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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정신 2006 겨울호 당선작
축제 / 황동섭
밀폐된 공간에 갇힌 나는
흘러내리면서 생명을 얻는다
팔자 드센 백성들의 둘도 없는 친구이며
희극이자 비극을 주관하는 연출자이다
바람결에 들려오는 여의도의 풍문과
미쳐서 돌아가는 광화문의 무질서에
봄비로 스며드는 악마의 입술이다
애국가 부르며 통곡하는 봉화의 눈짓에
만세로 환호하는 폭력과 광기의 절정
내노라 하는 원로대신들을 수없이 씹어 삼키어도
살생부엔 아무도 실리지 않았다
분함을 못 가누어 불에 키스하는
반대와 찬성의 밀회를 훔쳐보는
미친년의 입 째지는 희열의 꽃
매화는 산수유를 산수유는 유채꽃을
유채꽃은 다시 화개장터 벚꽃을 탄핵한다
만장이 휘날리는 축제의 거리
군사들아 두렵지 않느냐
불어오는 황사바람은 어쩔 거냐
남해를 넘실넘실 건너오는
갯바람은 어쩔 거냐
여우털 목도리 / 황동섭
내 젊은 날 한 때
여우털목도리를 떼다
여기저기 행상을 다녔었네
샛방에 갓 살림 차린 막내아들 보자고
시골서 올라오신 어머니
팔다 남은 그 목도리 쓰다듬으며
이쁘구나, 이쁘구나를 여러 번 하시는데
못들은 척, 그 중의 하나를 드리지 못 했네
좀이 쑤셔 이틀을 못 배기시는 당신
올라온 길 되짚어 내려가시며
이불 속에 돈 좀 넣어뒀다. 자알 살그라.
한 말씀 남기시곤
그 길로 영영 떠나셨네
장사속이 어두운 나,
남은 목도리를
외상으로 남에게 몽땅 넘겼는데
며칠 뒤 가보니 그 사람
야반도주하고 말았네
꼬마물떼새 / 황동섭
비를 맞으며 알을 품은
꼬마물떼새가 있습니다
그는 지금 태교 중
빗소리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아가야, 세상을 살아가자면
비를 숱하게 맞아야 하며
날개 오므려 추위를 견디는 법도
배워야 한단다
네가 세상 밖으로 나오려면
맨 먼저 알을 깨는 일이다
그리고 네 스스로 걸어나와
날개도 키워야 하며
창공을 날기 전에 수없이
떨어지는 연습을 해야만 하지
너를 노려보는 눈을 향하여
목을 길게 빼어 늘 경계를 해야 하며
친척들의 해코지도 알아야 하느니
때론 목숨 걸고 맞서 싸우되
위대한 새의 헌법을 먼저 공부하거라
어차피 너는 날짐승, 비상飛翔은 숙명
밤에 한쪽 눈을 떠 북극성을 살짝 보아라
그는 신통술이 있어 방향을 용하게 일러주며
때가 되면天道를 흘려준다
명심 명심 명심!
아침의 첫 열매는
감사의 고수래를 꼭 하거라
금계랍의 쓴맛을 더욱
잊지 말거라
큰 엄니 / 황동섭
유 세 차
팔월 스무날.
감 소 고 우.
구구꺽꺽
구구꺽꺽
일생을 정선 전씨
그렇게 우셨다.
큰엄니 아기 못 낳으시고
난 당신 아들 되었다.
친구들이 놀려서 당신
한쪽 눈 없는 걸 처음 알았다.
피사리하던 중 외눈박이 되시어
어린 가슴에 한을 심었다
"우리 엄닌 따로 있단 말이야"
당신 그 자리에
주저앉으셨다. 풀썩!
어른들이 모였고 난 구석에서
떨며 울었다.
당신 새가 되어 아버님 곁으로
평생 빼앗긴 자리 찾아
날아 가셨다.
근 이 청 작 서 수
.........
상 향!
