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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서양 고전음악 애호가로 자처하는 나는 10여년전 트럼펫을 다시 시작하기까지는 오로지 감상이 전부였다. 그러던게 오케스트라를 하면서부터 음악생활이 판이하게 달라졌다. 확실히 연주 활동과 감상은 차원이 다르다. 가령 감상만하면 그쪽으로 관심이 가고 발달된다. 즉 음반과 관련한 소식, 연주단체, 연주자들의 연주활동부터 자질구레한 에피소드까지 온갖 정보를 따르르 꿰고 관심을 갖는다. 때로 음악 자체보다 주변사가 더 재밌을 경우가 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9D48465B166F392B)
감상자는 음반이 빚어내는 음악의 즐거움을 단지 감상을 통해 향유하는 쪽으로 오감이 발달한다. 급기야 주객이 전도되어 실제 연주장보다 오디오 감상이 더 재밌고 실감이 나기도 한다. 연주회장이 더 낯선거다.
이걸 '시뮬라시옹'이라고 하는데, 가짜가 진짜로 뒤바뀌는 현상이다. 가령 어린아이들이 TV로 아프리카 초원을 보는데 익숙하면 실제 현장에서 뛰노는 초원의 동물보다 TV화면이 더 실감이 나고 브라운관 자체를 동물들이 뛰노는 현장으로 착각하는 식이다.
그런데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면서부터 오직 연습, 연습뿐이어서 죽어라 연습에 매진하거나 기껏 내가 연주해야 할 연주곡만이 주요 관심사다. 상식적으로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면 더 많은 음악을 듣고, 연주자들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야할것 같은데 현실은 그게 아니다.
내 경우 연주회를 앞두고 새로운 곡이 나오면 일 년이 다가도록 오직 내가 연주할 곡만 주로 감상하지 다른 곡은 돌아볼 여유가 없다. 어쩌다 시간이 나더라도 기껏 연주할 곡만을 감상하는 정도여서 감상자로 지낼 때보다 다양한 곡을 감상하지 못한다. 다만 연주자로 활동하면 연주하는 몇몇 연주곡에 대해 심도있는 이해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또 있다.
연주 자체를 통해 느끼는 희열감, 앙상블의 조화가 빚어내는 기쁨은 감상자들이 결코 알 수 없다. 연주회를 앞두고 매 주 단원들이 모여 연습하는 즐거움은 오케스트라를 해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절대 알 수 없다. 새로운 곡이 나오고 악보를 받아들면 뭐가뭔지 몰라 해매다가 시간이 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발전해가는 즐거움을 과연 누가 아랴!
이윽고 연주회 날. 활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지듯 온몸은 긴장감으로 두근거린다. 서서히 무대에 오른다. 순간 찬란히 빛나는 스포트라이트, 객석은 뿌옇게 보이고 차마 정면으로 마주 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보면대를 조절한다. 지휘자가 지휘봉을 들고 연주가 시작된다. 한 해동안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각고의 노력과 애환이 깃든 선율이 마침내 무대와 객석으로 울려퍼진다. 다람쥐 챗바퀴 돌듯 돌아가는 지루한 일상, 분주한 생활 가운데서 과연 연주자가 아니라면 이만한 기쁨, 이토록 큰 감동을 어떻게 누릴 수 있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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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딸애, 며느리, 손주들을 데리고 제주도 여행을 간바람에 요며칠 나 홀로 독서실을 지키고 있다. 드넓은 집에 혼자뿐이라 얼씨구~ 꽉 막힌 숨통이 이제사 터진다. 아내와 단 둘이 살아도 혼자 있는게 더 좋을 때가 있다. 뭐 아내도 마찬가질텐데, 혼자 태어나서 혼자 죽어가니 그럴까? 영화나 음악은 혼자 보고 듣는게 더 편하다. 자유롭게 생각에 잠길 수 있기때문인데 그래서 더욱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이 또한 아내도 마찬가질터.![](https://t1.daumcdn.net/cfile/cafe/999D95445B1660E427)
커피 한 잔 들고 오디오 앞에 앉는다. 아, 이 여유로움~ 호젓함~ 대체 이게 얼마만인가. 모처럼 음악감상에 집중한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펄프픽션>에 나오는 존 트라볼타의 트위스트 댄스장면, 정명훈과 도쿄필이 연주한 로시니의 <윌리엄텔 서곡>, 알토섹소폰의 힘찬 연주가 유쾌한 코리안팝스 오케스트라의 <내게도 사랑이>등등. 이쯤 워밍이 되었으니 슬슬 클래식을 감상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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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다른 연주단체의 연주를 듣는것도 훌륭한 연습 방법이다. 그동안 연습 패턴은 거의 유명 오케스트라의 연주실황을 보면서 따라 하다보니 트럼펫이 쉬는 마디면 모를까 오케스트라 연주 전체를 들을 기회가 쉽지않았다. 어제 오늘 큰 맘먹고 유튜브 동영상만을 집중 감상하였다.
