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흘러흘러 강산이
몇번인가 바뀌었네...
국민학교 다닐 때 여름방학
만 되면 유일하게 버스를
타고 큰 나들이를 한다.
아버지 형제분 중 제일
큰누님, 큰고모댁이다.
큰고모는 얼굴에 혹이 주먹
만한게 턱에 달려있다.
그 동네에서는 마당도 넓었고
집도 좋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 혹시 복혹이라고
돌아가실 때 까지 그대로
달고 계셨다.
나는 철도없이 고모는 왜
얼굴에 이런게 있느냐고
만지면,
'인드라야 이게 복혹이다'
라고 하셨다.
여름 방학만 되면 하빈 큰고모
댁에 가는 게 큰 외출이고
즐거움 이었다.
동생이랑 3번 버스를 타고
엄마가 준비해준 고기를
들고 종점인 강창교에 가면,
곳곳 식당에는 한복에 파라솔을 들고 장구치는
소리, 노래와 춤의 향연이다.
한참을 기웃거리며 기다리다
보면 큰 널판지 같은 배가 도착한다.
배에는 소와 자동차, 보따리
등 등...
둘이서 그 배를 타고 또 버스를
타고 내리면 고모와 고종 사촌
들이 기다렸다가 반긴다.
고모의 정성어린 점심을 먹고는 참외밭에 가자고 졸라
고모랑 가는 길은
동네애들이 무슨 구경거리
인 양 졸졸 따라온다.
우리들은 자랑이라도 하듯
하모니카를 불어주면 신기한
듯 쳐다보며 즐거운 표정에
나는 약간의 뽑냄을 한다.
한 사흘을 동네 애들의
부러움 속에 밭으로 집으로
재미있게 지내다 보면,
별난 내 동생 반찬 투정에
들어가 칼치에 짚이 붙었다는
둥 더럽다는 둥 반찬 없어
밥 못먹겠다고 생트집을
잡는다.
'누부야 빨리 집에 가자고~'
매년 가서 5일을 못넘기고
수박, 참외 한 보따리씩 들고
쫓기듯 온다.