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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자료실 스크랩 하얼빈 이야기
농촌사랑 추천 0 조회 31 10.08.28 09:3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13인의 遊哈爾濱記

 

 

 




                            때 : 2010.1.22 ~ 1.25

                 장소 :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

     누가 : 김의양여사 딸 넷과 사위 둘 그리고 손주들 13명

 

1. 작전짜기

 06년에 북경에 입경하여 매년 겨울이 되기 전에는 하얼빈 빙등축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했다. ‘가봐야지, 가봐야지’ 하면서도 지금껏 하얼빈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올 2010년으로 해가 바뀌면서 그 기회가 다가온 것이다. 12월경에 군산과 서울의 장모님, 처형, 처제들께서 북경에 며칠 동안 다녀가시기로 계획을 만드셨기에 이곳에 있는 우리는 이 분들과 함께 할 여행지로 춥긴하지만 하얼빈을 선택하고 그 준비를 시작하였다. 일단 일행이 13명이나 되어서 단독으로 교통편을 만들고 기타 여행관련 숙소나 일정을 잡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여행사에 문의를 하였고, 두 곳 여행사에 견적을 의뢰하여 하나의 여행사에 단독팀을 구성하여 꾸려달라고 부탁을 하여 실행에 옮기게 된 것이다.   우리 일행에 연세가 드신 분도 계시고 꼬마들도 있어 나름대로 덜 고생스러운 일정으로 준비를 해 보았다. 물론 여행사에서 기획해 준 것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검토과정에서 무난하다 싶어 따르기로 했다. 12월 성탄절 전에 여행사와 계약을 하고 1월 18일에 잔금을 치루고 기차티켓을 건네받았다. 이로써 오랜 세월 기다렸던 하얼빈 빙등축제를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1월 20일에 장모님을 포함한 4분이 입경을 하시었고 21일에 다시 체제를 포함한 조카 둘이 입경을 하여 하얼빈을 갈 전체 인원이 모두 모이게 되었다. 이로써 22일 출발할 인원은 모두 모였으며, 출발을 위한 준비를 모두 갖추게 되었다. 이제 기차타고 하얼빈에 발을 디딜 일만 남은 것이다. 자! 여행을 떠나요~~오.

 

 

 

 

 

 

 

 

 

 

 

 

 

 

 

 

 

 


2. 첫 날 -1.22 금요일

 출발하는 날 낮 시간은 학교가 방학하는 날이었다. 초중고 졸업식과 더불어 재학생 종업식도 있는 날이어서 오전엔 제법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었다. 반 아이들 종례를 마치고 졸업식에 참여한다. 졸업식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오후에 퇴근하여 휴식을 취한다. 이전 같았으면 어딘가 여행일정이 잡히면, 내가 이런 저런 준비를 제법 했는데 이번에는 성제엄마에게 맡긴 채 아무 것도 하질 못했다. 고작 한 것이 여행사를 통한 준비만 하게 되었다. 장소 관련 여러 정보도 검색을 하여 자료를 만들고 아이들 학생증이나 각종 필요한 증명서류도 챙기곤 했는데 이번엔 이런 기본적인 것조차 챙길 여유를 갖지 못하였다. 바쁜 것인지 아님 그냥 집사람에게 맡긴 것인지, 꼭 변명을 하자면 학년말 이런 저런 일감 탓에 조금은 바쁜 구석은 있었다.

 

 13명의 대부대이다 보니 짐도 제법 많다. 실제 하얼빈에서는 1박 2일의 시간뿐이지만 오고 가고 하는 시간이 있다 보니 최소로 짐을 꾸린다 하였는데도 먹거리를 준비하다보니 짐이 많아졌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하얼빈에 아침에 도착하면 아침식사가 없다고 이야길 하여 우리 아낙네들이 아침식사로 대용할 준비를 하였다. 그런데 다시 일정표를 보니 아침식사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미 다 준비를 하고나서 이 이야길 하니 한 소리 먹는다. 이미 준비해 놓은 것 그냥 푸짐하게 먹어야지 뭐 어쩌겠는가.

 저녁식사를 일찍 마치고 7시에 북경역까지 태워 줄 차를 불러 드디어 출발한다. 비로소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찡순로를 통하여 나가는데 조금 차가 막혀 시작부터 은근히 걱정을 하게 한다. 그러나 동삼환을 지나니 길은 다시 뚤려 걱정을 떨치게 한다. 금요일 저녁이라 길이 어느 정도 막힐 것을 예상하여 일찍 출발 한 것인데 생각보다 도로 상황이 좋아서 북경역에는 여유 있게 도착한다. 짐 검색기를 통과하여 북경역 2층 대합실로 간다. 우리가 탈 기차 대합실을 찾으려고 한 보안직원에게 물으니 이 친구가 대합실 앞까지 안내를 해준다. 이전보다 많이 변한 모습이다. 이전엔 물으면 그저 팔을 들어 손가락으로 적당이 가르켜주곤 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이번엔 ‘따라 오라’ 하며 대합실 입구까지 안내를 하고 돌아간다. 참으로 많이 친절해진 모습이다. 이 친구의 도움으로 대합실로 다시 이동을 한다. 막 들어가려는데 한 친구가 접근한다. 개찰하기 전에 짐을 옮겨주는 친구인데 이들의 도움을 받으면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열차에 탑승할 수 있다. 이 친구에게 물으니 한 사람당 5원씩이란다. 짐도 제법 되고 사람도 많고 해서 이 친구에게 부탁을 하여 짐을 싣고 따라간다. 운임은 50원을 주기로 했다. 기차가 정차된 플랫폼 입구에 도착하니 아직 출입문이 열리지 않았다. 잠시 후 기차가 도착하고 8시 30분이 되니 문을 열어주고 입장을 시켜준다. 우리는 첨으로 보통 개찰시간보다 1시간을 앞서서 우리의 객차로 입장한다. 일부사람들만이 이런 절차를 통하여 자기 객차에 들어오는 것이다. 약간의 운임이 들긴 하지만 짐이 많거나 사람이 여럿인 경우는 나름대로 효과적인 방법인 것 같다. 덕분에 우린 다른 승객들로부터 밀치거나 밀리지 않은 채 아주 편안하게 우리들의 객실에 미리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이번에 타는 기차는 6인실 잉워(硬?)이다. 이전에 몇 번 탄 경험이 있는 기차이지만 다른 분들은 처음 접해보는 기차이다. 3개의 침대가 좌우로 상중하 3개씩 나누어져 있다. 위치에 따라 객실 요금도 9원씩 차이가 난다. 가장 아래침대(하)가 비싸고 위(상)가 싼 것이다.

 

 

 

 

 

 

 

 

 

 

 

 

 

 

 

 

 

 

 

 

 

 

 짐도 풀었고 아이들 자리도 배정을 한 상태라 이젠 시간만 보내면 된다. 시간은 이미 잠 잘 시간이기에 각자의 침대에 누워 자고 나면 하얼빈에 도착할 것이다. 아이들은 지들끼리 먹거리도 찾고 놀기도 한다. 우리 어른들은 한 칸에 모여서 잠시 준비해 온 맥주와 백주를 한 잔씩 한다. 편안한 그리고 안락한 잠을 위하여! 맞나? 한참을 잔 듯 싶은데, 옆에서 뭔가 먹고자 하는 웅성거림이 들린다. 아이들이 잠깐 속이 허한지 뭔가 찾아 먹는다. 이모가 아이들에게 준비해 온 볶음밥을 먹이는 중이다. 녀석들 한참을 놀더니 늦은 밤에 시장기를 느낀 모양이다. 이 소리에 잠시 뒤척거리다 다시 잠에 빠져든다.

 

3. 둘째 날 -1.23 토요일

 어제 밤에 만난 우리 9호차의 차장은 건장한 남자였다. 이 친구의 첫인상이 좋은 편이다. 썩 미남은 아니지만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매우 호감을 갖게 한다. 불편한 인상이 아니다. 더러는 기차에서 만나는 차장 또는 승무원들은 불편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번에 만난 이 친구는 매우 상냥한 인상이다. 가볍게 기차타면서 인사를 했고, 아침나절에 일어나 내리기 직전에 잠깐 우리 자리 쪽에서 몇 마디 주고받기도 하고 가져갔던 호두과자 몇 개를 맛보라고 건네기도 하였다. 사양을 하지만 하나 맛은 본다.

 

 아침 7시가 못되어 다들 일어난다. 아침에 창으로 대하는 기차 밖 풍경은 한적한 시골풍경이다. 천지가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고, 간혹 보이는 주택들의 지붕 위로 솟은 굴뚝에서는 아침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전 고향에서 바라보는 풍경 같아 다정함이 깃든다. 물론 주택의 모습 등이 다르긴 하지만 하얀 벌판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벽돌 주택 위 굴뚝에서 아침준비를 위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면서 하루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과연 저 집 안에서는 아침준비를 뭐로 할지 궁금하다. 우리가 흔히 아는 빵 종류일까? 아니면 밥 종류일까? 기차칸을 연결하는 통로 사이의 유리창은 성에가 두껍게 얹혀져 있다. 밖 기온과 기차내 기온가 차이가 제법 있는 모양이다. 걱정했던 만큼은 아니지만 유리표면에 두껍게 성애가 낀 것으로 보아서는 제법 찬 기온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객실의 오른쪽 창으로 아침 햇살이 환하게 또 눈부시게 다가온다. 철로가 좀 더 고지대를 가고 있다면 아마도 기차 내에서 바라보는 보기 드문 일출이 되었을 것 같은데, 평지를 달리는 중이라 그런 멋진 풍경은 다가오지 않는다. 그래도 창밖 나무사이로 붉은 빛을 펼쳐주는 태양 모습 역시 보통 때와는 다른 신기함을 주는 것 같다.

 

 

 

 

 

 

 

 

 

 

 

 

 

 

 

 

 기차는 예정시간보다 약 10여분 늦게 하얼빈역에 도착한다. 하얼빈역 4번 플랫폼에 들어선다. 하얼빈역 1번 플랫폼에 안중근의사 의거현장이 표시되어 있다고 들었는데, 우리는 애석하게도 4번 플랫폼으로 들어섰기에 이 현장을 오늘 아침엔 확인할 수가 없었다. 돌아갈 때나 다시 확인해야할 것 같다. 기차에서 내리자 하얼빈 일정을 안내할 가이드 배금자씨가 마중을 나왔다. 우리는 가이드를 만나 출구로 나가기 시작한다. 비교적 이른 아침시간이라 그다지 사람은 많지 않아 덜 붐빈다. 하얼빈역 광장에는 역시 얼음도시여서 그런지 얼음조각이 한 세트가 마련되어 있다. 탑과 그다지 크지 않은 건물모양이다. 아침이라 영롱한 빛을 발하지는 않는다. 빛이 없어 그런 모양이다. 일단 우리는 처음 보는 얼음조각이라 “와! 멋지다.”하면서 탄성을 낸다. 대기중인 버스를 타고 큰 길가로 나오니 역시 가로수 옆에도 물고기 입 모양으로 조각한 얼음덩어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기온이 찬 탓인가 얼음은 반질반질하고 물기가 하나도 없다. 손을 대보니 차가움만 전해진다. 가이드가 말하길 “아침식사를 위하여 예약한 식당이 있는데 기차가 늦게 도착하여 9시까지 시간을 늦추었다.”고 한다. 또 묻는다. “혹시 복장시장엘 가겠냐?”고. 우리는 “필요없다.”고 한다. 충분히 준비를 해왔기에 복장시장 가서 사야 할 옷이 없었다. 흔히들 하얼빈에 오면 날이 차고 하니까 복장시장에 들러 임시로 입을 방한복이나 모자, 장갑, 신발 등을 사는 모양이다.

 

 대기중인 버스를 타고 우리는 식당으로 향한다. ‘正陽樓’라고 하는 제법 큼직한 식당이다. 들어서니 어느새 아침식사를 마치는 시간이라 손님은 없다. 아침식사용으로 한 두 가지 죽이 준비되어 있었고 몇 개의 냉채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마감시점이라 푸짐하지도 않다. 그래서 우리 어른들도 그저 죽으로 대충 먹는 둥 마는 둥하고 나온다. 아이들은 더욱 더 먹을 것이 없다. 식당에서 오래 머물지 않고 나와 버스를 타고 다시 중앙대가 쪽으로 향한다. 아직 우리가 묵을 호텔에 체크인 하기는 이른 시간이다. 가능하다면 호텔에 체크인하고 짐을 놓고 필요한 짐만 가지고 움직이고자 했는데 시간이 일러 첫 코스로 중앙대가를 산보하기로 한다. 버스를 타고 중앙대가를 가기 위해 시내로 진입한다.