[심사평]
시의 사회성과 자연성 사이에서
.............중략
예심에서 걸러 올라온 황동섭의 열 편의 시에서 만만찮은 그의 인생 경륜과 짧지 않은 시의 수련을 읽었다. 그의 시는 대체로 시사적이고 사회적인 소재를 풍자와 아이러니로 드러낸 작품들이다. 보라, [축제]에서 화자인 '나는'눈물로 은유된다. '밀폐된 공간에 갇혔다가 흘러내리면서' 비로소 '생명을 얻는' 눈물, 이 눈물은 '팔자 드센 백성들의 둘도 없는 친구이며 /희극이자 비극을 주관하는 연출자이다.'이 눈물은 바람결에 들려오는 여의도의 풍문과/ 미쳐서 돌아가는 광화문의 무질서에'서 흘러내려 '매화는 산수유을 산수유는 유채꽃을/ 유채꽃은 다시 화개장터 벚꽃을 탄핵'하는 장면에서 '만장이 휘날리는 거리의 축제'에 이르러 평자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삼키게 된다.[어느 참나무]에서 화자는 '싱싱하지 않다는 죄명'으로 '전기톱으로 사정없이' '네 도막난 몸뚱이가 난생 처음/ 나란히 누워 서로가 서로를 껴안는' 참나무의 시신을 보면서 '애비의 무능력을 되뇌이며 내 팔에 매달리어(내 발로) 안식의 집으로 간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로 일생을 마감한 '어느 가장'의 시신(물에서 이틀만에 건져 올린)을 동일시선으로 바라본다. '온 세상 다 덮을 듯 잎새 반짝이며/새들과 개미와 무당벌레를 불러들였던' '옛 영화'는 '안부를 묻기조차 거북하다' 평범하게 생을 마감'(귀의歸依)하지' 못한 때문이다.'마지막의 순간을 사실대로 정직하게 남겨야 한다'는 화자의 명제 앞에 우리는 숙연한 눈물을 감추게 된다.
....................후략.
-심사위원 정대구
'제2회 지리산문학상' 당선작
유하백마도(柳下白馬圖)*를 보다 / 유종인
버드나무는 우듬지가 보이지 않는다.
치렁치렁한 줄기 가지로 옅은 바람을 탄다
흰 말이 곁에 있었지만
수양인지 능수인지 모를 버들은 말을 건드리지 않는다
말은 예민한 짐승, 잘못 건드리면
주인도 태우지 않고 먼 들판으로 달아난다
거기서 말의 고삐와 안장은
들꽃들의 우스갯거리에 불과하다
이 흰말에 죽은 말벗을 태우려 했나니 이 흰
말의 잔등에 앉아 영원을 달리려 했더니
버드나무는 고삐도 없이 수백 년 한자리에 묶이고
잠시 매인 흰 말은 무료한 투레질로
오월 허공에 뜬 버들잎에 허연 침버캐를 묻힌다
가만히 버들가지가 말의 허리를 쓸어준다
흰 말은 치뜬 눈동자가 고요해지며 제 눈의 호수에
버들잎 몇 개를 띄어준다 눈이 없는
버드나무는 말의 항문을 잎 끝으로 간질이자, 말은
색(色)이 안 든 허공에 뒷발질을 먹인다 허공은 죄가 없으므로
멍이 들지 않는다 뼈가 부러지지도 않는다
주인이 오지 않는 흰 말과 버드나무
사이에 능수(能手)와 능란(能爛)의 연리지(連理枝) 고삐 끈이 늘어진다
버드나무는 오히려 짐승처럼 징그럽고
흰 말은 꽃 핀 오두막처럼 고요하다
친연(親緣)의 한나절이 주인을 빼먹은 일로 갸륵하다
*유하백마도(柳下白馬圖):공재 윤두서의 그림.보물.
<당선 소감>/ 유종인
부끄럽고 일천한 얘기지만, 나는 이전까지 한 번도 지리산을 와 보지 못했다. 지리산은 문학과 관념 속의 지리산이었고 같은 한반도 안에서 언젠가는 가봐야 할 막연한 명산 중의 하나였다.
그러던 어느날 그 지리산이 내게 하나의 의미있는 존재로 서서히 그 명암을 드리우기 시작하는 느낌을 가졌다. 그것은 어떤 글이나 그림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하나의 기운에 가까웠다. 그것은 단순한 예감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돌올해졌다. 무엇이든지 하나의 산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 만한 높이와 넓이와 그늘의 바다를 거느려야 한다는 게 내 판단이라면 판단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리산은 내게 하나의 전환기적인 분수령으로 다가드는 드넓은 품일지도 모른다.
아득한 세월 저편에 나를 유목하듯이 내버려두고 이제와 이 높은 뫼의 자락에서 다시금 나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예감은 나의 바람이자 실제가 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 비록 온몸으로 다가와 이 산을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나는 이 땅이 내게 전해준 서기(瑞氣)를 예전부터 감지하고 있었고 그 막연한 도움 속에서 내가 살아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근친의 관계로 이 땅에 살아있음을 확인해준 산이 있다면 그 맨 앞자리에 지리산을 두지 않을 수 없으리라. 어쩌면 이 순간의 만남 속에 지리산에서 무엇이든 회복할 수 있고 소멸된 그 어떤 것도 복원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그런 면에서 지리산은 내게 가장 늦된 만남이자 가장 원초적인 선험의, 아니 영험의 큰 뫼로 이미 우뚝했음을 선선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내게 지리산의 기운이 잠재돼 있음을 일깨워주시고 그 문장의 연분이 이제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계기가 있음을 보여주신 함양의 모든 분들과 지리산에게 그리고 시문이 또한 지리산 같아야 함을 부족한 글에 독려해 주신 정일근 선생님과 송수권 선생님께 감사를 드린다.
