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
The Church of Jesus Christ of Latter-day Saints ,
예수 그리스도 後期聖徒 敎會모르몬교,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
요약: 1830년 미국에서 조지프 스미스 2세가 세운 기독교 계통의 종교. 약칭은 ‘예수 그리스도 교회’, 또는 ‘후기성도 교회’이며, ‘모르몬교’라고도 한다. 기독교의 <성경> 외에, 조지프 스미스 2세의 신성체험을 바탕으로 기록된 <모르몬경>, <교리와 성약>, 교리 요약집인 <값진 진주> 등을 경전으로 삼으며, 초대교회의 조직과 운영이 현대에 회복된 교회임을 표방한다. 직업적인 성직자가 없이 평신도가 주체가 되어 운영되며, 술·담배·커피·차를 하지 않는 등 금욕적이고 윤리적인 생활로 20세기 들어 교세가 급격하게 확산되었다. 교인의 약 50%는 미국에 거주하지만, 한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도 전파되고 있다. 전 세계 신자는 약 1천 5백 90만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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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년 미국 뉴욕 주에서 조지프 스미스 2세(Joseph Smith Junior) 가 세운 종교. 창립 당시의 명칭은 ‘그리스도 교회(The Church of Christ)’였으나 1834년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The Church of Jesus Christ of Latter-day Saints)’라고 공식 명칭을 변경했다.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성경>과 함께 <모르몬경(Book of Mormon)>을 경전으로 사용하고, 교인들이 스스로를 ‘모르몬(Mormon)’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모르몬교’라고도 불린다.
한국에서는 전래 이후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라고 했으나, 2005년 7월 한국 선교 50주년을 맞아 모르몬교의 경전을 한국어로 재번역하면서 공식 명칭을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라고 개칭했다. 원래 ‘Latter-day Saint’란 ‘초기교회의 성도’의 형식과 내용이 그대로 현대에 실현된 ‘후기교회의 성도’라는 의미였으나, 기존의 번역어인 ‘말일’이 ‘특정한 마지막 날’로 여겨지거나 ‘말세의 날’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오해되어 왔기 때문이었다. 교인들은 공식 명칭을 선호하는 편이다.
후기성도 교회 교인들은 기독교의 <성경>외에 <모르몬경>, <교리와 성약>, <값진 진주> 를 경전으로 삼는다. 많은 부분이 기존 기독교의 교리에서 출발했지만 조지프 스미스가 신성 체험을 통해 선지자 모로니(Moroni)에게서 <모르몬경>을 받고, 초대교회의 구성원이었던 베드로, 야고보, 요한 등의 성인에게서 신권을 위임받아 초대교회와 동일한 ‘후기성도의 교회’를 이룩했다고 강조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초기에는 기존 기독교 교단에 의해 이단이라고 여겨져 많은 배척을 받기도 했으나, 윤리적이며 검소하며 가족을 중시하는 실천윤리와 성직자가 없는 평신도 중심의 제도 등을 통해 확산되면서 급격하게 신자의 규모가 증가했다. 신자들의 약 50%는 미국에 살고 있으며, 라틴아메리카·캐나다·유럽·오세아니아 등 세계 각 지역으로도 전파되고 있다. 2008년 토머스 에스 몬슨(Thomas S. Monson)이 제16대 회장에 취임했다. 본부는 솔트레이크시티에 있다. 매년 총 신자수를 발표하는데, 2017년 4월 총회를 통해 발표된 전 세계 신자의 수는 15,882,417명이다(2016년 기준).
