 수 있게 함으로써 별미를 만드는 원천이 되고 있다. 특히 집 근처의 샘터와 푸르른 대숲의 기운을 얻어 동네에서 손맛이 뛰어난 김영순 씨가 전통장을 이용한 별미를 만들고 있으니 바로 ‘된장적’이다.
해방 전, 영순이의 부모는 돈을 벌기 위해 현해탄을 건넜다.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난 영순이의 일본 이름은 ‘도미꼬’였다. 형제간은 아들 다섯에 딸 하나라서 꽤 귀염받는 딸이었다.
“지진이 일어난 거 쪼까 알겠서라. 바깥에 나갔는디 신작로에서 땅이 빙빙빙돈께. 우리 어머니허고 동네 할머니가 와서 두 형제를 꽉 안아주셨어”
어린 영순이에게 일본은 무서운 지진의 나라로 기억된다. 해방 후, 영순이가 6살 때 그의 가족은 아버지의 고향인 담양군 대전면으로 돌아왔다.
물설고 낯선 이국 땅에서 돈을 벌었어도 여전히 형편이 넉넉지 않아 농사지으며 가난하게 살았던 영순이네 가족. 먹을 것이 없었지만, 초록이 무성한 여름이 되면 엄마가 꼭 해주셨던 음식이 있었다.
박 바가지에 된장을 풀어 밀가루와 들에서 뜯어온 갖가지 푸성귀를 썰어 넣어 조물조물 반죽하고, 가마솥 뚜껑에 돼지비계로 기름칠해서 부치는 그것. 바로 ‘된장적’이다.
“징다랗게 맛있써. 여름철에만 해서 먹었는디 짜디 짜서 덜 쉬어.”
어린 영순이는 어느덧 나이 여든셋의 할머니가 됐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때 겁나게 맛있었던 친엄마의 된장적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23살에 담양 수북면으로 시집간 그는 자식 키우랴 살림하랴 농사지으랴 시어머니 봉양하랴 정신없이 살았지만 여름철이면 친정엄마가 해주신 된장적을 밥상에 올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배고픈 그 시절, 된장적은 밥반찬으로, 도시락 반찬으로 가족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된장적 맛의 기본은 뭐니해도 된장.
해마다 12월 중순쯤에 직접 농사지은 콩을 깨끗이 씻어 물에 불리고 가마솥에 말랑말랑해질 때까지 삶는다. 도구통에 찧어 네모 모양으로 만든 메주는 뜨끈한 방에 고르게 깐 지푸라기 위에 올린다. 다음 날, 메주가 좀 단단해지면 짚으로 꼰 새끼줄에 묶어 처마 밑에 한 달간 매달아 놓는다. 산 좋고 물 좋은 담양의 겨울 햇살과 바람을 맞으며 메주가 잘 띄워지면 곰팡이가 생기면서 고소한 냄새가 나는 법. 정월이 되면 메주로 장을 담가 검정 숯과 말린 홍고추를 띄우고 벌레가 들어오지 않게 고추와 숯을 끼운 새끼줄을 장독에 묶어 둔다. 40일간 장맛이 잘 우러나면 메주를 건진다. 옹기 뚜껑에 장을 조금씩 넣어 메주를 막 치댄 후, 장독에 오래 삭혀서 가을에 먹어야 제맛이라고 그는 말한다.
김영순표 된장은 겨울부터 가을까지 오랜 시간과 정성, 자연이 빚어낸 합작품이다. 이 또한 친엄마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기에 지금까지 된장 맛을 이어가고 있다. 집 뒤뜰에 있는 장독대에서 옹기에 삭힌 된장을 한 줌 뜬 후, 물을 적당히 부어 짓이긴다. 밀가루를 넣어 걸쭉하게 반죽한 다음, 다진 마늘을 넣고, 밭에서 기른 싱싱한 부추, 깻잎, 청홍색 청량고추를 깨끗이 씻어 먹기 좋게 썰어 넣는다.
특별히 흔치 않은 채소를 넣는데 바로 그가 감나무밭에서 재배한 ‘곰보배추’이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농식품자원부에서 제공한 자료에 의하면 곰보배추는 배암차즈기(Salvia plebeia R. Br.)이며 전국 각지의 양지바른 논밭이나 들에서 잘 자란다.
담양 사람들은 잎 표면이 우둘투둘해서 곰보 같다고 ‘곰보배추’, 뱀이 입을 벌리고 있는 것 같은 꽃 모양에 ‘배암(뱀)배추’, 몸에 약이 된다고 해서 ‘약배추’ 라고 불렀다.
곰보배추 잎을 먹어보면 쓴맛이 강하며 매운맛이 나고 특유의 향을 풍긴다. 예로부터 민간에서는 기침과 가래를 멎게 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알려져서 집집마다 앞마당에 상비약으로 키우며 차로 끓여 먹기도 했다. 한낱 부침개에 불과할지라도 건강에 이로운 곰보배추를 넣어 된장적을 만든 옛 어르신들의 슬기를 엿볼 수 있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손때 묻은 국자로 푹 뜬 반죽을 넣어 고루고루 편다. 국자로 전을 부치는 손놀림에는 노련한 주부의 삶이 배어있다. 앞뒤 뒤적이다보면 점점 노란 된장 빛이 살아나고 고소한 냄새는 쩝쩝 입맛을 다시게 한다. 드디어 노릇노릇 익은 된장적을 쟁반에 착 올려놓고, 직접 손으로 뚝뚝 잘라서 제작진에게 준다. 씹으면 씹을수록 구수한 된장 맛이 은은하게 나면서 각종 채소들은 부드럽게 목을 감싸고 매콤한 고추 맛은 느끼함을 잡아준다. 그냥 먹으면 그렇게 쓰디쓴 곰보배추는 된장적과 만나 전혀 쓴맛을 내지 않고 찰떡궁합을 이룬다.
쏴~ 대숲에서 부는 바람에 세월의 맛이 더해지는 김영순 씨의 장독대에는 오늘도 제자리를 지키며 된장이 맛깔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지천에 싱그런 녹음이 가득히 채워지는 여름날, 무더위에 지치고 입맛이 없을 때, 갑자기 후두둑 소나기라도 쏟아진다면, 담장 너머로 된장적을 부치는 고소한 냄새가 금세 스멀스멀 흘러나와 온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줄 것 같다.
<남도밥상탐험대=최지영·남정자·박기순·조장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