유종인 시인
1968년 인천에서 태어나 시립인천전문대학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했다. 1996년 「문예중앙」에 시 '화문석' 외 9편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왔다. 2002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 부문과 200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당선되었다. 시집으로 <아껴 먹는 슬픔> <교우록> < 수수밭 전별기>등이 있다.
< 지리산 문학상 심사평 >
올 여름은 뜨거웠다. 그 뜨거움에 못지않게 등단 문인을 대상으로 공모하는 지리산 문학상에도 75분 1,125편의 시가 투고됐다.
지리산문학회에서 예심을 맡아 11분의 작품을 모두 이름을 가린 채 본심으로 보냈다. 심사의 공정성을 위해 주최 측이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을 심사평을 통해 먼저 밝힌다.
본심에서는 그 중에서 ‘악어왕국’ ‘딱지’ ‘유하백마도를 보다’를 표제작으로 보낸 3분의 작품을 두고 오래 읽고 오래 토론했다.
‘악어왕국’(응모작 전체를 말함. 이하 같음)은 동물들에 대한 독특한 소재주의가 돋보였다. 거기에 대담한 발상, 거침없는 문장이 힘을 보탰다. 앞으로의 가능성도 십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운문정신이 부족하다는 점에 심사위원의 공동의견이 있었다.
‘딱지’는 선명한 이미지가 눈에 쏙쏙 들어왔다. 서사구조를 가진 시의 힘도 좋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작금의 우리 시단에서 너무 익숙한 것이어서 자신 만의 독창성을 가지지 못했다는 단점을 피할 수 없었다.
‘유하백마도를 보다’는 이미 자신의 시세계를 구축한 시였다. 한 편 한 편 완성된 시에서 힘과 가락이 같이 살아있었다. 시를 세공하는 정성을 읽을 수 있었고, 사유의 깊이도 읽을 수 있었다. 앞의 두 분에게 문제점이 된 운문정신과 독창성에서도 높은 점수를 얻었다.
지리산 문학상 심사에 어떠한 잣대도 없지만 우리는 지리산의 정신에 부합하는 시편을 우선하기로 했다. 그래서 힘과 가락을 가진 ‘유하백마도를 보다’를 즐겁게 당선작으로 모셨다.
지리산 문학상은 민족의 영산 지리산의 이름으로 드리는 상이다. 좋은 작품을 보내 준 수상 시인에게 이 상 역시 오래오래 영광스러운 이름으로 남길 바라며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투고하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심사위원 송수권 정일근(글)
* 지리산문학제위원회의 저자 註:
본심 진출작 :‘악어왕국’(임수련), ‘딱지’(유행두), ‘유하백마도'를 보다’(유종인)
제22회 소월시문학상 대상수상작
섶섬이 보이는 방 / 나희덕
- 이중섭의 방에 와서
서귀포 언덕 위 초가 한 채
귀퉁이 고방을 얻어
아고리와 발가락군*은 아이들을 키우며 살았다
두 사람이 누우면 꽉 찰,
방보다는 차라리 관에 가까운 그 방에서
게와 조개를 잡아먹으며 살았다
아이들이 해변에서 묻혀온 모래알이 버석거려도
밤이면 식구들의 살을 부드럽게 끌어안아
조개껍데기처럼 입을 다물던 방,
게를 삶아 먹은 게 미안해 게를 그리는 아고리와
소라껍데기를 그릇 삼아 상을 차리는 발가락군이
서로의 몸을 끌어안던 석회질의 방,
방이 너무 좁아서 그들은
하늘로 가는 사다리를 높이 가질 수 있었다
꿈 속에서나 그림 속에서
아이들은 새를 타고 날아다니고
복숭아는 마치 하늘의 것처럼 탐스러웠다
총소리도 거기까지는 따라오지 못했다
섶섬이 보이는 이 마당에 서서
서러운 햇빛에 눈부셔 한 날 많았더라도
은박지 속의 바다와 하늘,
게와 물고기는 아이들과 해질 때까지 놀았다
게가 아이의 잠지를 물고
아이는 물고기의 꼬리를 잡고
물고기는 아고리의 손에서 파닥거리던 바닷가,
그 행복조차 길지 못하리란 걸
아고리와 발가락군은 알지 못한 채 살았다
빈 조개껍데기에 세 든 소라게처럼
* 화가 이중섭과 그의 아내가 서로를 부르던 애칭.
