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기도(주기도)
■ 들어가면서
* 이 글은 동산교회에서 2009년 사순절영성훈련(3.2~14) 교재로 준비한 것으로, 금세기 미국 최고의 신학자라 일컬어지는 스탠리 하우어위스의 저서 '주여,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복있는사람,2006)와 영국 청교도시대 최고의 설교자 토마스 왓슨의 대표적인 저서 '주기도문 해설'(기독교문서선교회,2003), 그리고 칼 바르트의 '주의 기도' 해설서(다산글방,2000), 임영수목사의 '열흘동안 배우는 주기도문 학교'(홍성사,2008) 등을 참고하여 제작되었습니다.
* 여기에 사용된 한글 주기도문은 예장 통합 총회 결의에 따른 새번역 주기도문이며, 영문 주기도문은 현재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NIV(New International Version)에서 가져왔습니다.
□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분께 이런저런 것들을 간청하고 물었다. “우리에게 아버지 하나님을 보여 주소서.” “나를 구원해 주소서.”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한번은 이런 것을 물은 적도 있다. “우리 중 누가 최고입니까?” 예수님께서 이런 질문에 늘 대답해 주시지는 않았는데, 아마 질문 자체가 그릇된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바른 질문을 하는 것부터가 큰 소득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를 가르쳐 주셨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제자들이 마침내 바른 질문을 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아무리 예수님 주변에 오래 머물렀다 하더라도, 늘 바른 질문을 던지는 법을 다시 새롭게 배워야 한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다워지는 일을 다 숙달했노라고 자처할 수 있는 제자는 없다. 아무리 신실하고 담대하다 할지라도... 오늘 내 삶의 질문은 무엇인가?
■ 기독교는 어떤 교리체계나 조직체, 혹은 바른 행동목록을 제시하는 도덕철학이 결코 아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을 신뢰하며 그분과 함께 걸어가는 삶의 여정이다. 따라서 이 백성의 여정은, 옛 길과 옛 수단에 얽매이지 않고 결연히 믿음의 길로 나아가는 그 자녀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고 계심’을 드러내는 삶의 고백으로 충만하다. 그런데 이 여정은 모험이요 늘 위험이 잠재해 있는 길이다. 마틴 루터는 ‘그리스도의 역사가 일어날 때면 마귀도 행동에 들어간다.’고 말한 바 있다. 마귀는 자기 손아귀에 있던 영혼들이 세상의 안락한 삶과 안전수단들을 버리고 예수님과 함께 길 떠나는 것을 좌시하지 않는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 이 백성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이 여정을 넉넉히 이겨나갈 수 있도록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 그렇기 때문에 주기도는 믿음의 여정에서 만나게 될 위험이 무엇인지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 위험물을 헤쳐 나가기 위해 필요한 도움(필요한 기술)을 우리에게 제공해 준다. 기독교적 삶은 곧 영적 전투(conflict)이다. 우리에게 이 기도를 가르쳐 주신 분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죄악된 이 땅에서 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한 영적 전투는 그치지 않는다. 따라서 영적 전투가 그친 사람은 영적 승리자라기보다는 패배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오늘도 영적 전투 가운데 대장되신 주님을 바라보았는가? 아니면 아무 일 없다는 듯 안락하고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가?
■ 온갖 종류의 기도가 있지만,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도는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 기초를 두고 있는 독특한 신앙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 이 기도를 선택했다기보다, 이 기도가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의 신앙을 형성하고, 우리를 ‘제자의 길’이라고 하는 모험 속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주기도문과 같은 기독교적 기도라는 독특한 실천을 통해 한 무리의 사람들(교회) 속으로 (세례를 받아) 입문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믿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의 말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들이다. 그리고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8:31-32).” 또 주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요14:6).”고 말씀하셨다. 제자가 되어 가는 일이 진리를 아는 일에 선행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먼저 우리 자신을 제자로 바칠 때 비로소 진리를 아는 백성이 된다. 진리는 세상에 대한 어떤 지식이나 명제가 아니다. 진리란 곧 예수 그리스도다. 우리는 그분을 알게 됨으로써 진리를 알게 되며, 그분이 가르쳐 주신 대로 기도하기를 배움으로써 그분을 알게 된다. 나는 진실로 그분의 제자로 이 믿음의 여정을 걷고 있는가?
