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만화영화의 역사는 30여년 정도 됍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짧은 기간은 아니지만 나이값 못하고 있는 실정이죠.
일본의 데즈카 오사무를 아시나요? 만화의 신이라고 불리우는, 지금도 존경받는 대단한 사람이죠. 우리나라에도 그 못지않은 사람이 있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만화영화인 '홍길동'을 감독한 신동헌 감독입니다. 몇년전에 개봉한 '돌아온 영웅, 홍길동'의 원작이라고 해야하나... 67년도에 개봉했답니다. 그 당시 이 만화영화의 인기는 엄청났다고 합니다. 개봉 4일만에 10만에 달하는 관객이 몰렸다고 하니 말입니다. 지금도 열악한 만화영화 제작환경에도 엄청난 대작이었다고 합니다. 그림판 가로길이 3,459,000 cm (남산 높이 150배), 그림판 장수 125,300장 (손으로 그림), 하루 400명씩 1년간 그림, 제작비는 5,400만원 (국내 영화 10개 작품 제작비에 해당) 이런 엄청난 만화를 도구도 변변히 없는 상황에서(필름이 없어 미군 항공촬영한 것을 양잿물로 씻어서 사용) 겨우 30여명이 완성했다는군요.
사용한 그림판 매수도 '아키라'가 135,000장 이었다고 하는데 그 당시에 비하면 엄청난 거죠. 그리고 디즈니등 에서만 사용하는 선녹음 후작업 방식을 사용했다는 군요. (음을 들으며 그 입모양에 맞춰 그림을 그리는 방식) 일본은 선작업 후녹음 이죠. 그래서 입모양과 성우 목소리와는 차이가 있죠. 데즈카 오사무 못지 않은 공적을 쌓은 신동헌 감독이 인정받지 못하는 건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이죠. 그리고 그후 많은 영화가 제작돼었습니다. '호피와 차돌바위('67), '황금철인('68)','홍길동 장군', '보물섬('69)','호동왕자와 낙랑공주'(71')가 만들어졌지만 이후 한동안 만화영화제작은 중단돼었죠. 그 이윤 값싼 수입 tv만화가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76년 그 유명한 <로보트 태권V>가 나옵니다. 김청기 감독은 1탄의 성공으로 2탄을 만들죠. 2탄에서 국내 만화영화 사상 최초의 ost가 발매됐죠. 그후 80년대 초반까지 김청기 감독의 독재체제가 이뤄지죠. 대충 80년대까지 주요 작품만 열거 해보겠습니다.
1980년대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하청기지로 성장한 한국은 OEM 방식의 하청제작에만 의지한 나머지 창의력의 부재와 하청을 하면서 접하는 다른 국가의 애니메이션을 표절하는 기획력의 한계를 드러내게 된다. 더욱이 TV용 애니메니션은 온통 외국 애니메이션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개최를 준비하면서 정부는 외국인들이 볼 수 있도록 한국산 TV용 애니메이션 제작을 서두르게 된다. 드디어 자체 제작 TV 애니메이션 시대가 열리게 된다.
19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애니메이션과 캐릭터 산업의 시장성과 잠재성을 깨달은 정부가 나서서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대한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서울국제만화페스티발(SICAF)나 춘천만화페스티발 등 다양한 만화 애니메이션 관련 행사들이 줄을 이었고 1999년에는 서울 남산에 애니메이션 제작 지원을 위한 서울애니메이션센터가 문을 열었고 국내 기획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려는 움직임도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 간혹 진지하고 단계적인 접근없이 시류에 내기나 편승하여 내용없는 생색내기나 다소 과열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애니메이션과 만화에 대한 전반적인 사회적 시각의 변화가 생기고 있는 만큼 꾸준한 발전을 기대해 본다.
우리가 잊지 못할 과거의 애니메이션에는 일본애니메이션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작품들이 <철완아톰>, <미래소년코난>, <은하철도 999>, <마장가Z>, <밀림의 왕자 레오>, <천년여왕>, <독수리 5형제>등등 나열하기 너무나 많다. 이들 작품에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선구자 데츠카 오사무와 꽃을 피운 미야자키 하야호가 있었다. 그리고 한국사람들도 상당히 그들을 알고 동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