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강가에서
안도현

어린 눈발들이, 다른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내리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들이 물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핵심정리
✴성격 : 성찰적, 반성적
✴어조 : 희생적 어조
✴표현상의 특징 : 의인화
✴주제 : 희생적인 사랑의 가치(애정의 소중함)
■작품 해설
✴1·2행: 눈들이 강 위로 떨어지는 모습이 그려진다. '어린', '뛰어내리는' 이 라는 표현들로 보아 눈발들은 많은 순수한 젊은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리고 강물은 역사를 의미 하는듯하다. 왜냐하면 강물은 흔히 역사의 흐름으로 해석되고 또한 사람이 있는 곳에도 항상 역사가있기 때문이다.
✴3행: 강물 위로 떨어지는 눈들이 녹아 없어지는 모습이 보인다. 즉, 역사 속으로 많은 사람들이 살아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 같다.
✴4·5행: 녹아 사라지는 눈들(사람들)을 바라보면 강물(역사)는 안타까워하고 불쌍히 여기는 듯하다
✴6∼8행: 눈은 계속해서 내리고 있고 강이 세차게 흐르는 모습이 그려진다. 즉, 역사는 계속해서 흐르고 있음을 표현하는 듯하다 그리고 "몸을 바꿔 흐르려고"라는 표현에서는 약간의 역사의 변화가 있음을 나타낸 것 같다.
✴9행: 강이 흐르다가 바위같은 곳에 부딪혀 소리가 난다. 즉, 역사가 바뀌려고 하니까 여러 시련을 겪는다는 것을 나타내는 듯 하다.
✴10·11행: 계속해서 눈이 내리고 있다. 역사는 조금씩 바뀌고 있으나 그런 줄도 모르는 순수한 사람들은 그 역사를 바꾸기 위해 계속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여기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는 것은 투쟁을 의미하는 것 같다.
✴12∼15행: 시간이 흘러 강이 어는 모습이 보인다. 강 즉, 역사가 표면적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크게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리고 '살얼음'이라는 표현으로 보아 강 표면 말고 강 밑에는 여전히 강물이 흐르고 있고 이것은 역사는 계속 흐르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해와 감상1
눈과 강을 의인화하여 자연의 아름다움, 저마다의 이치를 가진 존재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감동을 전해 주고 있다. 눈이 내리고, 강이 어는 것은 사실이다. 이 사실로부터 상생(相生)하는, 절대로 상극(相剋)이 아닌 평화의 경지를 그려내고 있다. 사진작가가 포착하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의인화의 기법으로 펼쳐내고 있다. 자기 몸 속으로 허망하게 빠져드는 눈발의 사라짐이 안타까워 제 몸을 얼리는 행위는 '사랑'의 관점이 없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과학적으로는 눈이 오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과학적으로 강물이 어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시인에게 눈과 강, 그리고 얼어붙음은 모두 서로 서로를 사랑하는 그윽한 눈빛으로 대체되고 있다. 그윽한 눈빛은 탐욕으로 얼룩진 일상의 눈에 담겨지는 것은 아니다. 대상에 대한 집착을 버린 상태에서, 잔잔한 애정을 가져야만 들여다 볼 수 있는 세계이다. 안도현 시인은 그렇게 표현했다. 겨울에 강물이 어는 이유를. 어린 눈발들이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어 녹아내리는 것이, 안타까워 눈발이 물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자꾸 뒤척였다고. 너무도 섬세한 안도현 시인의 마음이 섬진강물에도 흐르고 있는 것 같다. 내리는 눈을 받아 내려고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아 놓은 강이다. 강에 대한 대단한 애정이 깃든 시이다. 섬진강은 내리는 눈을 받아 내는 마음으로 도도하게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해와 감상2
'눈'이라는 소재를 선택함으로써 순수하고 깨끗함을 강조하고 있다. 전 체적으로 보면 많은 눈발들이 '강'의 모습을 변화 시켰다. 즉, 많은 사람 들의 희생과 투쟁으로 인해 역사가 변화했음을 의미하는 것 같다.
