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내 자리를 빼앗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할까?
<처음 우주에 간 고양이, 피자를 맛보다. 나무의 말> 그래픽노블
처음으로 아이들과 그래픽 노블(만화)로 철학탐구를 했다.
처음 우주에 간 고양이, 피자를 맛보다
맥 바넷 (지은이), 숀 해리스 (그림), 이숙희 (옮긴이)나무의말 2023-06-20
장군의 명령을 듣고 우주로 간 고양이. 이 고양이 옆엔 우주선에 몰래 올라탄 밀항자 로봇 ‘로즈 4000’이 있었다. 로즈 4000은 원래 발톱깎이 로봇으로 만들어졌으나 자신의 존재 의미를 고민하던 중 광활한 우주에 가면 삶의 목적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로켓에 몰래 올라탔던 것이이다. 그렇게 친구가 된 우주 고양이와 발톱깎이 로봇은 달에 내린 뒤 달의 여왕을 만난다.운명 공동체가 된 셋은 달의 반대편에서 달을 파먹는 쥐들의 존재를 몰아내기 위해 긴 여정에 나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달에 사는 개성 강한 인물들을 만난다. 곳곳에서 만나는 어려움을 차례차례 해결해 내는 과정이 뭉클한 감동을 준다. 고난을 하나하나 이겨 내면서 별 볼 일 없던 세 인물이 단단한 영웅이 되어 가는 과정을 촘촘하게 그려낸다. (출판사 제공 소개글)
철학탐구의 텍스트가 그림책이나 동화책, 인문고전책일 수도 있고, 그림이나 영화, 음악일 수도 있다. 무엇이든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라면 철학탐구의 텍스트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선택한 책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책으로 처음으로 아이들과 그래픽 노블(만화)로 철학탐구를 했다. 어떤 주제와 질문들이 나올지 무척 기대가 되었다. 우선 아이들의 반응은 정말 좋았다. 5명 아이들 모두 책에 대한 별점을 5개 만점에 5개를 주었다. 모두 캐릭터와 스토리, 그리고 유머와 주제가 맘에 든다고 극찬했다. 어떤 책보다도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 인물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상하고 기괴해보이는 인물들을 통해서도 생각할 거리가 많다고 했다. 아이들의 책은 아이들이 가장 잘 평가한다고 생각하기에, 이 책에 나도 5점 만점을 주면서 신나게 이야기를 나눴다.
1. 책에 별점을 준다면? (별 다섯개 만점 기준)
- 모두 5점!
- 캐릭터가 살아있다. 다양한 인물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그림과 잘 어울어져 있다.
- 모든 임무를 마치고 피자를 먹는 고양이의 모습이 정말 귀엽다.
- 처음부터 끝까지 재밌다. 유머 감각이 있는 글이라서 몇 번이나 읽었다.
2.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몸으로 표현하기
어떤 장면일까요?
각자 자신이 맘에 들었던 장면을 팀으로 함께 표현하고 다른 팀이 맞춰보는 연극놀이였다. 책의 내용을 자신이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표현해가는 과정이 꽤 재밌었고, 어떤 장면이었는지 맞추는 과정에서 책을 다시 읽게 되어 좋았다. 함께 많이 웃었다. 만화였기 때문에 그 장면이 더 생생하게 기억되고 표현하기 쉬운 듯.
3. 인상적인 문장/ 대사 서로 나누기 + 떠오르는 질문
(은) 돌멩이는 왜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던 걸까?
(아) 사정을 알지 않고 서로 만나자마자 사랑할 수 있는 걸까?
(이) 누구에게나 삶의 목적이 있을까? 인간이라면 공통된 삶의 목표가 있을까?
(규) 고양이의 진짜 임무는 무엇이었을까? 쥐를 쫒아내는 거였을까, 피자를 먹는 거였을까?
(동) 지금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4. 맘에 들었던 인물과 맘에 들지 않았던 인물이 있었다면?