 

 도시는 비교적 깨끗하고 산뜻하게 단장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추운 지역이라 그런지 지저분하고 어수선한 모습은 없다. 또한 길가 어느 곳에든 얼음조각이 있어 그런지 얼음나라 같은 인상을 준다. 중앙대가 앞에서 우리는 내린다. 작은 대문형식으로 중앙대가 간판이 보인다. 도로바닥은 작은 사각형의 돌로 깔려져 있다. 그 작은 돌 조각 하나가 당시엔 한 사람의 한 달 식비가 될 정도의 금액이었다고 한다. 그 수 십만개의 돌로 중앙대가 도로 전체를 포장한 것이다. 눈이 녹고 찬 기운이 있어 그런가 바닥은 반질반질하다. 또한 도로 양옆으로는 아직도 얼어붙은 눈 흔적이 있고 바닥도 군데군데 얼어 있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도로 중앙에는 작은 얼음조각들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리하고 있다. 우리들 눈에는 처음 보는  얼음조각들이라 신기하고 대단하게만 다가온다. 나중에 진짜 빙등제 조각들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중앙대가 양옆 건물들은 일반적으로 도시 건물들과 다른 점들을 보인다. 중국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곳 하얼빈이 이전에 동청철도 개설하면서 러시아가 관할한 지역이라 그런지 나름대로 러시아풍의 냄새를 낸다. 지금은 모든 건물들이 상점으로 바뀌어 있어 건물 밖은 다양하고 눈에 익은 상호 간판들이 붙어 있지만 그 건물 전체의 모습들은 우리들 눈에 익은 모습들이 아니어서 새로움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아직 오전이라 그런지 거리에 사람들은 많지 않은 편이다. 앞으로 나가는데 그다지 불편함이 없다. 우리는 도로 양옆으로 서 있는 건물들과 도로를 눈으로 확인하고 가면서 계속 걸어 나간다. 중앙대가를 중심으로 양 옆으로 제 1道, 제2道  식으로 샛길이 나 있었다. 작은 샛길 하나하나를 확인하지 못하고 눈으로 보고는 다시금 앞으로 전진한다. 역시 기온이 차긴 찬 모양이다. 조금 걷다보니 귀가 시리다. 버티다 못해 가방에서 빵모자를 꺼내 쓴다. 더 버티다가 내 귀만 고생할 것 같아 아니 되겠다. 멋 부릴 것도 아니지만 일단 내 몸부터 보호를 해야겠지. 우리 일행들은 머플러에 모자에 장갑에 나름대로 안전무장을 한다고 했다. 가이들 말에 이르면, 우리가 도착한 이번 주는 그래도 기온이 많이 올라간 상황이라고 한다. 지난 1월 초에는 기온이 영하 31도까지 내려갔다고 한다. 우리 역시 겁도 많이 먹고 걱정도 많이 했는데 막상 하얼빈에 도착하고 보니 생각보다 추운 정도가 덜하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길 했다.

 

 거리를 걷다보니 얼음조각 배경으로 아이들과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대부분 사람들의 복장은 비슷하다. 푹 눌러쓴 빵모자 등으로 얼굴을 거의 가린 상태이고 두툼한 장갑 그리고 신발 등. 나름대로 추위에 준비를 한 모습들이다. 난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일행들 사진도 찍고 건물 사진도 찍고 한다. 성제는 인호와 붙어 다니고, 희은이는 지민이와 붙어 다니고 하영인 나름대로 어른들과 함께 하면서 이런 저런 것도 묻고, 듣고 알려주고 한다. 녀석은 그래도 큰 놈 행세를 하는 것 같다. 중앙대가에 대하여 찾아 본 자료를 보면 다음과 같다.

 

 중앙 큰 거리는 1898년 조성되었다. 이후 중심상업거리로 발전한 거리이다. 북쪽의 송화강변의 방홍기념탑에서부터 남쪽의 경위거리(??街)까지 약 450m 정도 연결되는 거리이다. 도로 양쪽으로는 많은 商社들이 운집해 있어 아름다운 건축미를 보여주고 있다. 그중 유럽식정방형의 건축물 71동, 바로크풍 및 현대식 보호건물 13동이 있다. 또한 이 거리는 서구건축사상 가장 영향을 미친 4대 건축유파와 유럽최고의 매력을 느끼게 하는 300년 문화발전 역사가 담겨져 있다. 이 거리는 런던의 섭정왕 거리, 파리의 샹제리제 거리, 베를린의 푸티슈 거리, 동경의 은좌 거리, 상해의 와이탄과 천진의 웨이뚜리아 거리와 서로 같게 보고 있듯이 유럽과 미주의 문화중심이기도 하다. 이 거리를 걷노라면 타향에 와 있는 듯한 감정을 갖게 된다. 이 거리 양쪽에는 부속골목이 있고 6곳의 휴식구역과 3개의 문화오락구역이 있다.

 

 1924년 5월 러시아 설계사 커무터라샤오크에 의해 건설된 중앙대가는 길 위에 네모반듯한 돌을 깔았다. 사용된 돌은 화강석으로 길이가 18센티 넓이가 10센티 그 모양이 러시아 빵과 같고, 한 개 한 개가 아주 정교하고 세밀하며 멋지다. 길 위에 까는 이런 공법은 중국이나 외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시 이 돌 하나는 은화 1위엔 이었는데 이 돈은 가난한 사람이 한 달을 먹을 수 있는 돈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거리 몇 백 미터(실지로는 1300여 미터임)중국대가는 금으로 만든 길이라고 일러진다. 관계자는 이 중앙대가에 깔려진 돌은 앞으로 1,2백년은 더 사용가능하다고 말한다.

 

 네모난 돌은 중앙대가를 잠시 화려하고 진귀하게 드러내 보이는 결과를 낳았다. 당시 중국대가에 있는 외국상점, 약국, 호텔, 주점, 나이트클럽 등등... 그 중 따오리의 치추린펀공스와 마디얼호텔이 모든 극동지구(하얼빈)에서 매우 흔한 유명도를 보이고 있다. 이 길은 하얼빈의 최신 유행을 따르며 현대적인데 이곳에는 러시아의 모피와 영국의 모직품, 프랑스의 향수, 독일의 약품, 일본의 면직물, 미국의 석유, 스위스의 시계, 자바의 굵은 사탕(덩어리사탕),  인도의 마대(마로 만든 제품) 및 각국의 건조 과일제품이 고루 판매되고 있어 국제상품 전람회에 뒤지지 않는다.

 

 1925년 이 거리를 공식적으로 중앙대가로 개명하였다. 지금의 중앙대가는 여전히 원래의 화강석보도블록의 명치를 유지하고 있다. 거리의 양측의 상업과 음식점이 200여 곳에 이르며 완벽한 서비스를 갖춘 서비스 중심거리로 바뀌었다. 특히 최근에 와서 각 상점들이 연달아 새롭게 장식하고 화려한 금은색으로 치장을 하여서 중앙대가가 더욱 부와 화려의 전당으로 탈바꿈하여 하얼빈의 가장 유명한 특색 있는 상업중심거리로 변모하였다. 1997년 하얼빈정부에서는 중앙대가를 보행의 도로로 정하였다.』

 

 이 중앙대가를 약 50분 정도 산보를 한 것 같다. 우리 눈앞에 가이드가 이야기한 金谷大酒店이 보인다. 이곳이 바로 우리가 하룻밤 묵을 호텔인 것이다. 21층의 높은 건물이다. 經衛街에서 시작하여 송화강변 방홍기념탑까지 이어지는 중앙대가의 송화강변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는 건물이다. 중앙대가에서 제법 높아 멀리서도 바라볼 수 있는 호텔이었다. 호텔 로비로 들어간다. 마침 우리가 들어갈 방이 대부분 체크아웃을 마쳐 들어갈 수 있었다. 예약한 방 6개를 확보하고 방 열쇠를 받는다. 이상하게도 보증금 500위앤을 요구한다. 보통 여행사를 통한 여행을 하게 되면 여행사에서 호텔 보증금까지 다 해결하곤 했는데 이번엔 이상하다. 가이드에게 이야기하니 잘 모른다. 그래서 할 수없이 일단 호텔 야진 즉 보증금으로 500원을 맡긴다. 물론 나중에 돌려받을 금액이긴 하지만 여행사가 할 일을 내가 하는 것이기에 좀 의아함이 생긴다.

 

 여권을 모두주니 이 친구들이 하나하나 적는다. 복사를 하면 좋을 것은 13명의 인적사항을 모두 적는 것이다. 이름, 여권번호, 여권유효기간, 입국일자 등을 나 같으면 복사를 할 것인데, 그래 내가 “왜 복사하지 않냐?”고 물으니. “복사기가 2층에 있단다.” 올라가기 싫어서 그런지 아님 시간이 여유로와 그런지 모르겠다. 이들이 그리하겠다는데 내가 이래라 저래랴 할 일은 아니다. 다 작성할 때까지 기다려 여권을 받아들고 13층으로 올라간다. 우리 객실이 모두 13층에 배정되었다. 아이들, 어른들 방을 배정하고 짐을 간단하게 정리한다. 이제 밖으로 가지고 갈 짐만 챙기고 나머지는 객실에 두고 다닐 참이다. 한결 몸이 가벼워질 것이다. 호텔방에서 약 1시간 가량 휴식을 취하고 점심 식사하러 나간다. 호텔 인근이다. 걸어서 나간다. 龍達호텔내이 식당이다. 가니 어느새 테이블에 먹거리가 모두 준비되어 있다. 중식이면서 나름대로 우리가 먹을 수 있도록 한 것 이다. 아침이 신통치 않았기에 나름대로 적당이 먹는다. 아이들이야 워낙 중식을 좋아하지 않으니 먹는 양이 신통치 않다. 두 테이블정도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올라 송화강변으로 간다. 어쩌면 우리 일정의 첫 나들이인 셈이다. 오후 1시 30분에 얼음물 속에서 수영하는 행사가 있단다. 이를 보기 위하여 가는 것이다. 송화강변에 도착하여 내린다. 서울의 한강 정도의 큰 강인데 강물이 온통 얼어있다. 얼음 위에 흰 눈이 내린 상태로 있어 온 세상이 하얗기만 하다. 강변으로 내려가는 길목엔 장갑류 등 방한장비들을 파는 좌판이 있다. 탕후로(작은 과일을 끓인 설탕물을 입혀 꼬치처럼 만들어 먹는 것)도 파는 좌판이 하나 있고 군고구마 장사도 있다. 강둑을 내려가는 계단 옆에는 작은 얼음미끄럼틀을 만들어 놓아 작은 깔개를 타고 내려갈 수 있게 하였다. 이는 얼음물 수영을 보고 올라오면서 탈 수 있다고 한다. 조금 경사가 가파르긴 하지만 길이가 길지 않아 탈만해 보였다. 이전 고향에서 눈이 내리면 언덕빼기에서 비료포대 비닐을 타던 생각이 소곤소곤 난다. 그땐 참으로 재미있는 놀이 중의 하나였는데 지금은 그 풍경을 볼 수가 없다. 이곳 하얼빈에 오니 비스무리한 것을 볼 수 있다. 얼음으로 덮인 강으로 내려가니 한쪽 빙판 구역을 만들어 썰매를 타게 하였다. 썰매는 무료다. 있는 것을 타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 여유가 있어 아이들이 썰매를 하나씩 차지하고 밀기도 하고 꼬챙이로 얼음을 지치면서 앞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썰매 바닥이 철사 즉 철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 전후좌우 맘대로 움직여진다. 얼음수영장 주변엔 말이 끄는 마차 즉 얼음 위로 잠시 저 멀리 다녀오는 마차가 있고 개가 끄는 썰매도 있다. 다들 손님을 기다린다. 각 마차며 썰매 주인들은 타라고 손짓을 한다. 우리는 눈도 주지 않고 다른 일에 집중한다. 이전엔 얼음수영장에 미리 들어갈 수 있었다는데 오늘은 제지를 한다. 결국 약 20여분 남기고 입장을 한다. 실내수영장의 25m 풀장보다는 조금 작게 얼음을 깨고 수영장을 만들어 놓았다. 동편으로는 얼음덩어리를 쌓아 다이빙대도 만들어 놓았다. 강변이라 바람이 많이 분다. 그래서 다들 춥다고 한다. 구경꾼들은 다 합하여 100여명 좀 넘을 듯싶다. 이곳도 입장요금이 있어 그런가보다.   1시 30분이 되니 연세 드신 분이 한 분 나오셔서 마이크를 들고 소개를 한다. 얼음물 수영팀이라면서 어디 어디 행사도 참여하고 등등 장황하게 약 2분 동안 한다. 이어서 수영선수들이 입장한다. 젊은 분들인가 했더니 아니다. 다들 최소 50세는 넘은 것 같다. 아니 60이 넘었겠지. 여자분들도 있다. 수영복차림으로 얇은 운동화를 신었고 손에는 장갑대신 고무장갑을 끼었다. 별다른 순서 없이 한 두분씩 나오면서 다이빙대로 올라간다. 그리곤 앞으로 뒤로 공중돌기도 하면서 각자의 자세로 차가운 얼음물 속으로 들어간다. 윽 얼마나 찰까? 아니 실제 물속은 그다지 차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밖 기온이 차니 물과 만나는 순간에 엄청나가 차가움을 느끼겠지. 물속으로 풍덩 풍덩 뛰어들면서 잠시 역영도 하시고 바로 퇴수한다. 그리곤 다시 한 두 번씩 더 다이빙을 하신다. 한 분은 끝날 즈음에 수영장 가장자리에 누워 묘기를 보이신다. 물구나무서기도 하고 눈 바닥에 누워 구르면서 마사지도 하신다. 그리곤 마지막에 멋진 모습으로 다이빙을 하네. 이렇게 약 10여분동안 약 15명이 나오시면서 물속에 풍덩 풍덩 빠지신다. 얼음수영이라 별것인줄 알고 기대를 하였는데 별것은 아니었고 영하의 기온에 얼음물 속에 풍덩할 수 있다는 것이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특이하고 이곳 하얼빈에서 일반 사람들을 위한 행사를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이 된다. 이전에 흔히들 한겨울에도 건강을 위하여 냉수마찰하는 어른들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얼음 속은 아니었다. 겨울이 막 오는 시점이었었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냉수마찰의 진수를 본 것이다. 아마 그 어르신들은 겨우내내 감기라든가 잔병치레는 아니 할 것이다. 자 힘찬 박수로 그분들에게 격려를 ‥…. “짝 짝 짝 짝 ”