모르몬교 성전
솔트레이크 성전
ⓒ Carol M. Highsmith/위키피디아 | Public Domain
역사
조지프 스미스 2세(Joseph Smith)
ⓒ Colejohnson66 | Public Domain
교회의 설립
후기성도 교회를 창시한 조지프 스미스 2세는 1805년 미국 버몬트 주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그가 어렸을 때 뉴욕 주 맨체스터로 이주했는데, 당시 뉴욕 주 일대에서는 종교 부흥운동이 열광적으로 전개되면서 교회 간에 많은 분열과 분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조지프 스미스 2세가 14살이 되던 1820년, 올바른 교회는 무엇인가 알고자 하는 종교적 열정으로 숲속에 들어가 기도하던 그는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시현을 목격하면서 자신이 선지자로 선택된 사람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1823년에 선지자 모로니의 계시를 통해 금판을 받았는데, 이를 번역한 것이 〈모르몬경 Book of Mormon〉이다. 정규학교를 거의 다니지 못했던 조지프 스미스 2세가 이를 번역했지만 망실되자 후일 다시 <모르몬경>을 번역한 올리버 카우드리(Oliver Cowdery) 등 신앙의 동료 3명도 그와 함께 천사 모로니와 금판을 목격했음을 증언했고, 이후 후일 고대 이집트어 등 여러 고대 언어로 기록되었다고 알려진 금판의 번역과 기록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도 금판의 존재를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조지프 스미스 2세의 기록에 의하면 이후 1829년에는 세례 요한이 임재하여 인간의 구원을 위한 침례를 할 수 있는 권리인 신권을 그에게 부여했고, 그 뒤에는 베드로와 야고보 등 초대교회를 구성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나타나 더 큰 신권을 부여하여 그를 선지자로 삼았다. 1830년에 이르러 <모르몬경>의 번역이 완료되어 3월 27일 출판되었고, 4월 6일에는 뉴욕 주 페이에트에서 조지프 스미스 2세를 포함한 6명이 발기인이 되어 ‘그리스도 교회’라는 이름으로 독립적인 교회를 설립했다.
개척 초기
1831년 교회는 본부를 오하이오 주 커틀랜드로 옮겨갔는데, 그곳에서는 캠벨파의 저명한 설교자 시드니 리그던(Sidney Rigdon)과 그의 추종자들이 후기성도 교회를 인정해주었다. 스미스는 그가 받았다고 하는 계시로 권위를 인정받고, 리그던의 영향력에 힘입어 커틀랜드와 미주리(일부 후기성도 교회 교인들이 이주했음) 주에 공산적인 '에녹 협동교단'(United Order of Enoch)을 세웠다. 1834년에는 교회의 이름을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라고 개명했다. 처음에 60명 정도였던 교인은 날로 늘어 1838년에는 1만 7천여 명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이 무렵 발생한 경제공황의 여파가 교회가 운영하던 사설 은행을 파산에 이르게 하면서 조지프 스미스 2세는 교인들과 함께 커틀랜드를 떠나 미주리 주의 파웨스트로 이주했다. 하지만 후기성도 교회를 이단시하는 미주리 주 주민들과의 분쟁이 점차 심화되어 무장 충돌에 이르게 되면서, 1839년 수천 명의 후기성도 교회 교인들은 스미스가 시온이라고 불렀던 미주리 주를 떠나 일리노이 주에 노부라는 새 도시를 건설하고 정착했다. 그는 이 도시의 시장 겸 민병대 대장이 되었다. 조지프 스미스 2세는 1842년 자신의 교리를 요약한 <신앙개조>를 발표하여 이후 이 교회의 기본적인 신조로 삼았다.
조지프 스미스 2세의 사망
조지프 스미스 2세는 이 무렵 교리로 일부다처제를 채택했다. 교회는 일리노이 주 뿐 아니라 텍사스 주, 오레곤 주, 캘리포니아 주 등 서쪽으로 계속 전파되었다. 그는 교회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면서 정치권과의 제휴를 통해 안정적인 선교를 도모했으나 여의치 않자, 1844년에는 아예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하지만 이 무렵 후기성도 교회 교인들의 지나친 자기 확신, 관련 업계에서의 파급력, 점차 증대되는 정치적 영향력이 후기성도 교회 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새로운 적대감을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후기성도 교회로 개종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스미스의 비밀 교시와 중혼(重婚)의 관습, 그리고 그의 은밀한 토지거래에 대한 반발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스미스는 1844년 6월 반대파에 의해 반역죄로 고소되어 일리노이 주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폭도들에 의해서 살해되었다.