벗어놓은 스타킹 / 나희덕
지치도록 달려온 갈색 암말이
여기 쓰러져 있다
더 이상 흘러가지 않을 것처럼
생의 얼굴은 촘촘한 그물 같아서
조그만 까그라기에도 올이 주르르 풀려나가고
무릎과 엉덩이 부분은 이미 늘어져 있다
몸이 끌고 다니다가 벗어 놓은 욕망의
껍데기는 아직 몸의 굴곡을 기억하고 있다
의상을 벗은 광대처럼 맨발이 낯설다
얼른 집어들고 일어나 물 속에 던져 넣으면
달려온 하루가 현상되어 나오고
물을 머금은 암말은
갈색빛이 짙어지면서 다시 일어난다
또 다른 의상이 되기 위하여
밤새 갈기는 잠자리 날개처럼 잘 마를 것이다
-제22회 <소월시문학상>작품집에서-
나희덕 시인
1966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연세대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뿌리에게'가 당선되면선 문단에 나왔다. 작품으로 시집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과 시론집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출간했다. 산문집 <반통의 물>이 있고, 옮긴 그림책으로 <조각이불>이 있다. 김수영문학상, 김달진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대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3회 지용신인문학상 수상작
왜 그랬나요? / 이수진
길바닥에 누워버린 들꽃처럼
바람에 지쳐버린 나무처럼
짐도 없지. 짐도 없지.
그 저 그저 살아온 거지.
버릴 것도 없고
이룰 것도 없고
배 따뜻하면 만족하지.
더 딘 더딘 아이처럼
발끝마다 가시가 솟아나도
울면 그만이지. 울면 그만이지.
얼음 속에 눈 녹아 들어가듯
추운 마음 익숙하여
울 수도 없었지.
그저 흉내 낸 거겠지.
시계바늘 돌아가듯
익숙한 하루태엽들
버젓이 내게 감기며
하루하루 노래하며 지내는
베짱이 신세였지.
그래 그게 나였지.
심사평
전년보다 응모작품 편수도 훨씬 많고 수준도 높았다. 아쉬운 점은 내용이나 수준이 비슷비슷한 작품들이 많고, 산문인지 운문인지 구별이 안가는 시들도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공부하는 과정에서 좋은 시를 제대로 찾아 읽지 못한 결과로 보였다. 예컨대 우리 시를 폭넓게 접하는 대신 최근의 신춘문예 당선 시 등 젊은 사람들의 시만을 중점적으로 공부한 것이 아닌가 여겨졌다. 또 시는 산문과 달리 응집성이 있어야 하고 폭발력이 있어야 하는데, 평이한 전개나 설명으로 산문과 구별이 어려운 시들도 많았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분명하지 않고 수다스럽고 혼란스러운 것도 많은 시들이 공통으로 가진 흠이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수진, 조명수, 박흥순의 시들은 이런 흠이 덜할뿐더러 개성이 강하고 아주 재미있게 읽혔다.
특히 이수진의 시들은 남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가령 ‘왜 그랬나요?’이나 ‘최면술’은 경쾌하고 나이브하면서도 어떠한 우리시와도 같지 않은 목소리의 시다. 남이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것을 보고 느끼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투른 것 같은 말투, 덜 익은 것 같은 발상도 만약 자신이 이 점을 인식하고 있다면 오히려 큰 장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조금만 더 다듬으면 아주 좋은 시를 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완성도만 가지고 본다면 조명수의 시들이 더 나을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때 낙타처럼/ 굽은 아버지의 등을 증오했다”는 진술의 ‘아버지의 등’은 호소력도 있고 감동도 준다. 한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고 만져 본 것 같은 구절들이다. 박흥순의 ‘꽃잎이 바르르 떤다’는 산문이 아닌 시가 갖는 재미를 충분히 맛보게 해 주는 시다. ‘양파’도 말을 적당히 절제하고 생략한 점에 있어 다른 이들의 시와 크게 구별된다. 한데 어느 한구석 빈 것 같은 느낌을 어쩔 수가 없다. 이상 세 사람의 시 가운데서 선자들은 이수진의 ‘왜 그랬나요?’를 당선작으로 뽑는 데 쉽게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유종호·신경림>
【13회 지용신인문학상 수상자 인터뷰】
“시로 마음을 정화하고 싶다”
“공부하다 마음이 고단하거나 엉킬 때 마음을 풀기위해 일기 쓰듯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늘 습작이라고 생각했지 한편의 완성된 작품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문학상에 응모한 것도 ‘그냥 한번 내보자’한 것인데 당선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너무 놀라 얼떨떨해요.” 지난 4월25일 마감한 13회 지용신인문학상에 전체 응모작 2208편 중 시 ‘왜 그랬나요?’로 당선된 이수진씨(30·충남 공주시 금학동 101)의 수상 소감이다.
이씨의 5편 응모작품 중 수상작으로 결정된 ‘왜 그랬나요?’는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공부를 준비한다는 명분으로 ‘백수’상태로 지내며 자기 자신과의 갈등, 혹은 가족과의 갈등 속에서 오는 회의와 연민 등 혼란스러운 기분을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담아낸 작품이다. 이씨는 때로 자기 자신을 아무렇게나 내던져 놓기도 하며 저절로 누워버린 ‘들꽃’으로, 바람에 휘둘리느라 지친 ‘나무’로, 하루하루 태엽을 돌려줘야 돌아가는 낡은 괘종시계에 자신의 일상을 비유하기도 한다.