 

 이 얼음물 수영 활동을 보고 나오니 아이들이 아직 썰매에 대한 유혹이 남은 모양이다. 마침 썰매들은 손님을 기다리느라 주인 없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다. 아이들이 썰매에 달려들어 하나씩 잡고 밀고 타고 한다. 잠깐 썰매를 즐기는 사이 썰매장 옆의 마차에 흥정이 된 모양이다. 형님하고 아이들이 올라탄다. 이 마부들은 일행들을 마구 올려 앉힌다. 난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말로는 30원이라고 했단다. 한 번 타는 가격인 모양이다. 약 3-4분 되었을까. 마차는 저 강 얼음 중간으로 갔다가는 금방 돌아온다. 마차에 탔던 사람들이 내리고 요금을 지불하려는 과정에서 일이 생긴다. 탄 우리 일행들은 처음 30원이라고 해서 30원만 주고 마부들은 일인당 30원이라고 했다면서 돈을 받지 않고 사람 수대로 달라는 것이다. 마차에 타지 않았던 하영이가 개입하여 따진다. “처음에 아저씨들은 일인당 30원이라 하지 않고 그냥 30원이라고 했다.” 또한 가이드 아가씨가 자신의 일행이 그러니 옆에 가만 가서 개입을 한다. 가이드 역시 “당신들이 애초에 일인당 30원이라고 분명하게 말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다.”라고 우리편을 들어준다. 그래도 이 마부들은 막무가내로 돈을 더 달라고 한다. 결국 우리는 동서께서 애초 흥정요금 30원을 말고삐사이에 끼워주고는 그 현장을 벗어난다. 그랬더니 마부들이 따라오면서 “안된다. 더 달라”고 한다. 그 행동을 무시하고 우리는 얼음 위를 벗어나 언덕으로 오른다. 마부들은 더 이상 따르질 않는다. 처음부터 이 마부들은 외국인이라는 생각에 마구 태우기만 했지. 정확한 요금에 대하여는 말해주지 않았었다. 그러니 그들이 우리를 당하게 하려다가 우리에게 오히려 당한 셈이 되었다. 서로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하영이가 또박 또박 이치를 설명하여 그들이 말을 막히게 하였다. 이 사건의 현장에 하영이가 한 몫한 셈이다. 다시 한 번 박수 짝! 짝! 짝!

 

 

 

 

 

 

 

 

 

 

 

 

 

 

 

 

 

 

 

 

 이제 버스에 올라 태양도 눈조각 축제장으로 간다. 이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송화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하나 건너야 한다. 이 다리 이름은 송화강공로대교(松花江公路大橋)이다. 다리 모양이 가위처럼 생겼다 하여 가위교라고도 한단다. 시내 즉 강남쪽에서 다리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가위의 양 손잡이처럼 둥근 원으로 된 진입로가 있고 그 사이로 강을 건너는 다리가 펼쳐져 마치 가위 모양 같단다. 지도를 보니 마치 가위를 내려놓은 것 같은 모양이다. 다리를 건너니 오른쪽엔 과학관 건물이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또한 왼쪽은 얼음축제 즉 빙등제를 하는 얼음 건축물들이 햇살을 받아 멀리서지만 영롱하게 빛을 발하고 있고 오른쪽으로 우회전 하여 들어가니 태양도 눈조각 축제장이 된다. 이 눈조각 축제장 입구에는 극지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볼거리는 이 태양도내에 자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따라서 여행사를 통한 견학은 거리상 또 교통상 한 번에 눈조각 축제와 빙등제 등을 관람하게끔 일정을 잡는 것 같다. 그래야 차량이용에 편리하고 차량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모양이다.

 

 태양도 입구에는 엄청나게 큰 돌 표지판이 있다. 太陽島라고 붉게 새긴 돌표지석인데 가이드 말에 의하면, 이 돌이 나름대로 다음날의 기후를 알려주기도 한단다. 돌의 표면을 만져보아 습기를 느낄 정도의 감이 있으면 다음날 날이 흐리거나 습도가 높고, 물기가 만져질 정도면 다음날 비가 내린단다. 거 참 신비한 표지석이다. 우리가 이를 보는 사이 가이드는 표를 사 온다. 분명 단체권을 끊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번 입장은 사람마다 티켓 한 장씩을 들고 검표를 한다. 보통 단체면 가이드의 설명에 따라 숫자만 세곤 들어가곤 했는데 이곳은 철저한 것인지 좀 까다롭게 입장을 시킨다. 이번에도 할머니께서는 차에 남아 계신단다. 날도 차고 행사장이 미끄럽고 하시니 안전하게 차에 남아 기다리신단다.

 이곳 눈조각 축제장은 다양한 크기와 모양들로 눈 조각을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통행로 양 옆으로 하이얀 눈을 정밀하게 또 세밀하게 꾸며 좋았다. 기온이 찬 탓인지 눈이 녹거나 망가진 부분들은 거의 보이질 않는다. 다만 개장한 지가 한 참 지난 탓인가 눈이 깨끗한 맛 조금 덜하다. 시간이 흘러 먼지도 앉고 하여 그리하겠지. 궁전도 있고 사람 얼굴도 크게 만들어 놓았고 소수민족 전통 모습으로 곡식창고며, 전통의상 모습들도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 놓고 있다. 참으로 공을 많이 들인 모습들이다. 또 한참을 들어가니 이번엔 눈조각 작품 대회를 하였던 작품들이 나라별로 작가별로 표시를 하여 전시하고 있었다. 그 중에는 한국작가 작품도 전시되고 있었다. 각 조각 작품 앞에는 그 작품명이 표시되어 있었다. 이런 거대한 눈조각들은 한 두 사람의 힘만으로는 제작하기 어렵겠다. 수많은 사람들이 공동으로 작업을 하고 제작하였으리라. 참 고된 작업이 되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얼음보다야 덜 하겠지. 눈이라 부드럽고 잘 다듬어질 수 있으니까.

 

 동서 내외 두 분은 따로 유람을 하시고 모이는 시간에 만나기로 하였다. 그외 일행들은 가이드와 함께 이동하면서 두루 두루 살펴본다. 중간쯤 들어가니 놀이 시설이 있다. 미끄럼도 있고 전동차도 있고 개가 끄는 썰매도 있다. 또한 타이어를 이용한 미끄럼도 있다. 아이들이 놀이 하나를 해볼까 하는데 비용이 제법 비싸다. 결국 타이어미끄럼을 타기로 한다. 30원에 두 번을 탈 수 있단다. 다 탈것처럼 하더니만 결국은 지민이 희은이 민현이가 타기로 하고 표를 산다. 타이어 한쪽은 보호천으로 덧씌어서 타이어 중간 공간에 들어가 앉게 만들어졌다. 저 언덕빼기로 올라가 타이어 중간에 앉아 내려올 수 있다. 미끄럼 통로는 넓지 않아 타이어가 내려오면서 빙글 빙글 돌기도 한다. 경사가 급하지 않아 빠르기는 적당하여 좋다. 아이들이 한 번씩 타보고는 괜찮다고 한다. 그다지 위험한 것은 아니었다. 이 놀이를 마치고 돌아나오면서 다시 4륜차가 있어 탈까 물어보니 너무 비싸다. 두 사람이 타는데 100원이 더 든다. 그리하여 비싸다 하여 포기하고 그 옆의 눈 언덕에 올라 맨몸 미끄럼을 탄다. 우리 아이들이 올라가 미끄러지니 주변에 있던 아이들도 함께 한다. 그 아래선 인공제설기기 가동되어 흰 인공눈을 뿌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한참을 놀다가 다시 발길을 옮긴다. 서서히 출구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중간에 노루 한 마리를 두고 사진을 찍어주면서 비용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가끔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면 동물을 놓고 사람들과 함께 사진을 찍게 하면서 비용을 받는 들고 만들어져 있다. 눈을 보니 이전 옛날 생각이 난다. 눈이 내리고 나면 언덕길에 비료포대를 엉덩이에 깔고 미끄럼을 타곤 했다. 그러면 그 길이 반반하게 다져지고 미끄러워져서 다니던 동네분들이 어려움을 겪곤 했지만 우리들은 그저 좋기만 했다. 그런 추억들을 이곳에서 잠깐 아이들이 느낄 수 있어 다행인 것 같다. 이전 맛은 나진 않겠지만 이런 놀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아이들이 한 번 겪어보는 것도 좋은 추억거리가 되지 않나 싶다. 제일 막내인 민현이도 눈에 뒹굴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면서 줄곧 신나한다. 형들이 있고 누나들이 옆에 있어 더욱 그런가보다.

 

 눈조각을 보면서 크기에 놀라고 또 다양함에 놀라기도 한다. 워낙 기온이 낮아서 눈이 녹아내리지 않고 원형을 오래도록 보존할 수 있어 관광객들이 느지막하게 와도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그 첫 모습보다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공원내에 사람들이 관리를 잘 하는 것 같다. 새로운 눈을 만들어내면서 적당히 보수도 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또한 중간 중간 쉼터로 눈속의 카페가 보인다. 온통 눈으로 뒤덮인 공간인데 입구만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들어가보진 않았지만 따뜻한 음료와 먹거리를 제공하는 것 같다. 날이 많이 차지 않아서 우리 일행은 이곳을 기웃거리지는 않는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온통 눈덩어리들이니 조금은 질릴만도 한데 또 그렇지는 않음이 왜일까? 아마도 그 모습들이 제각각이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하나도 같은 모습들이 없다. 건물모양, 사람모양, 동물모양 등등 다양한 형태로 눈을 가지고 만들어 놓았다. 이 모습 때문에 하얼빈의 눈조각축제와 얼음축제가 유명세를 타는 모양이다.

 

 북경에서 개인적으로 하얼빈 행 기차표를 구할 수가 없다. 동료 샘 몇이 개인적으로 가보겠다고 표를 며칠 전부터 예매를 하고자 했는데 결국 구하지 못하고 여행사를 통한 일정을 잡았다고 한다. 그만큼 찾는 이도 많다는 이야기다. 물론 시기상 여행사 같은 곳에서 대량 구매를 한 탓에 개인 수요자들에게 돌아가지 못하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처음 들어갔던 입구로 되나온다. 어느새 해가 기우는 것 같다. 차에 올라 가져온 따뜻한 물로 몸을 덥힌다. 물 한잔으로 되겠냐만은 그래도 찬 곳에 있던 몸이라 따땃한 물 한 잔이 다소 도움이 되긴 한다. 장모님께서 기사와 함께 내내 차 안에 계시다보니 기사가 조금은 불만스런 표정이다. 뭔고 하니, 혼자 있으면 차량 시동을 켜지 않을 것인데 노인네 한 분과 함께 있으니 차량 시동을 걸고 히터를 가동시킨다. 그러니 예상하지 않았던 기름 소모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가이드를 통하여 의사전달을 한다. 그래서 알았다는 답변을 하고 저녁 일정 마치면 기름값 보조로 적당한 팁을 주어야겠다고 생각을 한다. 녀석들 그것도 감수하려고 하지 않다니 역시 짠돌이들이다.

 

 차 안애서 잠시 휴식을 하면서 이동을 한다. 이동거리는 멀지 않다. 바로 길 건너다. 그런데 그 사거리 통과하기가 멀다. 눈조각축제장과 빙등축제장 사이에 사거리가 있는데 신호등이 매우 짧은가보다. 몇 번의 신호등을 기다리고나서 겨우 빙등축제장으로 진입하다. 이미 해가 뉘엿뉘엿 넘어간 시점이라 빙등축제장 입구 얼음조각 건물에 휘황찬란한 오색 불이 들어야 그 멋을 드러내고 있다. 낮에 지나가면서 보았던 그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역시 어둠속에서 빛의 진가가 나타나는 모양이다. 참으로 멋진 모습이다. 사진이나 그림으로만 보았던 얼음조각들 그리고 그 속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등불의 힘이 더해 더욱 멋지고 아름답게 비쳐진다. 그 아름다운 모습들이 눈에 젖어든다.