정착지 솔트레이크시티 건설
조지프 스미스 2세가 죽은 뒤 누가 후기성도 교회의 지도자가 될 것인가를 두고 후기성도 교회 성직자간에 경쟁이 있었지만, 많은 사람이 '12사도 정원회'(Council of Twelve Apostles)의 회장 브리검 영(Brigham Young)을 따르기로 결정하고 1846~47년 유타 주로 이주했다. 영은 교인들을 강한 지도력으로 통솔하여 그들의 정착지로 솔트레이크시티를 건설하고, 영국과 스칸디나비아에서의 선교활동을 더욱 촉진시켰다.
유럽에서 이주해온 후기성도 교회 교인들은 놀랄 만큼 잘 조직되어 있어서, 그들을 미국으로 실어다준 배의 선장들로부터 엄격하고 질서정연하며 도덕적으로 성실하다고 높이 칭송을 받았다. 유타 주로 가는 여행은 그 자체가 개종자들의 신앙을 엄격하게 시험하는 과정이었는데, 특히 개종자들이 대오를 형성하여 손수레를 밀면서 고통스럽게 아이오와 시에서 유타 주로 횡단했던 1856년의 여행부터는 더욱 많은 칭송을 받았다. 영은 1851년 유타 준주(準州)의 지사가 되었으며, 1852년에는 일부다처제를 제도화했다.
주민과의 갈등
하지만 유타 주에서도 비 후기성도 교회 교인들과의 갈등은 계속되었다. 주민들은 지사인 브리검 영이 신정정치를 하는 데 반발했고, 지속되고 있는 일부다처제도 비난했다. 주민들과 모르몬교도간의 갈등은 결국 후일 유타모르몬전쟁이라고 기록된 무력충돌로 확대되었다. 충돌이 심화되자 연방군이 파견되었고, 후기성도 교회 교인들은 자위를 위한 민병대를 조직했다. 1857년에 '마운틴메도스의 학살'(Mountain Meadows massacre)로 알려진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것은 자제력을 잃은 후기성도 교회 광신자들이 캘리포니아로 향하던 이주자들을 학살한 사건이었다.
후기성도 교회 교인들은 보급창고의 곡식들과 연방군의 진격로에 있는 초지를 태워버리고 유타 주 북부에서 도망쳤다. 연방군과 후기성도 교회 민명대의 교전이 발생하자 당시 연방 대통령이었던 제임스 뷰캐넌(James Buchanan)이 나서서 평화협정을 맺도록 압력을 넣었고, 유타 주에 연방법을 준수할 것을 포고했다. 브리검 영은 주지사 자리를 연방에서 파견한 인물에게 양보했다. 결국 유타주에 대한 후기성도 교회 교인들의 직접적인 통치는 종식되었다.
브리검 영이 1877년에 사망하자 12사도 정원회의 원로인 존 테일러(John Taylor)가 그 뒤를 이었다. 그가 후기성도 교회를 이끄는 동안 미국의 연방정부는 일부다처제 반대운동을 강화했다. 1890년 테일러의 후계자인 윌포드 우드러프(Wilford Woodruff)는 미국 법을 준수하기 위해 일부다처제의 관행을 포기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우드러프의 선언은 미국에 거주했던 교인들에게만 적용되었으며, 멕시코 등 미국 외의 국가에 살던 후기성도 교회 교인들은 그 이후에도 10여 년 이상 일부다처제를 유지했다.
분파의 발생
조지프 스미스 2세가 후기성도 교회의 최고 지도자 자리를 자신의 직계 후손들에게 넘겨주려 했음을 보여주는 문서가 1981년에 발견되었지만, 그가 사망할 당시 유타 주나 미주리 주에 있는 후기성도 교회에서 후계자에 대한 그의 의도는는 실제로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 스미스가 죽은 뒤 약 150개에 이르는 분파 집단들이 생겨났으며, 새로운 선지자를 따르거나, 일부다처제를 계속 유지하거나, 주류 후기성도 교회에서는 폐지한 관행들을 계속하기도 했다. 그중에는 초기 교인이었던 리그던(Rigdon)이 이끌었던 집단도 있고, 사도 중의 한 사람이었던 리먼 와이트(Lyman Wight)와 함께 텍사스로 간 집단도 있었다.
