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바람과 풀꽃, 그리움에게 • 대상:어린이, 일반
- 남진원
앞산이 발긋발긋 바람이 엷은 물빛으로 술렁거리며 산에서 내려오는 날이면 맑게 씻긴 물소리를 퍼담아 오는 누나의 발자국 소리도 들리고 풀꽃의 작은 웃음소리 몇 개도 살결에 와 기댄다.
눈에 닿는 돌 하나도 친근해지지 않고는 서운한 가을바람 가을 속셈
여름이 떠나간 자리마다 잔잔한 햇빛이 닿아 그리움에 반짝이고 그리움은 풀꽃에 닿아 향기로 번져나고 어디에서도 탐스러운 가을 냄새가 난다.
고개를 들면, 내 작은 손 하나 잡아줄 수 있을 것 같이 파아란 하늘
잠자리 눈망울에 깃든 고요로움을 흔들며 교회 종소리가 번져나면 밀물드는 예쁜 빛깔과 소리가 마을에 동그랗게 내려앉는다.
보렴, 노을이 미끄러지는 하늘 아래 새소리도 귤빛으로 익어 갈 때면 산에서 내려온 나무들이 잿빛 그림자를 마을마다 풀어놓고 무엇이라도 나누어주고 싶은 얼굴을 한 과수원이며 언덕이며 들길을,서로가 서로에게 아름다운 빚을 지우려고 준비하는 환한 서두름을.
그럴 즈음이면 나는 예쁜 크레용 하나씩 들고 풀잎을 찾아가는 꿈을 꾼다.
(출전: 시집 <조그마하게 살기>. 2023. 5.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