이 책은 정말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하나도 같지 않고, 각자의 색깔이 분명해서 이 질문을 꼭 던지고 싶었다. 어린이들이 맘에 들어한 캐릭터는 "고양이와 발톱깎기 로봇" 주인공이었다. 특히, 발톱깎기 로봇은 5명 모두가 좋아했다. 그 이유는 자신감이 있고 밝고 재미있다. 만날 때마다 자기를 소개하고 친절하다. 다른 사람들이 무시하거나 말을 끊어도 그 로봇은 다른 캐릭터들의 말을 끝까지 들어준다. 발톱을 깎아주는 역할을 가지고 만들어졌으나, 다른 쓸모로 사용되고 싶어서 적극적으로 살았다. 한정된 능력을 넘어 도전하는 모습이 좋았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고, 나랑 닮은 것 같아서 좋았다.
_ 맘에 들지 않았던 인물은
거인: 너무 착해서 비현실적이었다.
아기수염선장: 아기인데 수염도 있고 기저귀 찬 아이인데 말을 너무 잘 하고 사람을 속이는 모습이 보기에 불편했다. 아기가 아기다운 것이 좋은 것 같은데, 아기인지, 어른인지 모르게 섞어두니 이상했다.
배신자로봇: 어떻게 자기 편을 배신하고 다른 편에게 갈 수 있을까?
잠깐, 여기서 배신자 로봇에 대해서 다른 의견이 나왔다.
"나는.. 불쌍한 거 같아요. 배신자 로봇이 되기 전엔 능력자 로봇이었잖아요. 우주까지 오게 해준 로봇이고, 중요한 로봇인데 아무도 그 로봇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니까 화가 나서 그런 것 같아요."
"저도요. 악역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느껴져서 불쌍하고 안타까웠어요."
"아무리 그래도 자기 편을 배신하고 적에게 가는 것은 비겁한 거 같아요. 배신자를 이해하기 어려워요."
_ 그러면 능력자 로봇이 왜 배신자 로봇으로 변했을까? 그걸 먼저 살펴보자.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어요.
자기 능력을 열심히 발휘해서 우주까지 왔는데, 그 후로는 발톱깎기 로봇에게 그 자리를 빼앗겼어요.
쓸모가 없으니 버려질 것 같아서 배신자라도 되고 싶었던 거 같아요.
나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는 인물이 등장했으니 화가 나서 침입자를 이기고 싶었을 것 같아요.
내 자리를 빼앗았으니 복수하고 싶었을 것 같아요.
_ 그러면, 능력자 로봇처럼 내 자리를 빼앗겼던 경험이 있니?
엄청 많아요. 내가 발표하려고 하면 꼭 제 앞에서 답을 말해버리거나, 내가 말하고 있을 때 끼어들어서 방해하는 경우도 있고요. 내가 열심히 해서 내 기회가 왔는데 그걸 빼앗아가는 친구들이 있어요.
꼭 한 반에 한 두 명 있어요. 잘난 척하고, 자기만 잘 난 줄 아는 아이요. 친구는 아니에요.
_ 여기서는 발톱깎기 로봇이 나쁜 성격은 아니잖아, 아주 열심히 그 능력 이상으로 노력하는 좋은 인물인데?
아무리 그래도 능력자로봇에게는 침입자같은 거에요. 자기의 일을 빼앗아간 나쁜 로봇.
_ 오, 너희가 가장 좋다고 한 인물이 어떤 이에게는 가장 나쁜 인물이 되기도 하는구나.
그렇죠, 내 자리를 빼앗아가면 정말 부글부글 하니깐요.
_ 너희가 능력자 로봇이라면 어떻게 할거야? 내 자리를 자꾸만 뺏어가는 이를 어떻게 대할거야?
자유롭게 적어보자. 그리고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한 번 찾아보자.
배신한다.
복수한다
욕한다
직접 가서 기분이 나쁘다고, 멈추라고 말한다.
어른이나 누군가에게 이른다.
협박한다.
내가 더 잘 하는 것으로 경쟁하여 이긴다
무시한다
속으로 욕한다.
똑같이 대해준다.
이해해본다
그 아이 이름을 종이에 적고 낙서하고 구기고 가위로 자르고 던진다. 속이 시원해지도록
다른 에너지를 쓴다.
