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감사합니다”라는 글이 있습니다.
주님,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저의 연약함을 깨닫습니다.
가끔 고독의 수렁에 내던져 주심도 감사합니다. 그곳에서 주님을 만납니다.
일이 계획대로 안되게 틀어주심도 감사합니다. 저의 교만했던 행실을 발견합니다.
아들딸이 걱정거리가 되게 하시고 부모와 친구가 짐처럼 버겁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사람 사는 보람을 느낍니다.먹고사는 데 힘겹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눈물로 먹는 빵의 의미를 이해합니다.
불의와 허위가 득세하는 시대에 태어난 것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의가 분명하게 보입니다.
땀과 고생의 잔을 맛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더욱 분명히 깨닫습니다.
주님, 감사할 수 있는 마음 주심을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가능성이 있음을 압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애굽의 속박에서 해방된 이후에 모세가 약속의 가나안 땅을 바라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교훈으로 설교한 내용 가운데 일부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은 모세의 제 2차 고별설교가운데서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제 장차 가나안 땅에서 수확하게 될 때에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핵심적인 내용은 첫 수확물(맏물)을 가져다가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리는 가운데,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 감사의 예물을 가지고 나아와 그 동안 과거에 힘들었던 순간마다 역사 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기억하면서, 그 은혜를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감사하라고 합니까?
1>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떤 교회에 한 열성적인 형제가 있었습니다.
이 형제는 모든 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했으며 항상 맨 앞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형제는 예배를 조용히 드리는 것이 아니라 목사님이 설교를 하실 때 감동이 되는 장면에서는 큰 소리로 "할렐루야!"또는 "아멘!"하고 외쳤습니다.
목사님은 아주 조용하고 얌전하신 분이었는데 설교 도중에 이 형제가 큰 소리로 소리를 지르면 그만 설교의 내용을 다 잊어먹게 되어 난처하기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목사님은 이 형제에게 제발 예배시간에는 속으로만 아멘을 하라고 이야기를 하였고 형제는 끄덕거렸습니다.
그러나 막상 예배를 시작하면 이 형제는 그 약속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큰 소리로 "할렐루야!" "아멘!"을 외쳤고 때로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손을 높이 들고 외치기도 했습니다.
목사님은 이 형제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형제를 맨 뒤 좌석에서 예배를 드리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맨 뒤 자리에서 "할렐루야!" 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와 온 교회당에 가득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고민하다 못해 목사님은 이 형제에게 한번만 조용히 예배를 드려주면 구두를 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이 형제는 몹시 가난한 형제였고 구두가 너무 낡았지만 구두를 살 돈이 없었습니다.
형제는 심각하게 이야기를 듣더니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그 다음주일, 목사님은 안심하고 예배를 인도하려고 강단에 섰습니다.
그리고 설교를 하면서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교회당 전체에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구두가 문제야! 나, 구두 필요없어! 할렐루~야!"
영국에서 있었던 실화이지요.
주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와 닿는다면 구두가 문제겠습니까?
아니, 구두뿐 만이 아니라 돈이든, 명예든, 권세든, 사랑이든.. 그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살든지 죽든지 우리 몸 안에서 주님 만이 존귀케 되는 것
오직 그것만이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 너무나 조용하고 잠잠한 우리들의 예배들... 지금은 오히려 떠들며 할렐루야를 외치며 아멘을 외치는 예배를 드리는 이들에게 구두를 주고싶은 마음입니다.
지난주간에 부평에 있는 목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성도는 은혜을 받아야 살수 있습니다. 성도가 은혜를 받지 못하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중생하지 않으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은혜받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이 됩시다. 목사는 은혜를 끼칠려고 힘쓰고 성도는 은혜를 받을려고 힘쓰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야곱은 멸망의 위기에서 살기를 찾아 애굽에 내려 갈때에 그 숫자가 약 70명(창 46 : 27)이었으나 나중에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때의 숫자는 장정만 60만명(출 12 : 37)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실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될지라”(창 12 : 2) 말씀 성취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일을 생각할 때마다 그 은혜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더라”(5절)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는 은혜를 잊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는 그동안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해야 하며 부모님께 감사해야 하며 함께 합력하여 선을 이룬 부부와 가족에게도 감사해야 합니다.