후기성도 교회 교인들 중 중요한 위치에 있던 소수는 브리검 영을 거부하고 아이오와 주와 일리노이 주에 남아서 조지프 스미스 2세의 첫 번째 부인인 에마 스미스(Emma Smith) 및 아들 조지프 스미스 3세(Joseph Smith III)와 결속하여 '복원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Reorganized Church of Jesus Christ of Latter Day Saints)를 세웠다(1852~60). 이 교회는 조지프 스미스 2세가 시온이라고 불렀던 미주리 주 인디펜던스에 본부를 두었다.
복원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는 〈모르몬경〉을 경전으로 고수하지만, 신은 진화한다는 개념과 그 안에 있는 다신론적 요소, 천상결혼(天上結婚)이라는 새로운 계약, 죽은 자들을 위한 세례, 중혼, 그리고 십일조 제도를 거부한다. 복원교회가 법적 칭호를 갖게 된 커틀랜드 성전(Kirtland temple) 안에서는 비밀의식을 거행하지 않으며, 〈아브라함서〉는 신의 계시로 된 책이 아니라고 여긴다.
조지프 스미스 2세가 금판을 받은 것을 목격했다는 증인인 데이비드 휘트머(David Whitmer)와 마틴 해리스(Martin Harris)도 후에 커틀랜드에 교회를 세웠다. 개종한 지 얼마 안 되는 제임스 제시 스트랭(James Jesse Strang)은 노부 민병대의 간부였던 존 쿡 베넷(John Cook Bennett)과 연합하여 1847년에 미시간 호의 비버 섬에 약 3,000명의 일부다처제 공동체를 만든 후, 자신을 '시온의 왕'으로 선포했다.
세계 선교의 강화
12사도회의 회장으로 제5대 회장인 로렌조 스노우(Lorenzo Snow)가 취임한 것은 1898년이었다. 세기말의 풍조가 전 세계에 만연했으며, 동시에 서구열강이 식민지 경영의 현장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기였다. 후기성도 교회도 이런 추세에 편승하여 세계 선교를 좀 더 강하게 추진하기 시작했다. 로렌조 스노우는 솔트레이크 시를 개척할 때 참여했던 열성 교인으로, 1899년 십일조를 강조하는 계시를 받았다. 그는 이후 후기성도 교회 교인이 완전한 십일조를 바치는 것을 의무화하는 데 기여했다.
20세기 들어 일본, 아프리카, 팔레스타인, 그리스, 이탈리아, 프랑스, 러시아, 필란드, 폴란드 등으로 선교가 계속되었다. 1947년에는 교인수가 100만 명에 이르게 되었다. 1961년에는 외국으로 선교활동을 나가는 선교사들을 위한 언어훈련원을 브리검영 대학교에 설치했는데, 이 훈련원은 1963년에 언어훈련선교부로 개칭되었다. 이곳에서 훈련받은 선교사들은 세계 각국을 방문하여 그 나라 언어로 선교활동을 펼쳤다. 1967년에는 교인 수가 250만 명에 이르렀고, 선교사는 1만 3천 명이 활동했다.
1978년에 이르자 전 세계의 후기성도 교회 교인수는 400만 명이 되었다. 같은 해 교회의 성직자가 될 수 있는 신권을 인종과 피부에 관계없이 허락한다는 선언이 발표되었다. 1997년에는 교인이 1천만 명에 이르렀고, 2002년까지 세워진 성전은 114개소였다. 21세기 들어 교회의 성장은 계속되어, 2016년에는 교인 수가 1천 5백만 명을 넘어섰다.