거리를 둔다 피한다
때리거나 깨문다
싸운다
아이들이 너무 착한 말만 적지 않기를 바라면서, 내가 먼저 꼬집어준다. 깨물어준다. 싸운다. 욕한다 같은 예를 말했더니 아이들이 너무 심해요! 라고 하더니 더 솔직하게 적어주었다. 철학수업은 착한 어린이되기 과정이 아니다. 더 솔직하게 자신을 들여다보고, 표현하고, 더 나은 생각의 과정으로 전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_ 이 중에서 좀 적절해보이는 해결방법은 뭘까요?
1) 저는 너무너무 화가 났기 때문에.. 우선 내 마음을 풀어줘야 할 거 같아요. 그래서 나 혼자 있으면서 욕하거나 막 낙서를 하거나 축구를 하거나 해서 스트레스를 풀어줘야 할 것 같아요.
2) 그리고 나서 이해해보는 거죠. 이유가 있는지 물어보고, 내가 정말 화가 났다는 것을 말해주고 하지 말라고 말할 거에요.
3) 그 반응에 따라 무시하거나, 내가 떠나거나(거리두기), 협박을 하거나 배신을 하거나 결정할 거에요.
_ 우리가 이야기를 하다보니 "능력자로봇이 배신자로봇"이 된 것에 대해 어떤 이해를 하게 되었나요?
별로였던 캐릭터를 이야기하다가 여기까지 이야기가 나온 것이 재밌고 신기해요. 여기서는 뭔가 이야기가 재미있게 흘러가요.
생각을 깊이 해보니까 그 로봇 입장이 이해되고, 발톱깎기 로봇이 미워지기도 하네요.
발톱깎기 로봇이랑 배신자로봇이 서로 잘 지냈으면 좋았을 거 같아요.
2탄에서는 배신자로봇도 좀 분량이 있고, 잘 나오면 좋겠는데 블랙홀에 갔으니 못 만나겠죠?
상상이니까 다시 나와서 좀 웃는 모습도 있고 그러면 좋겠어요.
5. 배신자로봇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동그래 후기)
이 만화책에서 우리가 처음 만난 인물은 '발톱깎기 로봇과 고양이'였다. 하지만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시작에서만 등장하고 사라진 '능력자 로봇'의 이야기를 많이 했다. 자신이 가진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채 사라진 인물, 어떻게든 이야기에 등장하기 위해 배신자의 길을 선택했던 그 로봇! 왜 그랬을까 변심의 과정을 헤아려보면서 우리 삶을 연결지었다. 내가 애써서 만들어낸 나의 자리에 쉽게 올라탄 친구의 이야기를 하면서 열변을 토했고, 솔직하게 그 친구를 향해 크게 소리치고 싸우고 싶었던 시간들을 나누었다. 나의 자리를 자꾸만 빼앗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할까? 아이들은 먼저 자신의 억울함과 화를 다스려야 한다고 했다. 내 마음을 풀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며 소리치기, 혼자 욕하기, 종이에 적어 욕하기, 축구하기 등을 찾았고, 실컷 마음을 다스린 후에는 그 아이의 맘을 이해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내 마음과 상태를 솔직하게 말하고 해결하고 싶다고 직접 말해야 한다고 했다. 그 아이가 계속 무시하거나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면, 거리를 두거나 복수의 길에 들어서겠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나는 이 해결과정을 살펴보면서 많이 배웠다. 나는 어떻게 했을까, 내 존재가 사라지는 순간에 무엇이라 소리쳤을까? 아이들은 자신의 억울함을 먼저 살펴주고, 자기 힘을 얻은 후에 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해보고, 그 친구에게 직접 말하겠다고 했다. 나를 살피고, 내가 할 말을 하는 것. 그 사람의 반응에 따라 다음을 생각하는 것이 참 성숙한 태도같다. 정말 아이들이 자기 삶에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이렇게 해결해가면 좋겠다. 차근차근. 자기를 살피고, 도움을 요청하고, 피하지 않고 직접 해결해가는 사람으로 크면 좋겠다. 그런 기대를 하니 이 시간이 더욱 소중하고 보람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