2>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림으로써 감사해야 합니다.(10절)
어느 시골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추수를 마치고 감사 예배를 드릴 때 한 여인이 많은 양의 곡식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평소 가난한 살림을 꾸려가던 그 여인이 많은 예물을 바친 것에 대하여, 목사님은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성도님, 특별히 감사할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
"예. 사실은 제가 열살 난 아들이 있었습니다. 지난 해 그 애가 병이 났을 때 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이 아이가 다시 살아날 수만 있다면 하나님께 많은 예물을 드리겠습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아들이 이제 회복이 되었나 보군요?"
"아닙니다. 일 년 가량 시름시름 앓다가 한 달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의 약속은 무효가 되었을 텐데, 어떻게 …?"
"아닙니다. 목사님, 저는 이제야말로 주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릴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 아이는 정말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그 아이가 한 살 되었을 때, 남편이 먼저 갔습니다. 그 때 저는 정말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를 그 절망 속에서 건져준 것이 바로 그 아이의 미소였습니다. 제가 외로움으로 눈물지을 때, 그 아이의 웃음소리는 저를 다정하게 위로해 주시는 주님의 음성이 되어 다가왔고, 제가 삶의 시련으로 인하여 고통스러워 할 때, 제 뺨을 만져주던 그 아이의 작은 손은 나를 붙들어 주시는 주님의 자비로운 손길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정말 제게 주어진 최대의 축복이요, 은혜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제 아들을 하늘나라로 데리고 가셨고, 지금은 그 품안에 안고 계십니다. 목사님, 저는 그 아이를 제게 선물로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때가 되어 그 아이를 천국으로 데리고 가신 분도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그 귀한 선물을 주셔서 저를 지금까지 위로해 주시고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귀한 맏물로 감사를 드려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아닙니다. 이제야말로 주님께 선물을 드릴 때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주께 드리는 예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축복에 비례하여 드릴 것이 아니라, 진정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우리 마음을 드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 10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여기서 “맏물”이라는 단어가 아주 중요합니다. 맏물이라는 말은 ‘첫째’ ‘시작’을 의미하는 것으로, ‘첫 열매’를 가리킴과 동시에 ‘가장 좋은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드려야 할 감사의 내용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되,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림으로써 감사해야 할 것을 설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이 설교는 오늘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요구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의 드릴 ‘맏물’은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는 어떤 맏물을 드리고 있습니까? 그것은 진정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과 감사를 담은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맏물입니까?
지난 월요일새벽에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사용하였고 아벨은 양의 첫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다고 하였습니다. 가인은 첫것을 드렸는지 안드렸는지는 모르지만 아벨은 분명히 양의 첫새끼를 하나님께 드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첫것은 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새벽기도하는 첫시간은 내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새벽기도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첫시간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입니다. 아벨은 가인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감사예배는 반드시 희생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냥 드리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좌우하는 귀한 것을 드려 헌신한다는 것입니다. 드리는 신앙이 우리아픔을 치료합니다. 드리는 신앙이 우리 믿음을 성장시킵니다.
민수기 18장 12-13절에 “그들이 여호와께 드리는 첫소산 곧 제일 좋은 기름과 제일 좋은 포도주와 곡식을 네게 주었은즉 그들이 여호와께 드리는 그 땅 처음 익은 모든 열매는 네것이니 네 집에 정결한 자마다 먹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첫열매를 드리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첫열매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첫것을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제일 먼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지 말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정한 감사는 이웃과 더불어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11절)
지난주 신문에 여수의 할머니 4총사에 대해서 기사가 실었습니다.
윤덕심(79), 김동심(74), 민우필례(73), 홍넙심(70) 월안경로당 할머니 4총사는 오늘도 마을 주변을 돌며 남들이 사용하고 버린 종이박스와 신문을 모으는 일에 여념이 없습니다. 아침 쌀쌀한 바람에 못 한다고 손사래를 칠만도 하지만 할머니 4총사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저 즐겁기만 합니다. 이렇게 1~2시간 정도 교통지킴이 활동을 하고 나면, 점심 나절까지는 집에서 집안일과 밭일 등으로 소일거리를 합니다. 그런 다음 오후에는 할머니들의 본업(?)인 폐지를 모으러 다니십니다.