현황
후기성도 교회는 매년 총회를 통해 현황을 발표하고 홈페이지를 통해 이를 공시하고 있다. 2016년 4월 발표된 전 세계 교인은 15,634,199명이며, 418선교부, 155개 성전이 있다. 선교사는 74,079명이며, 15곳에 선교사 훈련원을 두고 있고, 4개의 대학을 운영한다. 후기성도 교회의 자료는 188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있다. 2017년 기준 회장은 2008년 취임한 토머스 에스 몬슨(Thomas S. Monson)이다. 본부가 있는 미국의 교인수는 6,531,656명이며 78개의 성전이 미국에 있다.
산하 조직으로 대표적인 것은 브리검영 대학교(Brigham Young University)이다. 본교는 미국 유타 주 프로보 시에 있다. 미국에서 가장 큰 종교 재단 대학이다. 학비가 저렴하며 윤리규정(Honor code)을 엄격히 적용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학생들의 대부분은 후기성도 교회 교인이며, 회계학, 경영학, 법학 분야에서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모르몬 태버나클 합창단(Mormon Tabernacle Choir)은 1847년 설립된 합창단이다. 1853년에 유타 주 솔트레이크 시에 8천석 규모로 건립된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 대예배당에 소속되어 있다. 단원수는 보통 375명이며 무보수로 활동한다.
경전
후기성도 교회에서는 '올바로 번역되는 한' <성경>을 인정한다. 조지프 스미스 2세는 자기 자신의 도래에 관한 예언과 후기성도 교회 신앙의 중심이 되는 〈모르몬경〉의 예언을 성서에 집어넣어 번역하려고 했지만 끝마치지 못했다. 〈모르몬경〉은 그 문체와 주제가 〈구약성서〉와 아주 비슷한데, 하느님이 미국 대륙의 고대 주민들에게 행한 일에 대한 많은 고대 선지자들의 예언과 계시를 기록하고 있다.
<모르몬경>에 의하면, 미국에는 기원전 600년에 예루살렘에서 온 니파이인과 레이맨인, 그리고 바벨탑 혼란 후 이주한 야렛인이 있었는데, 수천 년 후 레이맨인만 남고 다른 민족은 멸망했으며, 레이맨인이 미국 원주민의 조상이라는 내용이다. 이 기록이 선지자 모르몬에 의해 정리되었고, 모르몬은 그의 아들 모로니에게 이 기록을 넘겨주었으며, 모로니가 이 금판을 조지프 스미스 2세에게 전달하여 영어로 번역하게 한 것이다.
<모르몬경>에서 발견되는 도덕적 순환구조는 익숙한 것으로 하느님의 백성은 처음에 선하여 번영을 이루다가 교만과 불법, 타락과 죄악에 떨어져서 하느님의 징벌을 받고 회개한다는 도식을 이루고 있다. 스미스의 다른 계시문서들은 그가 〈아브라함서(Book of Abraham)〉·〈모세서(Book of Moses)〉라고 선언한 파피루스 사본들을 영적으로 번역했다고 하는 번역본과 〈값진 진주(Pearl of Great Price)〉라는 책 안에 수록되어 있다. 〈교리와 성약(Doctrines and Covenants)〉은 스미스와 영이 받은 계시를 선집해 놓은 책으로, 중혼을 폐지한 윌포드 우드러프의 선언을 포함하고 있다.
모르몬경(Book of Mormon)
ⓒ 101heather/wikipedia | Public Domain
교리
후기성도 교회의 교리는 기본적으로 조지프 스미스 2세(Joseph Smith Junior)의 초기 신앙 고백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교리의 기초는 13개의 조항으로 된 <신앙개조(Articles of Faith)>에 의해 명문화되어 있다. 이 <신앙개조>는 1842년 조지프 스미스가 자신에게 교회에 대한 정보를 요청한 <시카고 데모크래트(Chicago Democrat)>의 편집장 존 웬트워스(John Wentworth)에게 보낸 글에서 밝힌 내용으로, 후기성도 교회에서는 이 <신앙개조>를 모르몬교 복음의 기본 원리와 신앙생활의 지침으로 삼고 있다.
조지프 스미스 2세(Joseph Smith Junior)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의 초대 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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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개조>
1. 우리는 영원하신 아버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을 믿는다.
2. 우리는 사람이 아담의 범법으로 인하여가 아니라 그들 자신의 죄로 인하여 형벌을 받음을 믿는다.
