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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암살 배후 신성모, 채병덕, 장은산, 이기붕 일가 이승만 정권 '암살 청부업자'에 살해됐다 | ||||
중앙정보부 창립 멤버 조웅 목사의 현대사 X파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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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발굴?중앙정보부 창립 멤버 조웅 목사의 현대사 X파일 중앙정보부 창립 멤버 조웅 목사의 현대사 X파일 백범 살해 사건에 개입된 이승만 정권 권력 실세들이 ‘비밀 유지’를 위해 김창룡, 이기붕의 지시를 받는 암살 공작단 3인방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가공할 주장이 나왔다. 채병덕, 장은산, 신성모, 이기붕 일가가 이들에 의해 살해됐다는 것. 이런 주장의 당사자는 3인방과 밀접하게 지냈던 중앙정보부 창립 멤버이자 이른바 ‘5·16 주체세력’ 중 한 명이었던 조웅 목사. 조 목사의 깜짝 놀랄만한 증언을 연속물로 소개한다. 이번호는 제1탄, 이승만 정권기 암살공작의 실체에 접근해 본다. 〈편집자주〉
그러나 ‘황태성 사건’을 계기로 박정희·김종필 등과 갈등을 빚게 되면서 5·16 세력으로부터 완전 이탈하게 된다. 그 후 1980년 이래로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다. 조 목사가 1997년에 쓴 《거물간첩 황태성과 박정희·김종필의 커넥션》이라는 책을 보면 깜짝 놀랄만한 현대사의 비사들이 언급돼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박정희와 김종필에 관한 내용부터 이승만 정권기 발생한 여러 사건들에 대한 흥미진진한 주장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기자는 전부터 이 책에서 조 목사가 주장하고 있는 내용들에 대한 진위 여부와 근거들이 궁금했다. 마침 지난 10월 말부터 몇 차례 조웅 목사를 집중 인터뷰할 수 있었다. 위의 책 내용에 담겨 있으나 혼란스럽게 쓰인 주장들을 저자의 증언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김창룡, 이기붕 비밀공작단 3인방의 정체 1950∼1970년대에 이르는 각종 암살사건과 부정부패사건, 정치사건 등의 뒷 이야기와 파격적인 그의 주장은 기자가 감당하기에 버거울 정도였다. 사안 별로 근거 제시가 부족하여 무리가 따르는 경우도 있지만 현대사에서 논란이 되는 예민한 문제라는 점에서 조 목사의 주장을 그대로 소개한다. 대체로 이승만 정권기에 대한 그의 주장은 이승만의 최측근이자 특무대장으로 알려진 김창룡과 경무대(청와대 전신) 비서 이기붕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던 부하들의 증언에 기초하고 있다. 조 목사는 이들의 실명을 이미 자신의 저서에서 밝힌 바 있다. 기자는 이들의 존재에 대해 직접 물어 봤다. “김창룡의 참모 3인방입니다. 엄○○, 조○○, 최○이죠. 엄 씨는 김창룡의 부관을 지낸 자인데 이승만 정권기 모든 비밀을 다 알고 있어요. 비록 대위였지만 김창룡의 모든 심부름을 다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는 겁니다. 현재 살아있어요. 72세쯤 되었습니다. 사병 출신으로 군생활을 시작해서 간부후보생으로 진급한 경우입니다. 현재 현대사의 큼지막한 비밀을 움켜쥐고 있는 마지막 생존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른 두 사람들은 죽었습니까? “조 씨는 미국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육사 9기 출신인데 김창룡 시절 CIC(특무대) 행정일을 담당했어요. 최 씨는 3인방 가운데서도 가장 핵심인데 말년에 중풍으로 고생하다가 한 3년 전에 죽었습니다. 최 씨는 CIC 문관 출신입니다. 문관에도 여러 등급이 있죠. 하사관급, 위관급, 영관급, 장군급이 있는데 그는 장군급이었습니다. 김창룡도 자기보다 한두살 많은 최 씨에게 깎듯이 ‘최 선생’이라고 불렀습니다. CIC 조직의 부대장, 부부대장을 직접 임명할 정도로 힘있는 자였습니다.” 이승만 정권기 대통령 다음 가는 권력을 행사했던 김창룡 밑에서 갖은 정치공작을 실행했던 인물들이 이 세 사람이라는 것이다. 조 목사는 김창룡이 1956년 저격 당한 이후 이들이 이기붕의 지시에 의해 움직였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조 목사는 이들 가운데 현재 생존해 있는 엄○○과 이미 사망한 최○을 통해 이승만 정권기 비사를 들었다고 한다. 조 목사가 밝히는 이승만 정권기 X파일 중 하나는 ‘암살 커넥션’. 그는 김창룡의 참모 3인방이 신성모, 채병덕, 장은산, 이기붕 일가를 살해했다는 깜짝 놀랄만한 주장을 털어놓았다. “채병덕, 장은산, 신성모, 이기붕과 그의 처 박마리아는 모두 백범 암살 사건에 깊숙이 개입한 인물들입니다. 이승만은 이들을 없애 뒤탈을 막아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들을 암살한 자들이 바로 김창룡 참모 3인방입니다.” 백범 살해 관련자 차례로 암살 채병덕은 일본 육사 출신으로 이승만 정부 때 34세 약관의 나이로 참모총장의 지위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는 백범 암살사건의 배후인물로 항상 거론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채병덕을 제거했다는 얘기인가. “전쟁 초기 패전의 책임을 물어 채병덕을 해임한 후 하동지구 전투에 내보내서 죽였단 말입니다. 육군참모총장까지 지냈던 사람에게 부산병원의 패잔병들 500명을 붙여 가지고 전투사령관이라는 직함을 준 채 전선으로 보냈습니다. 캄캄한 밤중에 CIC 애들이 가서 죽여놓고는 전사했다고 위장한 것입니다.” 장은산 포병사령관은 백범 살해범 안두희의 직속 상관으로서 백범 암살을 직접 지시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인물. 장은산은 어떻게 제거됐다는 것인가.