먼저 드보르작 <교향곡 제 9번 ‘신세계’>는 카라얀 지휘의 베를린 필과 아마추어인 아리울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연이어 감상했다. 특히 아리울의 연주는 우리 칸투스와 비교하면서 여러 번 반복 감상하기도했다.
아마추어오케스트라의 특징은 처음엔 천천히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지휘자가 통제 안 될 정도로 점점 빨라진다. 아니나다를까 아리울 역시 ‘신세계 교향곡’ 1악장 피날레에서 조금씩 조짐을 보이더니 결국 3악장에서 마치 브레이크가 파열된듯 달아난다. '동물의 왕국' 한 장면. 드넓은 초원에 얼룩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하늘에 걸려있는 조각구름 몇 개, 고요~ 한가로움~ 순간 저쪽 어데선가 갑자기 얼룩말 한 마리가 내달린다. 그러자 수많은 무리들이 영문을 모른채 함께 달려간다. 동물들의 포효, 뭉게구름, 대지는 먼지로 뿌옇게 뒤덮이고, 마침내 수 백, 수 천의 말발굽소리가 천둥치듯 진동한다.
너무 빠르다보니 박자, 리듬이 부정확한데다 제 음가를 충분히 내지 않고 뚝 뚝 끊어진다. 금관악기에서 필수로 요구되는 여음처리가 잘 안 된다. 급기야 시골장터마냥 혼란스럽게 뒤죽박죽이다. 남일 같지 않다. 자칫 나도 저럴텐데, 어떻게 해야하나를 연신 속으로 생각하면서 감상한다.
지휘자님이 평소 말씀하셨듯이 연습 때 정확하게 천천히 반복연습하면 실제 연주때 당황하지 않고 일정한 속도로 연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리울의 연주를 보면서 확실히 느낀점은 연습 때 정확하게, 그리고 천천히 연습하면 아주 효과적일 것 같다. 그런점에서 드보르작 연습때 내가 주로 듣는 첼리비다케 지휘의 뮌헨필 연주 동영상을 한번 참고하라고 권하고 싶다. 이 연주는 어제 저녁 했던 칸투스 연주 템포보다 더 늦고, 특히 3악장은 현저히 느리다.