이 시의 제목은 두 가지 정보를 담고 있다. 화자가 처한 계절적 배경이 ‘겨울’이라는 정보와, 화자가 처한 공간적 배경이 ‘강(강가)’이라는 정보가 그것이다. 따라서 이 시를 감상할 때는 화자가 겨울에 강가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는가를 살펴야 한다. 이 시는 ‘어린 눈발=연약한 존재(철부지, 아이, 제자, 자녀, 소외 계층등), ’강(강물)=강한 존재(어른, 부모, 스승, 강한 자, 가진 계층)의 알레고리를 통해 ‘약자에 대한 희생과 배려’의 필요성과 의미를 포착한 작품으로 이해할 수 있다.
■ 시인 안도현

안도현(安度眩, 1961년 12월 15일 경상북도 예천 ~ )은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원광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으며,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 〈낙동강〉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98년 제13회 소월시문학상 대상과 2002년 노작문학상을 수상했다. 2007년 현재 '시힘'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우석대학교 문예창작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연어들이 번식을 위해서 바다에서 강으로 가는 과정을 배경으로 사회를 비평한 《연어》의 작가이기도 하다.
1981년 <대구매일신문>에 <낙동강>으로 등단한 안도현은 첫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1985)>에서 ‘쇠죽솥 같은 앞가슴(빈논)’으로 피폐한 현실에 맞서는 농민과 역사의 인물 전봉준을 진한 빛깔로 우려내었고, <모닥불(1986)>에서는 곤궁한 삶의 현장에서 짙은 비애와 정감의 색을 추출하였다. <그대에게 가고 싶다(1991)>, <외롭고 높고 쓸쓸한(1994)>에서도 안도현 시인은 고달픈 현실과 자신의 시적 염료를 짙게 배합한다. “오래 시달린 자들이 지니는 간결한 슬픔을 놓치지 못하여” “검은 멍이 드는 서해”(군산 앞바다), 밤새 철야작업을 하고 돌아와 “빨간 눈으로 연탄 불구멍을 맞추”(겨울밤에 시 쓰기)는 어린 노동자의 모습을 통해 고통에 찌든 시대의 생생한 일상으로 보여준다. 90년대 후반에 나온 <그리운 여우(1997)>와 <바닷가 우체국(1999)>은 안도현 시의 새로운 페이지를 여는 시집이다. 서정적 풍경을 그린 짧은 시와 설화적 세계에의 그리움이 혼합된 <그리운 여우>는 ‘흰빛’으로 표상되어 과거 지향의 낭만성을 시화한다. 대부분 기억과 상상에 의존하는 안도현의 낭만적 여정은 <바닷가 우체국>에서도 계속된다. 이 시집에서 그는 “바다가 문 닫을 시간이 되어 쓸쓸해지는 저물녘” “만년필로 잉크 냄새나는 편지를 쓰”(‘바닷가 우체국’)고, “풍경 속에 간이역을 하나 그려 넣은 다음에 / 기차를 거기 잠시 세워두”(‘이발관 그림을 그리다’)는 아름다운 호사를 꿈꾸며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다. 안도현의 시세계는 현실성과 낭만성의 비율에 의해 좌우된다. 사실 낭만성과 낭만주의는 우리 시에서 편협하게 이해되고 있는 대표적인 대상이다. 현실의 무한한 외부를 상정하면서 세계와 자아의 확장을 꾀하는 낭만주의는 자주 몽환주의나 감상주의, 비현실적인 이상주의로 폄하되는 것이다. 안도현 시인의 경우, 그이 시적 체질이 낭만성 혹은 낭만주의에 있음은 처음부터 나타난다. 80년대의 안도현이 거친 현실과 남도의 정한을 뜨겁게 녹여 독자의 가슴에 부을 때, 그 속에는 방황하는 자아의 낭만적 열정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 열정은 불의의 현실을 걷잡을 수 없는 비애와 더불어 세계에 반납하면서 그 빈틈과 바깥을 탐색하는 것이었다. 80년대의 안도현을 현실인식과 미학의 조화 때는 호평과 찬사를 받지만, 낭만성에 기울어지면서 종종 부정적인 평가를 듣게 된다. 실제로 그의 시의 탄력이 <그리운 여우>와 <바닷가 우체국>에 와서 무디어진 것도 사실이다. 뜨거움과 치열함에서 따뜻함과 소박함으로의 변화는 안도현의 초기 시에 매료된 이들에게는 아쉬운 이탈로 비쳐졌다.
겨울 강가에서(안도현)외-문제2.hwp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