이러한 일상이 시의 소재이면서 그만의 생각을 담아놓은 시를 남들과 공유할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다고 한다. 시를 통해 마음을 정화하고 싶다는 이씨는 반복되는 권태로운 일상에서 오는 답답함과 자기반성을 편안한 목소리로, 자신을 향해 읊조리는 기분으로 시를 쓴다. “본인의 감정에 충실하면서 내 개인의 이야기 이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시의 특별한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순간순간 느끼는 감정을 군더더기 없이 표현하고 싶어요.” 이제 갓 시작한 젊은 시인만이 꿈꿀 수 있는 바람일지 모른다. 아직 창작의 고통보다는 시라는 형식을 통해 마음속의 내밀한 구석을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새내기 시인의 말처럼. 이씨는 지난 겨울 충남 대전에서 발간되는 문학계간지 ‘문학사랑’에 ‘절제’ ‘자전거 타고’ ‘하늘을 보며’ 등 5편의 작품으로 신인작품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했다.
지용신인상에 응모한 다른 작품 ‘최면술’은 권위나 외형에 집착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나 현대인들의 모습을 반성하며 풀어낸 것이고 등단작품인 ‘자전거 타고’의 경우 자전거를 타고 오가며 느낀 단상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 것이다. 목원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잠시 직장생활을 해보았지만 잘 맞지 않아 그만두었다는 이씨는 자신에게 맞는 직장 찾는 일에 한동안 몰두할 것이고 그 틈새에 늘 시를 가까이 할 것이라고 한다. 현재 70편 이상의 시를 써놓았으며 언젠가 시집을 내는 것도 그녀의 바람이다
제25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작 / 강기원
바다로 가득 찬 책 / 강기원
내가 한 권의 책이라면 이러할 것이네
첫 장을 넘기가마자 출렁, 범람하는 물
너를 쓰다듬을 때마다 나는 자꾸 깎이네
점점 넓어지는 틈 속으로
무심히 드나드는 너의 체온에
나는 녹았다 얼기를 되풀이하네
모래펄에 멈춰 서서 해연을 향해 보내는 나의 음파는
대륙붕을 벗어나지 못하고
수취인 불명의 편지처럼 매번 되돌아올 뿐이네
네가 베푸는 부력은 뜨는 것이 아니라
물밑을 향해 가는 힘
자주 피워 올리는 몽롱함 앞에서 나는 늘 눈이 머네
붉은 산호들의 심장 곁을 지나
물풀의 부드러운 융털 돌기 만나면
나비고기인 듯 잠시 잠에도 취해 보고
구름의 날개 가진 슴새처럼
너의 진동에 나를 맡겨도 보네
운이 좋은 날,
네 가장 깊고 부더러운 저장고, 청니(靑泥)에 닿으면
해골들의 헤벌어진 입이 나를 맞기도 하네만
썩을수록 빛나는 유골 앞에서도
멈추지 않는 너의 너울처럼
그 멀미의 진양지를 찾아 그리하여
페이지를 펼치는 것이네, 그러나
너라는 마지막 장을 덮을 즈음
나는 보네, 보지 못하네
네, 혹은 내 혼돈의 해저 언덕을 방황하는
홑겹의 환어(幻魚) 지느러미
베이글 만들기 / 강기원
나의 얼굴, 팔, 다리, 심장을 대접하겠습니다.
늑골의 강력분
땀과 눈물의 소금기
숨결 효모
수줍은 미소의 당분 약간
칠 할인 체액을
뽑아 반죽한 뒤 바닥에 세게 내려쳐 주십시오.
오장 육부 속에 자욱이 들어찬
업의 가스, 한 번으로 빠질 리 없으니
이차 발효 공정이 필요합니다
미농지처럼 얇고 투명해질 때까지
고작 반죽 덩어리인 나를
당신 마음에 들도록 성형하십시오.
(이때도 끊임없이 내 몸을 때려 여분의 집념을 몰아내야 합니다)
환골탈태의 과정이 끝났다고 해서
그대에게 갈 수는 없습니다
예열된 오븐의 열기가 내 혼 깊은 곳까지 고루 스며야 하니까요
노릇하고 바삭하게 구워진 나
그래도 아직은 아닙니다
이때쯤 적당히 식혀 주십시오
너무 뜨거우면 피의 시럽 뿌릴 수 없으니
당신의 목이 멜 터이니
무뚝뚝한 껍질 뒤에 숨긴
무향(無香)의 다감한 속살
이제 그대만을 위하여 내어 드립니다 기꺼이
달거리가 끝난 봄에는 / 강기원
머리부터 발끝까지
두근거리는 자궁이 되는 거야
중년의 처녀막
기꺼이 찢어 내고
아지랑이의 젖물
보얗게 채우는 거야
부푼 아기집 속에
내가 들어가
다시 태어나는 거야, 무럭무럭 자라는 거야
비늘로, 날개로, 메아리로, 그림자로, 천둥으로.....