□ 예수님께서 그 제자들에게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며 기도의 지침을 보여주셨다. 십계명이 생활 규범의 원형이라면, 신조(사도신경)는 우리 신앙의 대의요, 주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 기도의 모범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언약궤의 모형을 지시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우리에게 기도의 모범을 지시하신 것이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는 말씀의 의미는 ‘이것으로 네가 네 기도를 꾸밀 규칙과 모형을 삼으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규칙에 의해 우리의 기도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이것은 주기도문의 낱말 하나하나에 우리가 얽매인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이 말 그대로 기도하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이렇게’라고 말씀하신다. 말하자면, 너희의 모든 간구를 주기도문에 들어 있는 내용과 일치시키고 포함시키라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기도를 이 기도에 조화시키고 일치시키는 것이 마땅하다. 평소 나의 기도는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내용과 얼마나 가까운가?
■ 도덕법(십계명)이 하나님의 손가락에 의하여 쓰여졌던 것처럼 이 기도는 하나님의 아들의 입술로부터 나왔다. 그 음성은 인간의 음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이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하나님께 받은 것이다. 솔로몬의 아가가 ‘노래 중의 노래’로 불리듯, 이 기도는 ‘기도 중의 기도’라고 불릴만 하다. 마치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고 마르지 않는 샘과 같다. 어떤 기도도 이처럼 훌륭하게 그리고 신기하게 지어진 것은 없다.
주기도는 짧으면서도 함축성이 있다. 즉 몇 마디 말 속에 엄청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짧은 기도 가운데 기독교 신학의 중심을 이루는 주제들을 포괄하고 있다. 주기도는 모든 세대와 삶의 자리를 뛰어넘어 이해 가능한 평이하고도 명확한 기도문이다. 주기도는 우리가 구하여야 할 또는 하나님께서 주셔야 할 핵심 사항들을 완전하게 간직하고 있다. 주기도는 이 땅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하나님 나라의 선포이자,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징집되어 살겠다는 담대한 고백이다. 또한 주기도는 자기중심적 신앙을 뒤집어엎는 하나님 중심의 기도이다. 이 놀라운 기도를 우리는 얼마나 아끼며 기도의 내용대로 살아가고자 힘쓰고 있는가?
■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 놀라운 기도를 가르쳐 주신 것에 대해 크나큰 감사를 드려야 한다. 이것으로 우리의 모든 기도의 모형과 모범을 삼을 때, 그렇게 함으로써 기도상의 오류가 방지될 수 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기도들이 있는가? 그러나 그 모든 기도가 다 하나님께 상달되고 응답받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의 뜻대로’(요일5:14) 기도할 때, 우리를 들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본보기를 따라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그의 뜻대로 기도하는 것이다.
간혹 이렇게 말하는 이들이 있다. “주기도를 드릴 때 죄책감이 들 때가 많습니다. 기도하는 내용에 대해 정말로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냥 습관적으로 드릴 때가 많거든요.” ‘습관적’이란 말을 오해해서는 안된다. 습관이란 필요한 것이요 좋은 것이다. 우리 삶에서 정말 중요한 일들은 대부분 ‘습관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들이다.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기 너무나 힘들고, 하나님께 주의를 집중한다는 것이 너무도 어려운 우리의 현실 가운데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의 습관을 간직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예수님께서도 습관에 따라 기도하셨다(눅22:39). 다만 그동안 이 기도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몰랐다면, 이제 배우고 깨달으면 되는 것이다.
주기도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기도가 아니다. 우리의 원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전향시키기 위한 기도가 주기도이다. 주기도는 우리가 생각해 낸 기도가 아니다. 우리가 매일 잠을 자고 음식을 먹어 기력을 회복하고 몸을 씻어 청결을 유지하며 노동과 교제와 섬김을 통해 건강한 삶을 유지하듯, 매일 주기도를 드림으로써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방식으로 살아가기 위한 분명한 목표와 도전, 그리고 힘을 공급받게 되는 것이다. 이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이 기도가 여러분의 기도생활을 더욱 풍성케 하며, 주기도를 진정으로 드림으로써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녀로서의 복된 삶이 시작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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