3. 우리는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온 인류가 복음의 법과 의식에 순종함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음을 믿는다.
4. 우리는 복음의 첫째 되는 원리와 의식은 첫째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둘째 회개, 셋째 죄 사함을 위한 침수로써의 침례, 넷째 성신의 은사를 위한 안수례임을 믿는다.
5. 우리는 사람이 복음을 전파하고 그 의식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예언에 의하여 또 권세 있는 자에 의한 안수로써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아야 함을 믿는다.
6. 우리는 초대 교회에 있었던 것과 똑같은 조직 즉 사도, 선지자, 감독, 교사, 축복사 등을 믿는다.
7. 우리는 방언, 예언, 계시, 시현, 병 고침, 방언의 통역 등의 은사를 믿는다.
8. 우리는 정확하게 번역되어 있는 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으며, 또한 몰몬경도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
9.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제까지 계시하신 모든 것과, 현재 계시하시는 모든 것을 믿으며, 앞으로도 그분이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많은 위대하고도 중대한 것들을 계시하실 것을 믿는다.
10. 우리는 이스라엘이 문자 그대로 집합하고 그 열 지파가 회복될 것과, 시온(새 예루살렘)이 미 대륙에 세워질 것과 그리스도께서 친히 지상에서 다스리실 것과 땅이 새로워지고 낙원의 영광을 받게 될 것을 믿는다.
11. 우리는 우리 자신의 양심의 지시에 따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예배할 특권이 있음을 주장하며, 또 모든 사람에게 그들이 어떻게, 어디에서, 혹은 무엇이라도 예배할 수 있는 똑같은 특권을 허용한다.
12. 우리는 왕, 대통령, 통치자, 장관에게 복종할 것과, 법률을 순종하고 존중하며 지지할 것을 믿는다.
13. 우리는 정직, 진실, 순결, 인자, 유덕, 그리고 만인에게의 선행을 믿는다. 진실로 우리는 바울의 훈계를 따른다 할 수 있으니- 우리는 모든 것을 믿으며, 우리는 모든 것을 바라며,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견디어 왔으니, 모든 것을 견딜 수 있기를 바란다. 무엇이든지 유덕하고 사랑할 만하거나 혹 듣기 좋거나 혹 칭찬할 만한 일이 있으면 우리는 이것들을 구하여 마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 홈페이지(https://www.mormon.org/kor/sinang-gaejo)
후기성도 교회의 교리는 기존 그리스도교의 정통교리와 몇가지 점에서 다르다. 특히 신은 인간으로부터 진화했고 인간은 신으로 진화할 수 있으며, 삼위일체의 각 위격(位格)은 구별된 존재이고, 인간의 영혼은 이전부터 존재해왔다고 믿는다. 그리스도는 만민을 구원하고 죽은 자들을 살리기 위해 세상에 왔으며, 인간은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받는다고 가르친다.
의인(義認 justification)은 교회의 규칙에 대한 믿음과 순종, 회개, 침례, 예언·계시·방언을 포함한 성령의 은사를 위한 안수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인간의 원죄가 사하여졌으며, 입으로만 믿는 위선적인 신앙이 아니라 믿고 실천하는 종교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인간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비와 그리스도의 은혜와 공덕으로 주어진다고 믿는다.
후기성도 교회 교인들은 그리스도교의 기성 교회들이 계시와 기적과 성령의 은사가 결여되어 있으며, 부패한 의식, 부패한 성직자, 부패한 교훈을 고집하는 배교자 집단으로 여긴다. 스미스는 교회의 제도와 하느님의 율법을 회복시키기 위해 왔다는 것이다. 스미스의 신조는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기는 하지만, 인간은 선천적으로 선하고 무한히 진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하는 점에서 그 시대의 낙관주의를 반영한다.
그는 신자들에게 새로운 사회질서인 시온을 건설하기 위해 모여 일하라고 요구함으로써 천년왕국에 대한 갈망을 가라앉혔다. 지나친 부흥운동을 제한하고 신도들의 계시지상주의를 억제했으나 그후의 교회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신적 영감을 받았다고 주장해왔고, 각 개인은 교회에서 유익한 영감을 받기를 기대했다.