 

 

 

 

 

 

 

 

 

 

 

 

 

 

 

 

 

 우리일행 모두가 탄성을 자아낸다. 장모님께 이번은 힘드시더라도 함께 가시어 보시자고 청을 드려본다. 역시 아니 가신단다. 날도 그다지 춥지 않아 조금 힘겹더라도 잠깐 나가시어 볼만도 하신데 역시 사양하신다. 결국 차에 다시 계시게 하고는 우리들만 나선다. 입구 얼음조각이 거대하다. 높이와 길이가 우리에게 커다란 기세로 다가온다. 입구 출구로 나뉘어져 있긴 하지만 찬란하다고 할까. 암튼 입구부터 거대한 얼음조각이 우리를 압도한다. 얼음속에 자리 잡은 등에서 나오는 형형색색의 빛으로 인하여 얼음 건축물이 수시로 그 옷을 갈아 입는다. 잠깐 사이에 이 색으로 저 색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트랜스포머인가. 아니 형체가 변하는 것이 아니니 트랜스포머는 아니리라.

 

 올 빙등제의 정식명칭은 ‘2010 제 11회 하얼빈?雪大世界’ 이다. 장소는 하얼빈시 松北區이고, 입장요금은 매일 오후 1시 이전 입장시에는 90원이고 1시 이후는 200원이다. 단 초중고대학생, 미성년자, 현역군인, 60세이상 70세까지의 노인은 90원을 받는다. 또한 신장 120cm 이하의 아동과 70세 이상의 노인, 장애인은 무료이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하얼빈시민의 경우 신분증을 갖고 표를 구입할 경우 90원에 구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혜택은 외국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저 단체로 구입하거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하여 구입하면 190원이다. 대부분 외국인 관광객들은 여행사를 통한 관람이기에 단체권을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연락전화는 0451-8488-4363이고 홈페이지는 www.hrbicesnow.com이다.   이번 빙등제는 5대 주제를 가지고 조성되었다. 과학기술의 창, 예술의 창, 오락의 창, 문명의 창, 빙설의 창이다. 각 주제의 얼음조각에는 요즘 유행하는 최신 LED조명을 설치하여 그 아름다움을 극에 달하게 하였다. 이 빙등제 공원의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밤 9시 30분까지이다. 이곳이 어둠이 있어서 그 진가를 발휘하는 곳이서 낮 관람객은 거의 없고 저녁 해가 지면서 입장하는 관람객이 대부분이다.

 

 해가 지니 이 얼음조각장은 그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입장입구의 대형 얼음건축이 보는 이로 하여금 입을 떡 벌리게 한다. 정방형의 얼음덩어리를 차곡차곡 쌓아 하나의 건축물을 만들었고 그 건축물 내부에 전등을 설치하여 형형색색의 빛을 발하여 수시로 다른 색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5시가 조금 넘은 시각인데도 불구하고 입장하려는 사람들로 입구는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가만 보니 개인적으로 온 사람들은 드물고 열 댓명 또는 그 이상의 사람들로 짜여진 단체손님들이었다. 가만 머리당 200원씩을 셈하여 본다. 짧은 순간엔 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단순하게 사람 수로 계산을 해보지만 어디 저렇게 큰 얼음덩어리를 운반하여 깍고 다듬어 쌓아올린 공에 비하면 어디 돈으로 계산하는 것이 어울리기나 하겠는가? 관광수입이야 엄청난 금액으로 나타나겠지만 그 이익을 내기 위한 준비도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겠다. 저 얼음들은 모두 송화강에서 취해왔다고 한다. 송화강이 워낙 큰 강이라 얼음을 취해 오는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적당한 크기의 얼음을 만들어 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북경의 용경협의 소형 빙등제에도 필요한 얼음을 용경협 얼음이 아닌 인근의 다른 강 얼음을 갖다 사용한다고 한다. 적당한 크기의 얼음으로 자르고 다시 그 얼음을 운반한 다음 조각에 맞게 다듬고 하여 만든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 하얼빈의 빙등제는 용경협보다 규모가 엄청나기에 얼음 소모량이 더욱 많을 것이다. 이 빙등제는 어느새 11번째를 맞이했는데 10년전과 비교해보면, 면적면에서는 20만평방미터에서 60만평방미터로 커졌고, 얼음수요량에서도 처음 7만평방미터에서 16만평방미터로 늘어났으며, 단일 건축물의 높이면에서도 10년 전에는 33미터가 최고 높이 얼음건축물이었는데 올해는 50미터를 넘어섰다. 또한 투자금액에서도 10년전에는 3000여 만위앤이었으니 올해는 8000만 위앤을 넘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관람객수에서도 10년 전에는 40만 명이 찾아왔었으나 올해는 100만명 이상이 관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단다. 이렇게 숫자상으로 늘어난 반면 줄은 것이 하나 있는데 이는 공원조성 기간이다. 이전엔 33일정도 소요되어 이 빙등제 공원을 조성하였으나 올해는 14일로 단축하였단다. 실로 대단한 통계수치이다.

 

 우리는 어둠속의 얼음궁전을 하나하나 살펴본다. 이번에도 동서 두 내외는 어디론가 사라지신다. 만날 시간을 약속하고는 두 분이 두루두루 살펴보시기로 하였단다. 나머지 우리 일행 10명은 가이드와 함께 찬찬히 하나하나 둘러보면서 발걸음을 옮겨본다. 걱정했던 것보다 기온이 차지 않아 둘러보는데 어려움은 없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렸기에 낮보다는 찬 기운이 있지만 그리 걱정하고 염려할 정도는 아니다. 장모님께서 함께 하셨더라면 다소 힘은 드셨지만 좋은 볼거리를 보실 수 있어 좋았을 것인데 함께 하지 못하여 아쉬움이 있다. 얼음 터널도 있고 얼음 미로도 있다. 또한 거대한 진시황 궁전도 있다. 규모가 참으로 크다. 얼음표면을 만져보니 그저 차갑기만 한다. 물기가 전혀 없다. 기온 탓인가 보다. 중간 곳곳에 작은 카페가 있다. 따뜻한 음료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다. 우리는 애초에 날이 차면 그곳을 적당히 이용하리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춥지를 않아 이곳 카페는 기웃거리지 않았다. 중간 한 곳에는 썰매장이 있어 아이들이 잠시 논다. 자전거 썰매도 있어 타려고 아이들이 줄을 섰건만 너무 지체되어 포기하고 되돌아 나오기도 한다. 얼음건축물로는 로마투우장, 진나라대전, 영탑, 얼음대탑, 천수각, 명나라의 궁전, 중심탑, 병마용, 큰바위 얼굴 등이 거대하게 자리하고 있다. 하나 하나가 실제 건축물 같다. 실로 대단하다는 느낌이다. 여러 환경조건이 이러한 얼음을 갖고서 다양한 조각이나 작품을 만들 수 있게 하였지만 그래도 인간의 능력으로 저리 멋진 모습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약 1시간 가량이면 거의 다 둘러볼 수 있었다. 물론 더 꼼꼼히 하나 나 보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우리도 약 1시간 가량 얼음궁전 속을 두루두루 유람하다가 6시가 좀 넘은 시각에 출구로 나선다. 얼음조각공원내를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지 않아 부대끼지 않고 돌아볼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은 중간에 러시아 쇼를 하는 곳이 있었다. 시간이 여유가 있었다면 이 쇼를 관람하는 것도 좋았을 것인데 아이들도 있고 또 차내에서 장모님께서 기다리시는 중이라 달리 시간을 만들 수가 없었다. 물론 추가 비용이 들었겠지만 말이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얼음조각공원을 나선다. 시각은 많이 가지 않았건만 사위는 어느새 짙은 어둠이 내렸다. 물론 공원 주변은 얼음 속에서 발하는 찬란한 빛으로 인하여 비교적 환한 분위기이다.

 

 

 

 

 

 

 

 

 

 

 

 

 

 

 

 

 

 

 우리는 다시 버스에 올라 시내로 들어온다. 저녁을 먹으러 간다. 점심을 먹었던 곳에서 다시 저녁을 한다. 도착하니 어느새 식탁에 먹거리가 챙겨져 있다. 그런데 오늘 저녁때 이곳 식당의 종업원들의 인상이 별로이다. 썩 밝은 모습들이 아니다. 손님이 반가운 것이 아닌지. 무언가 귀찮은 듯한 모습들이다. 괜히 부담스럽게 말이다. 힘든 하루 일정을 소화하였는데 식욕은 부진해 보인다. 하긴 중국식 음식이라 맛난 것은 아니리라. 아무래도 호텔로 가면 뭔가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 일단 마련된 저녁이라 밥하고 반찬을 이것저것 먹으면서 허기를 달랜다. 식사를 마치고 잠깐 이동하여 호텔로 돌어간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하루 일정을 모두 마쳤고 이제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내일을 준비할 시간이다. 각 배정된 방으로 가고 집사람과 처제가 물과 간단한 먹거리를 준비하러 슈퍼로 나간다. 가이드에게서 연락을 받는다. 내일 아침식사시간과 장소 그리고 출발시간을. 우리는 8시 30분에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출발하기로 했다. 형님 내외는 간단하게 정리를 하고 중앙대가 야경을 감상하시러 외출을 하셨단다. 나도 씻은 다음 카메라를 들고 간단하게 방한차림을 하고 호텔 밖으로 나선다. 먼저 송화강변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저녁시간이라 오가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찬 날씨 탓인가. 한적하다. 한 200M 걸었나. 지하도가 나타난다. 지하도 건너서는 송화강변인데, 달리 볼 것도 없겠다 싶어 지하도로 내려가지 않고 다시 발걸음을 돌린다. 낮 시간에 둘러 본 중앙대가 쪽으로 향하는 것이다. 낮에 이미 본 건물이고 거리인데 조명을 밝히니 또 다른 세상처럼 다가온다. 야경 사진을 많이 찍어본다. 물론 크게 색다른 것은 없지만 불빛에 비친 건물들이 낮 시간과는 다른 모습들이기에. 좌우 건물들을 들여다보고 카메라에 담아본다. 그리곤 1층의 기념품 상가에도 들어가 본다. 온통 러시아기념품이다. 망원경 종류, 라이터, 모자, 초코렛 등이다. 의외로 러시아산 군용품들이 많다. 또한 한 켠에는 동북기념품이라는 푯말이 있고 각종 견과류에서 술 담배 등등 이다. 아주 특이한 것은 없다. 러시아 쌍안경이나 망원경 종류는 생각했던 것보다 값이 비싸다는 생각이다. 기 천원씩 하는 것이 보통이다. 몇 백원단위의 물건들은 아주 작거나 볼품이 없다. 둘러보면서도 과연 저 물건들이 진짜로 러시아에서 수입된 것들인지 의아스럽다. 쌍안경이나 망원경 종류는 러시아 산이 좋다는 평을 들었기에 다소 욕심이 생기긴 하지만 값이 너무 높아 엄두를 내지 못한다. 렌즈만 이상이 없다면 한 개정도는 가질만한 것이 쌍안경인데, 그저 눈요기로 만족한다. 한 가지 특이한 점으로는 초코렛이 많다는 것이었다. 모두 러시아 산으로 한 진열대에 무지하게도 많이 있다. 갑도 개당 10원하는 것에서부터 15원, 20원, 30원 하는 것으로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맛이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하긴 초코렛의 별맛이 있게냐마는. 오늘 일정 중에는 쇼핑코스가 하나도 없었기에 구경할 기회가 없었다. 내일도 마찬가지이리라. 이번 일정에 쇼핑코스는 없으니까. 약 30분정도 걸었나. 중앙대가를 오전에 본 거리만큼 본 것 같다. 다른 것은 없었고 그저 밤의 불빛에 반짝이는 건물들을 보았다. 그리곤 카메라에 담았다. 나중에 낮에 담은 건물들과 하나씩 대조해서 보면 서로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옷깃을 여미고 다시 호텔로 들어온다. 두 분은 들어오셨는지 모르겠다. 맥주라도 한 잔 해야 할 것인데 다들 피곤한 하루라 건너뛴다. 내일 아침부터 또 움직여야 하니 오늘은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하얼빈에서의 첫 밤이자 마지막 밤을 맞이한다.