혼자서도 울리는
북이 되는 거야
급 화살 같은 햇살에
골반을 파고드는 소소리바람에
물고기의 혼인색에
위아래 뻥 뚫린 모자라
자꾸자꾸 숭숭
구멍 뚫리는 거야
그물코 없는 그물이 되는 거야
무엇이 걸리고
무엇이 빠져나가는
내버려 두는 거야, 이 봄엔
제1회 시작문학상 수상작
아교 / 유홍준
내 아버지의 종교는 아교,
하루도 아니고
연사흘 궂은비가 내리면
아버지는 선반 위의 아교를 내리고
불 피워 그것을 녹이셨네 세심하게
꼼꼼하게 느리게 낡은 런닝구 입고 마루 끝에 앉아
개다리소반 다리를 붙이셨다네
술 취해 돌아와 어머니랑 싸우다가
집어던진 개다리소반……
살점 떨어져나간 무릎이며 복사뼈며
어깻죽지를 감쪽같이 붙이시던 아버지, 감쪽같이
자신의 과오를 수습하던 아버지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 내 아버지의 종교는 아교!
세심하게 꼼꼼하게 개다리소반을 수리하시던
아교의 교주 아버지 보고 싶네
내 뿔테안경 내 플라스틱 명찰 붙여주시던
아버지 만나 나도 이제 개종을 하고 싶다 말하고 싶네
아버지의 아교도가 되어
추적추적 비가 오는 아교도의 주일날
정확히 무언지도 모를 나의 무언가를 감쪽같이 붙이고 싶네
유홍준(44) 시인, 시작문학상 첫 수상자로 선정
(주)천년의시작 & 계간 <시작>(詩作·발행인 김태석)은 올해 처음으로 제정한 시작문학상 1회 수상자로 유 시인이 선정되었다고 16일 발표했다. <시작>은 2005년 12월부터 2006년 11월까지 1년간 출간된 모든 시집을 대상으로 하고, 그동안 확보해온 문학적 성취도와 미래의 발전 가능성을 함께 평가해 수상자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유홍준 시인은 지난 해 펴낸 시집 <나는, 웃는다>(창비)로, 수상 요건을 갖추었다. <시작>측은 "요건들을 두루 갖춘 시집들이 많았다. 첫 수상자인만큼 치열한 경쟁을 벌였는데, 유홍준 시인이 첫 수상의 영예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수상자의 대표시와 신작시, 수상소감과 심사평 등은 계간 <시작> 2007년 여름호에 실린다. 시상식은 오는 6월 1일 오후 6시 출판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린다.
경남 산청에서 태어나 현재 진주의 한 제지공장에서 제지공으로 있는 유홍준 시인은 1998년 <시와 반시> 신인상에 '지평선을 밀다' 등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그는 2004년 봄 첫 시집 <상가에 모인 구두들>을 펴냈다.
유 시인은 2005년 한국시인협회가 제정한 젊은시인상 첫 수상자로 선정되어 문단 안팎에서 관심을 모으기도 했는데, 이번에도 첫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유홍준 시인은 "<시작> 측으로부터 어제 연락을 받았는데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면서 "첫 수상자라는 측면에서 중압감이 든다"고 말했다.