제도 및 관습성직제도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의 성직제도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별이 없다. 모든 정상적인 남자는 12세가 되면 아론 신권을 맡아 집사가 되고, 14세가 되면 교사가 되며, 16세가 되면 제사가 된다. 약 2년 뒤에는 장로로서 멜기세덱 신권 계열에 들게 되어 18개월 동안 선교사로 일할 수도 있다.
멜기세덱 대신권(Melchizedek priesthood)
아브라함과 멜키세덱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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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등급은 정원에 따라 조직되어 각자 자기의 활동을 하는데, 집사와 교사들은 장로를 따라 신도들의 가정을 두루 방문한다. 선교사로 해외에 파송되는 사람들은 장로들이다(비용은 자신이 직접 대거나 그의 가족들이 댐). 장로는 후기성도 교회의 70인 총관리 역원(Quorum of Seventy)의 일원이 되거나 70인 회장단(First Quorum of Seventy)의 고위 제사가 될 수 있다.
성인 침례와 인봉의식
회개와 순종을 의미하는 성인 침례는 진리를 알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대리인이 받을 수도 있는 중요한 의식이다. 후기성도 교회 교인들이 혈통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죽은 조상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관심 때문이다. 죽은 자들을 위한 침례·입교·인봉(죽은 자의 대리인이 받을 수 있음)은 비밀스럽지만 필수적인 의식들로 성전에서 거행된다.
입교할 때에는 정결하게 씻고 기름부음을 받으며, 성전의상(악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신실함을 상징하기 위해 후기성도 교회 교인들이 입는 속옷)을 입는다. 입회자들은 창조의 이야기에 대한 영상을 관람하고, 비밀스런 암호와 악수법을 배우며, 또한 비밀 이름을 받는다. 인봉의식(印封儀式)은 후기성도 교회 교인들이 중혼할 때 특별히 중요하며 이 의식은 남녀의 결혼을 영원토록 보증해준다(→ 복혼제).
관습
외부로부터의 박해와 차별은 오히려 후기성도 교회 공동체의 정체성을 강화시켜주었다. 가부장적인 성직제도, 60여 년간의 일부다처제, 그리고 죽은 자들을 위한 침례는 혈연간의 결속을 굳게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교회가 공적인 일이나 사적인 일에 모두 관여하는 경향이 있으나, 다른 종파들에 비해 세속 문화에 그다지 반대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으며, 비록 천년왕국 사상과 성령의 은사를 강조하지만 세속의 업무·사업·정치에도 참여한다.
후기성도 교회는 술·담배·차·커피 등을 금지하고 엄격한 노동윤리를 갖고 있지만 금욕적이지는 않으며, 오락·스포츠·교육을 긍정적으로 본다. 창시자 조지프 스미스 2세는 춤을 추고 씨름도 했으나, <지혜의 말씀(Word of Wisdom)>에서 자신이 쓴 내용처럼 술을 마시지는 않았다. 그는 "인간은 기쁨을 누릴 수도 있는 존재이다"라고 기록했다. 질서와 도덕적 성실성에 대한 강조와 함께 오락에 대한 긍정적 태도 역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구조
솔트레이크 성전
모르몬 개척자가 솔트레이크에 지은 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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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정치구조는 위계적인 요소와 평등주의적인 요소가 결합되어 있다. 교인의 신분은 폭넓게 퍼져 있지만, 교회권력은 명백하게 구조화되어 있다. 제일회장단(First Presidency, 교회 회장 1명과 고문 2명), 12사도 정원회, 70인 회장단과 70인 총관리 역원(특별히 선교에 관계가 있는 의장직), 부장단 감독관 2명의 보좌(아론계 신권을 관할)가 후기성도 교회의 '총관리 역원'(General Authorities)을 구성한다.