 

 

 

 

 

 

 

 

 

 

 

 

 

 

 

 

 

 

 

 


4. 둘째 날-1.24 일요일

 하얼빈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어제 왔는데 둘째 날이 마지막 날이 된다. 거참 말이 안되는 것 같다. 일어나보니 양 팔에서 뻐근함을 느낀다. 아무래도 어제 하루종일 카메라 들고다닌 후유증인가 싶다. 그다지 무거운 것도 아닌데 하루종일 들고 다니다보니 팔에 좀 부담이 되었나 보다. 일어나 아이들 방에 전활 넣어 깨운다. 그리곤 3층 식당으로 내려간다. 잠깐 형님 내외가 안 보이신다. 그러고보니 어제 밤에 오늘 아침 일정에 대하여 안내를 못 드린 것 같다. 집사람이 슈퍼 다녀오면서 나가시는 것을 보았다 하여 아침 일정 어디서 식사하고 몇 시까지 모이자는 이야길 못한 것이다. 난 집사람이 했겠거니 했고 집사람은 내가 했겠거니 한 모양이다. 그러니 서로 했으리라 여기고 넘어간 것이다. 3층 식당엘 갔는데 보이지가 않는다. 으레 알아서 오시겠지 했던 것이다. 다시 성제를 시켜 방에 가보라 했는데 아니 계신단다. 어쩐다. 전화기도 아니 가지고 계시는데. 잠시 기다리니 두 분은 어느새 보따리를 다 챙겨서 식당으로 들어오신다. 아마 아래층 로비에서 우리를 기다리신 모양이다. 짐까지 준비를 다 하신 것을 보니. 이런 실수를.. 죄송합니다.

 

 식사는 먹을 만하다. 뷔페식이라 다양한 종류가 있었다. 밥에서부터 빵 그리고 죽 야채 과일까지. 아침시간이라 푸짐하게 먹을 수 없다. 적당하게 양을 조절하고 식사를 마친다. 짐정리를 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체크아웃을 한다. 어느새 가이드 아가씨가 도착하여 도와준다. 8시 30분에 출발하기로 했는데 조금 지연되어 40분에 차에 오른다. 체크아웃은 아무 일없이 마무리가 되었다.

 

 오늘 우리가 처음 갈 곳은 731부대 관련 기념관이다. 정식명칭은 侵華日軍第731部隊罪證陳列館(침화제731부대죄증진열관)이다. 위치는 하얼빈시 平房區 新疆大街 25號이다. 개관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연락전화는 0451-8680-1556이다. 입장료금은 따로 없으며, 단 진열관 안내 설명을 받으려면 별도로 설명비를 내면 한국어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이 진열관은 731부대가 위치했던 장소로 주 건물만 남아 있고 건물 1,2층을 전시실로 꾸며 731부대 각종 자료를 사진과 도표 모형물로 전시하고 있다. 이 진열관은 중국 전국의 백 여개 애국주의교육시범기지 중의 하나이며, 흑룡강성 국방교육기지이기도 하다. 하얼빈 시 중심에서 남쪽방향에 자리하고 있다. 이 731부대 기념관에 대하여 찾은 자료를 보면 아래와 같이 설명이 되어 있다.

 

 

 

 

 

 

 

 

 

 

 

 

 

 

 

 

 

 

 

 

『중국을 침략한 일본제731부대의 죄증진열관은 하얼빈시 평방구신강대가25호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731부대 본부건물이었는데 몇 번에 걸쳐 보수와 개축이 있은 다음 본 진열관이 대외개방되게 되었다. 총면적은 1500평방미터이고 15개의 전람실이 있으며 이곳에는 많은 수의 사진자료 물적자료 실제자료 등이 모두 731부대의 피비린내 나는 만행을 규탄하고 있다. 중국침략731부대는 일본최고통치자의 칙령을 받아 조직된 특수부대이다. 1935년 중국 하얼빈시 평방지구에 자리 잡아 생물무기연구를 진행하여 실험과 생산기지가 되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가장 규모가 큰 생물전쟁의 지휘부였다. 당시 일본의학계의 최고들이 모여 ‘사람잡는 마귀 굴’이라는 별칭을 들으면서 세계를 정복하려는 목적을 위하여 만들어진 기지였다. 이들은 살아있는 사람을 실험재료로 하여 생물무기를 연구하고 생산하였으며, 야심, 규모, 기술, 실전, 잔인성과 생물전 인재 배양 등 6개 방면에서 세계 제일이었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최소 3000여명이 이곳에서 생체실험 대상으로 처참하게 살해되었고 일본침략군의 생물전시도로 학살 및 고통을 겪은 수는 30만명에 이른다. 1945년 8월 일본군이 항복발표를 하던 전날저녁에 731부대는 패주하면서 그 죄상을 덮어버렸고 이 731부대와 관련된 국가최고핵심비밀을 파괴 또는 은폐하려는 시도를 했었다. 이 진열관에는 중점보호죄상유적지가 23곳이나 남아 있다.

 731부대 박물관은 인간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증거물로 일본이 남긴 인류 역사 최악의 건물이다. 이시이부대로도 불리는 731부대는 일본 관동군의 세균전 부대로 1932년부터 1945년 패망할 때가지 만주 지역의 중국인 러시아인 한국인 등 3850명을 대상으로 극악한 생체실험을 했던 본부.

 

 한때 중학교 교사로 사용되던 4층 규모의 731부대 본관 건물은 60여 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여전히 음산하고 스산하다. '전사불망 후사지사(前事不忘 後事之師:과거 일을 잊지 말고 훗날에 교훈으로 삼는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입구에 들어서면 공포영화에나 나옴직한 복도가 길게 이어지고 작은 방에는 731부대 터에서 발굴한 각종 생체 실험도구와 기구, 각종 문서, 그리고 당시의 상황을 재현한 인형 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중 인체 실험에 사용됐던 수술용 칼과 가위, 장기를 적출해 걸어 놓았던 걸개, 피를 받아 놓았던 용기, 발목을 묶어놓았던 족쇄 등 일제의 만행을 보여준 각종 기구들은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마루타(통나무)로 희생된 사람들은 1만 여명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인간백정 이시이 시로는 전후 도쿄 국제군사법정에서 마루타는 모두 3850명으로 그중 한국인은 254명이라고 밝혔다. 731부대 박물관의 조선족 관장인 김성민씨가 20여년에 걸쳐 밝혀낸 희생자는 1463명. 이 가운데 한국인 희생자는 심득룡 이청천 이기수 한성진 김성서 고창률 씨 등 6명이다. 』

 

 우리가 진열관 입구에 도착하니 경비 아저씨가 진입을 막는다. 일단 가이드가 경비소로 들어가 안내설명을 요구하고 나서 하나의 증명 같은 종이를 들고 나오니 입장을 허락한다. 본건물까지 난 진입로를 통하여 다가간다. 본 건물은 2층이다. 중앙현관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길게 늘어진 학교건물이다. 정면에 보면 중앙현관을 중심으로 왼쪽 건물은 출입이 안되고 있으며 실제 전시실은 오른쪽 건물이다. 입구는 어둡다. 양쪽 벽은 검은 색의 부조형태인데 그 윗부분에 각각 왼쪽에는 ‘前事不忘’이라고 오른쪽 벽에는 ‘後事之師’라고 새겨져 있다. 실내가 어두어 제대로 글씨를 확인하는 것은 한참 봐야 한다. 이 글귀는 ‘과거의 일을 잊지 말고 훗날의 교훈으로 삼자’는 의미이다. 의미 있는 말인 것 같다. 우리 민족의 과거사를 볼 때 반드시 새겨두어야 할 의미 있는 표현이 아닌가 싶다. 층계를 올라 2층을 올라간다. 2층 실내 역시 어둡다. 글쎄 왜 이렇게 어둡게 했을까? 여기서부터 박물관 가이드의 안내를 받는다. 복도를 따라 쭉 가서 다시 가파르고 좁은 계단을 통하여 1층으로 내려간다. 마치 지하로 가는 것 같지만 우리가 2층으로 올라와 다시 내려가는 것이라 1층으로 가는 것이다. 현관에서 바로 이쪽으로 연결되는 통로가 없어 삥 돌아가는 것이다. 안내된 방은 영상물을 시청하는 곳이다. 이곳 731부대 관련 영상기록물을 보여준다. 몇 컷되지는 않았지만 처음엔 731부대의 실험 장면 등을 실제로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다. 참으로 참혹하고 잔인하였다. 산사람의 살을 직접 수술하는 장면, 동상된 손가락을 망치로 내려쳐 부러뜨리는 장면 등. 실제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짓들을 아무런 표정 없이 실행하는 장면들을 보면서 당시의 참혹하고 무자비한 상황을 생각할 수 있었다. 이런 실제 실험장면들 외에는 당시 731부대 관련 근무자들의 증언과 참회의 장면, 그리고 실제 피해를 받았던 생존자들의 증언 등의 영상물이었다. 두 눈 뜨고 볼 수 없는 정말 끔찍한 장면들이 잠깐 스쳐갔다. 아! 하는 탄식과 윽! 하는 고통의 소리가 절로 났다. 정말 일본군들은 인간이하의 짓들을 한 나쁜 놈들이었다.

 

 영상시청실을 나와 다시 2층으로 올라가 제1전시실부터 진열관 안내인의 설명을 들으면서 전시실 하나하나를 견학한다. 이 진열관은 전시실이 모두 13개가 있다. 2층에서부터 시작하여 1층제 13전시실까지 견학하면 실내 견학은 모두 마친다. 각 전시실은 예를 들면 제 1전시실은 731부대의 규모나 설립 배경 등에 대하여 모형과 당시의 서류 등을 전시하였다. 이 부대의 부대장인 이시이 시로 일본군 중장은 의학박사이기도 하다. 이 부대를 진두지휘하면서 솔선수범하여 못된 짓을 다 한 사람이다. 다시 2전시실로 이어지고 견학은 계속된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731부대는 각종 실험실에서부터 보일러실, 실험후 사망한 사람들을 화장하는 화장터가 3개나 있었다고 한다. 또한 본부건물외 경비소 세균실, 각종 실험용 쥐 등의 소동물 사육장에서부터 동상 실험실 등을 갖추고 갖가지 하지 못한 실험들을 중국인, 만주인, 러시아인, 한국인을 대상으로 감행하였다. 이 부대의 실험대상으로 희생한 사람 수는 중국측의 자료로는 약 3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세균전을 위하여 배양한 세균의 종류도 페스트균, 탄저균, 장티프스균, 콜레라, 馬耳疽균 등을 배양하여 실험하였단다. 이들의 또 다른 죄상을 들어보면, 진공실험을 하였는데 진공상태에서 사람을 가두고 얼마나 버티냐하는 식의 실험이었다. 또한 동상실험은 영하 40도에 사람을 방치하는 실험 등인데 이 경우 온도를 더 낮추기 위하여 풍무를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생체실험의 경우는 마취를 하지 않고 사지를 절단하거나 심장을 적출하는 등의 실험을 자행하였다. 이는 실험이 아닌 살인행위였다. 제 9전시실에는 각종 실험도구들이 전시되고 있었는데 이 중에는 장기걸이기구도 있었다. 이 기구에는 고유번호가 있었는데 이 번호는 실험대상인 마루타의 이름대신 번호를 표기한 것이라고 한다. 안내인의 설명에 의하면 생체실험에 동원된 일반시민 중 신원이 확인된 사람은 1400명이라고 하며 이중 한국인은 고작 6명이라고 한다. 희생자 30여 만명의 대부분이 아직도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채로 희생당하여 아직도 그 혼을 달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2층의 마지막 전시실인 7전시실에는 731부대가 사용했던 각종 사무실 기구 등이 전시되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사용한 책상이나 옷장 등 가구에는 모두 한쪽 귀퉁이에 이시이 부대(石井部隊)를 표시하는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1층의 전시실로 내려가면 당시에 731부대가 사용했던 각종 무기와 실험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세균탄의 경우는 외부가 도자기로 되어있어 다른 폭탄과 다른 모양을 하고 있었다. 또한 당시 군용품인 방독면도 전시되고 있었다. 그리고 10전시실에는 이전 731부대 근무했던 생존자들의 사진과 참회하는 글과 편지 그리고 지금 이 진열관을 찾아서 반성하는 내용으로 꾸며져 있었다. 11전시실은 731부대와 세균전쟁 관련 각종 도서류가 전시되고 있었다. 대부분 일본어판 서적이었다. 그 중에는 우리나라 사람이 집필한 서적도 한 권이 전시되고 있었다. 아쉬운 점은 우리나라도 피해를 입은 나라이고 관련국가인데 이 731부대와 세균전에 대한 연구물이나 도서가 너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물론 당사자인 중국인들의 연구와 관심이 지대하겠지만 우리와도 관련이 있는 부분이기에 관심있는 분들의 연구가 있었으면 하는 기대가 생긴다. 안내인의 설명에 따르면 이 관련 도서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책으로 '악마의 포식'을 소개해 주었다. 일본어로 씌여진 책이었다. 또한 12전시실 13전시실은  731부대 관련 각종 사료와 자료들을 일본 현지에서 전시했던 내용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이 전시물들은 일본 현지에서 10여년 동안 전시했던 자료들이라고 한다.