나는 다른 연주에 비해 너무 늦은 첼리비다케의 지휘를 첨엔 좀 답답하고 재미 없어했다. 1991년도 이 연주를 레코딩할 당시 지휘자가 워낙 고령인데다 덩치까지 커 저렇게 천천히 지휘하나 오해하기도 했다. 그런데 자주 보다보니 요즘은 이 양반의 지휘 모습이 친근하고 익숙하다. 무엇보다 느린템포로 따라 연습하노라니 박자, 음정 정확하고 차분해서 연주하기도 편하다. 일단 빠르면 조급하고 서두른다. 호흡도 가빠져 힘을 주고, 높은 음을 내거나 포르테일 경우 통제가 안 될정도로 빨라진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62B5445B165FB811)
그래서 내 생각엔 아마추어는 차라리 천천히 연주하는게 좋지 않을까싶다. 앞에서 잠깐 말했는데, 아리울의 경우 연주가 점점 빨라지니 1악장 피날레와 3악장에서 트럼펫 역시 갑자기 길을 잃고 빨라진다. 그래서 또 생각한다. 아, 이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하지?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0번>은 다니엘 바렌보임이 연주와 지휘를 겸한 베를린필하모닉, 일본 태생의 세계적인 여류 피아니스트 우치다 미츠코가 지휘를 겸한 또 다른 연주영상을 연이어 감상했다.
연주자가 직접 지휘와 연주를 함께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다.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이야 본업이 지휘이니 그럴수 있다쳐도 피아노치랴 지휘하랴 부산스런 프레드릭 굴다의 지휘 모습은 재밌다못해 귀엽기(^^)조차하다.
뒤늦게 지휘로 방향을 바꾼 첼리스트 장한나는 나중에 본격 지휘 수업까지 받은 것으로 알고있다.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도 간혹 지휘를 하기도하는데, 과거 장영주와 함께 공연한 음반이 있다.
그런데 앞에서 우치다의 동영상이 특별히 흥미를 끄는 것은 그녀의 연주, 지휘 모습이 너무 역동적이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면 지휘하는 지휘자의 모습에서 캐릭터가 잘 드러나는것 같다. 가령 레오날드 번스타인, 주빈 메타, 구스타프 두다멜의 지휘가 역동적이라면 카라얀, 칼뵘은 대표적으로 정적인 예라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그들의 캐릭터도 지휘하는 모습처럼 역동적이거나 정적일지 궁금하다.
다니엘 바렌보임은 과거 프랑스 국립 바스티유오페라단 음악감독겸 지휘자 자리를 두고 정명훈과 갈등을 빚은 적이 있다. - 정명훈의 후임으로 바렌보임이 그 자리를 맡았다- 그런데 이 두 지휘자가 상당히 유사한 점이 많은 것 같다. 두 사람 모두 차이코프스키 쿵쿨 수상 이력이 있는 일류 피아니스트 출신인데다 더욱 흥미있는 것은 두 사람의 지휘하는 모습까지 너무 흡사하다는 점이다. 역동적이라고까진 할 수 없어도 그들의 지휘 모습은 다이내믹하고 격정적이다. 절도감이랄까, 딱 딱 끊어지듯 힘차게, 때로는 부드럽게, 얼굴 표정까지도 결연하게 보일때가 있다.
내킨김에 모차르트 연주자로 유명한 클라라 하스킬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제 20번>까지 함께. 이고르 마르케비치가 지휘하고 라뫼르오케스트라 협연한 이 음반은 1960년에 레코딩한것으로 65세에 사망한 클라라 하스킬의 마지막 음반이기도 하다. 이 연주는 1악장 365마디 피아노 독주가 끝난 후 이어지는 카덴차가 다른 연주자들과 전혀 다르다. 이뿐이 아니다.
3악장 경우 345마디가 끝난후 꽤 긴 카덴차가 이어지는게 일반적인데 특이하게도 하스킬의 연주는 카덴차를 아예 생략한다. 한 가지 아쉬운점은 워낙 오래전 레코딩이라 녹음 상태가 썩 좋지 않다. 하지만 모차르트 전문인 하스킬의 연주이고, 특히 그녀의 마지막 음반이라 오래 추억으로 남을 것 같고 유익한 공부도 될 것 같다.
첫댓글 조율연 선생님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재밌게 읽으셨다니 감사합니다. 글이 짜임새가 없고 중언부언 마구 써버렸네요. 이것저것 아는체를 하고있습니다만 애교로 보시고 이해해주세요.^^ 다른 견해나 틀린 부분이 있음 조언도 좀 해주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