2007년 현대문학상 수상작
그녀의 입술은 따스하고 당신의 것은 차거든 / 최정례
그러니, 제발 날 놓아줘,
당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거든, 그러니 제발,
저지방 우유, 고등어, 클리넥스, 고무장갑을 싣고
트렁크를 꽝 내리닫는데…
부드럽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플리즈 릴리즈 미가 흘러나오네
건너편에 세워둔 차 안에서 개 한 마리 차창을 긁으며 울부짖네
이 나라는 다알리아가 쟁반만 해, 벚꽃도 주먹만 해
지지도 않고
한 달이고 두 달이고 피어만 있다고
은영이가 전화했을 때
느닷없이 옆 차가 다가와 내 차를 꽝 박네
운전수가 튀어나와
아줌마, 내가 이렇게 돌고 있는데
거기서 튀어나오면 어떻게 해
그래도 노래는 멈출 줄을 모르네
쇼핑 카트를 반환하러 간 사람, 동전을 뺀다고 가서는 오지를 않네
은영이는 전화를 끊지를 않네
내가 도는데 아저씨가 갑자기 핸들을 꺾었잖아요
듣지도 않고 남자는 재빨리 흰 스프레이를 꺼내
바닥에 죽죽죽 금을 긋네
십 분이 지나고 이십 분이 지나도 쇼핑센터를 빠져나가는 차들
스피커에선 또 그 노래
이런 삶은 낭비야, 이건 죄악이야,
날 놓아줘, 부탁해, 제발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날 놓아줘
그 나물에 그 밥
쟁반만 한 다알리아에 주먹만 한 벚꽃
그 노래에 그 타령
지난번에도 산 것을 또 사서 실었네
옆 차가 내 차를 박았단 말이야 소리쳐도
은영이는 전화를 끊지를 않네
훌쩍이면서
여기는 블루베리가 공짜야 공원에 가면
바께쓰로 하나 가득 따 담을 수 있어
블루베리 힐에 놀러가서 블루베리 케익을 만들자구
플리즈 릴리즈 미, 널 더 이상 사랑하지 않거든
그녀의 입술은 따스하고 당신의 것은 차거든
그러니 제발, 날 놔줘.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놓아 달란 말이야
초승달, 밤배, 가족사진 / 최정례
끝을 날카롭게 구부리고 지붕 위를 떠가는 초승달
왜 입 안에 신 침이 고이는 것일까
껍질 반쯤 벗겨진 사이로
신물 주르륵 흘러내리고 노란 껍질
익다 못해 터진 그 사이로 안개처럼 떠 있는
앞에는 키 작은 아이들 뒤에는 두루마기를 입은 100년 전 사람들 단장을 짚고 안경을 쓰고
줄줄이 서 있던 일족의 흑백사진
한 잎 배를 타고 칠흑의 밤을 노 저어 가던 그 집
그 집 벽 위 액자에도 저런 빛깔의 과일이 한쪽 떠 있었던 것만 같다
먹어본 듯하나 아직 먹어보지 못한
주르륵 지붕 위로 미끄러져 내리던
100년도 전에 그 집 사람들 미끄러져 가면서
남자가 입덧 중인 여자에게
열매를 꺼내 한 쪽씩 입속에 넣어주고
아기들에게도 쪼개주고
둘러앉아 한쪽 눈을 찌그리며 터뜨려 먹고 있는데
그때 밀감도 아니고 오렌지도 아니고 신 살구빛의 그것이 먹고 싶어
어미의 갈비뼈 밑으로 기어들어간 그 기억 때문일까
깜깜한 밤하늘 뚫고 신 살구빛의 새초롬한 달
신물 터져나오면 한쪽 눈이 찌그러지다 환해지는데
그 집 액자에서 다시는 내려오지 않고
밤배 탄 사람들
아직도 기린처럼
그 열매 끌어내려 터뜨려 먹으며 가고 있는지
잔뜩 구부리고 초승달 미끄러져 내린다
슬픔의 자루 / 최정례
어머니가 꼼짝 못하고 쓰러졌습니다
오줌과 똥을 치우느라 엎드려 있는데
병원 밖 멀리 기차가 배추벌레처럼 꿈틀거리고
느닷없이 그 짐승이 거기를 가로질러 갑니다
그 짐승의 이름은 알지 못합니다
무뚝뚝하기도 하고 흐느적거리기도 하고
석양 무렵이었습니다
햇빛 무서운 대낮에도 마주친 적 있습니다
아이가 잊고 간 도시락 갖다주러 가다가
반짝이는 잎 그물 사이로
농담처럼
그 짐승이 휙 지나는 겁니다
털 오라기 하나 떨구지 않고
길모퉁이 만개한 제비꽃 속으로
두 귀를 펼친 코끼리처럼
잎 그물 속에 출렁이다가
딱정벌레 오리나무 속 갉아먹는 소리 속으로
어느 날인가는 막다른 골목에서
더 이상 도망가지 못하게 된 그가 갑자기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리던 것도 보았습니다
내미는 손 잡혀버릴 것만 같아
손 내밀지 못하고
묶어서 자루에 넣어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는데
지난 유월 오빠가 집 앞 계단에서
말 한마디 못하고 쓰러져 죽었습니다
왜 자꾸 그 생각이 나는지 모릅니다
그가 잡아 지고 왔던 자루
그는 우리에게 아이스케키를 사다준 것이었는데
자루 속에는 젖은 얼룩과 막대기만 남아 있었습니다
온몸을 잊으려고 / 최정례
양귀비는 거북 눈속에서 하늘거리고
낙화암은 옆구리에 삼천궁녀를 거느렸네
차바퀴 밑에는 고양이가
늑골 아래에는 암세포가
야옹거리며 야옹거리며 사네
종합병원 건너편 저 멀리에
기차가 한강 다리를 건널 때
초록 배추벌레처럼