 

 실내전시실을 다 보고나서 우리는 안내인을 따라 주건물 뒤쪽으로 나갔다. 아직도 녹지 않은 눈이 그대로 있는 넓직한 대지였다. 물론 이전엔 각종 건물이 있었던 자리지만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감옥터로 구덩이가 남겨진 채 있었다. 이곳이 이전 감옥시설이 있던 터라고 설명을 해준다. 우리가 나아가는 오른편에는 철길이 놓여져 있다. 이 731부대에서 사용한 전용 철길이다. 병력을 실어나르고 각종 물자와 장비 그리고 이곳에서 만들어진 각종 무기류를 운반하고 운송하는데 사용되었던 이 부대 내의 전용철로라고 한다. 그 철길을 건너면 황량하게 한쪽 벽만 덩그라니 남아 있는 건물이 있다. 이는 당시의 보일러실이었다고 한다. 달랑 남아있는 벽면만 보아도 그 규모가 제법 컸으리라는 상상을 해본다. 지금은 한쪽 벽만 남아 있어 당시의 흔적을 가늠케 하고 있다. 이 진열관 건물 뒤쪽으로는 5층짜리 아파트가 있어 이곳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다. 이 아파트를 끼고 돌아가면 작은 철문이 하나 있다. 이 철문은 열려 있었고 이 문을 들어서면 또 커다란 공터가 보인다. 이곳 또한 731부대 유적지이다. 오른쪽으로 가면서 작은 벽돌건물이 하나 있는데 덩그라니 골격만 서있다. 내부 시설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안내인의 설명은 이곳이 동상실험실이라고 한다. 벽면두께가 제법 두껍다. 내부를 큰 공간으로 남아 있다. 가까이 가보니 당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달랑 벽만 남아 있고 어두운 실내만 보여준다. 이 동상실험실 앞에는 마치 지하로 들어가는 듯한 입구가 하나 있었다. 이는 쥐 사육장이었다고 한다. 실험용 황색쥐를 이곳에서 사육하여 실험에 이용했다고 한다. 작은 표지가 옆에 있고 입구는 봉해놓아 들어가거나 들여다 볼 수 없었다. 이 사육장 전방 왼쪽으로는 비닐하우스 같은 건물이 하나 길게 늘어져 있다. 이 역시 작은 실험용 동물들을 사육하는 사육장이라고 한다. 내부를 보니 바닥에 약 1미터 깊이로 정사각형의 방으로 꾸며져 있다. 이 작은 방 하나에 작은 동물들을 키웠던 모양이다. 관리가 안된 탓인지 그저 흉물처럼 남아 있기만 하다. 주건물 뒤쪽으로 가서 우리가 볼 수 있는 당시의 시설 흔적들은 다 보았다.

 

 

 

 

 

 

 

 

 

 

 

 

 이곳 진열관에 와서 시간을 제법 보낸다. 찬찬히 둘러보자면 약 1시간 반 정도는 소요될 것 같다. 이전 과거의 역사지만 우리들에게 또 아이들에게 경각심을 줄 수 있는 좋은 자료이고 시설이었다고 생각이 된다. 지금의 아이들에게 잘 모르고 지나간 과거지사이지만, 선조들이 또 이웃나라들이 이러한 불운한 시대에 살아왔고 참혹한 생활을 했다는 것을 안다면 보다 과거를 잊지 않고 본보기로 삼으면서 보다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 것이라 기대를 해본다.

 

 이제 이 진열관 견학을 마치고 다시 시내로 이동한다. 이번엔 점심식사 전에 안중근 기념관을 둘러보는 것이다. 이 건물은 조선민족예술관이다. 이 예술관에는 조선족민속예술관과 안중근의사기념관이 2층에 준비되어 있다. 이 예술관은 또한 하얼빈에서 조선족문화센터로도 이용되어지고 있어 각종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2층의 안중근의사 기념관에 들어선다. 조선족 여성분이 맞이하신다. 민현이가 성금함에 약간의 금액을 넣으려고 하는데 키가 부족하다. 민현이 엄마가 번쩍 들어올려 성금함속에 쏘옥 넣게 한다. 정면에 안중근의사의 동상이 하나 있다. 그리곤 안중근의사 출생 및 가족 그리고 성장과정 등의 자료들이 잘 정리 전시되어 있다. 안중근의사 의거 관련 내용도 자세하게 적혀져 있으며, 안중근의사가 사형 전에 남긴 말씀도 그 당시의 표기방식대로 적혀져 있다. 그리고 옥중에서 재판 중에 안의사가 변론했던 내용들도 전시되고 있었다. 또한 전시실 각 벽면에는 안중근의사 관련 붓글씨 작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마침 나는 하얼빈에 가기 전에 안중근의사가 의거를 일으키고 현장에서 체포된 다음 여순감옥에 투옥되어 재판을 받을 때 감옥 간수로 있었던 일본인 군인의 후손이 집필한 책(내 마음의 안중근/사이토 타이켄 지음, 이송은 옮김/집사재/2002.8)을 읽은 적이 있다. 이 간수는 안의사가 옥중에 있을 때 글씨 하나를 부탁했는데 안의사는 가타부타 답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형이 있는 날 아침 사형장으로 나서면서 이 일본인 간수에게 붓과 종이를 가져오게 하여 하나의 글귀를 적어주었다고 한다. 그 글귀는 '爲國獻身軍人本分' 이라는 내용이다. 이 일본인 간수는 전역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살면서 인근 절에 안의사 영정을 설치하고 평생토록 기도하고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사망후까지도 아내에게 부탁을 하였고 또 그 후세에게까지 이어지게 하였으면 그 외손들이 이 글을 1970년에 우리나라 안중근기념연구회에 전달하였다고 한다. 그 유고글귀도 전시되어 있었다. 안중근의사 관련 전시물들을 견학하면 우리 아이들이 우리의 역사를 알게 되고 더불어 지금 우리가 이렇게 현대를 살아갈 수 있는 이유가 이러한 고귀한 생명을 바쳐서 나라를 위한 분들의 공이 있음을 알아주고 더욱 더 열심히 그리고 최선을 다하여 생활해주기를 기대해 본다.

 

 이제 허기진 배를 채우러 가야 한다. 오늘은 이곳 동북지역의 별난음식이라고 하는 만두 즉 교자를 먹으러 가자고 가이드에게 부탁을 했었다. 그래서 오늘 점심은 만두집으로 간다. 안중근의사 기념관을 둘러보고 나와 바로 이동하니 그다지 먼 곳이 아니라 바로 인근이다. 이름은 東才餃子王이다. 전통 교자집 같지는 않아 보인다. 입구가 그다지 크지 않지만 2층까지 있다. 들어가보니 사람들로 붐빈다. 점심시간임을 알리는 증거이다. 테이블마다 사람들로 꽉 찼고 또 통로에도 의자를 놓고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우리는 미리 예약이 된 탓인지 방으로 안내가 된다. 자리를 잡고 차림표를 한 장 받아 주문을 해본다. 주로 만두종류로 한다. 민현이가 좋아하는 군만두도 있다. 만두 속을 살펴보고 먹을만큼 주문을 해본다. 만두집인데 맥주도 있다. 생맥주도 서 너잔 주문한다. 한꺼번에 올려달라고 했는데 뭐 주문이 밀린 탓인지 바로 바로 나오질 않고 하나 둘씩 올라온다. 일단 올라오는대로 먹는다. 장모님께서도 또 동서내외분들도 맛이 괜찮다고 한다. 아이들도 가리지 않고 잘 먹어 다행이다. 모처럼 식사시간에 접시를 비우는 것 같다. 보통 중국식당 가서는 입에 맞는 것만 먹고 그러는데 오늘은 입에 맞을 것도 없이 오로지 만두종류이다 보니 대체로 잘 먹는 편이다. 다소 끼니로는 부족함이 있으리라 생각되는데 다들 잘 드시고 먹어주어 다행스럽다. 원래 오늘 점심은 다른 곳으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가이드에게 부탁을 하여 이곳으로 잡았다. 그러다보니 가이드의 일정에 차질이 생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소 부족함이 있지만 점심을 먹고 다시 나선다. 이번엔 동북호림원을 가려고 한다. 식당에서 아이들에게 “호랑이 구경하러 갈래”하고 물으니 녀석들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그래서 포기할까 생각도 했었다. 차에 올라 다시 한 번 의견을 묻는다. 역시 아이들 의견은 ‘관심 없다.’ 이렇게 약간 미온적인 상황인데 큰 이모께서 결정을 지어주신다. “오늘의 이 여행이 아이들 의견을 묻고 동의를 구한 것이 아니거늘, 이번에도 그냥 밀어붙여 호림원을 가자는 말씀이시다.” 그래서 군말없이 호림원으로 향한다. 호림원은 지난번 가위다리를 건넌 것처럼 이 다리를 넘어 태양도를 지나 더 북쪽으로 향한다. 이곳 하얼빈시가 송화강을 기준으로 강남과 강북으로 나뉘어진다고 한다. 동북호림원은 강북쪽에 위치해 있다. 한적한 시외로 빠져나오는 느낌이다. 공기도 좋고 주변도 여유가 있어 좋아 보인다. 차창으로 보이는 아파트 및 주변 건물들도 높지 않고 여유 있고 조용하게 보인다. 한참을 달리다보니 오른쪽에 대학교 건물이 보인다. 하얼빈상경대학이다. 캠퍼스 규모가 상당히 크다. 길을 하나 두고 양쪽으로 분리되어 있다. 이곳 도로는 아직 눈이 얼어붙은 부분이 듬성듬성 있다. 그만큼 차량통행이 적다는 표시인가보다. 눈앞에 호랑이 모형이 보이고 동북호림원 간판이 보인다. 어느새 다 온 것이다. 호림원에 대한 소개를 해보자.

 

 

 

 

 

 

 

 

 

 

 

 

 

 

 

 

『동북호림원은 송화강 북쪽에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다. 유명한 태양도관광지와 물줄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전체면적은 1.44㎢이고 세계최대의 동북호랑이 번식지역이다. 호림원내 사육중인 호랑이는 120여 마리이며 아주 건강하고 사납고 용맹한 성격의 소유자들이다. 이 호랑이들은 국가급 일류보호동물로서 관상에 있어서도 아주 가치가 높은 동물이다. 이 호림원은 국가희귀동물인 동북호랑이 보호의 초석이 되는 곳이며, 이곳에서 사육하여 산으로 돌려보내지고 또한 호랑이의 신비스러움을 간직한 채 관람객들이 관찰, 오락, 과학교육, 피서지 등 다양한 기능을 한꺼번에 갖춘 희귀동물원이다. 원내는 호랑이구역, 새끼호랑이 구역, 사슴원, 곰원, 과학기술중심 등이 있고 오락구역, 관광객관람대, 유람차를 통하여 동물의 왕이 유유자적하는 모습 등 진귀한 광경을 볼 수 있다.

 동북호림원은 세계 최대의 호랑이 인공 번식장으로 백두산호랑이(시베리아호랑이)포함하여 약 800여 마리가 사육되고 있다.』

 

 동북호림원은 하얼빈시 松北區에 위치하고 있고 , 총 면적은 144만평방미터이고 세계최대의 호랑이 인공사육장이다. 또한 동북호랑이 번식장이기도 하다. 이곳 호림원은 成虎園, 育成虎園, 種虎園, 獅虎園, 아프리카 사자원, 虎王구역, 어린호랑이구역, 보행구역, 호랑이관망구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우리에서 풀어져 관상할 수 있는 호랑이는 약 200여 마리이다. 몽골호랑이, 백호랑이, 눈호랑이, 라이거, 아프리카산사자, 흑호랑이, 백사자, 금빛재규어 등 대형호랑이과 동물들이 있다.

 

 버스에서 내려 대기실로 여겨지는 건물에 들어간다. 이곳에는 각종 기념품과 호랑이 관련 물건들을 판매하는 상점이 있었고 한쪽에는 호랑이 가죽을 의자에 걸쳐놓고 작은 라이거 한 마리를 안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 있다. 물론 돈을 지불하고 사진을 찍어야 한다. 새끼 라이거는 얌전히 의자 밑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이곳을 둘러보는 사이 가이드는 내게 돈을 받아 입장권을 사가지고 왔다. 잠시 기다리면 버스에 타는데 대기번호가 주어져서 번호를 방송으로 호명하면 건물 밖으로 나가 미니버스에 올라 호랑이 사육장으로 진입한다. 전체 사육장은 높이가 3미터 이상의 철망으로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버스가 입구에 도착하면 어디서 조종을 하는지 철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다시 닫힌다.

