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님 가르침에 "나이 50이 되어 하늘의 명령을 헤아렸다"라는 한마디가 있는데, 그 뜻이 무엇일까 곰곰 생각하게 된다. 30의 언덕에 이미 가을 바람을 느꼈으니 추수할 날이 멀지 않았고, 그래서 40의 언덕에서 "유혹에 빠진 일이 없었다" 라고 하셨을 텐데, 공자님을 본 받으려면 우리는 나이 50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50에서 60은 멀지 않다. 60과 70은 붙어 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하늘의 명령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지천명의 언덕에서 귀를 기울이는 사람에게 하늘은 단 한마디의 명령을 내린다. "내가 너를 불러 갈 날이 멀지 않았으니 준비 하도록 하여라" 기가 막히는 짤막한 명령이다.
이제는 동양인의 평균수명도 70을 넘었다니 한 10년 쯤은 그 언덕을 뒤로 미루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쨌든 지천명(知天命)의 언덕에 가을이 깊은 것만은 사실이고 앙상한 겨울나무에 눈 내리는 날이 멀지 않은 것을 누가 부인하랴.
떠날 준비란 월동준비보다 백배, 천배 더 중요한 준비임을 그 누가 부인하겠는가. 그런데 얼핏 생각하면 동양 사람은 서양 사람에 비해 철학적 깊이가 더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공자님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운것이 없는 서양인이 떠날 날을 위하여 준비하는 모습은 우리보다 몇배 더 의젓하고 당당하다.
화재보험, 상해보험, 의료보험, 생명보험 등의 보험제도는 물론 서양인들이 먼저 착안한 것이기는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동양인의 생리에 맞지 않는다고 할 수 도 있다.
한 개인의 삶에, 혹은 집단의 삶에 불행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 부터가 방정 맞고 불길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집에 불이 난다든가 몸에 병이 난다든가 하는 일은 상상도 하기 싫은 것이다.
더욱이 죽을 날을 예상하고 자기가 죽으면 남는 식구들이 타서 쓰게 되는 생명보험은 아마도 조상들에게는 괘씸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개업하고 있는 어떤 한국인 의사가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서양인 환자가 입원하고 있는데 그의 병이 검사 결과 암으로 판명이 되었다면 암이라는 병은 거의 사형선고나 다름이 없기 때문에 의사도 환자에게 밝혀 주기를 주저 한다고 한다.
그러나 환자가 꼭 병명을 알고 싶어 한다면 일러 줄 수 밖에없는 것이 의사 입장이어서 주저 끝에 "암입니다"라고 하면 그 환자는 오히려 의사에게 농담을 걸며 여유를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인 목사가 입원히여 암이라는 선고를 받으면 그날부터 병세가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하는 것을 여러번 경험 했다는 것이다. "목사님, 병명을 정말 알려 드려도 괜치 않습니까?" 라고 의사가 경고 삼아 따지면 으례 목사는 "나야 하나님을 믿는 목사인데 무슨 염려가 있겠습니까?"라고 말은 하지만 막상 "암입니다"라는 의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목사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 진다고 한다.
죽음을 대하는 성직자의 자세가 그 정도라면 일반 사람들이야 더 할 것 아닌가. 생전에 이미 자기가 들어갈 가묘(假墓)를 만들어 놓는 사람도 있다고는 하지만 그런 사람도 죽음 앞에서는 벌벌 떠는 것이 사실이다.
생전에 무덤도 만들어 놓고 수의도 관도 준비해 두는 것이 목숨을 연장하는데 무슨 도움이 된다는 미신 때문에 그러한 것이지 그것이 결코 '떠날 준비"는 아니라는 말이다. 누구에게나 죽고 싶지 않은 동물적 본능은 있는 것이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인간만의 멋이요 특권이 아니겠는가.
영국 시인 월터 세미지 랜더가 이렇게 읊었다.
나 아무와도 다투지 않았네
아무도 나와 다툴만한 자격 없었네.
나 자연을 사랑했고
자연 다음으로는 예술을 사랑했지.
나 인생의 불길에 두 손을 녹였거늘
이제 그 불길은 꺼져 가는데
나 떠날 준비는 되어 있어라.
이 시인은 자신의 70세 생일에 이 노래를 읊었다고 전해진다.
<죽음을 생각하는 모임>도 있는 것이 마땅한 것 아닐까. 죽음을 생각 하면서 인간은 신앙을 찾는 것이다. 이 세상만 있고 저 세상이 없다면 삶은 불안한 것이고 죽음은 절망적인 것이다.
사람은 나이 50 쯤 되면서부터 하늘의 명령을 헤아리고 서서히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이 옳다고 나는 믿는다.
- 워싱턴에서 가을을 느끼며...
https://youtu.be/rcPGGrLW3wU?feature=sha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