꿈틀거리며 꿈틀거리며 건널 때
겨자씨 속엔 눈폭풍이
뻐꾹 소리 속엔 먼 산이
온몸을 잊으려고
이 세상 냄새를 잊으려고
눈꺼풀 속으로 백일몽 속으로
절벽 아래로 밪꽃 잎 아래로
흩날리네 흩날리네
하산 / 최정례
그때 나는 숲에서 나와 길에 올랐다
검은 떡갈나무 숲 한 뼘 위에
초승달 눈 흘기고 있었다
숲에서 나오자 세상 끝이었다
우리 밑에 짓눌려 부스럭대던 잎사귀들
아이처럼 지껄이던 산 개울 물소리
아무 생각 없이 나눈 악수는
흘러 흘러 흘러서 바위틈으로 스며들고
숲에서 나오자 깜깜했다
허공중에 피었다 곤두박질 치는 것
깨진 접시 조각처럼 잠시 멈춰 있던 것
보았느냐고, 묻고 싶은데
갑자기 숲은 아득해져서
지나간 잎사귀들만 매달고 흔들리고
최정례 시인
1955년 경기도 화성 출생, 고려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 졸업. 1990년『현대시학』에 시 「번개」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1994년 첫시집 『내 귓속의 장대나무숲』, 1998년에 두번째 시집 『햇빛 속에 호랑이』, 2001년에 세 번째 시집 『붉은 밭』 2006년 네번 째 시집 『레바논 감정』간행. 1999년 제10회 김달진 문학상, 2003년 이수문학상 수상. 2007년 현대문학상 수상
제7회 시흥문학상 수상작 / 시부문 대상
아기의 햇살 / 변삼학
옆자리에 곤히 잠든 아기의 두 발이
가지런히 내 무릎 위로 넘어온다
송이버섯만한 낯선 두 발이 닿는 순간
내 시린 무릎이
보온 덮개를 올려놓은 듯 따뜻하다
달리는 전동차가 요람인 듯 새근새근
잠든 아기의 얼굴이 갓 솟은 햇살 같다
지나는 역과 역의 길이만큼이나
더 퍼져 오른 아기의 햇살 때문일까
내 무릎이 한낮 햇볕으로 데워진다
꿈속의 꽃동산이라도 거니는 것일까
앙증맞은 꽃무늬 양말 속
꼼지락 꼼지락 햇살 발가락이 걷고 있다
몇 개의 역을 지났을까 중천쯤에 떠오른
햇살이 무릎을 지나 가슴속까지
봄볕을 나르는 듯 훈훈하다
온몸 그 훈김에 혼곤히 빠져있을 때
아장아장 돌배기
내 손을 잡고 꿈속의 동산으로 이끌어간다
온갖 꽃 무리 속을 거닐며
그 많은 꽃들의 이름을 일일이 물어본다
저어기 저 노란 꽃은? 저어기 저 분홍 꽃은?
어느새 우리는 가족이었다.
변삼학 시인
경남 합천 출생
성균관대학교 사회교육 문예창작과 수료
1997년 한국문학예술 소설부문 신인상 당선
2003년 제1회 CJ문학 은상 수상
2004년 제1회 호연재 문학상 금상수상
2004년 계간 <문학마을>로 등단
2006년 시집 <자갈치 아지매> 문학의전당
심사평
1,500여 편 치열한 경쟁
일상을 관조하는 성향이 주류 이뤄
지난 10월 한달 동안 시에서 주최한 ‘제7회 시흥문학상 공모’에서 변삼학(서울 동작구) 씨의 ‘아기의 햇살’이 시부문 대상을 김성희(충남 천안시) 씨의 ‘11월의 미열’이 수필 부문 대상을 차지했다.
총 1,587편의 응모작이 접수되어 치열한 경쟁을 벌인 가운데 주로 일상을 관조한 글들이 주류를 이루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시부문 금상에는 ‘아내의 손톱(노점섭)’, 은상에는 ‘기차 안에는 고래가 산다(정희진)’, 동상에는 ‘엿을 고는 어머니(서기묵)’가 선정되었으며 수필부문 금상에는 ‘정거장(고신옥)’, 은상에는 ‘내 인생의 시동(김영순)’, 동상에는 ‘선인장은 가시가 없다(이채금)’가 선정되었다.
심사는 공정성을 위해 박몽구 샘터 편집장, 지연희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등 관외 작가 7인을 선정하여 실시했다.
시흥문학상은 올해로 7회째를 맞은 전국규모 공모전으로서 응모작 중 90%가 우리시 이외 지역에서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다. ‘아기의 햇살’은 풍부한 이미지를 진솔한 생활 가족상에 담아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시인의 따스한 심성이 돋보이고, 구체적인 소재를 중심으로 한 시상 전개에 무리가 없어 심사위원 전원에게 가장 높은 점수를 받게 되었다.
심사평 (심사위원: 배명식 시인, 박몽구 시인, 나해철 시인, 오현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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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작품들 즐감 합니다, 요즘의 시류가 스토리를 가지고 산문시화 하는 경향이 뚜렷이 보이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