 

 호림원 대지는 온통 흰눈이다. 눈이 내린 뒤 아직 녹지 않아 눈밭이 된 것이다. 이 눈밭에 호랑이들이 어슬렁 어슬렁 거닐고 있다. 녀석들 날램이 보이질 않는다. 버스가 지나가도 만성이 되었는지 비킬 생각도 안한다. 물론 쳐다보지도 않는다. 녀석들 먹이감이나 던져주면 쳐다볼까? 첫 문을 들어가니 저 앞으로 커다란 호랑이들이 보인다. 눈밭에 엎드려 있는 놈도 있고 어슬렁 거니는 놈도 있다. 크기는 제법 크다. 우리가 탄 버스는 노선이 있다. 그 노선대로 기사가 천천히 움직인다. 물론 옆의 호랑이가 있으면 다소 속도를 늦추고 잠시 멈추어주기도 한다. 사진도 찍고 하니까. 첫 출입문을 지나 다음 문 앞에 도착하니 이 곳은 育成虎園이다. 다 큰 호랑이들이 있는 우리인 셈이다. 놈들이 묵직하고 크다. 두 세놈씩 무리를 지어 있는 호랑이들도 보이고 홀로 거니는 호랑이도 있고 눈바닥에 배깔고 고개를 쳐든채 일광욕을 하는 놈도 있다. 다음 코너는 種虎園이다. 종자호랑이를 키우는 우리이다. 나름대로 혈통이 있거나 좋은 새끼를 낳을 만한 호랑이들이 있는 우리이다. 관람객인 우리가 차창으로 바라보는 호랑이는 그놈이 그놈 같다. 단 덩치가 큰 놈이 있고 그렇지 않은 놈이 있고 그렇다. 그러니 씨를 받을 호랑이가 어디가 적당한지 외관상으로는 쉽게 알아볼 수가 없을 것 같다. 이 호림원 하늘엔 까마귀와 까치가 의외로 많이 보인다. 이놈들도 호랑이들과 친하게 지내는 모양이다. 가이들 말에 의하면 호랑이들에게 던져 준 먹이 찌꺼기는 이 까치와 까마귀가 깔끔하게 해결을 한단다. 악어새와 악어가 공생을 하듯 이 호랑이 단지에서는 까마귀와 까치 그리고 호랑이가 서로 상부상조하면서 사는 모양이다. 다음 문은 成虎園이다. 이곳 호림원에서 고참 호랑이들이리라. 다 큰 놈들이니 더 클 것도 없을 것이다. 덩치도 우람하고 호랑이답다. 호랑이들이 다 호랑이답겠지만, 우리 간판을 보고나서 바라보는 호랑이라서 그런지 당당하게 보인다. 그중에 한 놈은 우리식의 원두막 같은 단상에 두 손을 앞으로 하고 엎드려 있는데 그 모습이 멋지다. 옆으로 버스가 지나가건만 본 척도 하지 않는다. 잠깐 사이에 한 녀석이 그 단상으로 훌쩍 뛰어 오른다. 두 마리가 겹쳐진다. 그놈 역시 크다. 두 마리의 호랑이가 나란히 있으니 더욱 멋진 모습이다. 기분 같아선 한 번 내려가 가만히 쓰다듬어 보고 싶다만, 목숨을 내놓아야하겠지. 그럴 정도의 가치 있는 일은 아니지. 하하하.

 

 어느 호랑이는 우리 안의 울타리 곁을 왔다 갔다 하기도 한다. 일광욕을 하는지 운동을 하는지 아니면 낯선 이방인들이 있어 경계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네. 다음 우리는 아프리카 사자 우리이다. 이번엔 사자를 보는 것이다. 이곳 호림원에서 사자는 그다지 대접을 받지 못한단다. 왜냐고? 온통 호랑이들인데 사자가 한 두마리 있어 뭔 힘을 쓰겠는가? 뭐 그런 식이란다. 그래서 그런가 사자들이 기운이 없어 보인다. 그래도 동물의 왕인데 여기선 그 왕 대접을 받지 못하고 쓸쓸하게 지내는 모양이다. 어깨도 축 쳐져 있어 보인다. 안타깝게 보인다. 밖으로 나와 있는 놈들이 있는 반면 우리 속에 갖혀 있는 호랑이들도 많다. 촘촘한 철망 울타리속의 작은 공간에 갖혀 있는 것이다. 다음 우리는 虎王區이다. 이곳 호랑이들은 아주 큰 넘은 아니다. 두 넘이 서로 마주보고 누워 있다. 서로 연애를 하는가? 아닌 정담을 나누는가? 이곳에서 본 호랑이들은 이상하게 대부분 누워있는 놈들이었다. 피곤한가? 한 녀석은 울타리 아래에서 버스 쪽으로 다가오는데 그 눈빛이 강렬하다. 버스를 적으로 여기는지 금방이라도 덮쳐올 듯하지만, 감히 버스를 넘보겠는가. 한 번 인상을 써보는 것이겠지. 또 한 놈은 버스가 가는 길에 올라서서 우리 쪽으로 오는데 버스가 가도 비켜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결국 기사가 방향을 바꿔 호랑이를 피해간다. 우리보다 앞선 일행들의 한 팀이 관망대에서 닭 한 마리를 들고 던져줄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아래의 호랑이 몇 마리가 대기중이다. 언제쯤 떨어질까 기다린다. 그 모습들이 먹이를 눈 앞에 둔 맹수 모습이다. 관람객 한 분이 던져주니 동작 빠른 한 넘이 냉큼 물어채고는 슬금슬금 움직인다. 먹이를 놓친 다른 호랑이들은 그저 침만 흘리면서 아쉬워하는 눈초리이다. 바로 이곳에서 힘이 있고 능력있는 자가 군림하는 현실을 체험하게 된다. 먹이를 챈 놈은 적당한 곳에 엎드려 뜯는 준비를 한다. 그런데 다른 호랑이들은 곁에 얼씬도 하지 않고 그저 남의 일처럼 바라보기도하고 돌아나가기도 한다. 가이드 말을 빌리면 호랑이들은 닭을 주면 털을 하나하나 다 뽑고 먹는단다. 털있는 채로 먹지를 않는다고 한다.

 

 

 

 

 

 

 

 

 

 

 

 

 

 

 

 

 

 이제 버스투어는 마쳤다. 버스에서 내려 보행구역을 통하여 좌우 우리에 있는 호랑이들을 둘러보는 시간이다. 적당한 복도가 이루어져있고 이 복도 좌우로 호랑이 우리들이 있다. 백호도 있고 치타도 있고 사자도 있고 약 10여분 이상 천천히 걸으면서 호랑이들을 볼 수 있다. 물론 아까 차에서 보았던 먹이 던져주는 지역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먹이를 준비하지 않았다. 그래서 실제론 하지 못한다. 더러는 소나 양 등 한 마리 통째로 던져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이 도착하기 전 한 팀은 소를 한 마리 사서 풀었다고 한다. 소 한 마리에 약 2000위앤정도 한단다. 우리속에 있는 호랑이들은 각양각색으로 있다. 엎드린 놈, 어슬렁 거니는 놈, 누워있는 놈, 씩씩거리는 놈. 아까 던져준 먹이를 챈 놈이 앉아 털을 뽑고 있는데 주변의 한 놈이 슬금슬금 눈치를 본다. 아마도 덮칠 기세다. 주위를 확인하고는 다가간다. 그리곤 순식간에 덤벼들어 먹이를 가로챈다. 처음에 먹이를 받았던 놈은 두말없이 먹이를 ?긴다. 그리곤 미련없이 물러선다. 이 놈은 먹이 받아서 털뽑아 먹기 좋게 만들어 놓고는 남에게 ?긴 것이다.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 아예 받질 말던가? 힘이 없으니 당할 수밖에. 동물의 세계든 인간의 세계든 힘과 권력을 가진 자가 쉽게 사는 것은 같은 모양이다. 보행구역을 걷다가 백호랑이 우리 앞에 이른다. 백호랑이는 우리에 갇혀있다. 씩씩 거린다. 헛기침을 하기도 하고 카메라에 담아보려고 애를 쓰는데 이 놈이 가만 있지를 않는다. 좀 도와주었으면 좋으련만. 또 철망이 앞에 있어 제대로 담을 수도 없다. 어렵다. 이 백호는 몽골호랑이 종류로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놈이라고 한다. 이 백호는 세계적으로 약 200여 마리가 있다고 한다. 귀한 놈이긴 하다. 올해가 백호랑이 해라고 하는데 그래서 더욱 신기하게 보이는가보다. 나오는 길에 흑표범도 보고 사자도 다시 본다. 그런데 사자는 어디가 아픈가 모습이 측은해 보이기도 했다.

 

 약 1시간 가량을 이곳 호림원에서 호랑이를 둘러보았다. 아이들도 좋아한다. 이곳에 오지 않았으면 아마 후회를 했을 것 같다. 모처럼 야생동물 을 보면서 일정이 다소 지루해 가는 중이었는데 활력을 준 것 같다. 다시 버스에 올라 시내로 향한다. 이제 이곳 하얼빈에서의 일정은 대부분 마친 셈이다. 남은 시간동안의 일정은 부담될 것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송화강변에 도착하여 스탈린공원을 걷는다. 아이들과 두 이모는 차에 남고 동서내외와 우리부부 그리고 가이드와 함께 송화강 얼음을 왼쪽으로 바라보면서 가로수가 잘 정돈되어 있는 이 공원길을 걸으면서 방홍기념탑 쪽으로 향한다. 이 강변엔 100여년 된 건축물 두 동이 있는데 지금은 문이 닫혀져 있다. 하절기에 상점으로 이용된다고 한다. 목조건물인데 오래된 분위기기 풍긴다. 강 얼음 위로는 몇 군데 스케이트장과 썰매장이 조성되어 사람들이 붐빈다. 또 한 편에는 눈으로 언덕을 조성하고 인공 썰매장을 만들어 태양도 눈조각장에서 보았던 타이어 썰매를 타기도 한다. 아이들이 같이 왔다면 또 얼음을 지쳤을 것인데, 녀석들 춥다고 또 귀찮다고 차에 남아 게임을 하고 있을 것이다.

 

『스탈린 공원(斯大林公?)

 스탈린 공원은 송화강변의 피서유람지의 한 곳이다. 강줄기를 사이에 두고 태양도를 바라볼 수 있다. 1953년에 조성되었으며 원래 이름은 강반공원(江畔公?)이다. 전체길이는 1750m이고 물이 넘어오지 않도록 띠를 두른 개방식 공원이다. 공원중심에는 방홍승리기념탑이 있는데 이 탑은 러시아고전스타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공원전체엔 오색 꽃들이 곳곳에 펼쳐져 있다. 이는 마치 학들이 날개를 펼친것 같아 보인다. 여름철에는 강물이 시원함을 가져다주고 푸른 버드나무는 그늘을 만들어주고 강 가까이는 천연의 수영장이 된다. 이로 인해 사람들로 하여금 피서지로 각광받고 있다. 겨울철에는 북쪽 특유의 눈 세상을 만들어 주고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아름다움에 빠져들게 하고 그 기묘함에 어쩔 줄 모른다.』

 

 우리 4명과 가이드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책을 하면서 방홍기념탑까지 왔다. 이 방홍기념탑은은 중앙대가가 송화강변에서 끝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바로 앞의 지하도를 건너면 남쪽으로 중앙대가를 향할 수 있다. 도로 좌우에는 백화점이 자리 잡고 있고 1층의 상가에는 러시아상품점이 크게 위치하고 있다. 그냥 눈요기 할 요량으로 한 러시아상품점에 들어가 보았다. 아주 많은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고 규모도 제법 크다.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직원들은 사진도 찍지 못하게 한다. 다양한 상품들을 보고나온다. 다시 걸어서 금곡호텔까지 간다. 이곳에 우리의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어느덧 시간은 오후라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즈음이다. 버스는 이동을 시작하여 성소피아성당으로 향한다. 늦은 시각이라 성당 내부를 견학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성소피아성당 외부 모습을 둘러본다. 이 근처가 붐비는 지역이라 주차공간이 마땅치 않다. 말로만 듣던 성당을 직접 보게 된다. 아주 크지는 않지만 특이한 모습이다. 많이 보지 못했던 외형이다. 돔식으로 만들어진 건물꼭대기와 사방으로 각기 다른 모습을 한 건축 디자인이 특이한 점이다. 난 뒤쪽으로 걸음을 옮겨 다른 방향에서 모습을 바라본다. 물론 사진도 찍었고. 그러다보니 일행은 어느새 버스에 올랐다. 내가 늦은 것이다. 좀 더 여유 있게 건물을 살펴볼 시간이 없었다. 거리가 복잡하다보니 버스 하나 맘 놓고 주차할 공간이 없는 것이다. 정말 바쁘게 왔다가 바쁘게 가는 성당 앞이다.