'총관리 역원'에 소속된 사람들은 매년 2회 열리는 총회(후기성도 교인이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음)에서 의식이 된 신임투표에 따라 임기가 연장된다. 지역 차원으로 가면 교구장(stake president)을 중심으로 평균 4,000~5,000명으로 이루어지는 '교구'(stake)로 나뉘어 있고, 그 아래 감독을 중심으로 수백 명 단위로 이루어진 '소교구'(ward)가 있다.
후기성도 교회 교인 개개인의 삶은 이러한 단위의 지역조직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서 교인들의 종교적·경제적·사회적 활동과 십일조 생활, 그리고 교회의 사회복지계획의 운영이 바로 지역조직들을 통하여 조직적으로 이루어진다. 부설 조직들인 주일학교, 청소년을 위한 상호개발모임, '가족의 밤'(family home evening) 프로그램, 여성구제회, 그리고 많은 청년 남녀들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선교활동 등은 교인들의 책임과 참여의 폭을 넓혀준다.
모르몬경(Book of Mor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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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
한국에 처음으로 들어온 후기성도 교회 교도는 1921년 일본을 거쳐 부산에서 만주까지 여행했던 데이비드 오먼 맥케이(David Oman Mckay)였다. 당시 12사도 시절이었던 그는 뒤에 교회의 제9대 회장을 지냈다. 1945년 해방 직후 한국에 주둔한 미군 중에 덴마크 젠슨(Denmark Jensen) 대령이 있었는데, 그는 이 때 처음으로 한국에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를 알렸다. 좀 더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펼친 사람은 1945년 10월 26일 미군으로 인천항에 도착한 루스 로빈슨(Ruth Robinson) 하사였다. 그는 1년 동안 체류하면서 선교활동을 벌였다. 이후 6·25전쟁 때 국제연합(UN)군으로 참전한 미군 가운데 많은 후기성도 교회 교도들이 한국인들을 전도했다.
그후 문교부차관과 서울특별시 교육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김호직이 미국의 코넬대학에서 유학하면서 침례를 받고 한국 최초의 교인이 되어 1955년 귀국했다. 1956년 4월에는 정식 선교사로 돈 파웰(Don Powell) 장로와 리차드 리 데튼(Richard Lee Detton) 장로가 내한했고, 이어서 6명의 선교사가 8월에 내한했다. 이해 6월에 서울 중구 정동에 한국지방부 서울지부가 조직되었다. 1957년 문화공보부장관의 법인 설립허가를 받았고 같은 해 4월 11일 법원에 정식등록을 마쳤으며,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전도사업과 교회활동이 시작되었다. 1962년 한국에 선교부가 창설되었으며, 1967년 〈모르몬경〉이 한국어로 번역·출판되었다. 1973년 한국에 아시아 대륙에서는 첫 번째로 서울 교구가 조직되었다. 1985년 12월 14일에는 서대문구 창천동에 서울 성전이 세워졌다.
2005년에는 영문으로 된 교회 이름인 ‘The Church of Jesus Christ of Latter-Day Saints’의 한국어 교회 이름을 기존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로 변경했다. 흔히 ‘말일’이라는 어감이 주는 종말론적인 느낌을 없애고 ‘latter day’의 원뜻을 더 충실하게 반영하기 위한 개칭이었다. 같은 해 <모르몬 경>을 원문에 좀 더 충실하게 개정 번역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2017년 3월 기준 서울·서울서·충청·영남·호남 지역으로 나뉘어 산하에 17개의 교구(스테이크라고 함)와 6개의 지방부(소교구)로 조직되어 있으며, 약 8만 7천 명의 교인이 있다. 서울·서울서·부산·대전에 4개의 선교부가 있으며 450여 명의 국내외 선교사가 활동하고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동·서·부산·광주·중부 신학연구원을 두고 있으며, 중·고등학생을 중심으로 한 중등부와 대학생과 성인을 중심으로 한 대학부로 나뉘어 신학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주요간행물로는 월간지 〈리아호나〉가 있으며, 그밖에도 전도사업과 교육을 위한 많은 책자를 발행하고 있다. 이 교회의 한국관리 본부는 서울특별시 중구 다산로36길 5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