자신이 죽였다고 했어요. 신성모는 4·19가 나자 화병이 나서 이화여대 동대문병원에 입원해 있었어요. 그 때 김활란이 와서 간호하기도 했죠. 김활란이 없을 때 김창룡 부하들이 찾아가서 ‘이제 우린 다 죽게 됐다. 같이 독약 마시고 죽자’고 하면서 독약병을 꺼내놓고 신성모와 함께 차례로 마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신성모가 마신 것만 진짜 독약이었다는 것이죠. 그렇게 신성모를 제거했다는 것입니다.” 이기붕과 그의 처 박마리아 그리고 두 아들을 포함한 일가는 이승만 정권 몰락과 함께 아들 이강석에 의해 동반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의 죽음에 대해 그동안 숱한 논란이 있어왔던 것 또한 사실이다. 이강석에 의한 동반자살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타살됐다는 설이 제기돼 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는 4·19의 도화선이 되었던 3·15 부정선거에 대한 책임을 이기붕에게 덮어씌우기 위해서 경무대 경호책임자였던 곽영주에 의해 살해됐다는 설만이 개진돼 왔다. 조 목사에 따르면 이기붕-박마리아의 죽음도 백범 살해사건 관련자들을 제거하려는 목적과 관련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게다가 실행한 자들이 3인방이라는 점에서도 기존의 설과 차이가 난다. 즉 이기붕-박마리아마저 살해함으로써 사건의 진실을 영원히 은폐하려는 시도였다는 것이다. 조 목사의 이런 충격적인 주장은 결국 김창룡 참모 3인방의 증언에 기초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실여부를 차치하고서라도 이 세 사람과 조 목사는 어떤 관계이기에 3인방으로서는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할 비밀’을 그에게 얘기했던 것일까. 암살자 증언대 세우려면 특별법 제정해야 “국군의 암적 존재 ‘김창룡 CIC의 3총사’하면 정보기관에 발을 디딘 사람치고는 그 악명을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겁니다. 내가 그 중에서도 우두머리 격인 최○을 처음 만난 것은 1958년 이승만 자유당 정권 말기였어요. 그 때 흥사단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조 목사는 당시 정치대(건국대 전신) 정치외교학과에 재학 중이었으며 흥사단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최 씨는 자신의 친구 최계명과 함께 김재순의 소개로 흥사단에 입단했다. 당시 김재순은 《새벽》지 주간으로 있었으며 훗날 노태우 정권 때 국회의장을 지낸 인물이다. 김영삼 정권 초기 ‘토사구팽’이라는 말을 유행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를 통해 흥사단에 입단한 최 씨는 자연스럽게 조 목사를 만난 것으로 보인다. 조 목사의 얘기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그가 흥사단에 입단한 것은 딴 목적이 있었습니다. ‘방첩대 중진으로 있다가 자유당 정권의 횡포가 심해지자 양심적인 단체에 몸을 담아보려고 했다’는 애초의 얘기는 거짓말이었습니다. 자기의 상관이었던 김창룡을 저격한 허태영 대령이 바로 흥사단 단우였기 때문에 도대체 흥사단이란 단체가 무슨 단체인지 염탐하려 했던 것이죠. 또 반이승만 계열 학생들에 대한 정보를 빼내서 독재정권에 아부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최 씨와 알게 되면서 조 목사는 자연스럽게 방첩대 관계자들과 만나게 됐다고 한다. “5·16쿠데타 당시 CIC 백운상 부부대장도 만났는데 조○○은 그 때 백운상의 정보처장으로 있었고 엄○○은 보좌관으로 있었단 말입니다. 엄○○은 김창룡이 죽은 후 소속은 CIC였지만 출근은 당시 ‘서대문 경무대’로 불리던 이기붕의 사저로 했어요. 이기붕의 정보담당 비서관이었죠. 사복으로 근무했습니다. 이기붕의 오른팔 역할을 했죠. 그런 자들과 그 때부터 알기 시작해서 저도 그들과 함께 자주 CIC를 들락거렸습니다. 그러면서 그들과 인간적으로 친해졌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이승만 정권기 비사를 많이 듣게 된 것입니다.” 3인방과는 5·16 후에도 계속 만났습니까. “그렇죠. 그 때뿐이 아니라 최○이는 죽기 전까지 계속 만났고 엄○○이는 최근엔 만나지 못했지만 쭉 만나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친해지면 자기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겠지만 그런 어마어마한 일들을 쉽게 얘기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만. “그렇죠. 