낮 2~3시 정도가 되면 할머니 4총사는 어김없이 월안경로당으로 모여 그날의 폐지수거 작전 회의(?)를 합니다. 회의가 끝이 나면 2인 1조가 되어 안산동 일대를 누비며 버려진 종이상자와 신문을 긁어모읍니다. 보통 5시나 6시면 수거한 폐지의 정리가 끝나지만, 양이 많은 경우에는 밤 9시를 넘기는 때도 허다합니다. 이렇게 할머니들이 하루 70~80km를 돌아다니며 모은 폐지를 팔면 한 달에 15만원에서 20만원 정도를 벌 수 있다고. 어느 정도 돈이 모이면 혼자 외롭게 지내는 독거노인 세대를 찾아가 밑반찬을 전달합니다. 이들이 폐지를 팔아 모은 돈으로 밑반찬을 제공하는 독거노인만 해도 29세대에 달합니다.
특히 이들 할머니들이 독거노인들에게 밑반찬을 전달하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루 종일 이들과 말벗이 되어 주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이런 저런 이야기에 함께 손 잡고 울고 웃는 일도 많습니다. 그렇게 독거노인들의 외로운 마음을 달래는 일을 이들 할머니 4총사가 나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추수감사절기는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돕고 함께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사랑을 나누는 종교입니다. 사랑을 나눌때 행복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진정한 감사는 이웃과 더불어 사랑을 나누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으로 말미암아 너는 레위인과 너희 가운데 거류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 이 말씀은 받은바 복을, 모든 사람, 즉 이웃과 나눔으로 감사는 비로소 말로만의 감사가 아닌 진정한 감사가 될 수 있고, 바로 그 감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한 작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소년이 거리에서 빵을 훔쳐 가지고 달아나다가 경찰에게 붙잡혔습니다. 소년은 곧 즉심에 넘겨졌습니다. 판사는 떨고 있는 소년을 내려다보면서 물었습니다.
“왜 남의 빵을 훔쳤니?” “배가 고파서요.”
“빵 하나 사먹을 돈이 없었니?”
소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잊지 못했습니다.
“엄마나 아빠한테 돈을 좀 달라고 할 수 있었을 텐데?”
“집에는 중풍으로 누워 있는 할머니랑 열 살짜리 동생뿐이에요”
“엄마와 아빠는 안 계시니?”
“아빠는 도박을 하다가 구치소에 가신 지 오래되었고, 엄마는 아빠가 구치소에 간 후
집을 나가 버리고 말았어요.”
소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한참동안 침묵으로 소년
을 바라보던 판사는 “네가 한 짓은 5달러의 벌금형에 해당한다.”고 말하면서 자기 지갑
에서 5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꺼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5달러는 너처럼 가난하고 불쌍한 아이가 굶주림에 떨면서 거리를 헤매고 있는 동
안, 나는 고급 식당에 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배를 채우고 있었던 데 대한 나의
벌금이다.”
그리고 판사는 5달러짜리 지폐를 자신의 모자에 담으면서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말을 합니다.
“자, 여러분들도 벌금을 내시고 싶으면 이 모자 속에 넣어 주십시오.”
모자가 돌기 시작하자 한 사람도 그 모금 운동에 빠진 자가 없었습니다. 잠시 후 판사
에게 돌아온 모자 속에는 지폐와 동전으로 가득 찼습니다. 판사는 그것을 소년에게 내
밀었습니다.
“자, 받으렴. 이 돈은 모두 네 것이다. 이 가운데서 네가 훔쳤던 빵 값과 벌금으로 5달
러만 내놓고 돌아가거라.”
이 때 증언 석에 있던 빵집 주인이 눈물을 글썽이면서 그 소년을 끌어안았습니다. 그리
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일부터 우리 집에 와서 나를 좀 도와줄 수 있겠니? 월급은 꼬박 꼬박 후하게 챙겨
주겠다. 물론 빵은 마음대로 먹어도 좋고.”
함께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감격 그리고 사랑
이 넘쳐흐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바로 그 자리에서 천국을 경험할 수 있었
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다음주일은 우리교회 추수감사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추수감사주일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 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감사를 이웃과 나누라고 주신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어떻게 은혜와 감사를 나눌수 있을까요?
우리교회 성도중에서 매년한 떡을 할 사람이 나오고 교회에 장식하는 일에도 앞장서고 여러 가지 과일도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예배가 되고 함께 나누고 이웃과도 나눌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은혜을 잊어버리지 말라. 감사하라. 사랑을 나누라고 하나님은 우리성도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고 순종하는 사람이 복을 받고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