 

성소피아 성당(?·索菲??堂)

 성소피아 성당은 동북지방에서 가장 큰 성당건물이다. 1907년 3월에 건축이 되었으며 러시아 동시베리아제4보병사단에서 보수 건축한 러시안 군사를 위한 정교회이었다. 후에 몇변의 중수를 거치면서 지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하나의 중심구조물에 이어지는 건축구조형식이다. 성소피아 성당은 비잔틴건축양식의 영향을 받은 건축물로 내부가 화려하고 웅장하며, 속세를 벗어난 우아함을 띄고 있으며  그 규모도 매우 웅대하고 장대함을 갖고 있다.  1923년 9월 27일 성소피아성당의 두 번째 재건축 작업이 시작하여 9년만인 1932년 11월 25일 낙성식을 갖게 되었다. 성당의 높이는 53.25m, 건축면적은 721㎡, 성당내 수용인원은 2,000명이나 된다.』

 

 이렇게 어제 오늘 하얼빈에서의 일정이 막을 내린다. 이제 남은 일은 저녁 먹고 역으로 이동하여 북경행 기차에 몸을 맡기면 되는 것이다. 저녁을 하기엔 좀 이른 시간이기도 하다. 기차시간이 9시 30분이니 여유가 많다. 일단 식당으로 이동을 한다. 우리가 하얼빈에서 마지막으로 저녁을 할 식당은 龍達時代酒店이다. 2층 방으로 안내된다. 또한 넓은 홀에서는 다른 손님들이 있다. 이날은 결혼식이 있단다. 그탓인지 시간이 조금 지나니 약 100여명이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식사를 할 모양이다. 미리 주문된 식사를 기다린다. 저녁을 먹고 우리는 7시정도까지 이곳 식당에서 휴식을 갖기로 한다. 물론 더 있을 수도 있는데 기차역으로 7시에 이동을 하자고 가이드에게 이야길 했다. 이것저것 중국식의 저녁을 먹는다. 아이들은 아까 차 안에서 컵라면을 먹은 탓인지 식욕이 왕성하지 않다. 밥과 몇 가지의 요리를 통하여 식사를 하고 여유있게 휴식을 취한다. 방밖의 일행들은 식사를 마쳤는지 노래소리가 들린다. 간단한 식을 치루고 여흥시간을 갖는 모양이다. 결혼식이라곤 하지만 우리식의 결혼식이 아니라 그다지 볼 것은 없다. 잠깐 식당 밖을 나갔다 온 이의 이야기로 특이한 것은 구멍가게 앞에 박스에 아이스크림이 그냥 진열되어 있다는 것이다. 기온이 영하이다 보니 냉장고 속이 아니라 그냥 밖에 박스채 놔두어도 아이스크림이 녹지 않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이곳 하얼빈은 겨울엔 냉동실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실외자체가 냉동실이 되니 말이다.

 

 

 

 

 

 

 

 

 

 

 

 

 

 

 

 

 

 

 

 7시가 되어 우리는 짐을 챙겨 식당을 나와 하얼빈 역으로 향한다. 뭐 10분도 되지 않아 역에 도착한다. 어제 아침에 본 역인데 하루 만에 다시 다른 분위기를 내는 역에 온 것이다. 역광장 앞의 작은 공간엔 크지 않은 얼음조각이 있고 이 조각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역 주변의 건물들도 네온사인의 영향인지 제법 야경이 볼만하다. 일단 우리는 역 대합실로 들어간다. 마지막까지 가이드가 안내를 해준다. 이곳에서 가이드와 작별을 한다. 기다리는 시간은 우리만 있어도 탈 없을 것이기에 가이드는 돌아가라 한 것이다. 일단 대합실에 자리를 잡고 나와 형님은 잠깐 나온다. 역주변 거리를 산책하고자. 옆 앞 도로를 건너 한 바퀴 둘러본다. 빛에 담긴 건물들을 카메라에 담아보기도 하고 하얼빈 역앞의 공기도 마셔본다. 조금 쌀쌀한 기운은 있지만 그다지 버티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멀지 않게 둘러보고는 다시 역앞으로 돌아온다. 마침 길 건너편에 러시아상품점이 있어 잠깐 들어가 초코렛을 본다. 초코렛을 하나 살까 생각해서이다. 많은 초코렛이 있다. 그 중에서 개당 15원짜리를 선택한다. 작은 상자에 11개를 넣어 150원에 판다. 1개를 덤으로 주는 것이다. 2개를 달라니 안된단다. 일단 내가 한 박스 필요로 하니 형님께서 필요하시다며 2박스를 더 주문한다. 그래서 난 총 3박스를 사니 1개 덤으로 달라고 하니 이 남자 점원이 안된단다. 마지막 수단으로 “그럼 우리 사지 않고 그냥 갈란다.” 하니 마지못해 하나 더 준다. 자식 미리 주면 서로 기분이 좋을 것을. 450원 값을 치루고자 카운터에 가니 아가씨가 담배를 한갑 꺼내면서 권한다. 난 “그냥 주는 것이냐?”고 했더니 아니란다. 파는 물건이란다. 하얼빈 특산 담배라며 한 갑에 30원 한단다. 한 세트로 10갑이 들어있는 포장세트를 보여준다. 에그그 너무 비싸다. 초코렛을 들고 대합실로 들어가니 기차시간이 1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 초코렛을 보니 우리 쌍둥이 엄마께서 아이들 할아버지가 초코렛을 좋아하신다고 하면서 하나 더 사겠다고 한다. 다시 두 체제와 형님하고 나온다. 같은 가게로 가서 다시 2상자를 더 산다. 좀 작긴 하지만 아이들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것이라니 작은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초코렛은 종류가 다양하다. 카카오 성분이 32%함유된 것부터해서 40, 50, 72% 함유된 것도 있다. 또한 과일맛이 나는 것도 있고. 두께도 제법 두껍다. 중국에서 파는 초코렛 값에 비하면 좀 저렴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렇게 마지막 장을 보고 대합실로 들어오니 대합실은 처음 우리가 왔을 때보다 사람이 무지하게 늘었다. 저녁 늦은 시간이 되면서 승객들로 가득찬 것이다. 출발 30분 전에 개찰을 하고 들여보낸다. 오히려 북경역에서보다 들어가는 것은 수월한 편이다. 바로 플랫폼이 된다. 1번 플랫폼이다. 하얼빈 가기 전에 들은 정보로는 1번 플랫폼에 이전 안중근의사 의거 현장이 표시되어 있다고 했다. 우리 객차는 1호차였다. 난 일행을 먼저 들어가라 하고 난 그 장소를 찾고자 1번 객차를 뒤로하고 걷는다. 뭔가 표시가 있겠지 했는데 기차 끝까지 갔는데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눈 앞에 두 명의 직원이 보이길래 물어본다. 그랬더니 이 친구가 어디라고 가르쳐주지는 않고 따라오란다. 따라가니 바로 1호 객차 앞까지 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곳이다”라고 알려주고는 다시 발걸음을 돌린다. 바라보니 뭐 별것 없다. 달랑 보도블록 위에 원속에 삼각형 하나 표시되어 있고 그 앞에는 다시 마름모형의 표시가 있다. 삼각형 표시는 안중근의사가 권총을 발사한 지점이고 마름모형 지점은 이토오히로부미가 총을 맞은 지점이다. 불과 4미터 정도될까. 이렇게 바닥에 조금 다른 보도블록 외에는 다른 표시가 하나도 없다. 달리 표식을 알 수 있는 글이 써있는 것도 아니니 관심 없는 사람은 전혀 알아볼 수도 없을 것이다. 아쉬운 것은 그 지점을 알 수 있는 표시를 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나마 그렇게라도 바닥에 표시를 해두었다는 것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이곳 사람들은 워낙 오래된 일이라 관심밖일테니까. 그 지점을 확인하고 사진을 찍는데 이런 지금까지 아무 탈없이 작동하던 카메라가 작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건전지에 문제가 있나보다. 셔터를 아무리 눌러도 되질 않는다. 기차엔 올라가야하는데. 가방을 열어 예비 건전지로 바꾸니 작동을 한다. 대합실에서 열차로 오는 잠깐사이에 밧데리가 방전된 모양이다. 두 표시지점을 카메라에 담고 열차에 오른다. 그런데 내가 가지고 있는 표 한 장이 어린이 표였다. 차장 아가씨가 어린이 표라면서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일행이 13명이고 난 아무표나 갖고 있었던 것이다.” 하니 들여보내준다. 하마터면 열차 못타고 하얼빈에 남을 뻔 했다. 물론 그럴 일이야 없었겠지만. 어린이가 포함되어 있을 땐 표도 확인하고 휴대해야할 것 같다. 앞으론.

 

 이번 기차는 Z형 전용기차다. 모두 4인실 루완워가 설치된 차다. 엊그제 올 때는 잉워도 있고 루완워도 있는 기차였는데 북경으로 향하는 기차는 Z전용이라 편하다. 아이들도 올 때와는 다른 시설을 보고는 놀란다. 화장실도 세면실도 엊그제 탔던 기차보다는 격이 다르니 놀랄 수 밖에. 자식들 그저 좋은 것은 알아가지고.

 

 방마다 4명씩 배정을 하고 나니 한 자리가 남는다. 바로 옆칸인데 표를 보여주니 바꾸자고 한다. 자기 일행 한 사람이 다른 칸에 떨어진 모양이다. 우리의 한 사람은 어느 칸에 가도 문제될 것이 없으니 표를 교환하고 자리를 바꾼다. 17호 자리인데 3호 자리하고 교환을 한 것이다. 짐 정리를 하고 각자의 자리에 돌아가고 우린 한 칸에 모여 준비된 맥주와 백주를 한 두잔씩 하고 여행을 마무리하는 자리를 갖는다. 이제 한 잠 푹 자면 북경에 도착할 것이다. 그러면 4일의 일정이 모두 마무리된다.


5. 4일째-1.25 월요일

 기차는 잘 달리긴 했는데 어디가 문제인지 많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나 편한 잠이 되지는 못했다. 우리 칸만 그런 것인지. 출입문도 덜컹거리고. 암튼 자긴 했다만 그다지 편한 잠은 되지 못했다. 6시가 넘어 눈을 떴는데 실제 기상한 것은 7시가 다 되어서이다. 이때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가 알기로는 기차는 8시 넘어 도착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이번 기차는 무정차로 온 탓인지 7시 26분경에 도착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내릴 준비가 되지 못한 것이다. 양치를 하고 창밖을 보니 어느새 북경에 다 들어온 것이다. 아뿔싸! 난리가 났다. 일행들이 옷을 입고 가방을 챙기고 짐을 확인한다. 아이들 오락기며 등등 시간이 없다. 부지런이 정리를 한 탓에 그래도 북경역에 도착하여 내린다. 정말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정신없이 내렸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채.

 

 북경역의 아침 기온은 따뜻한 것 같다. 하얼빈의 찬 기온에 적응된 몸이 북경의 기온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기차에서 내리기 전에 걱정이 되었다. 차가 8시 30분 경에 올 것인데 말이다. 그래서 급하게 전화를 한다. 우리를 데리러 오는 기사에게, 기사하고 통화가 되었고 알았단다. 조금 지나니 알 수 없는 전호가 다시 온다. 두 번 만에 받으니 이미 버스는 역 가까이 온 모양이다. 대합실을 나서면 다시 연락을 달란다. 걱정했던 부분이 해소되었다. 계단을 내려가고 다시 북경역 출구로 향한다. 이곳저곳 플랫폼에서 내린 승객들로 중앙 통로는 어느새 꽉 찬다. 역을 빠져나와 다시 전화를 한다. 어디서 만날 것인가 하니 엊그제 내려주었던 곳에서 만나잔다. 그곳으로 이동을 하고 잠시 둘러보는 사이에 우리를 태울 버스가 다가온다. 짐을 올리고 올라탄다. 이제 맘이 놓인다. 긴장이 풀리기도 하고. 조금만 지나면 집에 도착하는 것이다. 일행이 많고 또 장모님도 계시고 해서 나름대로 부담도 되고 걱정도 되었던 4일간의 시간이 아무런 탈없이 무사하게 마무리 되는 것이다. 다소 불편했던 부분들이 많이 있었을 것인데 모두들 표내주지 않아서 감사했다. 먹는 것도 마땅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맛나게 드셔주어서 또 고맙다. 아이들도 날씨도 춥고 여러 사람이 움직이다보니 힘들고 했을 것인데 역시 불평해주지 않아서 고맙고. 모두가 만족스럽지는 못했겠지만, 오랜만에 아니 처음으로 이 낯선 중국땅에서 이렇게 함께 모일 수 있었다는 것이 다행이고 행운이 아닌가 싶다. 형제분들 모두는 아니었지만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이곳에 잠시 살고 있음으로해서 안내자가 되었는데 충분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 또 한편으로는 죄송하기도 하다. 조금 불편하고 힘드시고 했더라도 한 가족이 함께 할 수 있음에 만족할 수 있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일정 

1일 : 2010.1.22 21.36분 북경역 출발 기차 T17편

2일 : 23일 08.48 하얼빈역 도착-아침식사-중앙대가 도보로 관람-호텔 체크인-점심식사-송화강 얼음수영 관람-태양도 눈조각 전시회 관람-하얼빈 빙설세계 관람-저녁식사-호텔

3일 : 호텔 체크아웃-731부대죄증박물관 견학-안중근기념관 견학-점심식사-동북 호림원 견학-스탈린 공원-성소피아 성당-저녁식사-하얼빈역 Z16편 기차로 북경행 21:26분 출발

4일 : 07:26분 북경역 도착-귀가

 

● 여비

=1인당 1860元에 여행사 통한 일정

=현지 추가 비용 :

1. 첫날, 마지막 날, 집↔북경역 버스비 400元

2. 호림원 관람 추가비용 1인 각 65元 +교통비추가 200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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