그런데 그 사람들 입을 열어야 현대사의 진실이 밝혀진다는 생각에서 의식적으로 집요하게 물어봤죠. 그리고 그냥 물어봐서는 안됩니다. 술자리에서 슬슬 얘기를 꺼냈죠. 이 자들이 또 술이 아주 셉니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옛 이야기하면서 추켜세우면 그 때 얘기를 하곤 했습니다. 자기 자랑 삼아서 말이죠.” 그런 상황이다보니 안타깝게도 조 목사는 3인방의 증언내용을 꼼꼼히 기록하지 못했고 녹음은 더더구나 하지 못했다. 그저 열심히 기억 창고에 저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점에서 조 목사는 3인방 중 생존해 있는 엄 씨의 입을 열게 하기 위해서는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가령 ‘현대사 암살사건 재수사를 위한 특별법’ 같은 것이다. 본인이 보고 관여한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경험과 증언을 대신 증언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이 깊이 배인 호소다. 조웅 목사에 의해 열리기 시작한 현대사의 판도라 상자. 다음 호에는 그가 직접 체험한 박정희 정권기 비사를 소개한다.
http://cafe.daum.net/revote/HjHv/12?q=%B1%E8%C3%A2%B7%E6%20CIC%20%C3%D6%20%BE%F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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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글은 아래 먼저 올린글과 같은 분이 쓴 글로서 중복되는 내용들입니다만 약간 보완적이므로 따로 올립니다.
이승만의 살인 만행을 그 스스로가 고백하지도 않았고 국민들에게 알리지도 않았기 때문에 고백하지 않은 죄, 자백하지 않은 죄를 그는 품고 갔다고 믿어집니다. 저는 이런 사람과 천국에서 만나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이러한 이승만에 대하여 최근에 총리 후보로 지명된 문창극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2006년 10월 3일 개천절을 기념해 쓴 '단군조선에서 대한민국으로' 칼럼에서 "이승만이 비록 독재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대한민국을 존재케 한 인물이다. 우리는 그의 통찰력과 판단력 덕분에 적화를 면하고 나라의 기틀을 세웠다"고 평가했다 >>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929251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질런 이승만이 천국에 있을 리가 없고, 이런 이승만을 미화시키는 기독교인들은
머리에 뭐가 들어 있을까요?
이승만의 죄악은 김일성과 흡사하다고 생각됩니다. 김일성이 살육한 박헌영 이강국 외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까? 그러나 이승만 또한 그만한 권력이 주어지지 않아서 못했을 뿐이지, 할수 있는한 최대한 살육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고 믿어집니다. 위에 아시다시피 김구, 조봉암, 조병옥, 신익희, 채병덕, 장은산, 김창룡, 이기붕, 이들을 죽인다음 각종 사기로 덮어두기 덮어씌우기를 한자가 바로 이승만입니다.
그외에도 여운형 등 많은 인사들의 죽음에 대해서도 더 확인이 필요합니다.
북한에서 첫 내각회의를 가졌을 때 이강국의 인격과 학식과 경륜이 김일성을 압도했습니다. 김일성은 그를 살려두어서는 안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인상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뒤로 그는 살해되었습니다. 남한에서 김창룡에 의한 수많은 살육,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는 북한지역에서 일본군 헌병으로서 독립군들을 잡아 고문하고 살육하다가 철원에서 일본군 헌병으로 있다가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탈출하여 다시 소련군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다시 탈출하여 남한에 들어와서 군부대 입대하고 좌익 색출하는 방첩대장이 되고 진급하여 이승만의 정적들을 살해하는 일로 이승만의 총애를 받은 인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